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비앙카·심흔·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비앙카·심흔·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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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장치로 고정된 좌석에서 또 한 번의 가벼운 덜컹거림이 전해졌다.

수송기가 대기권을 돌파할 때, 음폭의 여운은 귀벌레처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선실 내의 전자 스크린을 올려다보니, 마하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그 외에도 레이더 상의 좌표 숫자가 이동하는 점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위도가 분 단위로 지속 상승하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집행 부대의 지휘관으로써 수많은 전쟁과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기엔 부족하나, 그래도 지구 곳곳에 발자취를 남겼다고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목적지는 공중 정원의 고위직 장관들도 잘 모르는 곳이었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지구를 위해 그은 선을 넘었다는 건, 인간이 낯선 지역에 들어섰다는 걸 의미했다.

남극 대륙.

인간이 마지막으로 발견한 대륙이자,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순백의 땅이다.

인간 문명의 정점을 상징하는 황금시대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남극의 비밀을 모두 탐색하지는 못했다. 퍼니싱 폭발 이후, 세계의 극점에 위치한 이 대륙은 인간의 인식에서 가장 먼 거리로 밀려나게 됐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남극의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런 임무를 받기 전까지는...

지휘관님, 왜 그러세요?

옆에 있던 금발 구조체가 이질감을 예리하게 눈치챘고, 몸을 기울여 지휘관의 상태를 물었다.

수송기의 탑승 칸에는 거울이 없었기 때문에, 지휘관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평소보다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중에는 아마 비앙카와 함께 행동하게 된 것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무로 인한 불안감은 아니었다. 반대로 지휘관은 곧 도착할 곳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고, 고개를 돌려 비앙카를 바라봤다.

비앙카의 자세는 평소처럼 단정하고 늠름했지만, 눈빛에는 지휘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생리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아직은 수송기 안이니, 응급 처리해드릴 수 있어요.

네. 지휘관님.

비앙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휴대용 투영 단말기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꺼냈다.

7일 전, 공중 정원 예술 협회는 미지의 지상 통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남극 극지에 주둔하고 있던 예술 협회 고고학 원정대 중, 아주 특별한 부대인 극지 탐사 부대가 공중 정원과 연락이 단절됐습니다.

초보적인 판단에 의하면, 통신 차단의 주요 원인은 미지의 고주파 교란입니다.

그리고 통신에 비친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의회는 발신한 극지 탐사 부대가 배신을 했거나 실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중 정원에는 상시적으로 남극에 주둔한 일반 부대가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효율을 고려하여 이번 조사 수행을 정화 부대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이상, 대략적인 배경 상황입니다. 지휘 센터에서 극지 탐사 부대의 구체적인 인원 명단과 이력서도 같이 제공했습니다. 지휘관님, 이 부분도 다시 보고드릴까요?

비앙카의 침착하고도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혼란스러운 감정은 스스로 가라앉았다.

비앙카한테서 단말기를 받아 자세한 임무 정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홀로그램 스크린의 리스트에서 보이는 건, 모두 낯설디낯선 이름과 사진들뿐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까지는 예상했다. 이 임무를 받기 전까지 공중 정원이 남극에 부대를 파견해 지속적인 활동을 진행해왔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남극은 인간 문명의 "침범"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남극의 대부분 지역은 퍼니싱의 침식을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조롭고 광활한 대륙 외관에 대비해, 남극의 자원은 매우 가관적이었다. 풍부한 석유와 광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대량의 크릴새우와 담수(淡水)도 수확할 수 있어, 공중 정원에 필요한 생활 물자를 크게 충족시킬 수 있었다.

만약 지구에 퍼니싱 반격 전선을 구축한다 했을 때, 기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남극이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회는 이번 극지 탐사 부대 실종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정화 부대의 대장 비앙카를 수사에 파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정화 부대를 출동시킬 때, 지휘관을 함께 보내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번 극지 탐사 부대는 아직 "정화" 대상으로 판정되지 않았고, 실제 정황 조사가 최우선 목적인 만큼, 지휘관님의 현장 판단력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됐어요.

게다가 탐사 부대 구조체는 대부분 전투 능력을 갖추지 못했어요. 혹시라도 전투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될 경우, 제가 신규 기체의 탁월한 성능으로 지휘관님을 지킬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지휘관님께서는 북극 항로 연합 사건 당시, 극지에서 행동 경험을 많이 쌓으셨기 때문에 기타 지휘관보다는 적임자라고 판단했어요.

