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의식이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몽롱한 대화소리는 마치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띄엄띄엄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딜레도 사람이 없나 보군. 너 같은 어린놈을 보내다니.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면 손해를 보기 마련이라고, 아저씨.
흥, 이 사람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따지진 않겠어.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고 그저 그 자리에 누워 잠든 척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혼탁한 악의가 담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답답한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저리 꺼져! 지금 [player name]한테 손댈 생각은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야! 물건은?
창위의 고함소리와 함께 맑은 타격음이 울려퍼졌고 남자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응? 걱정하지 마. 약효가 세지 않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날 거야.
뭘 하려는 거야?!
거래 규칙을 제대로 지켜. 지금 거래가 엎어지면 그 누구도 이득을 볼 수 없으니까.
아니면 구조체와 싸우고 싶은 거야?
오늘 왼손에 재밌는 걸 차고 왔는데 지금 보여줄까? 어떻게 생각해?
창위의 암시에 벽쪽에 놓인 왼손을 몰래 돌려 팔찌의 신호기를 터치했다.
선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창위는 아무 대답 없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물건을 보여줘.
잠금장치와 가죽 상자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확인해 봐.
창위의 발걸음 소리가 조금 멀어지더니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춰섰다.
좋아. 이 기계만 있으면 불량품을 빠르게 선별해낼 수 있겠어.
물건을 확인했다면 "계약금"을 내놓지 그래.
계약이 성사되면 아딜레는 반드시 우리를 도와 적을 제거해 줘야 할 거야. 그 대가로 우리도 더는 아딜레의 상품에 불량품을 섞지 않을 거고, 이러면 당신들의 이미지도 회복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당신들이 계약을 위반한다면...
열차에 심어둔 스파이를 움직이겠지?
방 구석에서 창위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흐릿한 시선 속, 창위가 손목을 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방금 전 미소와는 다른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아, 깼어?
미안, 조금 뒤에 제대로 사과할게.
맞아... 사실 혼자서는 좀 버거웠거든.
두 사람은 아주 가볍게 움직였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말았다.
일어났어?
조금 있다가 해명할 테니까 일단 도망칠 준비부터 해.
급박한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수비병 차림을 한 여자가 무기를 꽉 쥔 채 창위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창위는 몸을 돌려 날라차기로 여자를 차버렸다.
너?! 다들 공격해!! 일단 공중 정원의 지휘관부터 죽여. 거래를 망친 책임은 조금 뒤에 물을 테니까.
꿈깨, 아저씨.
내가 여기 있으니, 걱정 마.
창위는 여유롭게 공격을 피하고 기습해 온 적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들어 점검 기계가 담긴 상자를 뒤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투척했다.
잘 받았어! 얼른 가자!
인간의 우둔한 육체는 구조체와 대항할 수 없었다. 대장처럼 생긴 남자가 경보벨을 누르자 사방에서 대량의 수비 로봇들이 몰려왔다.
하... 정말 귀찮아졌네.
창위가 한숨을 내뱉던 순간, 밀려들어오던 기계 수비병들도 무참하게 잘려나갔다. 폭발로 인한 먼지가 가라앉고, 문 뒤에서 그레이 레이븐 일행의 얼굴이 나타났다.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이게 무슨 일인지 제대로 해명하는 게 좋을 거야.
해명할 시간이 없어. 일단 도망쳐.
거기 서!!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여기서 계약을 파기하면 아딜레가 어떻게 되는지 정말 모르냐고?!
하,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당신이겠지. 그 아저씨 당신과 연락을 안 한 지 꽤 되지 않았나?
헛소리! 방금 우리와 연락을 했었는데!
이걸 말하는 거야?
창위는 주머니에서 작은 큐브를 꺼냈다. 큐브를 돌리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든 것은 정상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장."
그 아저씨가 내 옆에 있던 며칠 동안 한 말을 모두 녹음해뒀어. 자주 사용하는 말들을 모두 조합해놨었지... 아, 그리고 열차로 보낸 그 벌레새끼... 아직 소식이 없네.
맞아. 덕분에 얻은 시간이잖아.
죽여버려!!
그의 포효에 주위에 몰려있던 기계 수비병들이 우르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문과 깨진 창문, 심지어 해체된 통풍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왔고 모두들 혼란에 빠졌다.
따라와!
좁은 방안, 대량의 기계 수비병들이 몰려들어 굉장히 혼란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다행히 쓰러진 기계 병사들도 아주 훌륭한 방어 수단이 되어주었다. 그들을 쓰러트릴수록 점점 더 갇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 입구에 밀린 세 사람과 만나기는 커녕 창위와도 점점 멀어져 방의 다른 한쪽으로 밀리고 말았다.
이봐, 지금은 후퇴하는 게 상책일 텐데?!
만약 잔해로 만들어진 장벽을 떠난다면 순식간에 수비병들의 손에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창위는 한숨을 쉬더니 겨우 몸을 돌려 권법을 사용해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이때 카운트다운 소리가 그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이런!!! [player name]!!!
그의 행동은 급격하게 격렬해졌지만, 그의 앞을 막은 수비병과 잔해로 만들어진 장벽을 돌파할 수 없었다.
다들 비키라고!!!!
거대한 진동과 충격이 창위의 고함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창위 앞을 가로막고 있던 기계 수비병과 산처럼 쌓여있던 잔해 옆에 있던 벽까지 조각이 되어 사라졌다. 바로 이때...
띠————
눈부신 흰빛이 시야를 가렸고 날카로운 폭발음에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든 소음을 뚫고 절망적인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player name]!!!!!!
... 이 소리의 주인이 옆에 있어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