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베라·작망·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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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작망·그중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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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잎이 전부 떨어지는 순간, 저주가 발동된다.

마지막 꽃잎이 지는 순간, 마왕과 성의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저주의 조건이었다.

장미꽃의 꽃잎이 바닥에 수북이 쌓였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마왕"이 직접 그림자를 접했기에 카운트다운도 앞당겨졌고, 마을 사람들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어쩌면 자정의 종이 울릴 무렵에 지상에서 수백 년 동안 버텨온 마왕이 마침내 소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그 마왕은 의자에 앉아 시들어가는 장미 한 송이를 가볍게 매만지고 있었다.

베라

그 인형이 선물한 장미마저 시들겠지... 아쉽네, 이 한 송이 밖에 없어서 말이야.

그렇게 성에 불쑥 나타났던 "용사"는 어느새 떠나고 없었다. 그와의 만남은 마치 덧없이 아름다운 꿈과 같았다.

그 인형이 장미를 건넬 때, 망설이면서도 떠보려는 듯한 표정이 왠지 익숙했다.

감히 이런 걸 선물이랍시고 나한테 들이밀다니... 정말 무심한 일인가?

내 부하들이 너에게 말하지 않았나? '장미'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지만 그 사람과 똑같은 외모를 소유한 인형은 이렇게 답했다.

"그 불은 여기 있어"

베라

하... 참나... 준비를 철저하게 했나 보네, 심지어 똑같은 기억까지 조작한 건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유감이군, 아무리 비슷하게 복사한 인형이라고 해도, 난 절대 곁에 두지 않아.

난 언제나 그 사람이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길 원하니까.

됐고, 여태 고집부리며 날 감시하고 있는 시스템, 너도 꺼져.

넌 이미 소원을 이루었잖아, 너희가 보낸 용사는 내 도움을 받고, 그림자로부터 빠져나갔으니, 곧 안전하게 마을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난... 퍼니싱에 침식을 당하기 전에는 혼자 있고 싶어.

그녀는 인형이 선물한 장미를 입술에 대고, 꽃잎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림자는 그녀의 손끝을 침식하기 시작했고, 마왕의 성도 곧 어둠 속으로 잠겨버릴 것이다.

그녀는 달빛이 비추는 드넓은 홀을 조용히 둘러보며, 문득 우아한 왈츠라도 울려 퍼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베라

아... 그러고 보니 좀 아쉽네, 그렇게 일찍 그 인형이랑 얘기하지 말고

그 녀석을 다락방에 남겨뒀으면, 모든 게 끝나기 전까지 심심풀이라도 할 수 있었들 텐데.

베라

됐어... 곧 사라질 모든 걸 위해 건배나 해볼까?

최후의 성, 수백 년간 탐욕스럽게 날 노려온 "장미의 저주", 그리고...

오직 나만의 몸부림을 위하여.

베라는 잔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다가오는 자정을 알리는 시곗바늘을 바라보며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러나 자정의 종소리가 울리기 전, 노크 소리가 밤의 고요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맑게 울리는 소리가 눈보라를 뚫고 퍼져 나갔고, 마치 적막한 밤을 가르는 첫 번째 빛줄기 같았다.

베라는 소리가 전해오는 방향을 바라보더니,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베라

내가 지금 뭘 기대한 거지... 퍼니싱 농도가 너무 높아서 환각이라도 본 건가?

그러나 문이 열리는 찰나... 그녀는 문득 환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익숙한 그림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눈보라가 흩날리는 장미 꽃잎을 뒤엎었고, 인간의 얼굴마저 가려버린 탓에 그녀는 그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는 눈보라를 뚫고 느릿하게, 휘청이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치지직!!!

뇌속의 "시스템"은 두개골을 쪼개려는 듯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현존하는 "인간"은 인형이 통제를 벗어난 사실에 대해 놀라움과 분노를 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사 스토리 속의 주인공이 적대적인 마왕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베라

왜... 돌아온 거야?

여긴 곧 "신세계"에 의해 삼켜질 거야, 설마 널 숭배하는 "마을 사람"들과 맞서겠다는 거야?

현실이든 환상이든, 인간의 ‘영혼’은 이야기가 아쉬운 결말로 끝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비틀거리며 쓰러질 뻔했지만 "마을 최고의 검"이 있었던 덕에 제대로 버텨냈다.

베라

넌 참... 바보 같다니까!

베라

해피 엔딩... 이라고?

인간은 베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온 세상이 눈보라에 의해 뒤덮인 가운데, 그의 손길은 유일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의 눈빛엔 망설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기대를 품은 신중함뿐이었다. 마치 평범한 무도회에서 맞은편에 있는 파트너에게 건네는 예의 바른 초대와도 같았다.

긴 침묵 끝에, 그녀는 마침내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잡아 주었다.

손가락이 맞닿는 순간, 그녀는 그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꼈다.

등불은 두 사람의 그림자를 벽에 비추었고, 그녀는 흔들리는 그 빛을 바라보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나 가까웠다는 걸 깨달았다.

베라

넌 참 변한 게 없어, 처음 만났을 때랑 똑같아.

참... 순진하면서도 고집이 센 바보야.

그녀는 인간의 어깨와 허리에 손을 얹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베라

내 파트너가 되고 싶다면, 내 발걸음에 잘 맞춰야 하는데, 따라올 수 있겠어?

베라

[player name], 준비됐어?

이렇게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춤을 추는 거야.

선율이 무도회장에 울려 퍼지고, 창문으로 비친 달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바닥에 비추었다.

곧 결말로 이어져갈 이야기가 이 순간부터 새로운 전개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