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가 울리자, 사람들도 삼삼오오 성당을 떠나기 시작했다.
의식에서 사용할 물품들을 정리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비앙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문득 지휘관을 불러세웠다.
지휘관님.
지휘관이 고개를 돌리자, 두 손을 배 앞에 모으고 성당 중앙에서 성스러운 빛을 발하고 있는 비앙카의 모습이 보였다.
네... 방금 갑자기 생각난 건데, 상대가 지휘관님이라면...
지금의 저는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녀로서... 하늘의 기도 의식에서는 신께 기도를 드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소원도 이뤄줄 수 있어요.
흰옷을 입은 여인이 부드럽게 두 팔을 벌렸다.
의식의 마지막 순서를 함께해 주시겠어요?
그 순간, 흩날리던 꽃잎이 빛을 발하는 시간의 장막 위에서 멈췄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떠올렸던 그녀의 표정은 지금 이 순간, 온화하면서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신께서 보살펴 주시는 것처럼, 길 잃은 영혼을 품에 안아주는 듯했다.
그럼, 지휘관님의 소원을 말씀해 주세요.
고요하고 맑은 목소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지녀서 마음 깊숙이 감춰진 감정을 가슴 밖으로 서서히 끌어내 주었다.
설원의 겨울은 끝없는 시련뿐이었고, 천재지변으로 붕괴 직전까지 갔었지.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비앙카는 부드럽게 대답하며, 지휘관을 차근차근 이끌어갔고, "세상"에 대한 소망을 모두 들어주었다.
경청하는 의식도 비앙카의 에너지를 크게 소모하는 것 같았다. 지휘관의 말을 들은 후 비앙카는 살짝 피곤한 듯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아름다운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다음 순간, 비앙카가 힘없이 지휘관의 품으로 쓰러졌다.
지휘관이 비앙카를 받아내자, 마치 깃털처럼 가벼웠다. 한때 윤기 나던 하얀 피부는 혈색을 잃고, 지금은 창백하고 연약해 보였다.
전 괜찮아요. 조금 피곤할 뿐...
어쩌면 그녀가 모르는 사이, 끊임없는 기도가 그녀의 몸을 한계점 너머로 밀어낸 모양이다.
그런데... 지휘관님, 말씀하신 그 "세상" 속에 저도 포함되나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가요?
지휘관의 대답에 놀란 듯, 연민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순간 살짝 떨렸다.
네.
비앙카는 부드럽게 대답하며, 지휘관을 차근차근 이끌어갔고, 그녀와 연관있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었다.
경청 의식도 비앙카의 에너지를 크게 소모해서 그런지, 지휘관의 말이 끝나자, 비앙카는 살짝 피곤한 듯 두 눈을 감았고, 그녀의 아름다운 속눈썹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다음 순간, 비앙카가 힘없이 지휘관의 품으로 쓰러졌다.
지휘관이 비앙카를 받아내자, 마치 깃털처럼 가벼웠다. 한때 윤기 나던 하얀 피부는 혈색을 잃고, 지금은 창백하고 연약해 보였다.
전 괜찮아요. 조금 피곤할 뿐...
비앙카 자신도 모르는 어느 순간부터, 끊임없는 기도가 그녀의 몸을 한계점 너머로 밀어낸 듯했다.
분명 전에도 경고했었는데, 지휘관님의 소원은 여전히 이렇게 제멋대로네요.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당분간은 성당에 머물러 있을게요.
제가 설산에서 혼자 기도드리던 그때, 눈보라가 멈추고 겨울을 날 만큼의 사냥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신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셨나 봐요.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면 산길을 막고 있던 눈도 곧 녹겠죠. 나쁜 일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휘관님도 곧 떠나야 한다는 거잖아요?
눈이 녹는 그날, 지휘관은 재앙의 원인을 조사하고 괴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부대를 이끌고 떠나야만 했다.
어쨌든, 지휘관님께서 떠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지내고 있을게요.
물론 있죠. 제 소원은 봄이 오면 지휘관님과 함께 성당에서 만개한 백합꽃을 구경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름에는 함께...
비앙카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웃으며 검지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웠다.
이건 비밀입니다, 먼저 제 봄날의 소원을 들어주셔야 해요.
네.
비앙카는 다시 눈을 감고 지휘관의 어깨에 기대어, 희미하지만 규칙적인 숨을 내쉬며 병든 아이처럼 지쳐 잠들었다.
지휘관이 비앙카를 안전하게 눕혀두고 성당으로 돌아오자, 한 노인의 모습이 성경을 덮으며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자네... 혹시 시간이 있다면, 이 늙은이와 잠시 이야기 나눠주겠나?
