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끝나고, 리브와 지휘관은 G94라 불리는 무장 장치의 탄약을 모두 해제했다. 하지만 그 장치는 여전히 긴장한 채, 포대를 이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뭐, 뭐 하는 겁니까! 당신 목소리가 아무리 꼬마 주인님과 비슷하다고 해도... 절대 통과시킬 수 없어요! 이 사악한 퍼니싱 같으니!
저희더러... 퍼니싱이라고요?
리브와 지휘관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께서 말씀하시길, 꼬마 주인님 외에 "회색 깃털"에 접근하는 자는 모두 퍼니싱이니 단호히 저지하라 하셨습니다!
꼬마... 아니, G94 님. 그 꼬마 주인이라는 분이 혹시—
"리브"라는 인간 소녀입니다.
제가 리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둘은 G94라 불리는 기계체에게 퍼니싱과 구조체 개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리브의 어머니에 관한 최소 열 개 정도의 "본인 확인 질문"에 모두 정확히 대답했다.
G94가 마침내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그들의 방문을 받아들였을 땐 이미 해 질 무렵이었다.
그랬던 거군요. 목소리가 꼬마 주인님과 이상하리만치 비슷하다 했더니... 정말 주인님이셨네요. 이제는 "구조체"가 되셨고, 이분은 당신의 지휘관님이시고요.
G94는 둘을 숲 깊숙이 안내하면서 자신의 포대를 돌렸다.
자, 도착했습니다.
눈부신 은빛이 시야에 번져 들어왔을 때, 인간의 뇌는 그것이 단순히 칠해진 글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채기까지 꼬박 5초가 걸렸다.
비행선 "회색 깃털-537"
황금시대의 유산이라 불리던 비행체였다. 그것은 놀라울 만큼 넓은 날개폭을 지녔고, 객실의 창문은 개폐식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파오스 항공 저널에도 이 독특한 기종이 실린 적이 있었다.
풍력을 포획해 동력으로 바꾸는 시스템 덕분에, 그 어떤 바람이라도 효율적으로 엔진 힘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했다.
인력으로 저공비행이 가능하고, 강풍 시에는 엔진 동력을 이용할 수 있어, 불규칙한 기류에서도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는 비행체였다.
저널의 평가는 이러했다. — "너무나 로맨틱한 기종"
지평선만큼 넓은 날개는 황혼의 품속에 고요히 누워 있었다. 날개의 금속 표면엔 잔잔한 물결 빛이 반사되어, 저물녘의 바다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비행체는 숲의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 또한 그것과 함께 가라앉아, 목이 메어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햇살이 말없이 흔들리며, 얇은 수막 위에 눈부신 결을 짜 올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찬란히 일렁이는 그 빛은 마치 자신을 유혹하듯 속삭였다.
"하늘로 돌아가..."
숲은 짐승들이 잠들어 있는 대양이었기에, 날짐승의 심장은 이곳에서 안식을 찾기 어려웠다.
바람이 불어오자,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심장이 미약하게 고동치다가 점점 기쁨에 들떠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바다와 하늘의 경계로 몸을 던졌다.
광풍이 사납게 울부짖고, 천둥이 내면의 영혼을 부서뜨렸다.
고통스러우면서도 그만큼 황홀했다. 그곳이야말로, 그것이 돌아가야 할 자리였다.
하늘
"하늘로 돌아가..."
지휘관님, 지휘관님!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단단한 대지가 발밑에 있었고, 손끝은 어느새 그 은회색 날개 위에 닿아 있었다.
리브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와 물었다.
무의식 속에서 눈앞의 비행선과 함께 기이한 여행을 다녀온 듯했지만, 그 경험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방금 지휘관님께서 멍하니 계시던 모습이, 정말 유령에게 홀리신 것 같았어요.
지휘관님을 깨우는 것보다, 차라리 함께 타보고 싶네요.
바람의 신님께선 아직 준비가 안 되신 것 같아요. 회색 깃털은 바람의 힘에 많이 의지하는데, 오늘은 바람이 너무 약하네요. 다음에 다시 시도해 보죠.
그 전에, 먼저 그 동화책을 찾고 싶어요. 가시죠, 지휘관님. 곧 "비밀 기지"에 도착해요. 어머니가 남겨두신 물건이 그곳에 있을 거예요.
네. 곧 "비밀 기지"에 도착해요. 어머니가 남겨두신 물건이 그곳에 있을 거예요.
손잡이를 돌려 천천히 문을 열자, 안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며 종이 같은 무언가에 부딪쳤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어린 시절의 햇살이 온몸을 덮쳐왔다.
