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참...
빠른 걸음으로 마당에 들어간 함영이 몸을 숙여 방금 전에 떨어진 새를 주웠다.
우산을 들고 가까이 다가가자, 정교하게 만들어진 생체공학 로봇 제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실제 새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비의 날개는 경직된 채 떨리고 있었고, 고장 난 듯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맥없이 함영의 손에 누워있었다.
아니요. 이건 지휘관님 잘못이 아니에요. 예전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적이 있어서 그래요.
여기까지 날아와 준 것만으로도 기능의 한계였을 거예요.
손가락을 모아 부드럽게 제비의 깃털을 쓰다듬는 함영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내해 줘서 고마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해. 나머지는 네 주인한테 직접 말할게.
괜찮아요.
새의 주인을 찾아가죠. 그분이라면 새를 복원시켜 줄 수 있을 거예요.
함영을 따라 깊숙이 들어간 골목길은 조용했다.
이곳도 한때는 매우 번화했던 거주지였는데, 이제는 이렇게 적막해졌네요.
바다에 갇혀 있던 많은 사람에게 이 배를 떠나 마음속 구룡으로,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는 건 그들의 숙원이었죠.
비리야 님께서 야항선을 관리하고 계셨을 땐, 일반 사람에게 야항선을 떠날 수 있는 마일리지를 벌게 해주는 것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었어요.
다만 구룡을 떠난 뒤, 마음속 "집"을 잃은 사람도 적지 않아요.
지금 야항선에 남아서 생활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과거에 갇혀 살고 있어요.
그녀의 어조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듯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것 같은 이질적인 거리감이 느껴졌다.
예전에 이곳에서 살았었어요. 그래서 야항선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랫동안 야항선을 떠났다가 최근에 다시 야항선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이곳도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알고 지내던 옛 친구들도 대부분 없어졌고요. 포뢰가 아니었다면...
말실수라도 한 듯 함영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함영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하자, 지휘관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요. 그렇죠?
위조품이요?
아... 그러고 보니...
최근 야항선 상점에서 위조품이 많이 나타났다고 포뢰한테서 들었어요. 저도 우연히 보게 됐는데, 물건마다 교묘하게 숨겨진 코드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 코드의 주인은...
이야기하던 중, 지휘관의 발이 흔들리는 바닥돌을 밟았고, 거의 동시에 우측 벽 틈에서 스프링이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관이 반응하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벽에서 튀어나왔다.
그때, 부드러운 바람이 귀 옆을 스쳐 지나갔고, 옆에서 걷고 있던 함영이 눈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속도로 지휘관 앞에 막아섰다. 그러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벽에서 튀어나온 화살이 옆에 있는 벽에 박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움직임은 춤추듯 우아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기억 속 어떤 장면과 겹쳐 보였다.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급하게 정신을 차린 지휘관은 함영이 돌아서서 부채를 거두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낡은 장치를 야항선에 설치하면 더 잘 감출 수 있기 마련이죠.
나쁜 의도를 가진 자가 이곳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계속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이 설치했던 거 같아요.
지휘관님, 우리 조심하면서 앞으로 가요.
포뢰가 제공한 노선도는 복잡하고도 뒤엉킨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소용이 없어졌기 때문에, 함영의 안내에 따라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비는 조금씩 그쳐갔다. 가는 도중에 함정 몇 개를 만나긴 했지만, 발동되기도 전에 함영과 지휘관이 잘 대처해냈다.
또 하나의 무인 주택 구역을 들어서자, 변함없었던 거리의 경치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집은 여전히 낡았지만, 수리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생활용품도 먼지 하나 없이 선반 위에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한적하고 아무도 없을 것만 같던 좁은 골목의 깊숙한 곳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자, 지휘관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가 내 지팡이 못 봤어?
엄마, 저 배사림 간식을 먹고 싶어요. 늦게 가면 없을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알았어. 알았어. 이것만 다하면 우리 딸한테 새 옷을 입혀줄 수 있을 거야. 끝나면 서쪽 거리에 가서 간식도 사고 등롱도 볼까?
좋아요!
여자아이는 신나서 환호했고, 땋은 머리에 달린 방울이 여자아이의 움직임에 따라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20번째 테스트... 움직, 움직였어!
몸을 뒤집어. 높이 뛰어! 그렇지! 말뚝에 올라! 계속 뛰어! 잠깐. 다리를 드는 각도가 부족해... 아아아!
중년 남성의 비통한 외침과 함께 거대한 로봇이 큰 소리를 내면서 넘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아빠. 사자춤 로봇은 그만 포기하세요. 그걸 만들고 나서 제대로 가동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 저녁 공연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으니까, 넌 참견하지 마! 그리고 이건 너도 언젠가 배워야 하는 거니까, 저기 앉아서 제대로 봐 둬! 옆집 묵 씨 손녀를 본받아 봐라. 젊은 나이에 공무원이 됐잖니.
