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반즈·루시드·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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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즈·루시드·그중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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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거리는 모닥불 소리에 지휘관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어둠이 온 숲을 뒤덮은 후였다.

반즈는 텐트 옆에 앉아 있었고, 지휘관은 보온 침낭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뒤에는 거북목을 예방하려 한 듯, 베개가 받쳐져 있었다.

사과해야 할 건 나야. 방금 다시 확인해 봤는데, 네게 준 약초가 일시적으로 독소를 자극하나 봐.

게다가 넌 당분간 무리한 활동은 피해야 했는데...

반즈가 눈을 내리깔며, 다시 한번 지휘관의 맥박을 짚어보았다.

다행히도 괜찮아. 모든 게 정상이야.

지휘관이 나뭇잎 틈새로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음, 기절한 널 업은 채, 마을을 가로질러 진료소까지 가길 바래?

게다가...

반즈는 하품을 하며, 가지고 있던 위치 추적 장치와 내비게이션 장치들을 침낭 옆에 쌓아두었다. 엉망이 된 기기들을 지휘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것들도 다 고장 났어.

왔던 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봤는데, 어째서인지 제자리로 돌아왔더라고.

오늘 밤은 아무래도 산에서 보내야 할 것 같아. 사실 이것도 나쁘지 않아. 하아암, 여기서 하룻밤 묵고, 내일 바로 우화절 축제에 참가하자.

다시 하품하는 반즈와 어지럽게 널브러진 야영 장비들을 보자, 지휘관은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맞아. 뒷산은 밤만 되면 길을 잃기 쉽다는 걸 마을 사람들은 다 알거든. 갈 수야 있겠지만, 너무 번거로워.

밤까지 임무를 수행할지도 몰라서 미리 준비해뒀어.

문제가 생기면 여기서 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뭘 오해한다는 거야?

지휘관이 침낭에서 나와, 몸을 쭉 펴며 저린 사지를 풀었다.

쉬라고?

지휘관이 반즈의 다크서클을 가리켰다.

하... 알았어.

반즈는 휴면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그는 모닥불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지휘관 옆에 앉아 눈을 감았다.

일렁이는 모닥불의 불빛이 산속의 습기를 은은하게 데워주었다.

아직.

뭔가 베고 자야 할 것 같네.

지휘관의 장난스러운 말에, 반즈가 눈을 감은 채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됐어, 네가 푹 쉬는 게 우선이야. 원래는 이곳을 휴가 장소로 추천하려 했는데, 하필 임무로 와서 이런 고생까지 하게 됐네.

게다가 요즘 들어 지휘관은 내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그때 내 의식의 바다에서 본 것들 때문이야?

반즈의 두 눈은 늘어진 앞머리로 가려져,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버려진 연구소 아래에서, 그 갑작스러운 의식의 바다의 파동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 파동은 반즈를 "산산조각" 내었고, 심지어 지휘관마저 그 속으로 끌어들였다.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은 거센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반즈의 의식의 바다를 끌어안으며, 그에게 말했다.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보자".

지휘관은 반즈의 의식의 바다에서 함께 그의 삶을 더듬어갔고, 자연스럽게 반즈가 내려놓지 못했던 과거도 보게 되었다.

맞아, 결국 그건 내 집착이었지.

반즈의 삶은 늘 모두와의 이별로 가득했다.

소중한 이들과 하나둘 작별을 하고, 결국엔 인간이었던 자신마저 지워야 했다. 그런 희생들이 모여 지금의 "반즈"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반즈는 그 과정에서 현실과 타협하는 법, 제때 뭔가를 떠나보내는 법을 배웠다. 그것만이 "자아"의 핵심 요소들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이 묻어둔 기억들도 심판을 받아야 할 순간이 올 것이었다.

자신에게 생명을 준 어머니, 본인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해 준 양어머니, 함께 자란 친구들, 자신을 믿고 빈 약병을 쥐었던 아이, 의식 회수라는 거짓말에 희망을 걸었던 구조체들까지.

어느덧 저물녘이 되었고, 반즈는 여전히 모두가 걸어온 그 길 위에 서서, 스스로 이별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난 잘못된 선택을 수없이 해왔고, 그에 대한 대가도 충분히 치렀어.

하지만 이제는 소중한 이들이 더 많아졌고, 내가 진정 바라는 것도 알게 됐어.

그때 앰버에서 나와, 새 삶을 찾았던 것처럼.

그 말과 동시에 반즈가 옆에 있는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모닥불의 불빛은 희미했지만, 반즈의 눈빛은 한없이 선명했다.