창문 유리는 몽환적인 백금빛으로 물들어 있어, 밖을 내다보면 상상의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조금 전의 바스락거림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보니, 문 뒤에 무언가가 흩어져 있었다.
종이비행기...
낡은 종이들은 세월의 자취가 스며들어 누렇게 바랬고, 손끝에 닿으면 부서질 것만 같았다. 리브는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들어 올렸다.
이 종이비행기, 제가 어렸을 때 접은 것들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많았었나?
글쎄요... 잘 기억이 안 나요.
계절풍이 불 때, 종이비행기에 소원을 적어 바람에 실어 보내면, 바람의 신님께서 축복을 내려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종이는 텅 비어 있었다.
종이를 접은 아이는 부끄러웠는지, 단 한 글자도 남기지 않았다.
여기에도 없었고, 저기에도 없었다. 방 안 가득 흩어진 종이비행기들 중, 단 하나도 어린 리브의 소원을 담고 있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어렸을 때 어떤 소원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네요.
종이비행기를 정리하고 두어 걸음 더 들어가자, 나무 바닥이 반갑게 삐걱거렸다. 발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은 것 같아 고개를 숙여보니 의자였다.
사실은 책상이었어요. 너무 낮아서 자주 의자로 착각되곤 했죠. 칼리오페가 목수에게 부탁해서 특별히 만든 건데,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리브는 마치 마술을 부리듯, 얇은 책상 아래에서 반짝이는 서랍을 꺼냈다.
짜잔... 이게 전부 제 보물이에요.
평소 조용하던 리브의 얼굴에 자그마한 자부심이 스쳤다.
층층이 접어둔 금박 사탕 포장지, 투명한 유리구슬, 둥글고 매끈한 조약돌들…어린 시절의 보물들이 햇살 아래서 당당히, 생기 있게 빛나고 있었다.
리브가 "책상" 전체를 지휘관에게 보여주려던 순간, 작은 유리구슬 하나가 틈새로 빠져나와 방 안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리고 몇 미터도 가지도 못해 리브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리브의 눈앞에 거대한 나무 책장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책장?
책보를 걷자, 형형색색의 책들이 마치 오랜 세월 묻혀 있던 보물처럼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책장 가득 꽂힌 동화책들을 바라보며, 리브는 무의식적으로 책등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오랜만이네...
리브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추억에 잠겨 있던 리브는 지휘관을 바라보며 수줍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지휘관님, 좀 유치할 수도 있지만, 저기...
저랑 같이 이 동화책들, 봐주실래요?
네!
그리고나서, 혼자 여행하던 개구리가 마침내 진짜 바다를 찾았어요. 그런데 물가에 다가가 보니, 반짝이던 건 바다가 아니라 은하수의 별들이었죠. 결국 개구리는 어느새 달나라까지 뛰어 올라가 버렸답니다…
전설에 따르면, 악룡이 공주를 잡아갔는데, 기사가 공주를 구하러 갔을 땐, 그 악룡이 이미 공주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이것도...
리브는 들뜬 표정으로 동화책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어린 시절 자신을 설레게 했던 장면들을 이야기했다.
밤이 내릴 때까지 그녀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쉬운 듯 마지막 책을 덮은 리브는 말없이 침대를 펴고, 말없이 물을 데우고, 그리고 말없이...
아... 네?
이리저리 움직이던 리브가 멈춰 섰다.
리브는 실망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멍한 표정이었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그 감정을 정확히 읽기란 쉽지 않았다.
제가 잘못 기억했나 봐요.
분명 다 찾아봤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비밀이에요.
지휘관님이라서 더 비밀이에요.
지휘관에게조차 숨기는 이야기라니, 평소엔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는 리브였지만, 이번만큼은 의외로 단호했다.
적어도 지금은... 안 돼요. 아직 결말을 찾지 못했거든요.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던 리브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슬픈 결말이면 어떡해요?
저는... 그 이야기들을 정말로 믿는단 말이에요.
리브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맑은 동경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고, 개구리는 연인의 키스를 받고, 백설 공주는 잠에서 깨어나고...
동화 속 이야기는, 분명 세상 어딘가에서 진짜로 일어나고 있을 거예요.
아주 작은 구석이라도, 그곳에 피어난 한 줄기 희망만으로도, 사람들은 삶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리브는 존재하지 않는 빛을 받아내려는 듯, 살며시 두 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고이 감쌌다.
