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함영·청상·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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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청상·그중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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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추를 따라 마당 뒤편에 있는 창고 같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 주인님이 남긴 모든 예술품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도난 사건 이후, 이곳의 보안 레벨을 강화했습니다.

저울추가 24번째 전자 잠금을 해제하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낡고 쓸쓸한 마당과 달리 웜톤의 조명이 방 전체를 채우고 있는 실내는 널찍하고 깨끗했다. 누군가가 정기적으로 이곳을 청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안 사방에 놓인 나무 선반에는 수많은 두루마리 그림과 도자기들이 놓여 있었고, 유리 진열장에는 다양한 모양의 분류된 도자기 조각상들이 보관돼 있었다.

물건이 없는 빈 곳도 많았다. 그건 아마도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위조품"의 자리인 거 같았다.

당신들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표지에 "구룡", "도자기 굽는 가마" 등의 글자가 희미하게 쓰여 있는 책을 책장에서 집어 들었다.

책장 틈새에 끼어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원통 모양의 물건이었고, 지휘관은 손을 뻗어 그걸 꺼냈다.

이건 주인님이 자랑스러워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도둑맞은 줄 알았는데 이곳에 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저울추의 허락을 받은 지휘관은 함영과 함께 두루마리 그림을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펼쳐 놓았다.

이건...

구룡 문화를 잘 모르는 지휘관이라도 이 그림이 유명한 구룡 화가의 구룡 산수화와 묘하게 닮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다만 이 그림은 원본의 낮 풍경과 달리 밤의 광경이 그려져 있었다. 하늘에는 드문드문 별이 반짝였고, 밝은 달이 높은 곳에 떠 있었다.

구룡은 순환 도시 외에도 넓은 대지를 보유하고 있어요.

끝없이 펼쳐진 강과 굽이치는 산, 구불구불한 산길과 이어지는 정원 그리고 그 속을 수놓은 정자.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은 선과 색채들로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으니, 두루마리 그림 밖의 구룡 산수는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상상하게 됐다.

가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시간이 많으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가볼 생각이에요.

그때가 되면 함께 가실래요?

기회가 된다면 함께 가실래요?

함영의 시선은 두루마리 그림 속 밝은 달에 머물렀다. 달에 흠뻑 젖은 그림 속 인물이 작은 정원에서 달을 감상하는 것 같기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지휘관님. "달은 고향의 것이 더 밝다."라는 구룡의 옛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구룡 사람들은 "집"이라는 유대를 매우 소중히 여겨요. 지구의 어떤 곳에서든 달을 볼 수 있지만, 구룡 사람들은 고향의 달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황금시대 이전부터 인간은 복잡한 사회관계를 형성했고, 법률을 제정해 가족 단위로 살아왔죠.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재난 속에서 자신의 성을 버렸어요. 밖에서 떠도는 구룡 사람들에게 "집"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 이후로 전 떠돌이 신세가 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어요.

이제 그들은 이렇게 평생을 떠돌아다닐까요? 그럼, 집이란 무엇일까요?

함영은 가볍게 고개를 젓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그냥 오래전 일이 생각났을 뿐이에요.

전에 말했던 것처럼 전 야항선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의 전 야항선 무용단의 무희였죠.

과거의 야항선은 겉보기엔 번영했지만, 야항선의 모든 주민이 항쇄에 속박돼 마일리지나 다른 목적을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가야 했어요.

그 때문에 구룡에서 멀어질수록 구룡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갔고, 다들 구룡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죠.

아마도요.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지 많은 게 달라져 있더라고요.

어떤 일은 과거에 두고 오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과거에 남긴 것들은 결코 사라지는 게 아니다...

