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비앙카·심흔·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비앙카·심흔·그중 둘

>

두 줄기의 하얀 불빛이 어두컴컴한 설원을 찢었다.

엔진 굉음과 함께 눈덩이들이 하나둘씩 양쪽으로 갈라졌다. 이 광경을 보면서 문득 성경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인이 강한 동풍에 의해 갈라진 홍해를 걸을 때의 심정이 지금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음조각과 눈 덩어리가 소나기처럼 바람막이용 유리에 부딪혔다. 와이퍼의 속도를 최대로 조절해도, 가시거리를 확보하는 것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수석에 앉아 한창 감탄하고 있을 때, 운전대를 잡은 비앙카는 오른발로 능수능란하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놓았다 했으며, 기어 변속도 깔끔했다.

지휘관님. 방금 전부터 할 말 있으신 것 같은데요.

임무에 필요한 기술일 뿐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운전할 수 있는 건 구조체뿐이잖아요.

아직은 순조로운 편이에요. 중간에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요.

과거 폭설을 마주한 적이 몇 번 있어서, 이런 날씨에 익숙해요.

비앙카는 고개를 저었다.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퍼니싱이 폭발되기 전, 예배당에서 수녀로 일하고 있었어요.

비앙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탐사차 전체가 추락하는 듯 아래로 내려앉았다.

심한 진동으로 인해 몸이 완전히 앞으로 쏠리게 되자, 운전석과 조수석의 에어백이 같이 튀어나왔다. 그로 인해 시야도 완전히 가려졌다.

갑작스러운 충격이 멈췄다. 고개를 들어보니, 차체 절반이 눈이 녹아서 진흙 된 땅에 빠져 있었다.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제 실수예요.

전방의 큰 구덩이를 보지 못했어요.

제 시각 강화 모듈은 주변의 물체 정보를 잡아낼 수 있긴 하지만, 이 구멍은 눈으로 덮여 있어서 지면의 하중 강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어요.

비앙카는 액셀러레이터를 한두 번 밟았지만, 눈 속에 빠진 타이어는 제자리에서 돌 뿐이었다.

이건 눈길에서 운전할 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고였기에, 이런 악랄한 날씨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긴 거리를 안정적으로 달려온 게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있다.

차를 눈 구덩이에서 꺼내는 건... 지금으로선 어려울 것 같아요.

보통 이런 경우엔 타이어 주변의 눈을 치우고, 표면 마찰을 증가할 수 있는 재료를 깔아, 타이어의 접지력을 높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 엄청난 강설량과 영하 50도에 육박하는 기온 속에서 그런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탐사차가 빠진 구덩이는 약 3미터 정도 되는 큰 구덩이였다.

1초를 지체할 때마다 여기서 목숨 잃을 확률이 증가한다. 극지에서 행동하는 게 처음이 아닌 지휘관인 만큼, 이 정도의 간단한 판단은 신속히 내릴 수 있었다.

팔뚝에 있는 휴대용 단말기를 보니, 버려진 과학 기지까지 2킬로미터도 채 남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아침 운동량에도 못 미치는 거리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려운 도전이었다.

알겠어요. 탐사차는 나중에 기회 될 때 다시 회수하죠.

많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비앙카도 이것이 현재 제일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힘겹게 문을 열고, 트렁크에서 압축식 휴대용 텐트와 난방장치가 들어있는 슈트케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눈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단말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

눈보라를 맞으며, 천천히 이동할 때, 지휘관은 비앙카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참 뒤에야 비앙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지휘관님.

제가 좀 더 조심했더라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자책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런 사소한 실수가 지휘관님을 불필요한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어요.

이건 제가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실수였어요.

앞으로 반성하면서 행동할게요.

방금이라면... 제 과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사실은 핑계를 댄 것이었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핑계였다.

그런가요?

알겠어요. 지휘관님께서 듣고 싶다고 하셨으니, 계속해 드릴게요.

가볍게 목청을 가다듬은 비앙카는 조금 전의 화제를 다시 이어갔다.

제가 수녀로 있었을 때...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절 키워준 교회는 늘 물자 결핍으로 인해 곤경에 빠지곤 했어요.

물론 교회는 현지 정부에서 만든 복지시설이기 때문에, 인근 마을에서도 교회로 물자를 보내주기는 해요.

하지만 우리 교회는 민가와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있어서 폭설이 내리는 날이 되면, 물자를 운송해 주는 사람이 위험을 고려해 절대 운송해 주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면, 저나 교회의 다른 분들이 교회에서 준비한 마차를 타고 가서, 한 사람이 왕복하며 모든 물자를 옮겨와야 했어요.

허름한 나무 마차가 눈 위에서 달릴 수 있는 게 기적이라 할 수 있었죠. 말은 로봇으로 만든 운송 장비처럼, 가속 페달만 밟으면 눈 속에서 달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말들을 잘 다루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죠.

비앙카의 얼굴에 담담한 쓴웃음이 보였다. 그녀의 쓴웃음을 보면서 과거 겪었던 고난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은 서툴렀지만, 습관이 되니 눈보라도 별거 아닌 것 같더...

문득 현재 상황을 의식한 비앙카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음... 아무래도 저의 이런 태도가 지금의 불상사를 유발한 것 같네요.

이렇게 생각해 보니, 이번 임무에 지휘관님을 참여시킨 것도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가 신경 쓰이세요?

