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뒤, 지휘관은 다시 야항선에 올랐다.
전에 있었던 지원 임무에 관한 마무리 작업을 제외하면, 이번에도 공중 정원과 야항선의 정례적인 연락일 뿐이었다.
협의 내용을 확인했고, 모두 문제없어요. 예술 협회에서 보내온 협력 제안에 대해선 수우파와 논의한 후, 빠른 시일 내로 답변드릴게요.
통신 안테나는 우리가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어. 지금은 아무 문제 없고, 혹시 고장이나 다른 문제가 생기면 너희들에게 보수 일지를 공유할게.
지휘관님도 수고하셨어요.
다음 일정은 정하셨나요?
이번 임무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순조로웠다. 돌아가는 수송기는 내일이나 돼야 도착하기 때문에 그사이의 시간이 비게 됐다.
카이사이와 패하랑 작별한 뒤, 서쪽 구역으로 향했다.
예전에 왔을 땐, 서쪽 구역의 시장이나 중간 구역의 구룡파 거점에서 활동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생활감이 넘치는 거주지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너 자신을 좀 봐. 맨날 밖에서만 싸돌아다니고, 그다지 넓지도 않은 배에서 보름이나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잖아. 그럴 거면 차라리 돌아오지도 마!
엄마, 저 탕후루 먹고 싶어요.
탕후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 아빠랑 이야기하고 있는 거 안 보이니? 저쪽 가서 혼자 놀아.
요즘 계속 바빠서...
그놈의 바쁘단 소리 좀 그만해. 내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만든 밥은 한 입만 먹고 가고, 밤에는 애가 잠들면 그제야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고!
요즘 구룡성을 재건한다고 일손이 많이 부족해. 어렵게 만들어진 작업반인데 나 몰라라 할 순 없잖아.
우리를 위해서란 건 나도 아는데 밥은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식었으면 따뜻하게 데워 먹을 줄도 알아야지. 이런 것까지 내가 걱정해야 해?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마. 나 아직 화 안 풀렸어!
……
가는 길마다 야항선 주민들의 바쁜 일상이 보였고, 많은 이들이 재건을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최근 들어 지상의 각 보육 구역에도 거주지 시설이 조금씩 정비되고 있었다. 그래서 떠돌아다니는 많은 이들이 안정적인 주거지를 갖게 됐다. 하지만 야항선과 같은 생활 풍경은 공중 정원이나 보육 구역에선 보기 드문 장면들이었다.
서쪽 구역의 딤섬 가게나 잡화 가게 앞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을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관님!!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소녀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빠르게 지휘관 앞으로 달려왔다.
갑작스럽지만 지휘관님이 도와줬으면 하는 게 있어요!
네. 요 며칠 동안 많은 곳에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야시장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법 상품들을 많이 압수하게 됐어요.
대부분이 퍼니싱 발발 초기에 곡 님께서 "만세명"에 수집한 진귀한 유물들인데, 지금은 대놓고 시장에서 고가에 유통되고 있어요. 게다가...
모두 가짜예요! 유물 속 교묘하게 숨겨진 코드로 AI 식별을 교란하고 있었어요.
포뢰가 보여준 단말기 화면에서 구룡파가 압수한 가짜 유물들이 보였다. 대부분이 구룡풍의 도자기나 그림이었는데, 일부는 예술 협회의 기록에서도 본 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최근 많은 상점이 피해를 보게 되면서, 큰 손해를 입었어요. 그래서 용의 아이들이 위조품의 출처를 조사해서, 사기꾼을 잡아내려고 해요.
하지만 지금 일손이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라 지휘관님께서 위조품들의 출처 조사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면서 포뢰가 단말기를 조작하자, 지휘관의 단말기에서 데이터 수신 알림음이 울렸다.
한 장의 맵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이건 그라피티가 아니라 노선도라고요!
뭔 부적이에요! 이건 노선도라고요!
이런 높낮이 차이를 조심하세요. 저쪽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라 불법 건물이 많고, 지하 파이프도 연결되어 있어서 자칫하다간 벽에 부딪힐 수 있어요.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쪽으로 가면 지휘관님과 함께 할 용의 아이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엔 수수한 차림으로 위장하고 있을 거라, 지휘관님께서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포뢰는 그렇게 말하면서, 판다 모양의 펜던트를 꺼내 지휘관 손에 건넸다.
이걸 그들에게 보여주세요. 그럼, 그들도 지휘관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으악!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전 이만 가볼게요. 가짜 유물 사건은 지휘관님께 부탁드릴게요.
포뢰의 단말기가 딩동딩동 울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전자음임에도 단말기 너머에 있는 이가 단말기에서 튀어나와, 포뢰를 잡아갈 것 같은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윽!
사건의 구체적인 정보는 합류하게 될 용의 아이들이 자세하게 알려줄 거예요. 그럼, 수고해 주세요. 지휘관님.
