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세요?
지휘관은 전에 시장에서 산 나무 빗을 주머니에서 한참을 찾은 뒤 꺼내서 함영에게 건넸다.
저에게 주시는 건가요?
함영은 나무 빗을 받은 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소중히 간직할게요. 감사해요.
그녀의 말끝마다 묻어 있는 부드러운 웃음은 꽃 사이를 스치는 산들바람처럼 편안함과 안정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저에겐 답례할 만한 물건이 없어요.
음... 대신 춤으로 답례할게요.
네. 무용단에서 보낸 날들이 저에겐 매우 소중한 추억이에요.
제가 야항선에 돌아온 이후로 춤을 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당 한가운데 선 함영이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팔을 들어 부채를 펼쳤다.
화려한 무대 조명 대신 밝은 달빛이 몸에 감쌌고, 연주 대신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함영은 많은 관객이 아닌 단 한 사람을 위해 춤을 추고 있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불빛 아래의 연약한 그림자~ 매미의 울음소리가 빗소리 같구나~
옷자락이 펄럭이고, 장식품이 찰랑하는 소리를 냈다.
높은 구름에 닿고~ 남쪽 바다에서 은둔하니~ 내 마음이 편안한 곳, 그곳이 내 고향이네~
망망한 속세에서... 돌아간 이를 그리워하네.
때로는 부채 뒤에 숨겼고, 때로는 멀리 떨어진 지휘관과 눈을 맞추는 함영의 눈동자엔 부드러운 달빛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꿈에서 흘러나온 듯 은은하고 부드러운 가락 속에서 비단 같은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달빛은 비스듬히 마당을 비추며 서리 같은 빛을 발했다.
회전하고, 돌아서면서 움직였다.
함영의 춤을 보자, 지휘관은 기억 구석에 환상이라고 착각하면서 간직하고 있던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것 같은 모습은 아득히 먼 옛날 덧없는 꿈에서 봤던 모습이었다. 한순간이었지만 지휘관은 단 한 번도 그 모습을 잊은 적이 없었다.
꽃잎의 환상 속에서 춤을 추던 소녀는 실제로 존재했고, 지금 바로 눈앞에 있었다.
다 춘 함영이 부채를 접고 인사하자, 지휘관도 손을 들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미숙한 춤 솜씨를 보여드려 부끄럽네요.
지휘관님 보기엔... 어떠셨어요?
괜찮아요. 제가 지금 이곳에 있잖아요.
함영은 속삭이듯 말하고는 지휘관 옆으로 다가와 다른 대나무 걸상에 앉았다. 지휘관과 함영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썰렁한 마당을 바라봤다.
달이 높이 솟아오른 밤하늘, 수리를 마친 로봇 제비 두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지붕 처마 끝에 부대끼며 앉았다.
네. 그때까지 좀 쉬세요.
마음이 놓이는 순간, 쌓였던 피로가 졸음과 함께 몰려오더니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의식이 희미해진 지휘관은 부드럽고 포근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주무시면, 감기 걸리겠어요.
어쩔 수 없다는 미소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함영이 다소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본 것 같았다.
……
결정했습니다. 당신이 말한 그곳에 가보겠습니다.
네. 새로운 가족이 가입한다면 아르카나 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교회가... 새로운 "집"이 될 수 있습니까?
그건 당신한테 달렸어요. 그리고 그곳엔 당신의 기체를 정비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요.
마지막 작별 인사는 안 해도 됩니까?
네.
그분의 입장에서든 교회의 규칙에서든,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그리고 전 모두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춤으로 작별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건 그렇고, 이번 일은 포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네요.
지휘관이 깨어났을 땐,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창밖의 하늘이 맑은 걸 보니, 바다 위 폭풍이 완전히 소멸한 거 같았다. 그래서 당분간은 맑은 날씨가 이어질 거로 생각했다.
언제부터 덮고 있었는지 모를 얇은 이불이 지휘관의 움직임에 따라 침대 옆으로 떨어졌다.
소리는 텅 빈 방 안에서 메아리칠 뿐,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허둥지둥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마당에서 함영과 저울추를 찾아봤지만, 처음부터 지휘관만 있었던 것처럼 마당은 썰렁했다.
지휘관은 자신이 꿈에서 깬 건지, 아직도 꿈속인지 알 수 없었다.
당황하고 있을 때, 지휘관은 마당의 돌 탁자 위에서 청옥 부채 장식과 오래된 창고 방 카드를 발견했다.
부채 장식을 손에 쥐자, 서늘한 촉감이 그동안 겪은 것이 꿈이 아님을 알려줬다.
함영이 왜 말없이 떠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야항선으로 돌아오는 한 언젠가는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마음속 궁금증도 언젠가는 답을 알게 될 날이 올 거였다.
마당은 여전히 쓸쓸하고 낡았다. 하지만 부서졌던 문짝은 수리를 마쳤고, 바닥에 있던 먼지도 깨끗이 청소돼 있었다. 그리고 현관에는 작은 등롱이 걸려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임시적인 "집"이었다. 그 이전에는 외로운 로봇이 과거의 시간 속에 남긴 슬픔과 집념이 담겨 있는 곳이었다. 이 마당도 현재 야항선처럼 등불을 높이 달고, 한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웃음꽃이 활짝 피던 때가 있었다.
한순간에 지나간 일일지라도, 그 추억은 실제로 존재했다.
살며시 마당의 문을 닫을 때, 지휘관의 어깨에 내려앉은 로봇 제비 한 마리가 제 부리로 지휘관의 뺨을 가볍게 문지른 뒤, 다시 날갯짓하며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