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신이 도왔다고 해야 할까? 이것저것 만지작거린 끝에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발전기가 작동하면서 놀이공원의 전력이 정말로 복구되었다.
떠나려는 순간, 옆에 있던 가방 안에 뭔가가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
이런 것도 있다니...
루나에게 돌아와 보니 놀이공원의 일부 구역에만 전력이 복구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불행히 대관람차는 그중에 포함되지 않았다.
기계의 신과 행운의 여신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회로 문제일 거야. 발전기 탓은 하지 마.
그리고 이 정도로 낡은 대관람차라면 위험 건물이나 다름없어.
루나에게서 감정의 동요를 볼 수 없었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듯했다.
가방에서 찾아낸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보였다.
가죽 가방이 잘 밀봉되어 있었던 덕분인지, 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아직 작동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선물해 주신 적이 있었어.
그땐 사진 정말 많이 찍었었는데, 아버지가 주신 필름이 항상 모자랐지.
하지만 그 후로는... 사진을 찍지 않게 됐어.
이렇게 오래됐는데 이 카메라 작동할까?
카메라에 배터리를 넣어보니 이번엔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한 칸도 안 되는 배터리 잔량이었지만, 카메라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필름을 넣자 보호필름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그래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어 루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잠깐... 뒤돌아봐.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1분 정도 지나자 멈췄다.
다 됐어.
다시 돌아보니 루나가 순백의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과거와 비슷한 순백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만 이번엔 그녀의 눈동자가 금색이 아니었다.
어때?
눈에 띄게 기분이 밝아진 루나가 회전목마를 가리켰다.
회전목마에서 사진 찍고 싶어!
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루나는 곧바로 말투를 바꾸었다.
저기가 사진 찍기 좋아 보여서 말했던 건데.
아무리 루나라도 가끔은 소녀다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떤 면에선 루나도 평범한 소녀일 뿐일지도 모른다.
루나가 회전목마에 기대어 셔터가 눌리기를 기다렸다.
찰칵.
플래시가 터지고 카메라에서 사진이 천천히 나왔다.
어때?
재빨리 다가온 루나가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손에 든 사진에선 그 어떤 이미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이 필름은 못 쓰겠네.
그렇게 말한 루나가 필름을 버리려고 손을 들어 올렸다.
응?
필름에 아주 희미한 색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렴풋이 사람 형태가 보였다.
좋아!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포즈를 취하자, 플래시가 다시 한번 터졌다.
이번엔... 우리 같이 찍을래?
카메라를 들고 루나 옆으로 다가가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좀 더 가까이 붙어.
옆을 힐끗 보니 루나가 렌즈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볼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셔터를 눌렀지만, 이번엔 플래시가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카메라를 돌려보니 배터리가 다 방전된 상태였다.
……
루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한숨을 쉰 뒤, 계단으로 가서 앉았다.
됐어. 난 이걸로 충분해.
루나가 고개를 저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휘관이 루나 옆에 앉았다.
어깨가 살짝 무거워서 바라보니 소녀가 머리를 기대어 왔다.
움직이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마.
지휘관과 루나는 조용히 먼 곳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만약에 말이야. 세계에 너 혼자만 남게 된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표정도 볼 수 없고,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예전에 의식이 흐릿할 때 들었던 잡음들, 이상한 기후 그리고 전과는 조금 달라진 루나까지... 이렇게 많은 단서를 보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잔인한 답이었다.
음...
세계가 적막에 잠기면서, 오직 바람 소리와 둘의 숨소리만 들렸다.
옆에서 금빛이 비치자 그제야 동이 트고 있다는 걸 알았다.
봐.
루나가 사진 두 장을 건넸다.
사진은 어느새 이미지가 현상되어 있었다.
유통기한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현상액이 열심히 제 역할을 해냈다.
사진은 작은 노이즈로 가득했고, 청색 톤이 전체적으로 강했다. 초보 컬러리스트의 첫 작품처럼 과하게 보정되어 있었다.
대비가 강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오래된 물건 치고는 잘 나왔네.
소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두 장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사진이 루나가 개조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찍은 사진이 아닐까?
어.
[player name].
내가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네가 방금 말했잖아.
사실 나 거짓말 하나 했어.
음...
루나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어지러움이 다시 밀려오더니, 더욱 강렬한 통증이 찾아왔다.
의지와 상관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player n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