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21호는 정기적으로 시뮬레이션 전투 훈련을 하고, 나는 그녀의 원격 연결 지휘관을 맡아 전투 중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키는 데 협력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조정 아래 21호와의 호흡도 잘 맞게 되어서 21호가 의식의 바다 이탈에 의해 제어 불가가 되는 빈도도 적어지고 있었다.
이후 21호는 동기화 연결 없이도 위험 등급이 매우 높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시뮬레이션 전투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시뮬레이션 전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21호의 표현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시뮬레이션 전투용 원격 링크 시스템에서 일어나니, 21호가 선실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의식의 바다는 안정됐고, 최근 20차례의 시뮬레이션 전투에서 더 이상 이탈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면 전쟁터로 돌아가는 일도 더 이상 거절당하지 않을 겁니다.
연구원은 놀라운 길이의 임무 보고서를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드디어 야근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좋습니다. 시뮬레이션 전투 보고서는 제가 제출할 테니 먼저 가셔도 됩니다.
끝났어?
21호, 이후 임무를 수행해도 돼?
응.
그럼 지금은 뭘 해야 해?
응. [player name]은(는)?
21호와 작별 인사를 한 뒤, 곧바로 나이트 팔콘의 기지로 향했다.
21호는 정상적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되었지만 마지막 숙제가 남아 있었다.
케르베로스 기지 밖 복도에서 구조체 병사들이 진입하려는 21호를 가로막았다.
그……21호, 반가워.
?
나는 그날……나이트 팔콘 소대의 대원이야. 네가 르노의 명패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주었지.
……명패
"사람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사과하자."
"너의 방식으로."
미안해.
너한테……어?
21호, 사과해야 해.
그때는 웃으면 안 됐어. 그때 웃은 건 잘못된 거야.
구조체는 21호가 먼저 사과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야. 네가 가져온 명패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어.
그때 내가……너무 슬퍼서 너에게 실례되는 말을 해서 정말 미안해.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구조체는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21호의 표정을 관찰했다.
21호는 상황 밖에 있는 사람처럼 눈만 깜빡일 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나를 비웃으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그러는데... 그때 표정 관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날 위로해 주고 싶었던 거지?
표정관리가 안 돼서 힘들지. 일상적인 전투에는 지장이 없지만 그래도 구조체 정비실에서 처리해 보는 건 잊지 말고……
표정관리……?
21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한편 구조체는 21호의 의혹을 의식한 듯 긴장한 표정으로 뒤돌아서 전술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특별한 건 아니지만……그래도 받아줬으면 좋겠어.
구조체는 손에 동글동글한 흰색 솜털 인형을 21호에게 건넸다.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서……광장의 선물가게에서 내가 알아서 샀어.
이거, 네……보조 기계와 닮았지?
21호는 자신의 앞에 건네진 인형을 빤히 쳐다보며 경계하며 한발 물러섰다.
이게 뭐지?
어……하나의 선물이야, 감사 의미로……
검사 완료……위험 없음.
나 지금 어떻게 해야 해?
어? 아……?
응, 그냥 받으면 돼.
……
21호는 말없이 솜털 인형을 받았다.
인형의 크기는 21호에 비해 다소 컸고, 이를 받은 21호에는 머리가 반쯤 가려진 채 쉴 새 없이 깜빡이는 눈만 보였다.
그날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정말 고마워.
명패만으로도……그가 싸웠다는 증거야.
너가 그의 명패를 가지고 와서 그의 이름이... 황야를 떠돌지 않게 됐어.
그를 기억할 수 있게 해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한 뒤, 구조체는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21호는 품에 안긴 인형을 보고 다가가 냄새를 맡더니 "아우"하고 한입 물어뜯었다.
으음……
변함없이 표정이 없었지만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음이 놓여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
왜 기둥 뒤에 숨어있어?
[player name]의 냄새를 맡았어. 왜 여기에 있어?
아니야. 처음부터 여기 있었어. 21호는 틀리지 않아.
21호는 딱 잘라 말했다.
모퉁이에 숨어서 상황을 살피다 잡혀 당황했지만 21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녀는 그저 손에 든 인형을 들고 자랑하듯 자기 앞으로 끌어안았다.
응. 이거 [player name]과 닮았어.
응, 꼬마하고도 닮았다.
21호는 인형 뒤로 머리를 내밀었다.
이걸 봤을 때 여기가 따뜻해졌어. [player name](을)를 봤을 때랑 같이.
그래서 많이 닮았어.
이게 "행복"한 느낌이야?
여전히 무표정이지만, 21호가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 선물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번처럼 21호가 이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나타난 감정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기쁨……
21호는 이 낯설고 익숙한 단어를 곱씹으며 손을 들어 인형을 자신의 품에 안았다.
여기.
나에게는 이미 꼬마가 있어.
하지만 지휘관은 없어.
그리고 고마워.
21호는 알아. [player name]때문에 21호는 이것을 받을 수 있었어.
처음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낯선 사람의 선의를 느꼈다.
그녀는 이 "기쁨"을 나하고 나누고 싶은 것일까?
음……
그럼 [player name]은(는) 어떤 "선물"을 원해?
리더다!
말을 다하기도 전에 21호는 내 뒤로 달려갔다.
보아하니 문제가 해결됐네.
베라는 팔짱을 끼며 걸어왔고 그 뒤에 환하게 웃는 녹티스가 뒤따라왔다.
하하하하하하, 너 손에 있는 건 뭐야, 바보 같아, 너보다 더 커 보이는데...
베라는 칼자루를 돌려 녹티스의 갈비뼈를 세게 찌른 뒤 낯익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어.
하지만 감동할 시간이 없어 21호. 임무가 있다.
너에게 이렇게 긴 휴가를 줬으니 앞으로 잘 해야 해.
21호, 언제든지 명령을 내려줘.
쯧쯧, 요즘 임무에 네가 없으니까, 혼나는 건 나뿐이야.
재미없어.
하지만, 이전에도 녹티스만 혼났어.
하?!
더 분발해서 맞는 것도 너 혼자뿐인 걸로.
베라와 녹티스가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21호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모르는 평범한 여자아이 같은 미소였다.
전투 중 의식의 바다가 불안정했던 문제를 해결하고 구조체의 오해를 풀고 21호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이렇게 되면……21호와의 짧은 호흡도 끝낼 수 있고, 이제부터는 베라가 챙겨줄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마음을 놓고 떠났다.
……
21호는 인간이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이상한 감정이 북받쳤다.
섭섭하고 아쉬운 듯, 한순간에 따라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