넌 그런 관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 한 가지는 확신해.

이 세상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겠지만, "지휘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만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할 거야.

오늘 밤의 달빛, 별빛 그리고 모닥불까지, 그 어느 것도 반즈의 눈동자에 깃든 찬란한 황금빛보다 빛나지는 못했다.

다만 그 찬란함 속에는 자신처럼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인간 한 명만이 존재했다.

마음이 놓아 보이는 지휘관의 대답에 반즈는 더 이상 과거를 언급하지 않았다.

평소대로 돌아온 반즈는 마치 임무를 완수한 뒤 사탕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았다.

솔직하게 대답했으니 보상을 줘야 하지 않겠어? 지휘관, 내게 어떤 보상을 줄 거지?

좋아, 지휘관이 "묵인"한다고 했으니까...

지휘관의 승낙을 받은 반즈가 갑자기 몸을 기울였다.

음, 그럼 이걸로 할게.

반즈가 갑자기 몸을 기울이더니...

지휘관의 다리를 베고 눈을 감았다.

그건 괜찮아. 역시 뭔가를 베고 자야 해.

눈앞에서 살랑이는 반즈의 곱슬머리를 보자, 지휘관은 무심결에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하얀 인조 머리카락은 구름같이 보드라웠지만, 아무리 정성스레 쓸어내려도 곧장 제멋대로 치켜 들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우연히 스치는 그의 뺨은 살짝 뜨거웠다.

아직 안 잤어. 지휘관이 내 머리카락에 얼마나 푹 빠졌는지 보는 중이야.

산들바람이 스치고 반딧불이 무리 지은 별하늘에는 여름의 대삼각형이 선명하게 빛났다. 지휘관이 고개를 든 순간, 그 찬란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지 위에서 이토록 평온하게 우주를 마주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지휘관조차 기억이 아득했다.

꿈속에서나 보았던 황홀한 광경에 지휘관은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랐다.

이곳의 밤하늘은 참 평온해 보이지 않아?

황금시대 지상 도시의 인간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은하수를 볼 수 없었대.

1990년대의 어느 날, 대양 연안의 어느 나라에서 대규모 정전이 일어났을 때, 인간들은 어둠 속에서 머리 위에 펼쳐진 낯선 광경을 발견했어.

그들은 종말이 왔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는 인간들도 있었지.

장엄한 은하수가 늘 도시의 하늘을 수놓고 있었지만, 인간들은 수십 년 동안이나 알아채지 못했던 거야.

반즈가 고개를 들어, 달빛 너머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하수는 계속 저기 있었어.

공업 문명의 네온사인이 은하수를 가린 거야. 수백억 광년 밖에서 오는 빛을 지워버린 거지.

하늘을 담고 있던 반즈의 시선이 천천히 지휘관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인간이 북극을 넘어 우주까지 닿을 수 있게 됐지만, 때로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잘 모르고 있어.

아주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모르때가 아주 많아.

난 그게 싫어.

방금 난 지휘관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어. 이제 내 모든 과거를 알게 됐는데,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어?

반즈의 말이 오랜 기억의 벽에 균열을 만들었다. 마치 앰버에서 내용물이 천천히 흘러나오듯, 수많은 기억이 서서히 흘러나왔다.

지휘관은 반즈의 기억을 통해 그의 모든 것을 보았다. 반즈가 걸어온 길에서 마주한 모든 선택과 포기의 순간들을 목격한 것이었다.

음, 그 말은 기초 교육 센터 수업에서도 들은 것 같아.

반즈가 조금 졸린 듯 살짝 한숨을 쉬었다.

맞아.

근데 난 그 해석이 맘에 들지 않아.

난 지휘관이 전에 한 말이 더 좋아.

지금의 모든 것은 과거의 모든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말.

반즈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몰려오는 졸음에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하암, 난 계속해서 앞으로 갈 거야.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을 끝까지 지킬 거라고.

서로 걱정하는 일은 이제 없을 거야.

반즈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는 이 평화로운 밤을 지키고 싶은 듯했다.

반즈의 말에는 묘한 위로의 힘이 깃들어 있어, 듣는 이들의 마음을 따스한 안도감으로 채워주고, 포근한 꿈결 속으로 이끌어간다.

지휘관도 이내 끄덕끄덕 조는 듯하더니, 곱슬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점차 멈췄다.

완전히 눈이 감기기 직전 몽롱한 순간.

자신의 손바닥에 따뜻한 뭔가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