절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세요. 이런 건 배우기 싫다고 제가 몇 번이나 말했었잖아요!
이건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기술이야. 네가 배우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그만! 좋은 날에 왜들 싸우고 그래. 둘 다 그만 좀 해.
구 씨. 우리도 슬슬 가지. 채 씨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알았어. 바로 갈게!
마당이 조금씩 떠들썩해졌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빠른 것도 있고 여유로운 것도 있었다. 노인은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웃고 있었고, 크고 작은 선물을 들고 마당에 들어간 손님들은 사자춤 공연에 손뼉 치며 환호했다.
두꺼운 벽들을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소리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음...
그러게요.
함영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지휘관과 함께 좁은 골목길 끝으로 걸어갔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집의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소리는 문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저은 함영이 앞으로 걸어가 손을 들고 문을 밀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귓가에 맴돌던 시끌벅적한 소리가 뚝 멈췄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적막에 순간적인 이명을 들려왔다.
눈앞의 광경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마당 안에는 떠들썩한 가족의 재회는 없었고, 뛰어노는 아이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엄마도 없었다. 그저 회색 바닥 위에 놓인 낡은 나무 테이블과 나무 의자뿐이었다.
의자 위에는 문을 등지고 있는 낡은 로봇이 앉아있었고, 그 로봇의 머리 위엔 전에 본 것과 똑같은 로봇 제비가 있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함영의 눈엔 안타까움이 일렁였다.
시뮬레이션을 중단합니다. 새로 추가된 데이터는 1분 39초입니다. 명령 요구를 달성하지 못해 중복 데이터를 삭제합니다.
규정 프로그램 외의 인원 침입이 감지됐습니다. 무장 방어 모드를 가동합니다.
지휘관은 즉시 붉은빛을 띠고 있는 로봇을 향해 총을 겨눴다. 계획에 없던 전투를 야항선에서 마주하게 될 줄 몰랐던 지휘관은 최소한의 무장밖에 챙기지 않은 상태였다.
지휘관님, 괜찮아요. 저 로봇은 침식체가 아니에요.
이때, 함영은 총을 쥔 지휘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얹으며, 아이를 달래는 듯 부드럽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함영의 말을 증명하듯, 로봇의 변형된 팔에서 나온 검은 포신에서 굉음과 함께 발사된 건 작은 불꽃이었다.
……
연기 속에서 한 사람과 한 로봇이 서로를 마주 봤다. 몇 초 뒤, 로봇의 머리에 있던 붉은빛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제가 졌습니다.
승패는 결정됐습니다. 제 기체가 예전과 같지 않아서 10시간마다 휴면하여 정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파괴한 방어 시설에 대해선 구룡의 법률에 따라 배상해야 합니다.
로봇의 가슴에 약간 금이 간 스크린에서 숫자가 조금씩 치솟더니, 포뢰가 몇 초 동안은 세어야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큰 금액에서 정지됐다.
흥.
로봇의 산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 소리가 냉소하는 것처럼 들렸다.
지난번에 온 인간 도둑들이 제 물건을 많이 훔쳐 갔습니다. 경비를 삼엄하게 하지 않는다면, 제 몸에 남아 있는 나사까지도 도둑질해 갈 놈들입니다.
겉모습이 낡은 로봇이었지만, 지능 수준과 감정 시뮬레이션 기능은 매우 좋은 로봇인 것 같았다. 하지만 로봇이 방금 말한 "인간 도둑"들에 대해서는...
죄송해요. 하지만 당신이 신호 차단을 설정한 뒤, 모든 통신 신청을 거절해서 이렇게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단말기를 확인해 보니, 역시나 오프라인 모드로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방어 장치 외에 통신 차단 장치도 함께 설치된 듯했다.
맞습니다. 비열한 인간들이 제가 정비하는 때를 노려 도둑질했습니다. 제가 제때 발견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아니었다면 주인님이 남기신 물건들을 모두 도둑맞았을 겁니다.
주인님께서 복원하신 인간의 귀중한 예술품들입니다. 필요하다면 목록을 작성해 드릴 수 있습니다.
로봇의 스크린에 표시된 물품 목록 중, 일부 내용은 포뢰가 지휘관에게 보여준 것과 똑같았다.
추가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주인님의 작품에는 제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모든 작품에는 유일무이한 저만의 코드가 있습니다.
뭐가 위조품이라는 겁니까?
그런 말씀은 주의해 주세요. 그 유물들은 모두 주인님과 제가 만든 위대한 기술의 결정체입니다. 주인님께서 완벽하게 복원하신 예술품들의 디테일은 구룡에서 제일가는 감정사도 진위를 가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건 최상의 예술이라는 뜻입니다!
