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밤비나타·유리·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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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나타·유리·그중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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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하던 일정표에서 내일 좌담회 강연 원고와 모레 졸업식 연설 원고가 한꺼번에 지휘관의 목을 졸라올 때가 돼서야, 이렇게 힘든 임무를 홀로 도전하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더 많은 시간을 내서 작성해야 했다고 후회했다.

이런 어려움은 단순한 글쓰기의 어려움이 아니었다. 이런 좌담회에서는 지휘관이 예전에 사용했었던 강연 원고 내용을 참고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 준 주제를 참고할 수도 있었다. 하산 의장님조차 그렇게 하고 있었다.

진짜 어려운 부분은 마음속의 불안과 갈등이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은 문장의 구절 구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친애하는 친구들..."

"친애하는 동문 여러분..."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이곳에 모인 여러분은 앞으로 학생으로서, 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글자로 쓰려 할 때, 지휘관은 왠지 모르게 머뭇거렸다.

"여러분은 인간의 희망이 되어, 우리 삶의 터전을 탈환할 것입니다."

이 말을 글자로 쓰려 할 때, 지휘관은 왠지 모르게 머뭇거렸다.

"여러분은 지구 탈환의 사명을 짊어지고,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빛이 될 것입니다."

"몇 년 전, 저도 여러분처럼 이곳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눈에는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지휘관이 파오스 학교 입학식에 참석했을 때의 장면은 최근 몇 년간의 여러 기억에 덧씌워져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디에 앉아 있었고, 그날 누구를 알게 되었으며, 선배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지휘관은 분명 입학식에 참석했었다. 모든 불확실함 중에서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땐 이런 좌담회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 위대한 항쟁의 일원이 되어, 우리 후대의 미래를 위해 힘을 보태는 걸 상상해 보십시오."

다시 마주할 신입생들은 지휘관의 후배들인데, 지휘관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세계는 조금이라도 지휘관으로 인해 좋아졌을까?

오늘날 파오스 출신의 지휘관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지상의 형세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 위대한 항쟁은 절대 쉽지 않으며, 심지어 극도로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초 전만 해도 동료였던 이가 1초 후에는 흉악하고 두려운 적이 될지도 모릅니다."

"1초 전만 해도 살아있던 생명이 1초 후엔 죽을지도 모릅니다."

피와 불 외에도 퍼니싱이 가져온 이질적인 공포는 인간 역사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이한 형태의 침식체, 이합 생물 그리고 인간이 고기와 비슷한 괴물로 변해버리는 것 모두는 일반 사람의 정신과 판단력을 손쉽게 파괴해 버릴 것이다.

"퍼니싱 앞에서 우린 너무나도 약합니다."

"우린 전에 없던 공포와 절망에 마주해야 합니다."

"퍼니싱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고난은 인간의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단말기에서 끊임없이 뛰는 커서가 지휘관에게 표현할 수 없는 기억 또는 그 자리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잠깐 망설이다 결국 단말기에서 방금 적어놓은 몇 마디를 지웠다.

인간의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미래의 희망이 현재의 희망은 아니었다. 그 아름다운 세계는 후세를 위한 것이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는 고통을 더 깊이 느꼈다.

더 괴로운 건 이미 고난을 알고 있는 자신이 곧 고난을 알게 될 사람에게 부드러움을 베풀고, 거짓된 위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일이 더욱더 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다.

삭제한 문장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할 때, 누군가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구조체 하나가 찾아왔는데, 복장을 보니 집행 부대의 대원은 아닌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전 정비 부대의 순찰 대원이에요. 여기 제 신분증입니다.

혹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player name]이신가요?

방금 집행 부대 구역에서 순찰할 때, 한 여자아이를 만났어요. 정확히 말하면 젊은 구조체인데요.

10살 정도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어요. 머리는 두 갈래로 땋았고, 몸에 있는 부품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여자아이가 계속 저쪽 복도에 서 있는 걸 보고, 이상해서 다가가 물어봤어요.

하지만 여자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휘관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지휘관님한테 데려다준다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눈앞의 구조체는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흔들며 헛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여자아이의 말투가 절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어요.

좀 수상한 것 같아서 대장한테 보고하려고 하는데, 지휘관님께 먼저 알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겉모습이 귀여운 아이였거든요.

그의 설명을 들으니, 지휘관은 순찰 대원이 만난 구조체가 누구인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재빨리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순찰 대원과 함께 그가 말했던 곳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화제의 구조체"는 백로 소대 문 앞 장의자에 조용히 앉아 사방을 유유히 둘러보고 있었다. 너무 작아서인지 발이 둥둥 떠 있었다.

