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날씨는 무척 맑았고, 지휘관 일행이 고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우화절 축제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어젯밤 예상치 못한 야영으로 둘은 옷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중경과 완이가 건넨 옷을 입고서 축제로 향했다.
지휘관과 반즈가 마을의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자, 중경이 한참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예전에 구룡성에서 지원을 왔을 때도 마침 우화절이어서, 우리 진료소에서 옷을 빌려줬었지. 자네들 정말 잘 어울리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하군. 나이 들어 헛것을 보는 건가... 완이야! 어디 있느냐? 말도 없이 어딜 간 거지?
중경이 지팡이를 짚으며 손녀를 찾으러 갔다.
지휘관, 기분 좋아 보이네?
전혀 숨기려 하지 않잖아.
그렇다고 치지 뭐.
휴, 다행히도 오늘은 날씨가 좋네. 비는 없을 것 같아.
이렇게 고생해서 준비했는데 도중에...
음, 여기까지만 하자. 구룡의 속담이 생각났어.
"나쁜 일은 말이 씨가 된다".
지휘관과 반즈가 이야기를 나누며, 축제의 중심지인 광장으로 걸어갔다.
광장은 "화간" 행사를 보러 온 마을 주민들로 가득했다. 최근 건강을 회복한 연구원들도 축제 소식에 모여들었고, 돌길로 둘러싸인 광장의 가장자리는 떠들썩한 발걸음으로 활기가 넘쳤다.
반즈 선생님, 지휘관님, 오셨네요!
머리에 화환을 쓴 완이가 나무 물통을 들고 달려왔다.
즐거운 우화절 되세요!
히힛, 우화절의 행복한 축복을 전해드리러 왔어요!
완이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나무 물통에 든 물을 둘에게 뿌리려고 했다.
아, 설명을 깜빡했네요. 우화절 축복은 당일에 딴 꽃을 띄운 산속 샘물을 사람들한테 뿌리는 거예요!
물론 옷이 젖는 게 싫어서, 이런 축복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어요.
두 분도 옷이 젖는 게 싫으면 말해주세요. 억지로 참여하지 않아도 돼요.
반즈는 담담한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보며, 모든 결정을 그에게 맡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요!
완이는 그 둘에게 물과 꽃을 뿌린 후, 다채로운 꽃다발 두 개를 건네주었다.
오늘 아침에 얘네들과 함께 따온 꽃이에요. 함께 두 분께 선물하기로 했는데, 얘네들이 너무 수줍어해서 제가 대표로 왔어요!
지휘관님, 반즈 선생님, 남온을 위해 해주신 모든 일에 정말 감사드려요!
완이 뒤에 숨어있던 아이들은 본인들이 언급되자 수줍은 미소를 비췄다.
반즈가 나무 물통의 물을 살짝 떠서, 완이와 아이들을 향해 축복의 물방울을 뿌렸다.
우리도 축복할게.
언제나 활발하던 완이조차 반즈의 말에 수줍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축, 축복도 받았으니까. 전 이만 가볼게요! 오늘 하루 재미있게 보내세요!
완이가 둘을 향해 환하게 손을 흔들더니, 나무 물통을 안은 채 깡충깡충 멀어져 갔다.
축제는 역시 이래야지.
구룡의 풍습에 관심이 많아서 알아봤었지.
직접 참여해 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 춤추고 즐기는 건 한밤중까지 계속될 거야.
횃불이 다 타들어갈 때쯤 되어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고.
음, 듣기만 해도 피곤하네.
그래도 난 지휘관과 이 축제를 즐기고 싶어.
반즈가 자신의 화환을 지휘관의 손목에 걸어주었다.
잘 어울리네.
역시, 이런 기념일은 직접 와서 봐야 해.
반즈가 앞에 펼쳐진 활기찬 축제를 가리켰다.
남온은 휴식하기 좋은 곳이야. 이곳에 오니 네가 했던 "지금은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 계속 생각나더라고.
멀리 있는 미래까진 생각하지 않아. 내겐 버거운 일이거든. 난 그저 내 앞에 있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을 뿐이야.
네가 꿈꾸는 그 광경은 전역 후에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꿈꾸는 그 평화롭고 조용한 삶은 분명 존재해. 네게 그 삶을 꼭 선물해 줄게.
반즈는 광장 중앙에 우뚝 선 "화간"을 바라보았다. 향긋한 꽃 기름이 배어든 기둥은 화사한 꽃다발과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주위로 산들바람이 실어 오는 꽃향기가 퍼져나갔다.
다행히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 지금 눈앞의 이 광경도 큰 도움이 됐지.
완이는 반즈가 조정해 준 의족을 찬 채, 아이들과 물통을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중경과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의 발걸음을 따라 여유롭게 걸으며, 하나둘 마을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났고,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축복의 순간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기적" 같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은 "현재"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과거와 미래의 불안은 모두 잊은 채, 축제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의 은장식은 찬란한 햇빛 아래서 영롱한 소리를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 순간을 즐겨라.
아름다운 광장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재난과 멀리 떨어진 이 곳에서, 열정적인 춤을 추며 즐거움 속으로 뛰어들어라.
넋을 잃고 바라보던 지휘관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그래.
반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그를 스치며 머리카락을 살며시 흔들었다.
다 네 앞에 있잖아.
반즈가 평소답지 않게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꽃으로 만든 공이 불쑥 날아와 그의 등을 맞혔다.
가볍게 날아온 공이었기에, 반즈는 살짝 놀랐을 뿐이었다.
반즈 선생님, 우화절 잘 보내세요! 화간 등반 경기가 곧 시작되는데, 선생님이랑 지휘관님도 참가해 보세요!