제가 알고 싶은 이야기는… 마치 겨울밤의 작은 성냥불 같아요. 밝진 않지만, 제 기억 속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어요.
그래도 전 그 따스함이 그리워요. 그 불빛 속에 지휘관님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비치니까요.
아! 많... 많이 유치하죠? 이렇게 커서도 아직 동화를 믿는다는 게...
네?
다행이에요. 그럼 제 마음을 이해하실 수 있겠네요. 하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아직은 조금 두렵거든요…
네. 하지만 행복한 결말이라면, 지휘관님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으음...
리브는 속마음을 들킨 아이처럼 수줍게 고개를 숙여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 감정의 바닷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 어디에 선생님이 계신다는 거예요!
생뚱맞은 대답에 한 방 얻어맞은 리브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리브는 매번 이 긴 제목의 연구에 속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네요. 그럼...
그럼, 제 맞은편에는 앉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마주 보고 이야기하기가 너무 부끄러워요...
제 침대로 와 주세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것처럼... 여기 기대세요.
리브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자기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네. 이렇게요... 이야기를 들을 준비 되셨나요?
리브는 지휘관의 관자놀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처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온화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에덴의 소녀>예요.
이건 아주 오래전 세계의 이야기예요.
그곳의 파란 하늘은 높으면서도 멀었고, 푸른 대지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어요.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신의 시선처럼 대지를 고요하게 내려다보고 있었죠.
이 광활한 세상 속에는 오직 한 명의 소녀만 존재했어.
아주 오랜 세월을 혼자 그곳에서 보냈지.
하루… 이틀? 1년… 2년? 시간의 개념은 이미 희미해져 버렸어.
그럴 수가... 그 아이는 정말 외로웠겠어요!
맞아. 그 아이는 외로웠어. 하지만... 콜록... 콜록... 콜록...
엄마, 엄마! 왜 그러세요?
괜찮아, 조금 피곤해서 그래. 잠시 휴가를 다녀와야 할 것 같구나...
그럼 리브는요? 혼자 여기 있어야 해요?
아빠와 칼리오페가 네 곁에 있어 줄 거야.
그치만… 엄마도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엄마는 작은 별이 돼서 리브를 지켜보려고.
그럼 하늘로 날아가서 엄마를 찾을래요! 바로… 바로… 우리가 타고 있는 이 회색 비행선으로요!
어린 리브가 발밑의 조종석을 자랑스럽게 두드렸다.
작은 별은 아주 높이 있단다. "회색 깃털"로는 그만큼 높이 날 수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비록 높이 날지는 못 해도, 어쩌면 엄마처럼 리브 곁을 지켜줄지도 몰라. 그리고... 동화 속 그 소녀와도 함께 할 거야.
정말요? 하지만 그건 그냥 비행선이잖아요.
이건 동화 속 이야기잖니. 리브야, 상상력을 발휘해 보렴.
하지만 아빠가 동화는 다 거짓말이라고 했어요.
아빠는 바보야. 바보의 말은 믿으면 안 돼.
그럼, 신데렐라, 피노키오, 어린 왕자... 그 이야기들도 진짜예요?
물론이지! 리브가 아직 어려서 그래. 언젠가 커서 꼭 그 친구들을 만나게 될 거야.
그뿐만 아니라… 리브를 아주 많이 사랑해 주는 사람도 만나게 될 거야.
그 사람이… 누구예요?
그건 엄마도 몰라. 우선 그 사람을 리브의 연인이라고 부를까?
그 사람은 언제나 리브 곁에 있을 거야. 엄마나 아빠보다 훨씬 더 오래, 더 멀리까지 함께할 거야.
그... 그럼, 얼마나 기다려야 그 사람이 리브의 곁에 나타날까요?
어쩌면 내일 바로 나타날 수도 있고, 조금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정말요…? 혹시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겠죠?
엄마가 약속할게. 리브가 크고 나면, 그 사람이 꼭 조용히 곁에 나타날 거야.
자, 이리 와서 귀를 대보렴. 엄마가 비밀 하나를 알려줄게.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
그날 밤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별들은 높은 곳에서 반짝이며 리브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는 것만은 기억이 났다.
조금은 슬픈 그 이야기에 리브는 홀린 듯 빠져들었다. 귓가에 맴돌던 어머니의 목소리와 얼굴은, 별빛처럼 희미하고도 멀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조용히 동화책을 덮고 리브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자, 리브는 곧 눈을 감고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뒤, 리브가 다시 눈을 떴다. 자신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을 때, 뜨거운 눈물이 시야를 흐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