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01:36 72호 도시 외곽
오랜만에 72호 보육 구역으로 가는 길 위의 풍경이 내 옆으로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단말기에서 통신이 연결되는 알림 소리가 울렸다.
지휘관님, 상황 어떤가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C 구역의 위협을 모두 제거해서, 72호 도시의 서쪽에서 침식체 반응은 더 이상 감지되지 않고 있어요.
현재는 남은 보급 물자를 확인하고 있어요.
하늘과 지상의 운수가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집행 부대는 지난 수십 시간 동안 최소 10곳의 보육 구역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았는데 나도 임무에 지원하겠다고 신청했다. 그러자 최종적으로 보육 구역 재건설 지원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게 됐다.
72호 도시의 여과탑은 성공적으로 재가동됐고, 중상을 입은 수많은 난민과 스캐빈저들이 의료 구역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지만, 상부와의 소통은 많은 혼란이 존재했다.
히포크라테스가 보내는 따가운 시선을 모른척하면서, 임무 확인란에 서명했다. 생각과 다르게, 날 말릴 수 없게 된 히포크라테스는 한숨을 내쉰 뒤, 손을 내저으면서 재활실을 떠났다.
루시아는 기존 임무대로 다른 지원 소대에 배치되어, 이합 생물의 공격을 받은 구역에 스캔 장치를 설치했다. 그리고 연합 소탕 방식으로 위협을 제거해, 육상 물자 수송의 안전을 확보하는 임무를 진행했다.
지휘관님, 부디 몸조심하세요.
루시아가 통신 중에 웃음을 짓고 있을 때, 루시아의 단말기에서 새로운 임무 내용이 들려왔다.
다음 임무 지점으로 이동해야 해요. 지휘관님. 통신을 종료할게요.
통신 종료.
바로 그때, 눈앞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운송 장비가 버려진 거리를 통과했다. 그리고 햇빛이 고층 건물의 그늘에서 벗어나, 멀리 우뚝 솟은 철색의 여과탑을 비추고 있었다.
곧 도착합니다.
동행한 집행 부대의 대원과 함께 보육 구역 입구로 갔다.
최근 지표면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비교적 맑은 오후임에도 찬 바람이 불어서 추위를 느끼게 했다.
누군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를 보고 자신의 식별 번호를 보여줬다.
방문자의 신분이 확인되었습니다. [player name]님. 072호 도시 보육 구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허름한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마중을 나왔고, 이번 임무의 주요 내용을 확인한 뒤, 보육 구역의 중앙으로 날 안내했다.
이 보육 구역은 생각보다 붐볐고, 난민의 대부분은 임시로 설치된 텐트에서 생활했다.
당신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이시군요.
공중 정원에서 지휘관이 오는 것만 알았지만, 지휘관님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당황하는 날 보자, 담당자는 크게 웃었다.
지휘관님은 지금 "영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알죠.
본부에서 지휘관님을 파견한 것도, 아마...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인 담당자는 끝부분을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난번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완쾌되신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 빨리 지상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몸이 무리가 가지 않는 이상, 생명의 별 병상에 누워서 대원들이 보고하는 임무 브리핑을 들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전에 같은 타입의 지원 임무를 여러 차례 수행한 적이 있었다.
정말 소문과 똑같으시군요.
처음엔 모든 게 엉망이었습니다. 새로 온 난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조차 없었으니깐요.
그나마 최근에 공중 수송이 회복됐고, 물자 보급도 조금씩 이뤄지고 있어서, 희망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담당자는 피로에 지친 미소를 지었고, 실눈을 뜬 눈가에는 휴식이 부족한 듯,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네. 맞습니다. 현재 서쪽 거점에서 오는 중입니다. 기존 계획대로라면 1주일 전에 도착했어야 하지만, 그쪽 에너지 스테이션에 문제가 있었는지, 지체된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사람은 부족하고, 물자 배치도 엉망이고, 모든 게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며칠 전에 정비 부대의 일부 인원이 먼저 오게 되면서, 다행히도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담당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뜻밖의 모습이 보였다.
역원 장치가 표지판처럼 저 멀리 세워져 있었고, 백발의 소녀가 사람보다 큰 보급 상자를 끌며, 보육 구역의 스태프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하는 게 보였다.
대답을 들은 카레니나는 흥분하기 시작했고, 목록을 상대방의 손에 쥐어 준 뒤,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잠시 후, 소녀의 모습이 분주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배정된 이전 거점의 재건을 마치자마자, 바로 달려왔다고 하더라고요.
카레니나는 여기 와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여기는 주둔 인원이 너무 적어서, 처음에는 부상자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카레니나가 온 후에는 임시 의료 구역의 건물 보강, 복구 및 재건 평가 그리고 재건에 필요한 물자 목록 및 보급 신청까지, 재건 작업의 대부분을 그녀가 도맡아서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야, 라이트. 놀고 싶으면, 공원에 가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담당자는 하던 말을 끊고,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들리는 멀지 않은 곳에다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아이들은 후다닥 걸음을 멈춰 고개를 숙여 꾸짖음을 받았고, 우두머리인 아이는 머리를 숙인 채 제어기를 조종하자, 허공에서 기계적으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무인기 한 대가 허공에서 날렵하게 빙빙 돌며, 아이들 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조나단! 왜 이렇게 돌아다녀! 또 이렇게 소란 피우면, 너희 왕 누나한테 가져가라고 한다.
아이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땅에 떨어진 무인기를 끌어안고는 폴짝폴짝 뛰어나갔다. 이를 본 담당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아이들이 카레니나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장난감 무인기를 수리해 준 이후로 아이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폐기물 처리장에서 아이들이 주워 온 무인기까지 카레니나가 모두 고쳐줬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이 웃는 걸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카레니나는 오자마자, 이렇게 재건 계획을 진행했다간 너무 느리다면서, 계획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그렇게 진행한 건 아무도 건들 수 없게 하면서, 혼자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 관련 지식이 있어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 거절당하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작업 스타일은 위험하지 않지만, 늘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나곤 합니다.
다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라, 이대로라면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은 저도 알고 있고, 이곳의 모든 사람도 그럴 거로 생각하지만...
당연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대장이라는 것도 알고, 카레니나가 이곳에 온 후로 저희가 받는 스트레스도 많이 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카레니나 혼자 짊어진다는 게, 모두에게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담당자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지휘관이시기도 하고, 카레니나가 당신 말은 들을 수도 있으니, 그녀에게 조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카레니나가 떠난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니 임시 수용소에 도착했다.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이 구역은 탈환 당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곳으로, 여과탑의 주변 건물 대부분이 탈환 중에 파괴되었고, 이곳만 겨우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 됐다고 했다.
접이식 침대에는 중상을 입을 병사와 스캐빈저가 누워있었고, 그들은 자면서도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우린 받아들일 수 없어요.
우릴 내쫓겠다는 건가요!?
수용소 모퉁이에서 억울한 울부짖음을 내뱉는 소동이 한차례 일어났고, 소리를 따라가 보니, 내가 찾던 소녀가 슬프고 화난 표정을 한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앞에 있는 주민과 어떤 일로 다투고 있던 카레니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다가, 둘러싼 주민들 밖에 서 있던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네가 어떻게...
순간 무언가를 참는 듯한 표정의 카레니나는 이내 시선을 떼고, 다시 앞에 있는 주민에게 돌아섰다.
카레니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난 내 결정을 바꾸지 않을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난 이곳을 반드시 폭파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