여기까지 말한 비앙카는 잠시 멈춘 뒤,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상, 지휘 센터에서 제 협력 신청을 승인하기에 충분할 거라 생각했어요.

……

지휘관의 질문을 들은 비앙카는 눈을 감고, 잠시 침묵에 빠졌다.

네. 그건 제가 지휘관님을 선택한 전부 이유는 아니에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적 입장에서 고려한 부분도 있어요.

……

야릇하고 묘한 침묵이 몇 초 간격으로 재연됐다.

만약... 제가 전부 실토하지 않는 게 임무 진행에 폐가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최대한 모든 걸 설명해 드릴게요.

비앙카의 말투는 임무 상황을 진술할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녀 말속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호기심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지휘관은 비앙카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본인이 지금 설명하는 걸 원치 않으니,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비앙카의 태도에서 살짝 거부하는 티가 났지만, 지휘관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둘이서 함께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비앙카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음...

제가 정리해서 다시 말씀드릴게요.

눈살을 찌푸린 비앙카는 눈을 감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계속 추궁하는 건 정답이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비앙카한테 충분한 신뢰를 줘야 했다.

어차피 비앙카는 정체불명의 구조체가 아닌, 수차례 험난한 경험을 겪어왔고, 조건 없이 신뢰할 수 있는 존재였다.

고마워요. 지휘관님.

적당한 시기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믿어주세요.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거예요.

비앙카의 한숨 놓인 미소를 보고, 정확한 선택을 했다는 것에 확신이 들었다.

제가 정확한 선택을 한 것 같네요^^

지휘관님의 도움이 있으니, 이번 임무는 아주 순조롭게 완료될 수 있을 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비앙카는 고개를 돌려, 좌석 맞은편의 두꺼운 관찰 창을 바라봤다.

밖의 하늘은 어두워졌고, 수많은 눈송이가 쓰나미에 휩쓸린 듯 하얀 눈보라를 일으켜, 강화 유리를 마구 내리쳤다.

폭풍의 충격으로 둔탁한 울림이 들려왔다. 전에 때때로 느꼈던 흔들림도 이 악렬한 날씨 때문이었다.

지상과 조금 가까워지니 이렇게 거센 눈보라를 만났네요...

파오스에서 군사 지리를 공부할 때, 남극의 험악하고 변덕스러운 기후를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왜 퍼니싱 농도가 극히 낮은 곳을 소개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 그때는 너무 어렸던 것 같았다.

네. 불가항력으로 인해 임무 수행이 어려운 게 아닌 이상, 정화 부대의 임무는 취소되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날씨에 수송기는 계획대로 예정 착륙 지점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임무를 위해 이 수송기에 배치된 극지 탐사차를 가리켰더니 비앙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알겠어요. 그럼, 가장 가까운 과학 기지까지 이동하는 걸 최우선 목표로 할게요.

수송기가 약간 흔들리며, 평탄한 빙야에 천천히 착륙했다.

안전장치가 자동으로 열렸다. 지휘관은 일어선 뒤, 오래 앉아있었던 탓에 경직된 몸을 움직였다.

비앙카는 기체 상태를 확인하고 허리에 장착한 장검을 움켜쥔 뒤, 지휘관 옆에 섰다.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이 이렇게 악렬해질 줄은 몰랐어요.

혹여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시면, 지금 바로 수송기와 함께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보고할게요.

그런 뜻이 아니라,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비앙카는 멍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가 시선을 올려 지휘관을 바라봤고, 다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이죠. 지휘관님. 방금 그 말은... 죄송합니다.

지휘관님과 함께 겪었던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함께 출발해요. 지휘관님.

비앙카가 굳건한 태도로 말을 끝내자, 마침 수송기의 문이 열렸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미세한 얼음 부스러기와 함께 얼굴을 덮쳤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칼날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고, 공기 중에 온도가 영점 이하로 내려간 차가움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길고 늠름한 그림자를 따라, 차디찬 바람 속에서 흩날리는 금발을 바라봤다.

지구의 종착지 중 하나이자, 영원히 존재하는 유구한 동토(冻土)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