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21호·페럴·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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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페럴·그중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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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수집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범위가 특정되어 있다 보니, 지휘관도 필요한 식물 샘플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물론, 21호에게 처참히 패배한 지휘관의 모습은 비 맞은 생쥐 꼴이었다.

지휘관이 21호의 수집 진도를 확인하려고 할 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옆을 헤엄쳐 지나갔다.

기체를 움직인 21호는 검은 화살처럼 수많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 건너편으로 갔다.

샘플을 가방에 넣은 뒤, 21호의 뒤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거센 물살이 지휘관의 발목을 잡았다.

힘들게 강가에 도착했을 땐, 21호의 뒷모습은 관목 숲으로 사라진 뒤였다.

물이 떨어진 흔적을 따라 눈앞의 관목 숲을 헤치자, 흠뻑 젖은 21호가 보였다. 그녀의 머리끝과 속눈썹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21호는 떨어지는 물방울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눈앞의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순백색 털을 가진 어린 늑대가 녹슨 덫에 발이 끼인 채, 21호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휘관의 발소리를 들은 21호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봤다.

피 냄새를 맡았어. 그래서 적인 줄 알았어.

낯선 이가 나타나자, 더 긴장한 어린 늑대는 위협하려고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움직이는 과정에서 뒷다리의 상처를 건드리는 바람에 위협적인 소리는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변했다.

어린 늑대가 걸린 덫은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아니라 수제 덫처럼 보였다. 퍼니싱이 폭발하고 이곳이 중도 재난 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을 때, 스캐빈저가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해 설치한 덫 같았다.

하지만 수제 덫이라 할지라도 그 위력은 굵은 다리뼈 정도는 쉽게 부술 수 있을 거 같았다. 지휘관이 보고 있는 위치에서 철 사이로 하얀 뼛조각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린 늑대의 발을 덫에서 꺼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지휘관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린 늑대는 으르렁거리며 공격 태세를 취하는 바람에, 어떻게 구해줘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으르렁...

이때, 21호는 어린 늑대보다 더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자기 클로를 세웠다.

음...

21호의 야생적인 기운에 놀란 듯, 어린 늑대는 몸을 떨며 송곳니를 거두고 꼬리를 내렸다.

그 틈을 타 지휘관이 덫을 해제시킨 뒤, 어린 늑대의 다친 뒷다리를 빼냈다.

어린 늑대는 눈앞의 21호를 경계하며 천천히 뒷걸음쳤다.

그러면서 구해준 사람에게 불쌍한 눈빛을 보내지 않았고,

덫에서 풀려난 뒤에 경계를 풀고 구해준 사람의 주위를 맴도는 일도 하지 않았다.

어린 늑대는 눈앞의 21호를 바라보며 털을 바짝 세우고 있었다.

21호도 위협적인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구해준 사람보다는 사냥감을 찾은 듯한 표정이었다.

어린 늑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뒤, 몸을 돌려 숲속 깊은 곳으로 절뚝거리며 달려갔다.

숲속 깊은 곳으로 사라진 어린 늑대는 끝까지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21호는 어린 늑대가 도망친 방향을 계속 바라봤고, 다시 원래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player name], 할 말 있어?

이 임무를 받은 것도 야생 동물을 보고 싶어서였으니까.

21호는 야생 동물을 좋아해.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숲의 잔혹함을 잊게 해서는 안 돼.

21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숲은 약육강식이 존재하는 곳이야. 경계를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해.

캐노가 그렇게 말했어. 그리고 21호도 그 말에 동의해.

[player name]은(는) 안심시키려고 했을 거야.

예전에 21호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저 녀석이 있어야 할 곳은 우리의 옆이 아니라 숲이야.

숲속에는 [player name]이(가) 없어.

숲에선 경계를 유지해야 해. 그래서 21호가 그렇게 했어.

그래도... 21호를 보고 겁먹은 모습을 보니, 여기가 텅 빈 것처럼 느껴졌어.

21호는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21호가 이상한 거 같아?

"아쉬움"...

21호가 갖고 싶었던 걸 가지지 못해서 그런 거야?

21호는 이와 같은 상황에 몇 번을 부딪치던 똑같이 행동할 거야.

[player name]도 피할 수 없어?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아?

응.

21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 질문에 21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한참 후에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 않을 거야.

필요한 것만 하고, 불필요한 건 하지 않는다는 건가?

21호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야수로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인간 신분도 인정하고 있었다.

이빨을 드러내는 건, 적을 물리치기 위함이 아닌 21호만의 온정이었다.

복잡한 감정을 가진 21호는 예전처럼 단순하진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확고한 자아를 가지게 됐다.

감회에 젖은 듯 말한 지휘관은 21호에게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느꼈다.

[player name]. 실망했어?

그냥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손을 내밀어 21호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돌연 망설여졌다.

이때, 손바닥에서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21호는 공중에 멈춘 지휘관의 손에 머리를 문지르며, 자기 뺨을 지휘관의 손바닥에 가져다 댔다.

시간이 21호가 처음으로 지휘관 휴게실에 방문했던 그 오후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았다.

그때의 21호는 "인간의 냄새"에 집착했고,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진짜 태양처럼 따뜻한 공중 정원의 인공 태양이 지휘관과 21호를 부드럽게 감싸줬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때, 손가락이 부드러운 무언가에 닿았다.

고개를 숙여보니, 그건 21호의 귀였다. 21호는 고개를 들고 서로 다른 색상의 눈으로 지휘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