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에 필요한 장비... 준비 완료.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휴게실 위치... 확인.
의식의 바다에서 전에 배운 것 한 번 연습.
마지막으로 미소를 잊지 말기.
미소를 잊지 말고.
거울을 마주하고 미소를 지어 보았다.
……
아직은 흉하지만, 그렇게 무섭지는 않다.
이 정도면 다른 사람이 화낼 것 같진 않다.
이 정도면 준비가 다 된 셈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오늘은 평온한 하루여야 한다.
작전 임무나 회의가 없어서 오전 내내 훈련실에서 지냈다.
점심에 예술 협회에 가서 얼마 전 아이라에게 부탁한 자료를 찾은 뒤 21호의 상황을 확인할 예정이다.
앞으로 펼쳐질 전개가 자신의 예상을 빗나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지금 지휘관 휴게실 문 앞에 서있는 나는 안 쪽의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전까지는 익숙해진 방이 자신에게 적잖은 충격을 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방금 지휘관님의 휴게실을 지나다가 문이 열려 있어서 눈치챘어요...
... 지휘관님. 요즘 바쁘시겠지만 방의 청결에 주의해야 해요.
적어도 물건이라도 챙기셔야 해요. 그렇게 함부로 땅에 버려서는 안돼요.
그리고... 음...
리브는 왠지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고 발걸음을 재촉해 내 방 앞으로 왔다. 그러자——
문이 활짝 열리자 차마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각종 낡은 장난감, 휘장, 유리병, 그리고 너트 케이스, 기계부품,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바닥은 발 디딜 틈이 거의 없었고 흰머리 구조체 하나가 이 물건들 사이에 앉아 삐뚤삐뚤한 보조기를 상자 안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아, [player name].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는데, 사람을 찾지 못해서 21호는 여기서 기다렸어.
이건 "선물"이야.
[player name]한테 주는.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마땅히 감사해야 해. 나는 아직 지휘관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했어.
왜 지휘관님 고맙다고 해?
으음...
21호는 일어나 등을 돌렸고 어깨가 심호흡을 한 듯 오르내렸다. 그 후 몸을 꼿꼿하게 해서 뒤돌았다.
[player name], 고마워.
내 표정이 정말로 무서워?
연습한 것이 꽤 효과가 있는 것 같아.
21호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소매로 덮인 팔을 들어 얼굴을 문질렸다.
지금은?
그럼... 연습이 더 필요할 거 같아.
그럼... 다음.
21호는 몸을 움직여 작은 짐승처럼 엎드린 뒤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곤 두 손을 움켜쥐었다.
... 냐옹?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순간 문 밖에서 들려오는 군중의 소리가 더 커진 듯했다.
21호가 "감정"을 공부하던 기계가 고장 났기 때문이야.
그래서 21호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물어봤어.
이건 모두 "감사"할 때 표현하는 기본적인 상식이야.
이건 잘못된 거야?
21호는 고개를 숙였다. 쓸쓸한 회색빛 눈망울에 한 가닥 미련이 더해졌다.
... 21호 모르겠어.
사람은 슬프고, 웃고, 공감하고, 자신의 의지로 일을 결정하지만, 마음이 없는 기계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들은 원래 그녀의 것이다.
방금 전까지 손에 쥐고 있던 신규 시청각 단말기를 21호의 손에 쥐어줬다.
그 하얀 늑대는... 21호는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어.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그것은 계속 떠돌고 있어.
정말...?
역시 리더와 비슷하지만 또 달라.
[player name]의 냄새는 특별해.
21호가 실험실에 있을 때는 이런 냄새를 한 번도 맡은 적이 없어.
... 따뜻해. 21호, 좋아.
21호도 "인간의 냄새"를 갖고 싶어.
지휘관의 냄새는 예전부터 좋았어.
자신의 생각을 어색한 언어로 표현한 21호는 천천히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순수한 짐승처럼 멀리서 적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낼 수도, 믿었던 동료에게 기대어 코를 골수도 있다.
[player name]을 만나면 달라져.
하지만 21호는 이런 느낌이 싫지 않아.
21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회색 동공으로 나를 응시했다.
21호는 지휘관님을 계속 보고 싶기 때문이야.
이건 잘못된 건가?
21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신의 말속에 뭔가 잘못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소녀의 너무 사랑스러운 표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에서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지자 21호는 고개를 들어 거두려는 손에 머리를 문질렀고 부드러운 볼을 손바닥에 갖다 댔다.
시간이 흐를수록 창 밖의 따스한 인조 햇빛은 점차 각도를 바꾸어 갔다.
따스한 햇빛이 유리를 넘어 안쪽으로 비추었고 나와 21호를 서서히 따스한 빛으로 감싸 안았다.
오늘 햇빛이 처음 그날처럼 따뜻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스치고 지나간 인간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