깊은 밤, 산과 숲 사이에 옅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해열제의 빠른 효과에 아린의 열도 많이 내렸다.
그때, 문밖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함영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기계체 하나가 몸을 숙였다.
실례합니다.
주둔지 쪽에 아직 지원이 필요한가요?
함영은 문가에 걸린 망토를 손에 쥐었다.
두 개의 임시 쉼터가 홍수 피해를 입어서, 다른 위치로 옮겨 건축 자재를 교체해야 합니다.
물품은 아직 확인 중이지만, 현재 인명 피해는 없습니다.
함영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보치오니는 손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냈다. 오는 길에 최대한 비에 젖지 않게 보호하려고 한 것 같았다.
아린 아가씨의 몸 상태는 괜찮습니까? 방금 그 아이를 급하게 안고 있는 걸 봤습니다.
아린 아가씨가 이렇게 된 건 제게도 일부 책임이 있습니다.
제 부주의로 취미 생활 친구가 다쳤습니다.
제 프로그램이 이건 업무 실수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치오니는 테이블 위에 약 몇 알을 올려놓았다. 함께 가져온 것은 구룡 특유의 피지 약재 포장도 보였다.
제가 아린을 돌보겠습니다.
정밀 작업을 위해 새로 제작한 교체용 손도 준비해 왔고… 전에 의료용 기계체와 협력한 경험도 있습니다.
보치오니는 자기 팔을 보여주며 이력서를 제출하는 듯한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이곳에 계신 분들 중 일부는 제 초대로 온 분들이에요.
지휘관님, 저와 함께 주둔지를 확인하러 가실래요?
[player name] 님! 함영 아가씨!
대주는 높은 지대에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계체들을 지휘해 사용할 수 없게 된 물자를 옮기고 있었다.
보치오니가 두 분 찾아갔나요?
그렇게 자책하는 기계체는 저도 처음 봐요. 정말 별일 다 보네요.
더 도울 일이 있을까요?
함영과 지휘관의 시선은 대주를 따라 현재의 주둔지로 향했다.
방금 꿈속에서 고장 날 뻔했어.
지나가는 기계체의 혼잣말이 지휘관 귀에 들렸다.
두 남자가 일그러진 판잣집에서 기계체를 옮기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두 기계체가 부랴부랴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
울타리 기둥을 재보강하는 인원.
불을 피워 다른 이들에게 뜨거운 물과 음식을 나눠주는 인원.
큰 비가 내린 밤, 대지 위로 새싹 하나가 자라나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우리 모두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저희쪽 다른 인원들도 참여해서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네요.
그나저나, 여기서 부두까지 걸어가면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대주는 크게 말하고는 히히 웃더니 지휘관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늘도 구름을 걷어내며 잠깐의 자유 만끽했다.
함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새로 생긴 길을 따라 부두로 향했다.
비에 씻긴 길에서 흙과 풀 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는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말없이 걷는 동안, 하늘은 서서히 희미한 빛으로 물들었다.
멀리서 두 사람이 신호소 지붕 위로 올라가 수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멀리 위치한 등대는 작동을 멈췄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켜져 지나가는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어느새 함영은 지휘관과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제방을 따라 걸어가는 동안 하늘에는 이른 아침부터 날아든 갈매기들이 맴돌고 있었다.
뼛속까지 차가운 아침 바람 때문에 지휘관은 자신도 모르게 함영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 바람 덕에 지휘관은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집"
함영은 이 익숙한 단어를 중얼거렸다.
기다리는 이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집"이에요.
함영은 예전에 자신이 던진 질문과 답을 다시 한번 읊조리며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작지 않은 비바람만으로도,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네요.
서로를 지키며 기다리는 "집"과 지금처럼 재건을 통해 다시 탄생한 "집"은 그 모습이 달라요.
제가 지나친 걱정을 했네요.
이곳은 분명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거예요. 그리고 "가족"도 점점 더 많아질 거고요.
하지만 그만큼 미래는 더 예측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때로는 가족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겠죠.
기계체든 인간이든, "집"을 찾는 여정은 늘 험난해요.
저는 이 모든 걸 조금 더... 단순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 진정한 "집"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출발점…
구룡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근원을 찾는 것"과 비슷하네요.
멀리 보이는 산림은 함영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폐허가 된 구룡의 옛 산장이었다.
하지만 수백 년 혹은 더 오래전에도, 누군가는 여기서 집을 짓고 농사를 가꾸고 자녀를 낳아 길렀을 것이다.
자연재해, 전쟁 그리고 이별도 함께 말이다.
긴 세월이 흘러 이 땅에 돌아온 후손들은 보존과 철거 사이에서 갈등했다. 수백 년 전 그들의 조상들이 마주했던 것과 똑같은 고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을 다시 출발점으로 삼았다.
수평선을 넘어 서서히 퍼져가는 햇빛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출발점이 없다면, 종착점에도 도달할 수 없다.
집은 종착이 아닌 시작이에요.
길 잃은 이들을 새로운 고향으로 데려가는게 아니라
그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집을 찾도록 이끌어야겠어요.
새벽녘의 빛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빛의 온기가 전해져 왔지만, 지휘관과 함영은 오히려 더 가까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