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로제타·아레테·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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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아레테·그중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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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로제타는 눈 폭풍을 엄폐물 삼아, 적이 완전히 조여 놓은 포위망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결정했다.

설원은 죽어가는 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하늘과 대지는 끓어오르는 하얀 석고처럼 뒤섞였고, 숨이 막힐 만큼 끈적하고 농밀했다.

빛은 기묘하게 퍼지는 회백색이었고, 앞뒤 좌우의 방향감각은 시야 속에서 전부 뒤엉켜 버렸다. 세계는 수축했다. 미쳐버릴 것 같은, 회전하는 하얀 감옥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허상이 됐다.

그리고 이 눈보라로 만들어진 감옥 속에서 인간은 로제타의 흔적을 잃어버렸다.

[player name], 네가 안 보여…

괜찮아… 오지 마… 지휘관, 출발 전에 한 약속 아직 기억하지?

눈보라 속에서 흩어지면 서로 찾지 않기로 했잖아. 괜히 근처 적들을 자극할 수 있어.

없어, 눈뿐이야.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 이동해. 철수 지점에서 만나.

할아버지, 그렇게 빨리 가지 말고 저 좀 기다려 주세요.

눈 폭풍의 감옥은, 마치 죽은 자들의 나라에서 길을 잃은 로제타만 특별히 풀어주는 듯했다. 며칠 사이 점점 심해진 의식의 바다 손상은 그녀로 하여금 두 세계의 경계를 점점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노인과 소녀는 작은 구릉을 넘어 숲을 향해 걸어갔다. 부드러운 바람이 툰드라를 가득 채우고, 녹아내린 눈이 두 사람의 느릿한 발걸음 아래에서 사방으로 튀었다. 아침 햇살은 잘게 부서진 금빛처럼 이곳에 흩뿌려졌다.

여기다…

포브는 조금 더 높은 또 다른 언덕 위에서 마침내 걸음을 멈췄다. 그는 그리 강하지 않은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로제타, 저길 봐.

포브는 최근 며칠 동안 로제타가 머물렀던 작은 마을을 가리켰다. 멀리 항구에서는 어선들이 하나둘씩 출항하고 있었고, 아침 햇빛은 아침밥을 준비하는 취사 연기와 함께 극지의 공기 속에서 천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는 극지에서 흔하지 않아. 이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땐… 과연 언제가 될지 모르겠구나.

로제타는 포브의 뒤를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며 그가 가리킨 방향을 보려고 했다.

???

로제타! 잠깐만, 기다려!

뒤에서 들려온 외침에, 로제타는 포브가 보여주려던 풍경을 미뤄 두고 뒤를 돌아봐야 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말랑한 눈덩이가 그녀의 얼굴을 덮쳤다.

기계체 추격자들은 여전히 눈 폭풍과 싸우고 있었다. 기계체인 그들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행동이 제한됐다.

하지만 철로 된 두뇌는 인간의 사고에서 말하는 "융통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악천후"와 "오늘은 나가지 말자"의 의미를 서로 연결 짓지 않는다. 어쩌면 기계체의 판단 기준에서 눈 폭풍 정도는 "악천후"에 들지도 않을 것이다.

어쨌든, 눈 폭풍을 가랑비처럼 여기는 기계체 추격자들은 이곳에서 "토끼굴"에 발이 묶인 로제타를 발견했다.

임무 목표 발견. 임무 목표 발견…

포효하는 눈 폭풍 속에서 기계체 특유의 냉랭한 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눈덩이의 정확도는 이미 주인을 배신했지만, 로제타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뒤에서 달려오는 리하를 바라보았다.

극지에서는 보기 드문 봄기운이 가득한 풍경 때문인지, 죽은 자들의 마을 주민들도 하나둘씩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다들…

배웅하러 온 거야.

배웅이요? 누가 떠나나요?

너잖아, 로제타. 네가 떠난다고 했잖아.

내가?

로제타는 주변으로 천천히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햇살이 이렇게나 따뜻한데, 그녀는 그 온기 속에서 오히려 몸을 떨고 있었다.

만약…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조금 더 있다 가도 돼. 꼭 오늘일 필요는 없어.

더 있다 가면 안 돼? 아직 공중 정원 이야기를 다 안 해줬잖아…

지금 가버리면… 이제 들을 기회가 없단 말이야.

리하…

다시는 널 못 볼 텐데, 조금만 더 늦게 가… 부탁이야.

영원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소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소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할아버지, 저…

그 간절한 표정을 마주할 수 없었던 로제타는 포브에게 도움의 눈길을 요청했다. 하지만 노인은 계속 등을 돌린 채, 품처럼 온화한 항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미세하게 들썩이는 그의 어깨가 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저는… 떠나야 하는 건가요?)