당신은...

고개를 들어 지휘관을 바라볼 때, 뒤에 있는 순찰 대원도 발견하게 된 밤비나타는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품었다.

지휘관은 어쩔 수 없이 순찰 대원에게 자신이 맡겠다며 돌아가라는 손짓을 했다.

순찰 대원이 떠난 걸 확인한 후에야, 밤비나타의 얼굴에 고양이 같은 경계심이 어느 정도 누그러들었다.

당신의 목소리에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어요.

밤비나타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player name](을)를 찾고 있어요. 그분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당신이요?

밤비나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맑은 눈동자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밤비나타는 당신 목소리에서 익숙한 느낌이 들어요. 당신은 누구신가요?

착한 수석... 밤비나타는 그 말을 여기에 적었었어요.

혹시 당신이 바로 [player name] 님인가요?

당신이 바로 [player name] 님인가요?

보세요. 여기에 지휘관님과 밤비나타는 함께 의사에게 갔다고 적혀있어요.

밤비나타는 크지 않은 노트를 지휘관 앞으로 내민 뒤, 연노란 다우링지 위의 앳된 글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player name] 님이 병원에 데려다줬고, 밤에 대기실로 돌아왔다."

종이는 인간 문명에 등장한 이래, 하나의 의미를 묵묵히 담당하고 있었다. 심지어 희귀한 과거의 유산이 된 시대에서도 그 의미는 흔들린 적이 없었다.

기록을 위해, 망각에 대항하기 위해.

이런 의미가 부여되기만 한다면, 기록된 종이는 희귀한 소장품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네. 바네사 주인님이 밤비나타가 무슨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 걱정되면 여기에 적어두라고 했어요.

밤비나타는 어제의 일이 생각나지 않아요. 하지만 이곳에 [player name] 님과 바네사 주인님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바네사 주인님이 없으셔서 [player name] 님을 찾으려고 했던 거예요.

그러면서 밤비나타는 다른 줄의 글자를 지휘관에게 보여줬다. 위에는 지휘관과 바네사가 통신한 모든 과정이 적혀 있었다.

"바네사 주인님이 친구 (동료) [player name] 님과 주인님이 이야기를 나눴다..."

"바네사 주인님이 밤비나타한테 착한 수석([player name])과 함께 기체 검사를 진행하라고 명령했다."

원래 쓰여 있던 친구가 서툴게 지워진 뒤, 동료로 바뀌었고, "착한 수석"도 지휘관의 이름으로 고쳐져 있었다. 이런 디테일까지 표현하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밤비나타는 다시 일기의 다른 줄을 지휘관에게 보여줬다.

"[player name] 님이 시간 되면, 다시 올 거라고 말했다."

밤비나타는 지휘관에게 보여주던 일기를 정리한 뒤, 품에 안았다.

밤비나타는 지휘관님이 왜 오지 않으셨는지 몰라요. 그건 밤비나타가 기록한 것과 달라요.

그래서 밤비나타는 지휘관님을 찾고 있었어요. 밤비나타가 많은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밤비나타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요.

밤비나타는 자기 말에 얼마나 많은 슬픔이 담겨 있는지 모르는 듯 사실을 담담하게 말했다.

백로 소대와 바네사의 명성은 집행 부대 사이에서도 자자해서, 일반 구조체들은 백로 소대와 연관되는 걸 꺼렸다. 하물며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백로 소대 대원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어젯밤 밤비나타를 백로 소대 대기실로 돌려보낸 뒤,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시간 되면 다시 보러 올게."

물론 밤비나타는 "시간 되면"을 "내일"로 오해한 것 같았지만, 지휘관은 밤비나타가 아무 생각 없이 한 약속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미래의 어느 날이요? 오늘이 아닌가요?

죄송해요. 밤비나타가 [player name] 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폐를 끼쳤네요.

장의자에서 사뿐히 뛰어내린 밤비나타가 일기를 품에 꽉 안고 고개를 숙여 지휘관을 향해 사과했다. 사과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네. 밤비나타는 이번 교훈을 잘 기억해 둘게요.

밤비나타는 시간 되면은 미래의 어느 날인 걸로 기억했어요.

밤비나타는 이 일들을 모두 여기에 기록할 거예요.

지휘관이 떠나기 전 밤비나타는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말했다.

밤비나타의 모습이 백로 소대의 무겁고 차가운 문 뒤로 사라지려 할 때, 밤비나타가 재회의 마지막에 보여준 건 뒷모습이 아니라 지휘관을 향해 짓는 어렴풋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