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함영·단심·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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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단심·그중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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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의 이른 아침, 산과 숲이 몇 달간의 고요함을 깨고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새들의 지저귐이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지며 주변의 모든 생명을 깨웠다.

자연의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지만 지금은 이 달콤한 잠자리를 조금 더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휘관을 일어나게 만드는 건 음식 냄새였다.

방을 나서기 전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주방에서 나온 함영은 찜통에 담긴 아침 식사를 들고 있었다.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이런 광경을 보니, 이곳이 정말 꿈속이 아닌지 궁금해졌다.

아직 깨어나지 못하신 것 같네요.

지휘관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식탁 위 음식으로 향했다.

찜통에 있는 몇 가지 아침 식사 외에, 식탁 위에 놓여있는 나무 그릇 세 개가 그를 놀라게 했다.

지휘관은 문득 주방 문 너머에서 경계하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의 주인공은 한 아이였다. 불안함이 담긴 경계의 눈빛이 아니라 무언가 익숙하다는 듯한 담담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

함영은 테이블에 아침 식사를 내려놓자마자, 문 뒤를 주시하고 있던 지휘관의 옆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제가 어제 깜빡했네요. 이곳 상황을 미처 소개해 드리지 못했네요. 이 아이는...

함영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저 아이의 이름은 아린입니다. 아린의 부모님도 이 주변에서 방랑했었어요. 다만 제가 발견했을 때... 아린의 부모님은 이미 침식체의 희생자가 되어 있었어요.

결국, 아린을 저희에게 맡기고 떠나셨죠.

함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이런 참담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휘관도 어느새 잠에서 완전히 깼다.

아린아, 이분은 공중 정원의 지휘관님이야. 이 분은 내...

아주 소중한 친구야.

의동생.

의누이.

함영이 아린에게 수화로 다시 한번 설명했다.

함영의 다독임 속에서, 소녀는 문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분위기는 어색했지만, 지휘관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아린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랐다.

아린이는 불의의 사고로 목소리를 잃었어요.

지금은 어떤 마음씨 좋은 분의 집에 머물고 있어요.

주둔지에 있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달라요. 이 아이는 기계 교회의 기계체를 무서워하거든요.

하지만 그곳에선 다른 기계체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으니, 요즘에는 자주 저를 찾아오곤 해요.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려면... 지휘관님, 조금 더 가까이 와주실래요?

함영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둘은 아린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지휘관이 아주 작은 동작으로 아린에게 인사했다.

아린은 여전히 문틀에 기대어 움츠러든 채 서 있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갑자기 지휘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꼬르륵...

그런데, 그 소리는 지휘관의 배에서 난 게 아니었다.

음, 빨리 먹지 않으면 식겠어요.

아린은 시선을 피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용기를 내어 한 발을 내디뎠고 마침내 식탁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동시에 젓가락을 들었다.

전 동의할 수 없어요. 이게 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요?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기 위해 구룡의 건축 자료를 많이 보관해 두었습니다.

패하파가 있는 한 누구도 이곳을 허물 수 없어요!

건설용 중장비도 우리가 가져왔고, 예산도 구룡에서 내려온 거 몰라요?

대주가 도면을 탁자 위에 세게 내리쳤다.

눈앞에 있는 기계체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데다, 감정 없는 말투 때문에 대주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다.

지금 말씀하신 방법으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럼, 가을이 되어서야 끝날 겁니다.

한 달 이상 시간이 지체될 것이고, 인구 증가로 임시 거처를 새로 지어야 한다면 진행 속도는 더 늦어질 겁니다.

이건 구룡의 역사입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제 손으로 망가뜨리지 않을 거예요.

대주는 이 기계체와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텐트를 떠났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말소리는 점차 가까워졌고 이내 패하파와 기계체들이 마주쳤다.

보치오니와 지원 온 패하파 대주가 이 오래된 부지를 재건할 예정이에요.

지휘관은 방금 함영과 함께 이 버려진 장원을 간단히 둘러보았다.

