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해수면 위로 파도가 멀리 퍼져나간다. 그리 크지 않은 여객선 한 척이 느긋하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야항선의 표식은 이 여객선의 소속을 나타냈다. 크진 않았지만, 상당한 수의 승객과 화물을 운송하기에는 충분했다.
선실 안에서 두 기계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선해서 얼른 방청액으로 씻지 않으면, 제 허리가 또 과하게 마모될 것 같습니다.
혹시 방청액 한 병 더 가지고 계시나요? 제 자가 진단 모듈은 예전에 잃어버렸습니다.
일단 제 것을 써도 좋습니다. 나중에 여유 되시면, 한 병으로 갚으시면 돼요. 어차피 그곳이 곧 우리의 집이 될 테니까요.
저는 집이 좋습니다. 예전 주인님은 집에 잘 안 들어오셨지만...
저도 집이 좋습니다. 하지만 전 자유로운 게 더 좋습니다. 그곳에서 뭘 그릴지 벌써 생각해 두었습니다.
창밖으로 제비 기계체 하나가 낮게 날아간다. 갈매기와 장난치듯 빙빙 돌더니 갑판 난간에 내려앉아 날개를 살랑거렸다.
조용해지자 제비 기계체는 객실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안에는 한 남자와 용의 아이처럼 보이는 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제 제자가 이어받을 겁니다. 전 이 일만 끝나면 바로 은퇴할 생각입니다.
누가 평생 건물만 짓고 쇠만 두드리겠어요?
체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친 목소리로 패하파가 말하며, 휴대용 단말기를 남자의 손에 건넸다.
자, 지금 작동되는지 한번 보세요.
드디어 켜졌네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야항선에서 수리했으면, 비용이 엄청났을 거예요.
패하파가 남자의 등을 치며 혼자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성함을 여쭤보지 않았네요.
아, 앞으로 저를 대주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객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제비 기계체가 고개를 돌렸다. 문가로 폴짝폴짝 뛰어간 제비는 신나게 한 바퀴 돌더니, 문 앞에 선 함영의 어깨에 살포시 앉고서는 그녀의 귀에 달린 장신구에 몸을 비볐다.
제비 기계체의 움직임에 함영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흘러내려 바닷바람에 나부꼈다.
함영과 함께 갑판으로 올라온 지휘관은 한 손을 들어 올려 초여름 바닷바람 느끼고 있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더 드시고 싶으시면 저쪽에서도 지휘관님께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함영이 말한 "저쪽"은 바로 이번 여정의 목적지였다.
얼마 전 함영이 편지를 보내왔다.
우주 도시 사건을 겪은 후, 함영은 자신의 힘으로 거주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후, 그녀는 구룡 북부의 오래된 산장을 찾아냈고, 지휘관과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엔 "지휘관님께 보금자리를 재건했던 경험을 배우고 싶어요." 라고 적혀 있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보육 구역 같은 지역의 계획을 돕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 같아 승낙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 어느덧 오후에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었다. 일정으로 보면 이제 항해의 마지막 구간일 것 같았다.
선실을 돌아보니 야항선 선원 차림의 사람들 외에 몇몇 기계체들이 동행하고 있었고, 가장 특이한 건 거침없어 보이는 패하파였다.
대충 세어보니 십여 명 정도였고, 함영은 지휘관이 질문도 하기 전에 입을 열어 의구심을 해소해 주었다.
몇 명의 기계체 건축가들이 미리 방랑자들을 위한 임시 숙소를 지어뒀어요. 최근에 이미 이사 온 방랑자들도 있어요.
전에 조풍에게 부탁드렸더니 패하파도 찾아주셨고요.
다행히 괜한 걱정이었다.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휘관의 곁으로 다가온 함영이 산장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구룡 스타일의 건축물이 산을 따라 지어져 있었다. 배는 아직 도착 전이지만 함영의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다.
지휘관도 함영의 진지한 감정에 물들었다.
이번에 임무가 있으신 건 아니죠? 휴가 동안 하고 뭐 하고 싶으세요?
