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던 건지 루나가 말한 폭풍은 나타나지 않았다. 약 세 시간을 이동한 후, 눈앞에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마을이 보였다.
바위 절벽에 기대어 세워진 허름한 오두막 몇 개가 공터를 둘러싸고 있어서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적절치 않은 그런 곳이었다. 그냥 임시 주둔지 정도로밖에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이 주둔지에 사람이 아직 살고 있다면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할 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너진 집들과 공기 중에 떠도는 녹슨 쇠와 곰팡내 그리고 공터에 듬성듬성 자란 잡초들이 오래전 이곳이 잊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너의 속도로는 폭풍이 오기 전에 위험 구역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여.
그래서 내 기억으로는 여기에 교통수단이 있었던 것 같거든.
루나의 말대로 주둔지 안에 차 한 대가 있었다.
하지만 차체에 쌓인 먼지와 대담한 개조 흔적을 봤을 때, 이게 인간 과학 기술 역사의 중요한 결정체인지 아니면 땅에 묻어야 할 산업 쓰레기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음...
루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내가 밧줄로 널 묶어서 목적지까지 날아가는 것은 어때?
그럼, 이 차가 작동하길 빌어야겠네. 근처엔 다른 차가 없거든.
이 "고물차"를 살펴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알고 보니 과감한 개조 아래 숨겨진 건 공중 정원에서 생산된 규격 지프차였다.
지휘관이 아는 모델과는 좀 달랐지만, 분명 공중 정원에서 생산된 게 맞아 보였다.
상관없어. 작동 돼?
회로에 조금 문제가 있지만, 간단한 수리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전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차 사물함에 태양 에너지 충전 패널이 있어서 이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최대로 충전하려면...
그러니까 해가 저물 때까지는 기다려야 출발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럼, 밤까지 기다렸다 출발하자.
차량 보닛에 반쯤 몸을 묻은 지휘관이 회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행자는 근처 바위에 앉아 저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루나는 지휘관을 만났을 때부터 계속 그 상자를 들고 있었다.
궁금해?
맞아.
루나가 살짝 웃었다.
상상력이 꽤 풍부하네.
지금 나에겐 인간을 멸망시킬 수 있는 초강력 무기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리고 내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 하지 마. 구원 요청을 보내 봤자 아무도 오지 못할 테니까.
루나가 한숨 쉬며 말했다.
흥.
숨기려고 하지 마. 계속 널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차는 진작에 수리 끝났지?
차량 통신 장치로 방금 전부터 구원 요청을 보내고 있었잖아.
안심해. 널 해치지 않는다고 약속할게.
루나는 웃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구원 요청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 이상, 수리하는 척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그냥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출발하면 됐다.
보닛을 닫으려고 차에서 시선을 떼려는 순간...
한기가 등골을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문자와 숫자의 조합이었는데, 공중 정원에서 제품을 생산할 때 찍어두는 제조 일자와 배치 번호였다.
……
바람 소리가 조금씩 커졌고, 지평선이 석양을 삼키더니 밤이 되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앉아 출발하려는 순간, 조수석에 뜻밖의 누군가가 앉았다.
계속 날아다니는 것도 피곤해.
게다가 인간 문명과 떨어진 이 황야에선 밤이 네 상상보다 더 깜깜할 거야. 그래서 차 안에서 날 보지 못할 수도 있어.
차량 부품에서 봤던 그 번호가 자꾸 지휘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루나는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전부터 느꼈던 이상한 위화감이 조금은 해소된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신하기는 아직 일렀다.
지프차 시동을 걸고 버려진 마을을 떠나 황야로 향했다.
어둠이 집어삼킨 세계에서 달리는 차 소리와 바람이 우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뒤, 지휘관은 무언가가 생각났다.
따뜻한 노란빛이 좁은 차 안을 밝혔다.
굳이 실내등을 켤 필요는 없는데.
루나는 더 이상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루나가 살짝 웃었다.
지금은 수석님의 철학 강의 시간인가?
사양할게. 근데... 고마워.
네가 먼저 해서 나도 한 거야. 그리고 내 말투 따라 하지 마.
조수석에 몸을 웅크린 루나가 지휘관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난 대행자야.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괜찮아?
내 말을 그렇게 쉽게 믿는 거야?
넌 정말...
말을 끝맺지 못한 루나가 갑자기 몸을 똑바로 세웠다.
폭풍이 곧 올 거야. 최대한 빨리 가.
눈앞의 세계가 순식간에 모래바람으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돌멩이와 모래가 광란의 소나타를 연주하듯 미친 듯이 차체를 때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운전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방금 주둔지에서 쓰러졌을 때처럼,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지던 줄이 마침내 끊어지게 되면서 차가 옆으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구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수리도 제대로 못 받은 이 낡은 차는 드디어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눈앞의 광경도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의식을 잃기 직전,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루나가 보였다.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