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악룡이 빼앗아 간 보물이자, 나나미님께서 당신과 함께 찾고 싶어 하셨던 보물입니다.
나나미가 떠난 후, 지휘관은 그 청년 신사와 함께 험난한 곳들을 헤쳐나가며, 마침내 버려진 악룡의 둥지에서 "우주 기사"의 벨트를 하나 찾아냈다.
그리고 나나미님께서 당신께 이 말을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지휘관이 어디에 있든, 별들이 항상 하늘에서 지휘관이 나아갈 길을 밝혀줄 거야".
그럼, 부디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신이 몽롱했던 지휘관이 우주 기사 벨트를 건네받자, 세상이 눈부시게 하얘졌다.
다음 순간, 지휘관은 자신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왔구나.
곧이어 지휘관은 끝없이 펼쳐진 우주에서 은색 장발의 소녀를 만났다.
음, 알기 쉽게 자기소개를 하자면, 난 이 세계의 신이야.
지휘관이 다시 눈을 뜨자, 이 세계의 신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유리창 너머로 은색 별빛이 고요히 내리는 동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그녀가 창가에서 영겁의 세월 동안 홀로 이 별하늘을 바라봤다고 생각하니, 무거운 고독감이 지휘관을 집어삼켰다.
[player name]?
사과할 필요 없어. 난 이 세계의 신일 뿐이고, 네가 만나야 할 건 내가 아니야.
음, 그렇다기에 이곳은 너무 쓸쓸하지 않나?
그렇구나.
창가의 탁자 앞에 앉은 신이 지휘관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어쨌든,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너희가 보물과 가까워졌다는 뜻이야.
음, 그건 진짜 보물이 아니야.
은색 장발의 소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째선지 그녀는 조금 난처해하는 웃음을 지으며, 창밖의 끝없는 별빛을 바라보았다.
신이 된 후로, 나는 점점 감정을 잃게 됐어.
수많은 별을 올려다보던 신의 눈빛에는 불안과 혼란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내가 하게 될 말에는 내 감정이 담겨있지 않을 수도 있어.
그저 내가 예전에 써둔... 산더미처럼 쌓인 일기를 되풀이하는 것뿐이야.
어쩌면, 과거의 나를 대신해서 그때의 마음을 전하는 것뿐일지도 몰라.
쓸쓸한 별빛 아래에서 신의 모습은 점점 환영처럼 흐릿해졌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다가갔다. 이윽고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책들을 어루만지던 그녀는 그중 한 권을 조심스레 꺼내, 추억에 잠긴 듯 펼쳐보았다.
넌 나나미와 함께 보냈던 그 시간들을 분명 기억하고 있을 거야.
네 앞에서 그녀는 언제나 웃음꽃을 피우고, 활발하며,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밝은 소녀였지.
어떤 어려움도 긍정적으로 마주하고, 자신의 모든 감정을 그대로 표출할 수 있었어.
나나미는 전설의 기사, 가면 기사야. 그리고 너는 나의 지휘관이고!
지휘관, 받아랏!
그들이 세상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나미는... 지금 지휘관의 못난이 호박 같은 표정을 막아야 해!
자휘관은 나나미의 순진무구한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어둡기만 한 종말의 세계에서, 그녀는 지휘관에게 선명히 빛나는 유일한 추억으로 남았다.
나는 나나미가 정말 부러워. 그녀처럼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건 지금 내게 불가능한 일이거든.
신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그때의 나나미도, 네게 제때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어.
너희는 각자의 사명 그리고 너무나 많은 이들의 운명을 짊어졌어.
이건 내 욕심이라고 해야 하려나?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나나미와 네가 아무 걱정 없이 보물찾기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랐어.
책에서 서서히 시선을 옮긴 신은 눈 부신 빛을 받으며 지휘관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휘관, 네가 종말의 시대에 태어난 건 내 능력 밖의 일이야.
이 세계는 너와 나나미의 상상으로 만들어졌어. 그리고 너희는 자신이 믿지 못하는 세계에서 생존할 수 없지.