대부분의 기계체는 차 맛을 느끼지 못하죠. 저도 오랫동안 누군가와 차를 마시지 못했어요.
포뢰가 구룡에서 대홍포를 좀 보내왔어요. 물론 다른 차도 있어요.
낚시 말씀인가요? 심신을 수양하기에 좋은 활동이죠. 제가 그리 잘하지는 못하지만, 필요하시다면 함께 낚시하시죠.
너무 격식 차리지 마세요. 제가 지휘관님을 초대한 거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준비해 뒀어요. 손님처럼 느끼실 필요 없으세요.
함영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앞으로 이 산장이 기계체와 인간 모두에게 집으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꿈"과는 달리, 이건 우리가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일이에요.
함영은 환상의 꿈에서 걸어 나와, 사람들이 "꿈"이라고 부르는 미래를 실현하려 했다.
여객선의 엔진이 잔잔한 해면 위에서 독주를 하고 있었고, 놀다가 지친 제비 기계체는 배의 앞부분에 내려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의 천장인 태양이 지평선과 살짝 맞닿았고, 기온도 따라서 내려갔다.
저녁이 되기 전, 수평선 위 검은 점이 조금씩 선명해지더니 새로 수리한 부두의 윤곽이 드러났다.
지휘관님, 곧 도착해요.
짐과 화물을 옮기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간단한 점검을 마친 후 요트는 야항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했다.
하루 종일 항해했기에 상륙 후의 어지러움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때 기계체 하나가 함영과 지휘관에게 다가왔다.
함영 아가씨.
기계체가 고개를 숙여 함영에게 인사를 했다.
보치오니예요?
이쪽은 도와주러 오신 건축가 보치오니예요.
구룡에서 지원 오기 전에 임시 주둔지 건설을 담당했어요.
[player name]님이시죠? 안녕하세요?
보치오니가 직접 부두까지 온 걸 보니 무슨 일 생겼나요?
공중 정원의 지휘관님을 맞이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온 목적은 그게 아닙니다.
보치오니라는 이 기계체의 말투는 차가웠지만, 친근함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오늘 점심에 방랑자들을 받아들였는데, 수용 공간이 이미 가득 찬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귀한 손님께 독방을 준비해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함영의 안색이 변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준비해 드리는 게 최고였겠지만 그래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요... 혹시 이게 구룡 문화의 '인사치레 말' 입니까? 아직 이런 것들을 배우는 단계라서 이해 부탁드립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이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긴 합니다. 예를 들면...
잠깐만요.
제 방에 침대 하나 더 놓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계산해 보니 함영의 방에 침대를 하나 더 놓을 수 있습니다.
네. 두 분이 함께 지내기에 충분합니다.
지휘관과 달리 함영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지휘관님과도 친분이 있으니까요.
불편하시다면 방 전체를 내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함영은 안도의 미소와 함께 긴장을 풀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지휘관의 손에서 여행 가방을 받아서 들었다.
나머지는 보치오니에게 부탁할게요.
보치오니는 조용히 끄덕이고는 다음 업무를 보러 자리를 옮겼다.
지휘관님, 우선 숙소로 이동하고 내일 현장 상황을 자세히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함영의 안내를 받으며 부두를 떠났다.
하나, 둘...
둘이서 침대보를 펼쳐 침대 위에 살포시 깔았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 구룡 스타일의 작은 침실은 두 번째 침대 때문에 비좁아졌다.
넓진 않았지만 필요한 건 다 갖춰져 있었고, 이런 "비좁음"이 오히려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간단히 씻자, 피로가 밀려와 누웠다.
하루 종일 분주히 움직인터라 무슨 일이든 내일 얘기하고 싶었다.
밤은 깊어져갔고 은은하게 빛나던 등불은 딸깍 소리와 함께 꺼졌다.
달빛은 멀리 자리한 구룡의 전통 가옥들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새들의 노래가 산들을 타고 흘러내리며 고요한 밤의 정취를 더했다.
제비 기계체 하나가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물고 처마 쪽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