다음에 또 봐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포뢰의 작은 그림자가 수십 미터 앞 모퉁이를 돌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가판대 앞에 펜던트를 든 채, 앞으로 손을 뻗은 자세의 지휘관만 덩그러니 남게 됐다.
용의 아이들은 여전히 바쁘네요.
많은 사람이 그들을 무서워하지만, 그들이 있기 때문에 배 위의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죠. 읏차!
가판대 주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카트 옆에 걸려 있던 깃발을 내린 뒤, 가판대에 있는 상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밤은 야항선 시장이 가장 붐비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오의 종소리가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곧 바다에서 폭풍이 올 것 같아요. 그럼, 항구에도 비가 오겠죠. 제 상품들은 습기에 약하기 때문에 오늘은 그만 장사해야 할 거 같아요.
우산도 없으신 것 같은데, 저한테 여분의 우산이 있으니 가지고 가세요.
돈은 됐어요.
방금 전에 당신과 용의 아이의 대화를 듣게 됐어요. 동쪽 거리에 있는 가짜 유물 사건을 조사하러 가는 거 맞으시죠? 제 친구도 피해자 중 한 명이거든요. 불쌍한 진, 그 돈으로 구룡에 집을 짓고 노후를 보내려고 했을 텐데...
반드시 진실을 밝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뒤, 몸을 돌려 떠나려 할 때, 가판대 주인이 정리하고 있는 상품이 지휘관의 눈에 들어왔다.
비녀, 화장함, 나무 빗... 형형색색 상품들 속에서 한 물건이 지휘관의 눈길을 끌었다.
가판대 주인은 지휘관의 시선을 받는 가판대의 상품을 보고, 허허 웃으며 수염을 만졌다.
그렇게 마음에 드시면 같이 가져가는 게 어떠세요? 이것도 다 인연일 텐데요.
어떠세요?
지도에 표시된 방향으로 걸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가판대 주인의 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조금씩 세지면서 물안개가 퍼지기 시작했고, 야항선의 누각들은 점차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네온등과 날개 모양의 처마가 장대비 속에서 흐릿한 환영으로 변해갔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인적이 드물었다. 언제부터인가 귓가를 맴돌던 시끌벅적한 소리는 사라졌고, 빗방울이 우산 위로 떨어지는 소리만 적막한 골목길에 메아리쳤다.
둘러보니 먼지가 수북이 쌓인 빈집들이 가득했다. 야항선에 황량하고 쓸쓸한 곳이 이토록 많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십여 분을 걸어봤지만, 한 사람도 보이지 않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속 궁금증이 정점에 달할 무렵, 멀지 않은 모퉁이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죠?
당신을 도와드리러 온 거예요.
장대비에 가려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 누군가가 말하고 있었다.
서둘러 그 방향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좁은 골목을 지나자, 눈앞이 확 트이며 쓸쓸하고 낡은 마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비안개가 자욱한 장대비 속에서 우아하게 서 있는 아름다운 그림자 하나가 머리를 들어 마당 바깥의 기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 세상을 뒤덮는 잿빛 사이, 유일한 녹색인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순수하고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것 같았다.
구룡 스타일의 옷차림을 보니, 혹시 포뢰가 말했던 용의 아이인 건가? 아는 얼굴은 아니지만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드네?
하지만 그녀는 구룡파의 신분을 드러내는 복장이나 가면을 착용하지 않았다. 포뢰가 말했듯이, 조사 중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
오랜 고민 끝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지휘관은 그 여성에게 먼저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
안녕하세요.
지휘관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그녀가 바라보던 처마 위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갑자기 날아올랐다. 그리고 날갯짓을 몇 번 하더니 마당 안으로 떨어졌다.
눈이 마주친 순간,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하지만 지휘관은 상대방을 방해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 구룡의 방식으로 몸을 숙여 인사했다.
몸을 약간 숙여 답례 인사를 건넨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시선은 계속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관광객인 줄 알았는데, 당신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네요?
그녀가 서 있는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기본 무술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라면, 그 자세는 언제든 반격이 가능한 빈틈없는 자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과 합류하게 된 용의 아이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물어보지 못한 게 생각난 지휘관은 포뢰가 자신에게 건네준 펜던트를 황급히 꺼낸 뒤 보여줬다.
포뢰요?
지휘관 손에 있는 펜던트를 본 여성은 조금 놀란 기색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전...
그녀의 작은 중얼거림은 빗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는 상대방을 보며 지휘관은 자신의 이름과 신분증을 보여줬다.
[player name]... 그렇군요.
여성은 눈을 깜빡이더니, 신분증을 보고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제 이름은 함영이에요. 방금 전 실례가 많았네요.
포뢰의 부탁을 받고 오셨다고요?
그렇군요. 알겠어요. 음...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었는데...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저도 포뢰처럼 "지휘관님"이라고 부를게요.
함영이 빗속에서 방긋 웃자, 그제야 그녀가 계속 비를 맞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지휘관은 조금 망설이다가 앞으로 다가가 우산을 함영 쪽으로 기울였다.
괜찮아요.
그래도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