어쩌면 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 걸지도 몰라. 너희가 겪은 262537412640768673번의 순환 속에서, 네 사고는 계속 무의식적으로 세계의 모습을 수정해 왔어.
미안하지만, 너무 방대한 정보는 인간의 의식을 붕괴시킬 수 있어서, 나는 그중 특별한 기억 몇 개만 남겨둘 수밖에 없었어.
수없이 많은 순환을 겪었지만, 그것이 너희의 시간을 많이 빼앗지는 않았어.
난 너희가 그 속에서 진정한 보물을 찾길 바랐을 뿐이야. 그리고 너도 그걸 점점 깨닫게 된 거지.
나나미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그대로 표출할 수 있다는 거 기억하지? 그런데 그 자유로움은 오히려 다른 특별한 감정을 숨기는 가면이 되었어.
그 순간, 기억의 필름이 다시 되감기며, 나나미의 모습이 지휘관 앞에 나타났다.
지휘관, 나나미는 지휘관이랑 함께한 이 시간이 정말 좋았어!
도시의 소음이 나나미의 말을 집어삼켰고, 입술이 작게 움직이던 그 소녀는 미소와 함께 말없이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의 진심 어린 고백은 파도 소리에 삼켜졌다.
"보물"은 항상 지휘관의 곁을 스쳐 지나갔었다.
괜찮은 대답이야, 70점.
괜찮은 대답이야, 100점.
신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지휘관을 향해 따스한 미소 지으며, 다시 책장을 넘겼다.
신이 되기 전의 소녀는 사랑하는 고향을 구하기 위해 그 세계를 떠나야 했어.
하지만 떠나는 순간까지도,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지.
그녀는 마음을 숨긴 채 떠날 수밖에 없었어. 진심을 고백했다면, 떠날 수 없었을 테니까.
나나미도 마찬가지야.
만점짜리 대답이야. 나나미도 이 감정을 찾으려 노력해야 했던 거지.
이건 너희 둘의 보물이니까.
넌 이미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날 만날 수 없었을 거고.
진정한 보물은 우주 기사 벨트가 아니라, 나나미가 늘 네게 전하려 했고, 또 수없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
소녀의 마음이다.
신이 말없이 지휘관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 순간, 지휘관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의식을 몸에서 떼어낸 후, 몸을 저 멀리 밀어내는 듯했다.
지휘관의 의식이 몸으로 돌아가려 애쓰던 그때, 신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지휘관, 그 보물을 찾으러 가".
…………
……
[player name], 어서 일어나. 세상이 멸망했어.
지휘관은 이제 몇 번째 세계 종말인지 셀 수도 없었다. 하지만 "세계 종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전에는 그저 희미한 기시감만 들었다면, 이번만큼은 의식이 선명했었다.
곧 나나미... 그 활발할 회색 머리의 소녀가 지휘관을 흔들어 깨울 것이었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중얼거리다가, 말도 없이 지휘관을 끌고 근심 걱정 없는 보물찾기 여행을 떠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수수께끼의 답"은 이미 밝혀졌다. 이번에 지휘관은 분명, 그녀와 함께 "진정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할 것이었다.
이제 좀 일어나. 남이 깨워주는 게 그렇게 좋은 거야?
쓴소리를 몇 번이나 해야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네.
악룡을 물리친 영웅다워. 아주 귀한 몸이구나?
나나미? 그게 누군데?
악룡을 물리친 영웅이 일어나자마자 헛소리나 하고 있네.
나나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군복 차림의 시크한 장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는 조롱하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나미가 누군데? 아직도 잠이 덜 깬 거야?
헛소리는 그만해. 오늘은 네가 악룡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대축제인데, 주인공이 이렇게 잠이 덜 깬 모습이어서 되겠어?
장교가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얼른 씻고 나와.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지휘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나미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어두컴컴한 방 밖에서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 낡은 문을 열면, 그 활기찬 소녀가 늘 그랬던 것처럼 지휘관의 눈앞에 나타날지도 몰랐다.
[player name] 지휘관... 용사님이야!