죽은 자들은 로제타를 둘러싸고 쌓아 두었던 그리움과 끝맺지 못한 마음을 속삭였다. 그 속삭임들은 하나의 그물처럼 얽혀 되돌릴 수 없는 힘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 순간, 로제타의 의식의 바다에 [player name]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포브

아이야… [player name]은(는) 여기에 없어. 여긴 너희한테 아직 너무 일러.

돌아가, 그 사람이 아직 기다리고 있어. 산 자들의 세계에서, 널 기다리고 있다.

기계체 추격자들이 조심스럽게 로제타를 포위해 왔다. 눈 폭풍은 그녀를 이곳에 가두었고, 추격자들은 그녀의 몸을 차지하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를 죽은 자들의 나라라는 이름의 장소에 묶어 두고 있었다.

철수 지점으로 향하는 여정은, 이제서야 가장 험난한 구간에 들어섰다.

추격병B

임무 목표 상태가 좀 이상한데? 왜 혼자지?

추격병C

오히려 잘 됐어. 지금처럼 정신이 흐린 상태라면 우리 쪽 피해도 줄일 수 있을 거야.

추격병D

지금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들려?

추격병E

그건 중요하지 않아. 조심해서 접근해. 전에 사라진 추격조도 아마 이들한테 당했을 거야.

로제타는 포위망 한가운데 있었지만, 과거 그녀의 무자비한 돌파 전과 때문에 추격자들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공기 속에 묘한 암묵의 신호가 퍼졌다. 그들은 겹겹이 둘러싼 채, 그 누구도 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

추격병A

경계하라! 경계하라! 목표가 움직인다!

죽은 자들의 툰드라 위에서, 떠나기로 결심한 로제타는 이제 긴 시간 동안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다.

미안해… 리하. 난 돌아가야 해. 저쪽에 아직 나를 기다리는 소중한 사람이 있어.

우린 제일 친한 친구잖아, 로제타…

난 이미 널 한 번 잃었어… 네 장례식에 가지 못한 건, 아마 평생을 두고 후회할 거야.

그런 후회는... 나 하나로면 충분해.

[player name]까지 나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게 할 순 없어. 다시는 그 사람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을 거야.

로제타… 흐윽…

울지 마, 리하… [player name]이(가) 얘기했어. "우린 모두 언젠가 죽은 자들이 되고, '죽음'이라는 건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과정이야."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미안해. 다른 산 사람들을 위해 전부 태운 후, 더 많은 이야기를 들고 돌아올게. 그때 다시 만나자, 응?

손상된 기체에 과부하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로제타는 방금 전까지 멍하니 서 있던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으아악!

휘광창이 적의 몸통을 꿰뚫었고, 이어 강하게 휘둘러졌다.

절단되어 날아간 기계체는 자신의 남은 몸체가 로제타의 임시방패가 되는 걸 보았다. 그의 죽음은 다른 추격자들에게 공격 개시의 신호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둘러싸고 공격하지 않았던 추격자들이 마치 토끼를 잃은 여우처럼 분노와 두려움을 안은 채, 로제타에게 폭발적으로 덤벼들었다.

리하와의 작별을 끝낸 뒤, 로제타는 얼굴이 흐릿한 한 쌍의 남녀 연구원 앞에 섰다. 그녀의 의식의 바다에는 이 두 사람의 얼굴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더 있다가 가… 너를 조금만 더 보고 싶구나.

우린 아직, 한 번도 함께 앉아서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먹지 못했잖니.

죄송해요…

얘야, 왜 사과해. 부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건 우리야.

그래. 한 번만 기회를 줄 수 없겠니? 우리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게 해 줘…

엠베리아에게 잘못을 만회한 것처럼요?

로제타의 말에 맞은편에 서 있던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할아버지한테서 들었어요. 두 분은 제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셨고, 그게 엠베리아에 대한 두 분의 가장 큰 속죄라고요.

로제타는 자신의 팔을 뻗어 개조된 흔적이 남은 팔을 바라보았다. 생체공학 피부 아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처들이 덮여 있었다.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제가 과연 건강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두 분이 주신 이 몸을 조금 무리하게 써버린 것 같아요.

이게 제가 사과드리고 싶은 이유예요. 그리고 아직… 할아버지께 저를 맡기시면서 바라셨던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여기에 머물 수 없어요.

어머니, 아버지, 그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세요?

맞은편의 두 사람은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짧은 침묵 끝에 답에 다다랐을 때, 여자의 목은 이미 눈물로 막혀 있었다.

우리는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랐어.

비록 이런 세상에서 건강은 드물고, 행복은 더 드물지만… 전 두 분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거예요.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눈 폭풍은 "열기"라는 개념과는 철저히 분리된 존재처럼 보였다.