우리도 참가할 거예요!
정말? 반즈는 구조체인데, 그래도 되는 거야?
활기를 되찾은 연구원들이 다시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기계체든 구조체든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요. 꼭대기에 있는 장식을 제일 먼저 가져오는 분이 경품의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건장한 남자 둘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다가왔다. 최근 남온고성에서 가장 유명세인 지휘관과 반즈를 경기에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반즈가 남자에게 꽃으로 만든 공을 돌려주었다.
난 중경 대신 온 의사라서 자리를 비울 수 없어. 게다가 구조체가 참가하면 다른 참가자들한테 불공평하잖아.
지휘관님은요?
아.
완이와 마을 주민들이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연구원들은 오히려 소매를 걷어붙이며 나섰다.
지휘관님이 안 오시는 것도 좋아. 강력한 경쟁자가 하나 줄었으니 우리가 상을 탈 수도 있겠어!
1등 경품이 뭐야?
자세히는 못 봤는데, 찻잎, 술, 고기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몇 개 고르는 것 같아.
와! 전부 구룡 특산품이잖아.
연구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휘관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그게 다가 아니에요!
맛있는 사탕도 잔뜩 있어요! 찹쌀 종이로 포장되어 있는데, 그대로 먹으면 정말 맛있다고요.
완이와 아이들이 기대에 찬 눈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우와! 지휘관님, 그러지 말고 도전해 보세요~!
축제의 열기와 아이들의 기대가 함께 전해져 왔다.
지휘관이 아이들에게 에워싸이는 광경을 멀리 떨어져서 보고 있던 반즈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지휘관이 도움을 청하듯 쳐다보자, 반즈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래?
하고 싶으면 해. 난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야호!!
아이들이 신나게 환호하는 가운데, 지휘관은 광장 중앙에 우뚝 선 화간에 다가가 살펴보았다. 손으로 만져보니 기름이 잔뜩 발라져 있어서 조금만 올라가도 미끄러질 판이었다.
두 화간 꼭대기에는 화려한 장식물이 걸려 있었고, 이것을 먼저 가져오는 자가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다들 출발 위치에 도착하셨죠?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동시에 시작하겠습니다!
연구원 쪽에서는 운동광이라는 사람이 출전했다. 뜻밖에도 버섯 수프를 제일 많이 먹었던 연구원이었다. 듣자 하니 아직도 현기증이 있다고 하는데,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는 조금 벅차 보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부정 출발은 즉시 실격이며,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선 안 돼요. 꼼수는 부리지 마세요.
우와아!
모두가 기대에 가득 찬 채 마지막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경기장 바깥에 앉은 반즈만은 유독 차분해 보였다. 심지어 그는 졸린 듯 눈까지 깜빡이며, 주변의 열기와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내려와.
지휘관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3, 2, 1...
시작!
신호와 함께 관중들은 자연스럽게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한쪽에서는 공중 정원의 연구원을 향해, 다른 쪽에서는 완이가 아이들과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지휘관을 향해 열띤 응원을 펼쳤다.
처음에는 몇 차례 미끄러졌지만, 금세 감을 잡은 지휘관은 그 후로 거침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화간 등반에 자신감이 붙은 지휘관은 마지막 몇 발을 거침없이 올라가, 은색 술주전자에 손이 닿을 듯한 위치까지 다다랐다.
아래를 보니 사람들이 까마득히 작게 보였다. 다른 경쟁자들이 여전히 기둥 아래에서 씨름하는 모습을 보며 지휘관은 승리를 직감했다.
지휘관이 술병을 잡으려는 순간, 화간이 흔들리더니, 시야가 아찔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른 화간을 보니, 버섯 수프에 열광했던 연구원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때 아래를 내려다본 지휘관은 지상의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걸 발견했다.
지휘관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모든 것이 통제를 벗어났고, 그의 몸은 기둥과 멀어져갔다.
!
지휘관이 지면에 추락하려는 그때, 경기장 밖에 있던 반즈가 보였다. 계속 무심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반즈의 눈빛이 순간 예리하게 빛나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즈가 한 손으로 난간을 짚고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와 지휘관을 향해 두 팔을 높이 들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지휘관은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지휘관이 아래의 군중을 향해 소리치고는 뛰어내렸다.
[player name]——
앗! 지휘관님 쪽의 화간이 쓰러졌어요! 그리고 저 연구원분도 아직 해독이 덜 됐나봐요.
화간 꼭대기에 있는 비단에 지휘관이 들고 있던 술주전자가 뒤엉키면서, 그는 궤적을 그리며 추락했다.
중간에 환각이 일어난 연구원이 균형을 잃고 떨어지자, 순식간에 모여든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그를 안전하게 받아냈다.
동시에 반대편에서는 반즈가 빠르게 움직여, 추락하는 지휘관을 완벽하게 받아내었다.
반즈의 품은 부드럽고도 익숙했다. 세상의 모든 아픔을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화간이 쿵 하고 넘어갔다. 곧이어 정신을 차린 지휘관이 고개를 들자, 반즈의 걱정하는 표정이 눈앞에 있었다.
다행히 받았네. 네가 이쪽으로 뛰어내릴 줄 알았어.
그렇긴 하지.
화간이 이렇게 불안정할 줄은 몰랐어. 정말 위험했다고.
반즈는 뭔가 원망하는 말투였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은 오히려 걱정과 안도감으로 가득했다.
지휘관이 떨어진 장식과 비단을 주우려 몸을 돌리려는 순간, 반즈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봤어.
반즈가 차가운 은색 술주전자를 주워, 지휘관에게 건넸다.
계속 지켜봤어. 하나도 빠짐없이.
의심할 여지 없이, 네가 "1등"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