용사님이 악룡의 손아귀에서 내 딸을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을 거야. 흑흑.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과실주 양조 기술이 내 대에서 끊길 뻔했어. 용사님, 정말 당신이 우리를 위해 악룡을 물리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우리 집 사람이 당신 덕분에...
떠들썩한 군중이 물밀듯이 밀려들었고, 감사 인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하지만...
지휘관은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 사이를 둘러보았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나미... 그게 누구지?
존경하는 용사의 질문에 소란스럽던 군중이 순식간에 잠잠해졌고, 사람들은 서로 어리둥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 정도 키에, 회색 포니테일 머리를 했고, 금색 눈동자를 가진 늘 웃는 얼굴의 여자아이?
스캐빈저가 손발을 휘저으며, 지휘관이 말한 여자아이의 특징을 묘사했다.
본 적 없는데. 어느 집 아이인 거야?
우리 딸이 회색 머리긴 한데, 눈동자는 검은색이고 잘 웃지도 않아.
나나미... 나나미라... 이상한 이름이네. 우리 마을에 그런 사람이 있었나?
사람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지만, "나나미"라는 존재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용사님이 지나갈 수 있게 다들 비켜줘.
이번엔 또 왜 그러는 건데? 악룡도 물리쳤고 축제도 곧 시작되는데, 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중요한 누군가를 잃었다."라는 게 얼굴에 쓰여 있다고.
나나미라고 했지?
아니, 처음 듣는 이름이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악룡을 물리친 건 처음부터 끝까지 너 혼자였어.
그 나나미라는 자는 네 상상 속의 인물인 거 아니야?
따가운 햇살이 지휘관의 얼굴을 비추는 가운데, 눈앞의 장교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놓고 있었다.
바로 그때, 금속 케이스를 든 한 청년 신사가 지휘관의 시야에 들어왔다.
용사님.
그 청년은 변함없이 엉뚱한 별명에 개의치 않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청년은 지휘관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란 듯했지만, 그럼에도 예의 바르게 미소로 답했다.
전에 본 종말에서 그 청년은 나나미를 "나나미님"이라고 불렀으니,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지휘관을 제외하고 지금 상황에서 나나미의 존재를 아는 이는 그 청년뿐이었다.
나나미...
곧이어 낯선 이름을 중얼거리던 청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 용사님. 축제가 끝나면, 제가 직접 나나미라는 분을 찾아드리겠습니다.
그것보다, 오늘은 다른 것을 전해드리려 왔습니다. 이것은 용사님께서 악룡을 물리치고 얻으신 보물, 우주 기사 벨트입니다.
청년이 말을 이어가며 케이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지휘관이 신을 만나게 해준 벨트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녀만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모든 의문이 풀릴지도 몰랐다.
전에 겪은 종말과 별다른 바 없이 지휘관은 벨트를 건네받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벨트를 만지작거려도, 어떤 반응도 없었으며, 은색 금속 버클은 이제 그저 차가운 금속에 불과했다.
지휘관은 벨트의 은색 금속 버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나미가 함께하지 않는 오늘, 그것은 이제 그저 차가운 금속에 불과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벨트가 아니라면, 진정한 보물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나미와 함께 찾아야지만 진정한 보물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나미가 사라진 지금은 모든 것이 소용없었다.
혹시 "나나미"에 대한 정보를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따사로운 햇살과는 달리, 가슴 한편의 불안은 점점 커졌다. 나나미는 정말 지휘관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던 걸까?
지휘관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소녀의 해맑은 미소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용사님에게 "나나미"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가 아는 나나미!
그 나나미라고...
…………
아름다운 꽃바구니가 거리 곳곳에 놓여있었고, 많은 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힘겹게 쟁취한 평화를 축하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한 노점상에는 각종 게임 테이프와 만화책, 달콤한 별 쿠키 그리고 장난꾸러기 깜짝 상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악룡은 사라졌고, 종말은 멈췄다. 그렇게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되찾았으며, 만물이 다시 소생했다.
…………
하지만, 이 세계에는 더 이상 나나미를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