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녀는 작은 까마귀와 함께여서 더 이상 외롭지 않았지만, 작은 까마귀는 그녀가 점점 지쳐가고 있는 걸 느꼈다.
소녀가 생명을 하나 접을 때마다, 손끝에서 흩어진 빛의 조각들이 새로 태어난 생명에게로 옮겨갔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소녀의 등 뒤 날개는 점점 사라졌고, 몸은 투명해져 갔다.
더 이상 이 폐지들을 접지 말라고?
아니야. 이 아이들은 폐지가 아니야. 원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들이었는데, 다쳐서 이렇게 변해버린 거야.
이 아이들이 너무 아파하고 있어... 더 이상 울게 둘 순 없어.
소녀는 흩날리는 종잇조각들을 계속 주워서 접고 붙이며, 새 생명을 얻은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지었고, 손을 흔들어 그들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바람은 점점 거세졌고, 세찬 바람은 종잇조각들을 하늘 높이, 멀리 산맥 너머로 날려버렸다.
소녀는 일어서서 휘몰아치는 기류 속에서 비틀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작은 까마귀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는 하늘로, 산맥 너머로 날아가 길 잃은 종잇조각들을 다시 그녀 곁으로 물어다 주었다.
고마워. 작은 까마귀야.
작은 까마귀는 그저 그렇게, 소녀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왜... 소녀를 이 외로운 세상에 남겨둬야만 하는 걸까?" 작은 까마귀는 마음 아파하며 생각했다.
-<에덴의 소녀·Ⅲ>-
리브를 안쪽으로 안내하고 손을 뻗어 스위치를 건드리자, 스탠드에서 오래된 한숨 소리와 함께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이런 느낌, 정말 신기해요. 방금 지휘관님께서 문을 열어주셨을 때, 마치 그레이 레이븐 휴게실로 돌아온 것 같았어요.
조명이나 테이블, 의자 같은 집안 물건들이 저한테 "어서 와"라고 말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래요? 만약 제가 그 말 이외에도 듣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요?
리브는 밀짚모자를 옷걸이에 걸며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언젠가... 제가 지휘관님께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에요.
리브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하얀 얼굴은 은은한 불빛 아래서 살짝 취한 듯 붉은 기운을 띠었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여기선 그저 "어서 와." 그 한마디면 충분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저도 그런 기분을 자주 느꼈어요.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재혼하시면서 이 집에 새로운 가족을 꾸리셨거든요.
그러면서 예전에 어머니가 저를 돌보라고 고용했던 칼리오페 메이드도 떠나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집에 있는 것보다 제 "비밀 기지"에 있는 걸 더 좋아했어요.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작은 오두막인데, 아버지도 어렸을 때 거기서 자주 놀았다고 해요.
어린 시절 결코 따뜻하지 않았던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는 뭘까?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을 찾고 싶어서요.
이 책이 아니네요... 이것도 아니고...
그건 다 아버지가 읽으시던 책이에요. 제가 찾는 건... 그게 아니에요.
네? 그런 책이 어디 있어요!
책... 책장에 그런 이상한 게 있을 리 없잖아요... 아니요. 이상하다기보다는... 그러니까...
서재 책장에 그런 책이 있을 리 없잖아요.
리브는 얼굴을 돌리고,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부렸다.
동화책이요. 어렸을 땐 잘 몰라서, 어머니가 대신 읽어주셨어요.
이상한 건, 집에 있던 어머니의 물건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거예요. 마당에 있던 비행선부터 작은 빗, 그리고 어머니의 책들까지 전부 없어졌어요.
은회색의 글라이더처럼 생긴 비행체예요. 제가 집을 떠나 군대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이 모든 게 집에 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전부 없어졌네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버지가 새 가정을 꾸리시긴 했지만, 사실 어머니를 많이 사랑하셨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가 남기신 물건들을 수년간 잘 보관하셨어요.
하지만... 집 창고는 이미 다 찾아봤는데... 잠시만요.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올 때 느꼈던 몽롱한 감정은 이제 사라졌다. 지휘관을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온 리브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입에서는 작은 노래까지 흘러나왔다.
둘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결국 처음 지나쳤던 숲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네. 전에 비밀 기지에 여러 가지 물건을 숨겨뒀었는데, 아마 아버지도 제가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거라 예상하셨나 봐요.
리브의 발걸음을 따라, 나뭇잎의 그림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몇 번을 다시 와도 "비밀 기지"는 여전히 설레는 장소였다.
왠지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도 함께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라는 전장에서 자주 느끼던 직감이, 즉시 몸을 긴장시켰다.
유령?
그 아이들이 말했던 존재일지도 모르겠네요... 방향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