장면 전환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 벌써 3월이 됐고, 날씨는 여전히 조금 쌀쌀했다.
바깥의 눈보라는 멈췄고, 설원을 뒤덮었던 어둠도 점차 걷혀갔다. 비앙카는 더 이상 극단적인 방법으로 신께 기도할 필요가 없어져, 잠시 성당에 머물게 되었다.
평소처럼 아침 기도와 묵상을 마친 비앙카는 화로에 장작을 더 넣었다. 그리고 쌓인 눈을 치우고, 식재료를 다듬고, 기도문을 읽어주는 일까지...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봄의 서막이 살며시 열리고 있었다. 한겨울 내내 고요했던 정원엔 오랜만에 새들의 지저귐이 찾아왔다.
창밖의 눈발이 점점 잦아들면서, 흙냄새가 살짝 차갑게 느껴졌다. 토양 아래에선 그 사람과 함께 심었던 씨앗들이 조용히 깨어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비앙카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비앙카 누나, 그래서요? 그다음은 어떻게 됐나요?
음... 글씨 연습은 다 했니?
비앙카는 여유가 되면 화원 옆 방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다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가족들이 모두 마을을 습격하는 마귀가 되고, 집에 여자아이 혼자 남게 됐잖아요.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비앙카는 어려운 경문들 사이에서 두 권의 그림책을 꺼내 인내심을 가지고 동화를 읽어주었다.
기다려봐. 그다음에... 마녀가 마법을 걸어서 여자아이를 독사로 만들었어. 그 독사는 인간을 해치는 마귀들을 물어서 죽였어.
하지만 사람들은 독사로 변한 그녀를 두려워하고 미워했어. 그래서 그녀는 인간 세계를 떠나 아무도 없는 어둠의 숲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지.
와, 독사가 마귀들을 물리쳤으니까, 그녀는 멋진 영웅인 거네요! 하지만... 어째서...
슬퍼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비앙카 언니.
그다음은...
여유롭게 정원으로 걸어오는 지휘관 차림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비앙카는 무의식적으로 잠시 멈칫했다.
어.
도로에... 눈이... 너무 많이 쌓였습니다.
며칠이... 걸릴지 걱정...
알았어.
병사는 지휘관과 간단히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 지휘관은 손짓으로 비앙카에게 계속하라고 신호를 보낸 뒤, 뒤쪽에서 빈자리를 찾아 천천히 앉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인간들 사이에서 마귀를 물리치는 위대한 영웅이 나타났어.
조금씩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몇 년이 지난 뒤, 위대한 영웅은 검은 숲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 독사를 만나게 됐어.
...
...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난 아이들은 아쉬워하며 자리를 떴고, 비앙카도 그림책을 덮은 뒤,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지휘관님,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셔야죠.
비앙카는 부드럽게 지휘관의 군복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낸 뒤, 손수건을 꺼내 녹은 눈이 남긴 물기를 닦아냈다.
미안, 비앙카. 오늘은 좀 늦었지?
지휘관님께서 병사들과 함께 산길의 눈을 치우러 가셨다고 들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눈이 생각보다 많이 쌓여서, 이틀 안에 다 치우기는 힘들 것 같아.
...
혹시 기억나세요? 하늘의 기도 의식이 끝난 후, 지휘관님과 함께 이 정원에 꽃씨를 심었었잖아요.
비앙카는 지휘관의 시선을 창밖 화원으로 이끌었다. 밖의 나무는 앙상하고 땅은 황폐했으며, 흙냄새는 여전히 차가웠다.
설원은 한파가 모이는 곳이라, 봄이 되어도 씨앗이 싹트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이 아이들이 피어나지 못할 거라고 비관적으로 예견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저는 이 아이들이 서로 앞다투어 활짝 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 꽃씨는 저와 지휘관님이 함께 심은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비앙카는 지휘관의 차가워진 손을 꼭 쥐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홀로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걸, 지휘관님께서 알아주시길 바라요.
우리 둘의 온기라면, 이 세계에서 가장 추운 겨울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요.
맞아.
지휘관은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비앙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눈짓했다.
지휘관님.
멀리서 병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앙카...
어서 가보세요.
비앙카는 지휘관의 손을 놓고, 두 손으로 부드럽게
조심히 다녀오세요.
비앙카는 지휘관에게 무슨 일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를 함께 짊어지지 않으려는
하지만 비앙카는 동시에 지휘관의 이 행동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사람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신이시여, 부디 지휘관님을 보살펴 주소서...
지휘관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비앙카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