적의 수적 우위와 원거리 화력의 우세는 광란의 눈보라 속에서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강풍은 탄도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가시거리 5미터도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조준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모든 열병기는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한 무리의 기계체와 한 명의 구조체, 이 행성 최고 수준의 군사 기술을 집약한 두 집단은 지금 이 순간, 자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냉병기로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로제타는 적의 파도 속을 가르며 움직였다. 공기는 차갑고 무거워, 숨을 들이쉴 때마다 거친 얼음 모래를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기체의 온도도 급격히 떨어졌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입이 대지에 남은 마지막 온기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눈 폭풍은 적들의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그녀의 움직임도 제한했다. 눈과 바람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처들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시간과 공간은 얼마 없었다.

아…

윽…

로제타는 적들 간의 협력이 어긋난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휘광창이 한 번 휘둘러지며 두 명의 추격자의 몸을 동시에 갈라졌다.

하아… 하아…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촤악——

크… 으윽…

눈보라뿐만 아니라, 적 역시 그녀의 몸에 새로운 상처를 남겼다.

이 길고 긴 배웅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안녕… 슈테센 선장님.

안녕… 에티르.

안녕… 테미아.

……

그들의 만류를 하나씩 거절할 때마다 로제타를 둘러싼 죽은 자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건, 등에 활을 메고 있는 노인이었다.

할아버지…

로제타, 이제 가야 한다…

로제타는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발이 떼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네가 가면, 난 숲을 한 바퀴 더 돌다 갈 생각이다. 이런 날씨면 짐승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지… 하하.

……

아이야, 넌 너무 스스로를 몰아붙여. 그건 좋은 게 아니야. 모든 걸 혼자서 짊어질 필요는 없어.

네가 계속 얘기한 그 지휘관, 정말 괜찮은 사람 같더구나. 할아버지를 대신해 고맙다고 전해 줘.

네, 할아버지 말씀은 [player name]에게 잘 전달할게요.

노인은 마치 손주를 학교에 보내기 전, 잠깐 잡담을 나누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이야, 이거 먹을래?

노인은 방금 딴 신선한 과일 하나를 로제타에게 내밀었다.

다 먹고 얼른 가. 이 늙은이 걱정은 하지 말고.

저쪽에 네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눈보라 속, 로제타는 마지막 추격자의 몸에서 두 동강이 난 휘광창을 뽑아 들었다…

[player name]——!

네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세계가 있잖니…

눈 폭풍은 이 전투의 잔해를 무자비하게 쓸어내고 있었다. 로제타는 간신히 몸을 붙잡아 자신이 함께 쓸려나가지 않게 버텼다.

넌 여기에 있으면 안 돼.

로제타는 방향조차 알 수 없는 눈 폭풍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온몸의 끔찍한 상처들은 방금 전 전투의 참혹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각—!

로제타는 손에 쥔, 과즙 가득한 과일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눈앞의 노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햇빛의 축복을 받은 툰드라만이 지평선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안녕! 포브 할아버지…

그녀는 모든 죽은 자들과 작별 인사를 마치고, 먼 숲을 향해 걸어갔다.

퍽—!

로제타는 설원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눈 속에서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 쳤지만, 이 살을 파먹는 설원은 마치 자성을 가진 것처럼 그녀를 붙잡았다. 몸을 지탱하는 것조차 있는 힘을 다해야 했고, 상처는 서서히 그녀의 몸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로제타

[player name]… 기다려…

로제타는 눈밭 위에 엎드려 있었다. 설원의 감촉은 살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뜨거웠고, 침묵과 어둠은 그녀의 발밑에서부터 번져 올라 끝없이 펼쳐진 하얀 대지를 서서히 검게 물들였다. 그곳은 혼돈 그 자체였다. 방향도 없고, 경계도 없는, "죽음"이라 불리는 영역이었다.

지금 여기서 멈추면, 자신은 정말로 죽은 자들의 일원이 될 것이다.

희미해진 시야 속에서 한 그림자가 광란의 눈보라를 뚫고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는 그녀의 곁에 멈춰선 후 천천히 몸을 낮췄다. 몸을 찌르는듯한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몸에 꽂혔다. 그건, 또 다른 자신이었다.

넌 이미 알고 있잖아. 자신이 왜 죽은 자들의 나라를 찾아오게 되었는지.

넌 자기기만에 빠진, "죽음을 기다리는 자"일 뿐이야.

더욱 거세진 눈 폭풍은 이 설원에 오래 머물러 있는 죽음들을 서둘러 묻어버리려 했다. 그 죽음을 기다리는 자가 발자국으로 써 내려간, 막 완성된 유서조차도 이제는 다른 잔해들과 함께 눈 속에 절반 이상 파묻혀 버렸다.

로제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