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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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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즈·루시드·그중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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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공중 정원을 떠난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지난 이틀간 연구원들은 이 원시림에서 체계적으로 식물 샘플을 수집했고, 예정대로라면 오늘 중으로 남온고성에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시림을 벗어나기 위해 철수 준비를 마칠 무렵, 예상치 못한 문제가 드러났다.

선두에 있던 인간은 굳은 표정으로 돌아서서, 내비게이션을 일행을 향해 내밀었다.

과학으로 해결 못할 문제가 있다니.

연구원이 필사적으로 내비게이션을 두드렸다. 하지만 힘만 쓴다 해서 기적이 일어날 리는 없었고, 내비게이션의 나침판은 이 상황이 즐거운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더는 못 버티겠어요. 일단 비를 피할 곳을 찾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길을 잃은 것이 확실한 만큼, 무의미하게 헤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저, 저도 찬성해요. 비 오는 산이 이렇게 춥고 습할 줄은 몰랐어요. 남온은 이맘때가 제일 따뜻하다더니...

구룡 외곽의 남온고성은 오랫동안 외부인의 발길이 끊긴 곳이었다. 성채를 둘러싼 거대한 고목들은 하늘마저 가릴 정도로 울창했고, 이로 인해 내비게이션조차 무용지물이 되는 곳이었다.

처음 방향감을 잃었을 때만 해도, 연구원들은 비 온 뒤 무성해진 버섯 샘플 채집에 열중해 있었다. 그러나 일몰 후 산속을 헤매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모든 일행이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연구원들의 한탄을 듣다 보니, 지휘관도 피로가 밀려왔다.

식량 이야기에 연구원들은 묵묵히 동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모든 건 그들이 어제 식량을 잃어버려서 일어난 일이었다.

모두가 습한 바닥에 앉아,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봤다.

꼬르륵~~~

아하하, 아니에요! 저기 좀 보세요. 길만 찾기 쉬웠다면, 완전 힐링 성지가 됐을 것 같네요.

그쵸?

일제히 집중된 시선을 느낀 연구원은 순간 말을 멈췄다가, 체념한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제 배에서 난 소리 맞아요! 너무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다고요!

연구원은 진공포장된 비상식량을 보며 머뭇거리다가 예의 있게 지휘관의 호의를 거절했다.

저기, 다른 건 없을까요?

식량을 잃어버린 게 누구 때문인데, 지금 이런 걸 가릴 처지야? 압축 비스킷이라도 있는 걸 감사히 생각해야지!

여긴 구룡이라고, 구룡!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미식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수는 없잖아!

너 정말 배고픈 거 맞아?

난...

좋아, 결심했어. 오늘은 주변에 있는 재료로 해결하자고!

굶주림에 지친 연구원은 결심한 듯 샘플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동안 채집한 버섯 샘플들을 꺼내, 깨끗한 바위에 늘어놓았다.

그걸 먹겠다고?!

모처럼 왔는데, 구룡 사람들이 독성을 감수하고도 먹는다는 이 버섯을 놓칠 순 없잖아? 이거 봐. 큰비가 온 덕분에 엄청 크게 자랐잖아.

굶주린 연구원이 행복한 표정으로 형형색색의 버섯들을 바라보았다.

너 배고파서 정신이 나간 거야? 이 많은 버섯 중에 독버섯을 구분할 수 있기나 해?

걱정 마, 내가 식용 버섯 식별 수첩을 가져왔어.

연구원이 두꺼운 수첩을 꺼내 들고, 재빠르게 버섯들을 세 종류로 구분해 냈다.

이쪽은 명백한 독버섯이고, 이쪽은 수첩에서 안전하다고 했어. 나머지는 확실치 않으니, 검증된 버섯만 먹자.

야,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거야?

다들 걱정이 너무 많아. 여기 오기 전에 알아보니까, 남온 사람들은 이런 수첩 같은 거 없이도 잘만 먹는대. 그냥 빨간 갓에 하얀 대만 아니면 다 먹어도 된다는데?

게다가 남온고성에 새로 온 의사가 버섯 중독 치료 전문가래. 문제가 생겨도 치료받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지휘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에라 모르겠다! 자, 먹어 봐!

왜 지휘관님까지 그러세요!

깊은 산속의 야생 버섯은 절대 안 먹을 거야! 싫어, 절대 안 먹을 거라고!

