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니나를 둘러싼 주민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난 이 건물이 사람 살기에 적합하지 않으니까, 철거하는 게 가장 좋다는 거야. 너희를 내쫓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야.
정비 부대가 후속의 재건을 담당하게 될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말은 쉽죠. 이곳을 부숴버리면, 우리 보고 대체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
우린 이 구역을 탈환할 때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고, 어떤 위험도 발생한 적이 없었어요! 당신들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믿고 어떻게 옮길 수 있겠어요?
밖을 좀 봐봐요. 이 보육 구역에서 우리를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또 있나요?
초췌한 얼굴의 스캐빈저가 임시로 만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우리가 이곳의 담당자와 협력해서, 모두에게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줄게.
살 곳이 있었다면, 저희는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공중 정원이 저희를 구해주겠다고 해서, 그들의 수송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차례대로 태우기 시작한 지가 벌써 이만큼의 시간이 흘렀는데, 언제쯤 우리 차례가 온다는 거죠?
혹시 저희 공중 정원에게 버림받은 거 아닌가요?
누가 내뱉었는지 알 수 없는 이 나지막한 한마디는 잔잔한 호수 위에 돌멩이가 떨어지면서 생기는 파장처럼, 방 전체에서 의혹의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게 했다.
소문으로는 의료 구역 쪽에 최근 부상자가 많이 수용됐지만, 공중 정원의 보급이 계속 안 되고 있대요.
재건하러 온다는 정비 부대도 구조체 하나만 왔는데, 정말 문제가 없는 건가요?
이를 악문 카레니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삐-], 너희들 지금 사람 말을 듣고 있긴 한 거야?!
공중 정원이 정말로 버렸다면, 난 이곳에 오지도 않았어!
카레니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방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니, 손가락 두께의 균열이 외벽에서부터 실내까지 이어져 있었고, 생활용품으로 가득 찬 임시 수납장으로 이 균열을 가리고 있었다.
이 건물은 이합 생물과의 전투 때문에, 구조가 파괴됐어.
이런 상황에서 너희는 하중을 받쳐주는 벽도 허물어 버렸어.
저희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낡은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거야. 너희들 다 시멘트 더미에 묻히고 싶어?!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은 건 너희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기는 해?!
……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당신은 또 뭡니까?
그리고 앞으로 나가, 카레니나 옆에 섰다.
조금 전에, 정비 부대의 다른 멤버들도 이쪽 보육 구역으로 이동 중인 걸, 담당자와 확인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각지의 사람들은 재난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었고, 공중 정원도 피해를 본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는 없었다. 지상과의 연락도 그로 인해 전례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됐다.
그렇게 물자 보급이 부족한 데다, 언제든 현재의 거처가 없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의심과 공황이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생길 수밖에 없었다.
카레니나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재건을 추진했을 것이었다.
맞아.
카레니나는 심호흡한 뒤,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과 눈을 맞췄다.
모두가 맘 편히 머무를 곳을 제공하기 위해 정비 부대의 재건팀이 존재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포기할 수도, 포기하지도 않을 거야.
그래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이 건물을 복원할 필요 없이, 무너트리고 다시 짓겠다는 거야. 그게 훨씬 더 빠르니까.
모두를 안전한 곳에서 최대한 빨리 정착하기 위한 내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어.
주위가 조용해지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나이 든 스캐빈저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 꼬마 아가씨가 말한 대로, 이사 준비를 하도록 하지.
건물에 살던 주민들의 모든 생활용품은 보육 구역 스태프의 도움으로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건물 내 주민의 대부분은 종말 속에서 방랑하는 스캐빈저로, 짧은 시간 내 짐 싸서 떠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담당자와 함께, 모든 주민의 정보를 확인한 뒤, 보육 구역 곳곳에 임시로 배정했다. 그리고 격리 수용이 필요한 환자들은 내가 가져온 군용 텐트에다 배정했다.
더러운 벽 구석에는 목탄을 사용해 어설픈 화법으로 그린 이름 모를 꽃들이 벽화로 피어 있었고, 그 옆에는 날짜를 센 자국과 희미하게 적힌 기도문이 있었다.
뭘 보고 있어?
그렇구나.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다가온 카레니나는 고개를 돌려 구석에 있는 흔적을 봤다.
둘은 그렇게 말없이, 구석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봤다.
……
그래서, 이곳에는 왜 온 거야?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쯤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아무리 불러도 일어나지도 않고...
아? 그래? 그때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쉽게 잊히지 않네.
그럴 시간 없거든! 다른 사람한테서 들은 거야!
흥, 기쁜가 보네.
뭐냐, 오늘 나 대신 말해줘서 고마웠어.
그런가?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카레니나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물었고, 대답하기도 전에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어 자기 뺨을 때렸다.
아아아! 역시 우유부단한 건 나랑 어울리지 않아!
나 간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거든!
카레니나는 그렇게 말하곤 일어서서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몇 걸음 걷다가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멈춰 섰다.
그럼, 네 텐트를 다른 주민에게 양보했어?
그럼 어디서 지내려고?
너 바보야?!
카레니나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게, 화를 냈다.
너는 정말... 됐다. 따라와.
카레니나를 따라 보육 구역 동쪽 구석에 도착하자, 작은 군용 텐트가 보였다.
내 텐트야. 지휘관이 잘 곳이 없으면, 이곳에서 자도 괜찮아.
난 그냥 지휘관이 내 구역에서 아프지 않았으면 해. 그러니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보육 구역에는 구조체를 위한 수면 캡슐이 있다는데, 지금 눈앞에 작은 텐트 하나만 보였다.
병상이 모자라서, 질병에 걸린 아이에게 빌려줬어. 수면 캡슐에 있으면, 잠은 편히 잘 수 있겠지.
카레니나는 방금까지 누구한테 바보라고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