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준한 길 위에 바퀴가 먼지를 휘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탑승한 지프차는 정비 부대의 개조를 거친 차이기 때문에, 속도 조절만 잘한다면 전복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됐다.
핸들을 조작해 높은 구역을 피하면서, 머릿속으로 임무의 세부 사항을 되새겼다.
이번 임무 장소는 이 보육 구역에서 42킬로미터 떨어진 원시림이에요.
담당자는 말하면서 단말기에서 지도를 열었다.
퍼니싱이 발발하기 전부터 자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다양한 희귀 동식물이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퍼니싱이 폭발한 후, 아무도 진입할 수 없는 "중도 재난 지역"이 되어버렸어요.
동물들은 놀라서 도망갔을 수 있었지만, 식물들은 움직일 수 없죠.
게다가 퍼니싱은 식물에 위협이 되진 않으니까요. 적어도 이합 재난 구역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때문에 지금의 정화 구역 범위 내에 속하는 원시림 속에는 우리가 필요한 식물 샘플이 다량으로 존재할 거예요. 지휘관님과 21호가 관련 식물을 찾기 쉽게 해당 이미지를 단말기로 보내드릴게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담당자는 조금씩 긴장을 풀고 흥분한 듯 말했다.
이 샘플들이 있으면, 우리의 재고를 늘릴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의 후세들도 지구의 다른 생명체를 전자 모방을 통해서가 아닌, 실제로 보면서 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지휘관은 다시 패널을 열어 목표 지점까지의 거리를 확인했다.
……
21호는 지휘관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핸들을 잡고 있는 지휘관의 손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지휘관의 물음에 21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저도 모르게 어린 소녀를 훑어봤다. 지휘관의 시선을 느낀 21호는 흔들던 꼬리를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운 뒤, 털을 살짝 곤두세웠다.
21호는 액셀을 밟을 수 있어!
운전은 항상 녹티스 몫이었어.
대장이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고 해서 21호에게 가르쳐 준 적이 있어.
출발한 뒤로부터 줄곧 느껴졌던 21호의 뜨거운 시선을 이기지 못한 지휘관은 차를 천천히 세운 뒤, 21호와 자리를 바꿨다.
21호가 이런 일로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지휘관은 마지막 10킬로미터 동안 임무 목록을 다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숙이고 단말기를 확인하고 있을 때, 보들보들한 머리가 지휘관의 품을 파고들었다.
21호가 고개를 돌리자, 하얀 머리카락이 지휘관의 팔 위에 흘러내렸다. 서로 다른 두 눈동자와 지휘관의 두 눈이 마주쳤지만,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초점은 지휘관 쪽에 있지 않았다.
이어서 21호는 지휘관의 귀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달칵...
그녀의 손등이 귓가를 스치며 지휘관에게 안전벨트를 매줬다.
안전제일.
다시 운전석에 앉은 21호도 안전벨트를 맸다.
[player name]의 귀가 뜨거워. 어디 불편해?
지휘관은 조수석의 창문을 내렸다. 하지만 21호는 운전석의 창문을 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고 있던 지휘관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 시끄러워.
지휘관은 관성에 의해 날아가지 않도록 의자의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관이 내뱉는 말은 21호에게 닿기도 전에,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삼켜졌다.
영원토록 속도를 줄이지 않겠다는 게 21호의 운전 원칙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정비 부대의 강력한 엔진이 탑재된 이 지프차는 그런 21호의 드라이브 스타일에 딱 맞았다.
강력한 관성 때문에 사소한 세부 사항들이 주마등처럼 지휘관을 스쳐 갔다.
케르베로스와의 몇 안 되는 협력 전투 중에서 운전은 대부분 녹티스의 몫이었다. 아마도 이런 운전 스타일 때문에 녹티스는 21호가 핸들을 잡지 못하도록 막았던 거 같았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보니 의식의 바다에 혼란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던 거 같기도 했다.
대장이 천천히 가르쳐 줄 시간이 없어서, 결과만 책임진다고 했어.
혼자 많은 자료를 공부했어. <86하산>, <순정의 질주>, <극속 20초>...
21호가 녹티스보다 더 빨리 시험에 통과했는데, 대장은 항상 녹티스에게 운전시켰어.
베라의 판단을 믿었어야 했는데...
펑!
지프차의 타이어가 돌출된 곳을 밟고 지나가자, 차체가 공중에 떠올랐다.
순식간에 세상이 흐려졌고, 흔들림과 소음 때문에 머릿속이 조금씩 하얗게 변했다.
속도계기판, 내비게이션, 차량 컨트롤 패널,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없게 됐다.
공중에서 머무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는 것 같았다. 극한의 속도 속에서 인간의 수정체는 바닥까지 눌린 스프링처럼 주위의 풍경을 모두 흐릿하게 보이게 했다.
똑똑이 볼 수 있는 거라곤, 두 눈 사이의 작은 공간, 코끝의 땀방울, 높은 하늘에 걸린 태양 그리고 눈앞을 스치는 하얀 머리카락뿐이었다.
퉁!
지프차가 다시 땅에 떨어지자, 지휘관의 심장도 한 박자 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혈액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전에 없던 상쾌함이 밀려왔다.
지난 며칠 간의 피로가 한숨과 함께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player name]도 가벼워진 거야?
21호가 갑자기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속도가 빠르면, 많은 걸 잊어버릴 수 있어.
그러면 날아오르는 것처럼, 가벼움을 느낄 수 있어.
[player name]도 이런 느낌을 느꼈어?
21호는 [player name]에게 가벼워지는 느낌을 나누고 싶어.
21호는 이 "가벼움"을 지휘관에게 공유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나눠주고 싶은 것을 상대방의 손에 강제로 쥐여 주는 격이었다.
이런 직접적인 스타일은 21호 다웠다.
심장의 고동과 함께, 혈액이 신선한 산소를 온몸 구석구석에 전달하자,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날개가 달린 듯한 몸이 강력한 동력에 의해 하늘로 밀려 올라가는 것 같았다.
21호가 속도를 더 올린다!
21호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버튼을 누르자, 차 뒤에서 파란색 불꽃이 뿜어져 나오면서 차체가 제자리에서 이륙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하하.
아무래도 베라가 차를 건드리지 못하게 한 탓에 많이 쌓였던 거 같았다.
이렇게 생각한 지휘관은 모든 걸 내려놓고 소리 지르며, 광란의 질주를 즐겼다.
멋진 드리프트와 함께 지면에 검은 타이어 자국을 남긴 지프차가 숲 입구에서 멈췄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서 뛰어내린 21호가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했다.
목표 지점에 일찍 도착했어.
[player name], 안 내려?
도파민의 흥분 효과가 사라진 뒤, 다리가 후들거려 내리지 못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멀미야? 그럼, 돌아갈 때도 21호가 빠르게 운전해 줄까?
급하게 21호의 제안을 거절한 지휘관의 목소리는 음이 높을 뿐만 아니라 날카롭기까지 했다.
21호는 구조체야. 피곤하지 않아.
[player name]은(는) 휴식이 더 필요해. 그러니 운전은 내가 할게.
21호는 아직 여유 있어.
하지만 지휘관은 극한에 다다를 정도였다.
더 이상 구조체와 가속 레이스를 하고 싶지 않은 지휘관은 황급히 21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음...
21호 이해했어. 말 들을게.
[player name]이(가) 말한 "편안함"도 느껴보고 싶어.
21호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나눠주고 싶은 것을 상대방의 손에 강제로 쥐여 주는 이었다.
그래서 종종 상대방이 주는 선물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21호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눈동자엔 기대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