흥분한 여성 연구원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극도로 굶주린 연구원들에게 제압당했다. 그렇게 연구원들은 불을 피워, 버섯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MSG와 소금으로 간을 맞춘 버섯 수프에서 진한 향이 피어올랐다. 모두가 둘러앉아 수프를 휘저었고, 그 맑은 수프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광기가 번져갔다.

버섯을 끓이자고 처음 제안했던 연구원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꼴깍"하고 침을 삼켰다.

흐흐. 그럼, 제가 먼저 간을 봐볼게요.

굶주린 연구원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버섯 수프를 단숨에 들이마셨다.

둘러싼 연구원들

어때?

주변의 모든 사람이 버섯 수프를 들이마신 연구원이 괜찮은지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음... 으음...

맛을 음미하던 그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맛있어!

둘러싼 연구원들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걱정을 내려놓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수프를 떠갔다. 이내 누군가가 구석에 앉아있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에게도 그릇을 정중하게 건넸다.

어라, 생각보다 맛있네?

그치? 내가 <모험가의 식용 버섯 가이드>를 정독했다고 했잖아. 독버섯은 절대로 안 넣었다고! 이제 믿음이 좀 생겨?

뭐, 어쨌든 그 구조체 의사한테는 갈 일은 없겠네.

구조체 의사?

여성 연구원은 버섯을 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그 버섯 중독 전문 의사? 그분이 구조체였어?

나도 이곳에 오기 전에 그 구조체 이야기를 들었어. 꽤 어려 보이는데도 실력이 굉장해서, 여덟 번이나 연이어 수술할 수 있다더라고. 정말 "구룡의 신의"라 불릴 만한 것 같아.

연구원 몇 명이 버섯을 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 마자요. 진쫘로 구룡 사람들은 그분을 두고 "흰 눈 같은 백의가 의술로 세상을 구한다"라고 하더롸고요!

어라라, 근데 왜 네가 두 명으로 보이쥐?

너, 너도 마찬가쥐야. 네 옆에 작은 사람이 춤추고 있는뒈?

말, 말도 안 돼!

으에! 움... 우웅?

연구원들이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버섯 수프를 든 채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지휘관의 눈앞이 점점 흐려지더니 주변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분명... 안전하다고... 했는데...

……

…………

지휘관의 의식이 희미해질 무렵, 꿈결에서 누군가가 관자놀이를 부드럽게 눌러주는 것이 느껴졌다.

독버섯으로 인한 두통과 복통이 가라앉으며, 지휘관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

일어나세요! 벌써 아침이에요. 약 드셔야죠!

눈을 뜬 지휘관은 상황 파악을 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지휘관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방에서 부드러운 이불을 덮은 채 누워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베개가 놓여 있었고, 약의 은은한 향이 방 안에 감돌았다.

쑤셔오는 복부의 통증만 아니었다면, 독버섯을 먹었다는 것도 까먹고, 다시 잠을 청했을 것이었다.

엄청 정확하시네, 정말 이 시간에 깨셨어.

지휘관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니, 침대 옆에는 검은 머리에 동그란 눈을 가진 소녀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 완이라고 해요. 할아버지의 가장 소중한 손녀이자, 이 진료소를 이어받을 사람이죠!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지휘관은 이곳이 구룡의 진료소임을 깨달았다.

아직 견습생이긴 하지만요.

소녀가 장난스럽게 혀를 살짝 내밀고는 방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그분을 모셔올게요.

얼마나 걱정하며 여러분을 업고 오셨는지 아세요? 그런 모습은 처음 봤어요!

완이야.

문밖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가 소녀의 말을 끊었다.

하암, 깨어났구나.

하품을 하던 하얀 구조체가 가림막을 걷어내고 들어와, 혼란에 빠진 채 침대에 누워있는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반즈를 본 지휘관이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별짓을 해도 결과는 똑같을 테니, 이제 좀 일어나.

반즈가 지휘관을 일으켰지만, 지휘관은 여전히 머릿속이 멍한 상태였다.

나도 지휘관이 왜 이곳에 있는 건지 모르겠네.

지휘관이랑 같이 온 연구원에게 대충 상황은 들었어.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어젯밤 잠들 무렵에 생각지도 못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신호가 포착되더라고. 나도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어.

게다가 뒷산에서 신호가 잡힌 터라, 네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 말을 듣고서야 완이의 앞선 말이 이해됐다. 그녀가 말했던 "그렇게 걱정하는 모습"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완이도 때마침 끼어들어 덧붙였다.