지금 야항선에서 보는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일상 그리고 야항선과 구룡의 재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용의 아이들과 주민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처음 야항선에 발을 디뎠을 때와 비교해 보면 모든 것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 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게 아니었다. 예전에 남겨진 흉터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용의 아이와 야항선의 주민들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야항선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만들거나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등 모두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폭풍우를 만나더라도 사명과 추억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며 사람들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구룡은 여전히 구룡이고, 방랑하던 사람들도 결국엔 돌아갈 곳을 찾게 될 것이다.

저울추의 주인은 이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배가 정박하자마자 자기 가족을 찾아 나선 게 아니었을까?

새로운 시작이요...

전에도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준 이가 있었어요.

함영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목에 매만졌다. 그곳은 함영의 과거 흔적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고통과 이별이 있었지만, 따스함과 희망도 있었다.

이건 너무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 생각엔...

자신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음...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줄곧 말이 없던 저울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주인님이 원하시는 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 이곳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주인님께서는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제비로 저에게 정보를 전해줬을 때, 주인님이 돌아오지 않으실 거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계시지 않는 "집"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의 데이터를 가져다주시고, 제 소원을 이뤄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는 제가 완전히 파손되기 전에, 주인님께서 남기신 것들을 야항선 용의 아이에게 맡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겠어요. 제가 포뢰에게 전달할게요. 그들이라면 소중히 보관해 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이곳에 온 건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니에요. 지금 작별 인사를 나누기엔 너무 일러요.

함영이 무언의 대화를 나누듯 저울추의 손을 꽉 잡았다. 로봇의 표시등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눈물을 보이는 것처럼 끊임없이 깜빡거렸다.

……

알겠습니다.

본 기체의 실행 시간이 상한에 도달했습니다. 데이터 정리를 위한 정비가 필요합니다. 예정 시간은 5시간 36분입니다.

모든 처리가 끝나면 제 선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울추는 방 안의 구석에 앉아 정비 모드에 진입했다.

지휘관님,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실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저울추의 주인 일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저울추의 말대로 저울추의 주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순간 함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함영은 감정을 빠르게 숨겼으나 지휘관은 그녀의 눈에서 스쳐 지나가는 죄책감을 놓치지 않았다.

며칠 전, 개인적인 일로 구룡성 밖에 있는 산속에 갔다가 돌계단에 떨어진 로봇 제비를 발견했어요.

제비를 발견했을 땐 저도 놀랐어요. 그렇게 작은 로봇 제비가 어떻게 야항선에서 구룡성 밖의 산속까지 날아왔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네. 작은 제비가 계속 산속을 날아다니며, 자기 몸이 손상될 때까지 주인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던 거죠.

결국 제가 가져올 수 있었던 건, 저울추 주인에 대한 일부 데이터일 뿐이었어요.

그래도 전 제비를 데려오고 싶었어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건, 그게 누구든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다.

로봇인 저울추가 이런 일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지휘관님. 로봇도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휘관님의 생각이 궁금해서요.

그런가요?

음... 그렇죠. 마음이 있으니 그리운 거고,

그리움이 있으니, 기다림과 기대도 있는 거겠죠.

저울추도, 다른 이들도 그리고 저도...

지휘관님과 가족을 연기할 때, 시뮬레이션이라는 걸 알면서도 막상 끝나게 되니 아쉬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자각몽에서 깨어나려는 것처럼, 순간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죄송해요. 제가 괜한 얘길 꺼냈죠?

퍼니싱의 재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집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는 안정적인 삶, 밖에서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험을 걱정할 필요도, 전장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평온하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화려하지만 책임, 막중한 칭호나 사명 없이 집안의 사소한 일들만 고민하는 삶.

이런 생활은 지휘관에게는 사치스럽고 멀기만 한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 지휘관에겐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다.

지휘관이 뒤돌아 함영을 바라볼 때, 함영도 지휘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부드럽게 지휘관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관이 함영의 눈을 보자 다시 한번 기시감이 들었다.

지휘관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함영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의 머리 장식이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흔들리면서 맑은 소리를 냈다.

함영을 바라보는 순간, 지휘관은 자신이 잊고 있던 일이 문득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