오래된 세월 탓에 이름조차 알 수 없게 된 이곳, 문패는 파손되어 썩은 목재로 변해 있었다.

집들은 완만한 경사를 따라 지어져 계단식 논처럼 건물군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마치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소박한 마을 같았다.

이곳을 다시 복구하기 전까지, 외지에서 온 정착민들은 산기슭에 임시로 만든 주둔지에서만 살 수 있었다.

재난의 흔적은 오랜 세월로 희미하게 지워져 있었지만,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수십 년 전 이곳의 벅적벅적했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는 상상 속에서 북적이는 인파 대신 무성한 오동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거대한 빈터는 한때 중심에 있던 광장임을 짐작하게 했다.이제는 텅 비어버린 이곳에서 폐건물들 사이로 자라난 나무들만이 생명의 기운을 전하고 있었다.

갑자기 들린 거친 목소리에 지휘관은 정신이 들었다.

전 이 녀석하고 도저히 말이 안 통해요! 기계체와 같이 일하면 더 편할 줄 알았는데...

이 거친 태도와 말투는 함영이 언급했던 "대주"와 정확히 일치했다.

어?

함영 아가씨, 그리고...

[player name]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시죠. 죄송합니다. 실례했네요. 저를 대주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대주는 잠시 목을 가다듬은 뒤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고, 지휘관은 그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의견 충돌이 좀 있었습니다.

뒤따라 나온 보치오니를 보며 대주가 한숨을 쉬었다.

충돌이라뇨?

그렇게까지 심각한 건 아닙니다.

이 기계체 녀석이 여기 건물들을 다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전 동의 못하겠어요.

대주님은 보류하고 싶어하시지만, 리모델링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재건축보다 훨씬 더 많이 듭니다.

이는 건축가로서 내린 판단입니다.

구룡의 옛 건물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건 다 소중한 유산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실 거예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여 얼른 말을 끊었다.

대주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지휘관님 말씀이 맞아요. 이런 일은 확실한 근거에 기반해야 해요.

저희는 이제 막 도착했는데, 무슨 측정 결과가 있겠습니까!

저흰 이미 절반 이상의 건물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전부 보존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당신들이 어느정도 사정을 봐주고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전 이 기계체들의 결과를 믿을 수 없습니다. 패하파와 함께 살펴본 뒤 다시 얘기합시다.

감정이 잠시 누그러진 대주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순 없어요. 잡초와 나무가 재건축에 영향을 미칠 텐데, 이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보치오니는 고개를 돌려 대주를 바라보았다.

땔감뿐만 아니라 울타리와 난간도 시급한 상황에서 아주 좋은 제안입니다.

그 작업을 다음 주 일정에 포함시키겠습니다.

갈등은 잠시 누그러졌고, 패하파와 기계체는 말없이 일터로 돌아갔다.

지휘관과 함영도 어느새 산장의 깊은 곳까지 걸어왔다.

함영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고, 그들은 말없이 주변의 낡은 푸른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역시 지휘관님이시네요.

가족처럼 매일 함께 지내는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는데, 첫날부터 협력하는 사이라면 더욱이...

함영은 고개를 저었다.

이전에는 양측의 의견 차이를 조율하고 결론을 내리는 일에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휘관님께 배우려고요.

이때, 발끝에 무언가가 닿는 듯했다.

솔방울 하나가 발밑에서 앞으로 굴러갔고, 함영은 빠르게 따라가 그것을 주웠다.

두 사람이 고개를 들자 따스한 바람이 소나무 숲을 스쳐 지나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솔잎들의 바스락거림은 감히 짐작되지 않는 깊은 감정이 서려 있는 그들의 속삭임 같았다.

장원에 있는 나무 중 하나에서 떨어진 걸 거예요.

함영은 솔방울의 껍질을 쓰다듬으며 살펴보았다.

솔방울은 그들의 "이어진 생명"이에요.

이걸 다른 곳에 심어보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