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새끼는 은식처 깊숙이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 재난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습니다. 부모의 보호를 잃고 너무 약한 그는 사냥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무리로부터 버려졌습니다."
"극지의 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수개월의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냥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죠."
케르베로스의 기지는 어두웠고, 방에서는 간간히 사람의 목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소리들은 공중 정원 교육 영상 수업의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적이 있다.
"얼음 평원에 작은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먹이를 찾아 대군을 이탈해 끝이 보이지 않는 툰드라 속에 남겨진 레밍입니다."
"무리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곧 죽음과 같습니다."
"어린 늑대에겐 이것이 삶의 희망입니다."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이 텅 빈 방에 울려 퍼졌고, 소리의 발원지를 따라들어가니 방구석에서 꺼진 전광판을 발견했다. 스크린 앞에 누군가 움츠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잘 보이지 않자 단말기의 희미한 불빛을 빌려 그쪽으로 향했다.
"……레밍은 한 걸음 한 걸음 풍요로워 보이는 초원에 다가갔고, 흰색 늑대는 초원 옆의 돌멩이 뒤에 웅크리고 앉아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상과 의자를 돌아서 소리의 근원에 다다랐다.
이곳은 보급 상자와 책상으로 만든 작은 공간. 오래된 시청각 단말기가 공간 중앙의 바닥에 놓여 황금시대 인기 동물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었다.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여기서 났지만, 방금 전에 본 사람의 그림자는 종적을 알 수 없었다.
시선을 내려 시청각 단말기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주의했다. 누가 이곳에다 놓은 걸까?
"흰색 늑대는 점점 다가오는 레밍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온몸의 모든 근육이 힘을 비축하고는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냥은 늑대의 몸에 처음부터 새겨진 본능입니다. 그들은 사냥감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잡을 수 있고 실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지금——"
갑자기 뒤에서 "찰칵"하는 작은 소리가 나더니 시선에서 하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한순간 뒤에 야수 같은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고, 시선을 감지한 동시에 재빨리 총을 뽑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회색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방안의 등불이 이때 켜졌다.
꼬마야, 공격 하지마.
가냘픈 여성 구조체가 천장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넓은 소매가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소녀의 얼굴이 나의 얼굴 앞에 멈춰 섰다. 하얀 긴 머리가 늘어져 이마가 드러났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총을 들어 올린 팔이 잠시 허공에서 멈췄다.
뭔가가 다리를 스쳐 지나갔다. 21호와 떨어지지 않는 보조 기계는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내 주위를 몇 바퀴 돌고서는 공격 포즈를 취했다.
21호는 두 다리를 가볍게 흔든 후 아름다운 자세로 몸을 돌려 착지했다. 심지어 아무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21호의 경계선을 밟았어.
이곳은 21호의 영역이야.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이자 자신이 있는 땅에 흉악해 보이는 긁힌 자국이 있었는데, 마치 무기로 억지로 그은 것 같았다.
"경계선"은 땅에 동그라미를 그어 공간을 확보했다.
총을 허리에 차고 옆으로 몇 걸음 물러나니, 보급 상자로 만든 작은 "소굴"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거리가 멀어지면서 21호의 팽팽한 긴장감이 확연히 풀렸다.
대장이 이런 인사 방식을 좋아한다고 말해줬어.
그래서 21호는 이런 방법으로 맞이해봤어.
21호 기억할게.
21호는 고개를 숙이고 단말기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인사법을 적었다: "일반".
"치직——"
아까부터 무시당하던 동영상 단말기가 관심을 가져달라는 듯 날카로운 잡음을 냈고, 다큐멘터리를 틀던 화면이 의미 없는 모자이크 화면으로 처리되면서 뭔가에 걸리는 소리가 단말기에서 흘러나왔다.
21호는 이걸로 전투 이외의 일들을 "배워".
……하지만 매번 여기서부터 화면이 망가져버려.
21호는 시청각 단말기를 들고 가슴에 안은 채 흔들었다. 마치 그렇게 하면 고칠 수 있는 것처럼.
무슨 버튼을 눌렀는지 시청각 단말기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이 정말 멈췄고, 화면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21호의 눈이 반짝이며 단말기를 가슴에 받쳤다.
단말기의 동영상이 계속 재생되는 것 같지만——
이동 중인 동물들은 빠르게 뒤로 후퇴했고, 레밍들은 뒤로 물러서며 입에 넣은 식물을 온전히 토해냈고 온화한 내레이션 소리마저 기괴한 속삭임으로 변했다.
……
21호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조용히 화면을 응시했다. 이때 화면 속의 하얀 늑대가 넘어진 어린 사슴을 구해 사슴 무리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하얀 늑대가 집으로 돌아왔어.
전에는 혼자였는데, 지금은 그 옆에 다른 늑대가 있어.
21호는 단말기를 들어 자신을 향해 마주하게 했다. 동영상은 뒤로 감기로 인해 어린 늑대가 종족에게 버림받기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집"을 찾았어.
어린 하얀 늑대가 태어나는 순간 화면은 멈췄고 작은 짐승이 어미에게 기대고 있었다.
좋아하냐고?
계속 보고 싶은 게 "좋아"하는 건가?
21호, "좋아하지 않아"라는 것만 구분할 수 있어.
응……
21호는 천천히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player name]이(가) 여기 온건 새로운 임무가 있어서야?
요즘 리더는 계속 새로운 임무를 내리지 않아.
임무가 없을 때... 21호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21호의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자 머릿속에서 베라의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네.
위에 있는 놈들이 21호가 최근 전투에서 빈번한 통제 불능으로 이미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고, 모든 전투 임무를 중지시키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어.
다른 팀의 멤버들과 충돌했다는 소문도 돌고... 심지어 공중 정원에서 주먹다짐을 벌였대.
나는 당연히 알고 있지. 더 황당한 것도 있지만 너에게 말하지 않았어. 우리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야.
베라는 잠시 웃더니 곧 냉혹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21호는 나와 녹티스랑은 달라.
그녀가 원하는 건...
됐다.
요점은 이런 일 때문에 "21호가 전투에 적합한지를 재평가하자"라고 주장하는 놈들이 케르베로스 기지 입구에서 21호를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는 거야.
만약 21호가 이대로 끌려간다면... 지금 그녀의 상태로 봤을 때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원격 연결 구조체로 전투에 투입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21호는 케르베로스 소대에서 제명 당할 거야.
의식의 바다 문제로 전장에 나갈 수 없는 구조체……그들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너 같은 수석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멍청이들이 내 팀원의 거취를 결정 하기보다는, 일단 누군가를 찾아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만 지금의 상황은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
그러니까——이 기간에 21호를 도와 시뮬레이션 전투 훈련을 마치고, 그녀가 더 이상 제어가 불가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길 바라.
너 진짜 바보야 아님 바보인 척하는 거야?
21호의 제어 불가 상태가 빈번히 나타나게 된 것은 너와 원격 연결한 후부터야.
네가 이 문제를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21호가 제어 불가 상태가 된 것은 아마도 그때 자신과 의식 연결을 진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타났던 기억이 재차 나타나고……그 기억과 감정은 여전히 21호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빨리 받아들이네 그럼 잘 들어봐——
만약 너 때문에 나의 대원을 잃게 된다면 너를 베어버릴 거야.
알아들었어?
추억에 잠긴 21호는 계속해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시뮬레이션 전투.
21호는 갑자기 몸이 굳어졌다.
테스트야?
왜 [player name]야?
비록 그녀가 직접 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리더……
알겠어. 리더의 임무라면 21호가 협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