……

한 명이 잘못했으면, 다른 한 명이 바로잡을 수 있다.

한 명이 부진해도, 다른 한 명이 상대방을 이끌 수 있고

한 명이 방향을 잃어도, 다른 한 명이 다른 시야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에요...

지금 이런 상황에서 "단독 행동"일 경우를 고민하는 게 아니었어요.

지금은... 그때랑 다르니까요.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건 참... 괜한 고민이었네요.

제 곁에는 지휘관님이 계시니까요.

무릎까지 오는 눈 속에 발이 푹 빠지게 되자, 비로소 주변 환경의 열악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방한복이 대부분의 눈보라를 막아주었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는 겉으로 드러난 얼굴을 타고 내부로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보통 이렇게 큰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재촉한다는 건, 삶을 아예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몇 킬로미터 안 되는 길은 평소보다 몇 배, 심지어 몇십 배의 체력을 소모시켰다.

이 "시련"을 혼자서 완성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버티지 못할 것 같을 순간마다, 비앙카는 지휘관의 손을 잡아줬다.

그녀 손길에서 전해진 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견인력뿐만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의지도 담겼다.

그 이후로 또 오랫동안 걸었다. 그러다 앞장서 가던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도착했어요. 지휘관님.

방한복 어깨에 달린 탐조등이 전방의 건물을 비추자, 버려진 지 오래된 과학 기지가 보였다.

컨디션은 어떠신가요? 괜찮나요?

그럼, 다행이네요. 잠시만요. 이 건물의 안전성을 확인해 볼게요.

지휘관님께선 당장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아요.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이 건물의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비앙카는 검을 들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방문이 다시 열렸다.

안전 확인 완료. 지휘관님, 이 건물에서 퍼니싱이나 다른 생명체의 반응이 감지되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눈보라가 멈추길 기다릴 수 있을 거 같아요.

황금시대 이전부터 인간은 남극에 과학 탐사 시설을 많이 배치했다. 심지어 남극에 도시를 건설할 구상도 했었다.

그러다가 인간이 공중 정원으로 올라간 후, 대부분 과학 기지는 모두 버려지게 됐다. 그 이후 공중 정원이 남극 탐사 부대를 만들어서 남극 활동을 시작하게 된 후에도, 일부 거점만 재가동해 사용했을 뿐이었다.

나머지 거점은... 탐사 정신을 중요시하고, 세계 종착지를 정복하려던 구시대 추모용 유적으로 남거나, 몇 년이 지난 후 남극에 진입하는 자의 임시 거처가 됐다.

과학 기지의 문을 열었다. 수년 동안 쌓인 먼지가 기압 차이 때문에 정면으로 흩날렸고, 지휘관은 참지 못하고 기침을 몇 번 했다.

전원은 차단된 지 오래였어서, 조명이나 난방 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침대와 생활용품도 철거된 데다, 외부의 밤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텅 빈 방은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 가장 엄격한 표준에 따라 건설된 건물이라, 적어도 구조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바람이 조금 새는 곳도 있었지만, 눈보라를 피하려는 사람에게는 충분했다.

비앙카와 지휘관은 과학 기지에서 임시 텐트를 치고 침낭을 정리하며 하룻밤을 보낼 준비를 했다.

임무에 보급된 휴대용 텐트는 수납공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기 전에 무게를 줄이기 위해 1인용 난방 장치만 가지고 왔다.

난방 효과를 누리기 위해, 비앙카와 지휘관은 최대한 공간을 압축해서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팔다리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얼굴을 맞대고 옆으로 눕는 자세를 취했다.

바람 소리가 들리는 어둠 아래서, 지휘관은 난방 장치의 은은한 빛을 빌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비앙카의 청황색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마치 빙하 밑에 묻혀 있던 보석이 보물 사냥꾼의 랜턴에 희미하게 비친 것만 같았다.

하핫...

비앙카는 갑자기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이상해서요.

전에 수많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보육 구역 밖의 다른 곳에서 임시로 밤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앞으로... 말인가요?

비앙카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지휘관님, 손을 내밀어 주세요.

그녀는 갑작스레 제안하더니, 먼저 자기 손을 내밀었다.

생체공학 코팅과의 접촉을 통해, 휴면 중에도 지휘관님의 체온과 맥박을 실시간 감지를 할 수 있어요.

지휘관님, 손을 내밀어 주세요.

분명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말 중간중간 쉬는 포인트에서 거절할 수 없는 위엄을 느꼈다.

물론 무엇보다도 지휘관에 대한 걱정이 더 많이 느껴졌다.

지휘관은 순순히 자기 손을 내밀어 비앙카의 손과 맞댔다.

네, 됐습니다.

그럼, 지휘관님께서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어서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지휘관님.

정말 피곤했는지, 비앙카의 말은 들자 졸음이 몰려왔다.

눈보라는 여전히 아우성치고 있었고, 등 뒤로 가끔씩 차가운 기운이 파고들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공중 정원 숙소에 누워 있을 때보다 잠기운이 더 빨리 몰려왔다.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꿈속으로 들어갈 무렵이었다.

손에 색다른 촉감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지휘관의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 지나가더니, 지휘관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촉감은 차갑고 딱딱했다.

하지만 얼음처럼 단단한 껍질을 넘어, 지휘관의 손아귀에 전해진 것은...

잡아주고 싶은 따뜻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