어제 다들 상태가 정말 안 좋으셨어요. 지휘관님은 계속 헛소리도 하셨다고요.

"퍼니싱을 소멸시키자.", "이게 수석의 실력이다.", "퇴직금." 이런 말씀들을 하셨는데, 나머지는 저도 못 알아들었어요.

큰오빠는 지휘관님이 실수로 기밀을 누출하실까 봐 엄청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특별히 이곳에 모시라고 했어요.

완이의 이야기를 듣던 지휘관이 침대 끝자락에 놓인 하얀 베개를 발견했다. 이는 분명 전에 본 적 있는 베개였다.

네, 큰오빠는 하루 종일 휴면을 못 했어요. 방금은 잠깐 나갔다 온 거예요.

완아.

뭘 사과까지야. 적어도 지금은 헛소리를 안 하잖아.

넌 환자 중에서 회복이 제일 빨라. 곧 활동할 수 있을 거야.

"환자"라는 말에 지휘관은 버섯을 많이 먹은 연구원들이 걱정되었다.

반즈는 눈빛을 읽었는지, 지휘관이 물어보기도 전에 답을 했다.

그 연구원들은 다른 방에 있어. 버섯을 제일 많이 먹은 연구원은 좀 더 자면 괜찮아질 거고, 나머지는 다 깨어났어.

반즈가 지휘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살짝 웃으며 물었다.

왜 산에서 버섯을 따먹은 건지 말해줄 수 있어?

반즈는 그런 터무니없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체념하며 입을 다물었다.

"별다른 수가 없었다"라...

반즈는 이해한 듯했다.

네가 적게 먹었던 걸 보니, 다른 사람들이 부추겨서 맛만 본 거구나?

설마 배가 고파서 그런 건 아니지?

마을에는 주민들이 채취해 온 버섯이 많아. 먹고 싶으면 완이나 나한테 말해. 우리가 가져다줄게.

깊은 숲에 있는 버섯들은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자, 맥박을 짚어보게 손을 내밀어봐.

반즈가 지휘관의 손목에 손가락을 얹은 후, 조심스럽게 맥박을 확인했다.

맥박은 안정적이고 규칙적이야. 침맥이나 부맥 증상은 없어.

괜찮아진 것 같아. 이제 돌아다녀도 될 거야.

마을에 온 뒤로 조금 배웠어. 구조체는 빠르게 습득하는 편이긴 하지만, 아직은 겉핥기 수준이야.

현지인들은 대부분 버섯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매년 중독 사고가 적잖이 있어. 그래서 구룡의 의사들이 이 한의학 진료법을 정리해 놓았지.

반즈가 지휘관의 손목을 가리켰다.

이 방식으로 진료하면 더 안전하거든.

하암, 이쯤하고 나가자. 내가 남온을 구경시켜 줄게.

반즈는 침대 곁에서 밤을 새웠던 모양인지, 하품을 하며 지휘관과 밖으로 나갔다.

지휘관과 반즈는 고풍스러운 원목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곳에는 활기찬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놀고 있었다. 비록 오래된 진료소지만 마을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지휘관과 반즈가 오래된 의서가 보관된 방에 도착했다.

이러면 조금 귀찮아지는데.

반즈는 고서의 내용을 살펴볼수록 미간을 더욱 깊게 찌푸렸다.

너희가 먹은 버섯에는 대량의 환각 성분이 들어있어. 적어도 7일 정도는 지나야 증상이 나아질 거야.

그때까지는 환각, 헛소리, 현실 구분 장애를 포함한 여러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어.

이 책을 믿는 게 좋을 거야.

반즈가 고서를 덮은 후,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남온고성에 있는 이 며칠은 내가 계속 따라다녀야겠어.

네 안전이 더 우선이야.

독버섯을 먹으면 대개 그렇게 말하더라고.

퍼니싱이 폭발한 이후로 구룡의 의학 기록들이 많이 소실돼서, 지금은 우리도 이 독버섯의 환각 성분에 대해 잘 몰라.

여러 검사에서 문제가 안 나왔다 해도,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야.

이건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고. 더 얘기 안 해도 되겠지?

반즈의 말투는 사납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그의 말에 반박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선 의사 말만 잘 들으면 모두 해결될 터였다.

마침 며칠 있으면 우화절이야.

같이 참여할래?

복도에 부는 바람이 반즈의 이마에 늘어진 곱슬머리를 흩뜨리자, 미소를 머금은 금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지휘관도 좋아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