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이면 늘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졌다.
끈적이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대신 실전 훈련을 도입하자는 누군가의 건의로, 이번 신병 훈련은 지상 전투를 신청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곳의 초여름은 늘 폭우가 쏟아졌던 것이었다.
쏟아지는 비로 훈련은 거의 성과가 없었고, 일부 훈련용 기계체들은 빗물에 녹이 슬 수도 있었다. 결국 모두 처마 밑에 몸을 피한 채, 맑은 하늘이 드러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굵은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 터져 나오려던 불평을 잠재우는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씨가 안 좋으니, 훈련은 여기까지 하자.
답답한 더위에 시달리던 생도들은 구원이라도 받은 듯 일제히 기쁨의 환호를 터뜨렸다.
내일 일정은... 그래, 내일부터 휴가가 시작되니, 남은 수업은 돌아와서 계속하자.
그럼, 해산!
예~!
반즈는 엄격한 교관이 아니었다.
휴식 명령과 함께 생도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활기 넘치는 젊은 생도들이 사라지자 후텁지근했던 훈련장이 금세 시원해졌다.
적막한 훈련장을 채운 것은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뿐이었다.
반즈는 처마 밑에서 장비를 정리하며, 옆에 있던 인간 지휘관에게 말을 걸었다.
너도 기지로 복귀할 거면, 내가 태워다 줄까?
당연하지. 예전에 배웠었거든.
후, 뭘 이 정도 가지고.
하얀 구조체가 연달아 하품하는 걸 본 지휘관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반즈의 입에서 작은 하품이 새어 나왔다.
괜찮아. 네가 옆에 앉아있으면 그렇게 쉽게... 잠들진... 않을 거야...
반즈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기지개를 켜며 인간을 바라보았다.
우움, 그래.
하암, 그 얘긴 말고.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긴 한데, 당분간은 다른 임무들이 있을 거야.
너는?
반즈는 공감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퍼니싱만 없었다면 가능했을 텐데.
몽롱한 눈으로 지휘관을 바라보는 반즈의 얼굴은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근데, 이렇게 단조로운 일상은...
너는 지루하다고 느껴?
그치? 나도 이런 생활이 기대돼.
그래? 사실 나는 이런 삶이 기대돼.
평온한 미래가 그려질 정도로 안정적인 삶. 난 그런 일상적인 안정감이 좋아.
……
반즈와 지휘관의 대화는 그날의 비처럼 작은 일상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공중 정원으로 돌아온 지휘관은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지상의 연합 훈련이 끝났고, 훈련 임무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휘관이 훈련 보고서 제출을 위해 회의실 문을 노크하려는 찰나, 문이 열리며 카무이의 놀란 얼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차징 팔콘 멤버 두 명이 서 있었다.
우와아! 지휘관?!
지휘관님? 보고서를 제출하러 오신 건가요?
지휘관도 최근에 고생 좀 했나 보네.
지휘관은 눈앞의 세 구조체 중, 늘 무기력해 보이던 하얀 구조체가 없음을 발견했다.
반즈 말이야? 밖에서 임무 수행 중이라더니 아직 안 돌아왔어.
그러게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 최근엔 영상도 보내지 않고,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문득 지휘관의 머릿속에 얼마 전 반즈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참! 어제 반즈가 보내온 영상이 있는데 보여줄게.
지휘관이 답하기도 전에 카무이가 단말기의 홀로그램을 띄웠다.
선명한 홀로그램 화면 속에는 구룡의 낡은 건물들이 보였다.
반즈는 화면을 등지고 서 있었고, 주변에는 장난치며 떠드는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반즈를 향한 그 아이들의 순수한 애정은 홀로그램 너머로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반즈가 고개를 돌려 렌즈를 힐끗 보더니, 피곤하다는 듯 하품을 하고는 손을 뻗었다.
됐어. 이 정도면 보고할 분량은 충분해.
뚝.
영상이 끝났다.
우리도 이게 전부야. 이건 생존 신고밖에 더 돼? 정면도 안 보여주고 말이야!
허, 왜 우리한테까지 신비주의인 거지?
지휘관님, 반즈에게 볼일이 있으신 건가요?
크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반즈는 "동면 휴가" 신청이 반려된 이후로, 잘 쉬지도 못한 것 같네요.
반즈가 이번에 돌아오면...
드디어 찾았네요.
경쾌한 발소리와 함께 세리카가 작전 보고서를 한 아름 안은 채 나타났다.
[player name] 지휘관님, 드디어 찾았네요.
세리카가 "목표물"을 발견한 듯 곧장 다가오자, 지휘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임무를 드리는 건 맞지만, 이번엔 정말 수월한 임무라 휴가처럼 다녀오실 수 있을 거예요!
왜 의심하시는 거죠? 제가 그렇게 못 미덥나요?
"임무"랑 "휴가"의 차이를 정말 모르는 거야? 신성한 휴가를 더 이상 모독하지 마!
휴가 줄 생각이 없으면, 차라리 말도 꺼내지 마.
흠흠, 일단 임무 개요부터 보세요! 이번엔 정말 "탁월한 선택", "최고의 가성비"가 될 거라니까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지휘관은 마지못해 세리카가 건넨 임무 개요를 펼쳤다.
임무 내용: 과학 이사회 멤버 지상 이동 및 원시림 식물 샘플 채집 작업 보조.
임무 난이도: 매우 쉬움.
임무 기간: 최소 일주일~수개월
임무 내용만 보면 정말 수월해 보이는데?
지휘관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좁쌀만 한 글씨로 임무 개요의 우측 하단에 처음 보는 미지의 구역이 적혀있었다.
임무 위치: 구룡 외곽의 보육 구역, 남온고성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