로봇은 흥분했는지, 포신으로 변한 팔을 격하게 휘둘렀다.
하지만 이곳엔 당신뿐이네요. 당신 주인은...
주인님께서는 지금 야항선에 계시지 않습니다.
얼마 전, 주인님께서는 "가족"을 찾으러 산에 간다고 말씀하시곤 떠나셨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명령으로 주인님께서 돌아오시기 전까지 이 건물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건 제 행동 논리에 입력된 명령입니다. 전 주인님의 모든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이건 주인님께서 저에게 설정해 주신 언어 스타일입니다. 주인님께서는 제가 딱딱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정확한 시간은... 2471시간 전... 아닙니다. 계산 오류입니다. 5320시간... 계산 오류입니다. 7340시간, 계산 오류입니다...
로봇은 갑자기 고장 난 듯 계속해서 숫자를 반복했고, 눈 부위의 표시등은 혼란스러운 색채로 깜빡거렸다.
아무래도 중복 데이터가 많아서, 시간에 대한 인식 오류가 생긴 것 같아요.
로봇의 주인은 오래전에 떠난 거 같아요.
얼마 후, 로봇은 계산을 멈췄다.
계산해 보니 주인님께서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기억났습니다. 주인님께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셔서 제가 밖으로 나가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특히, 주인님의 물건이 도난당한 후, 그것들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난다."는 건 주인님께서 내린 명령과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전 우선순위가 더 높은 최종 명령으로 이 명령을 덮어씌우려고 시도해 봤지만, "가족"과 "삶"에 관련된 실제 파라미터가 부족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구룡의 가정생활"에 대한 대량의 현실 자료와 영상 자료를 참고하여 주인님의 최종 명령을 완성하려고 했습니다.
명령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내가 돌아오면, 그땐 우리 가족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자."
"돌아오기 전까지, 집 잘 부탁해."
그렇군요.
그걸 물어보려고 절 찾아오신 겁니까?
주인님의 예술품... 역시 인간들이 가져가서 팔아버린 겁니까?
함영은 이쪽을 힐긋 보더니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멈췄다.
전 이 새의 구조 요청 신호를 받았었어요. 이 새가 우릴 이곳으로 안내했죠.
함영의 손에 있는 새를 본 로봇은 힘이 없어진 듯 포신을 늘어뜨렸다. 로봇의 머리 위에 있던 로봇 제비가 함영의 손에 내려앉은 뒤, 부리로 움직이지 않는 동료를 살짝 쪼았다.
제 기억엔 제비에게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내라고 명령한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제비는 당신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당신이 정비하는 중에 잃어버린 "중복" 기억 데이터도 기록되어 있었어요.
제비를 수리하면, 그 데이터를 획득할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고 보니 침입자분들의 성함은 무엇입니까?
제 이름은 함영이에요.
함영. [player name]. 기억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KLM-324형 산업 보조 로봇입니다. 저울추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주인님께서 이런 이름으로 지으면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저울추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저울추가 수리하는 동안 지휘관과 함영은 마당의 고목 아래에서 기다렸다.
로봇은 설정된 명령을 벗어날 수 없어요.
함영의 표정을 보며 지휘관은 함영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맞아요. 그리고 그 결론이 원래의 명령과 충돌이 생겼죠. 그래서 저울추가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고 시도하게 된 거예요.
제가 보기엔 저울추는 단순히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이 배 안의 많은 사람들처럼, 저울추도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 같아요.
끝나지 않는 꿈에 갇혀, 영원히 깨어날 수도 없고, 깨어나길 원하지도 않는 것처럼...
함영은 고개를 살짝 숙여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감정을 가렸다.
그래서 전 저울추가 명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을 도와주고 싶어요.
잘됐네요.
고마워요. 지휘관님.
저울추가 "가족"과 "삶"에 대한 실제 데이터가 부족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없는 거라면... 방법이 생각났어요.
그럼, 지휘관님...
돌아선 함영은 진지한 눈빛으로 지휘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잠시 제 "가족"이 되어 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시각, 야항선 동쪽 구역의 진 씨 전당포 앞.
조력자는 아직인가?
포뢰가 조력자를 부른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이 몇 신데 오지 않는 거야?
늦었다. 일단 우리끼리 하자.
비싼 값에 사들인 상품들은 어떡해요. 지금 가짜라는 소식이 쫙 퍼졌을 텐데, 그러면 상품은 팔지도 못하고 쓰레기가 되는 거잖아요. 흑흑...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구룡파 나리들, 부디 저를 위해 공정한 조치를...
걱정하지 마. 우린 그것 때문에 온 거니까.
너에게 물건을 판 사람의 인상착의를 알려줘. 우리가 최선을 다해 네 돈을 찾아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