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선 알파가 무장 폭도들에게 둘러싸인 채, 폭도의 두목을 매섭게 바라보고 있었다.
구조체?! 그 보잘것없는 보육 구역은 이미 포기한 거 아녔어?
알파는 바보 같은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듯, 칼자루를 잡았다.
물건을 내놔. 그리고 꺼져.
너는? 넌 우리에게 뭘 줄 수 있는데?
보육 구역에서 이걸 찾으려 별짓을 다 했다고.
너희들을 살려 보내줄 수도 있어.
……
그들의 두목은 알파를 훑어보면서,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려 했다.
난 인내심이 별로 없어.
칼집에서 뽑아 든 태도의 칼날엔 서늘한 빛이 빛났다. 눈을 가늘게 뜬 알파는 누가 봐도 더 이상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펑!"
그들의 두목은 총을 뽑아, 알파를 향해 격발했다.
쯧.
알파는 칼을 휘둘러 총알을 막아냈고, 칼바람이 뒤따라오는 연막탄을 갈라, 폭도들이 예상했던 연기와 먼지가 자욱한 장면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시하기 짝이 없네.
흩어져! 빨리 도망쳐!
물건을 가지고 떠나! 받은 보수는 모두에게 떨어질 거야!
두목은 팔을 흔들며 소리쳤고, 뒹굴어 알파의 참격을 피했으나 결국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두목의 명령에 무장 폭도들은 사방으로 도망갔다.
알파가 오토바이에 올라타, 쫓아가려던 그때...
α!
멀지 않은 숲에서 익숙한 모습이 나타났다. 몸에 흙과 나뭇잎이 잔뜩 묻어있는 걸로 봤을 때, 지름길로 쫓아온 모양이었다.
[player name] 지휘관이었다.
뒤쫓아온 거야?
하지만 이번엔 네게 양보하지 않을 거야.
……
이렇게 어설픈 방법으로 나를 막으려는 거야?
너와 회포를 풀 시간은 없어.
알파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도망치는 무장 폭도들을 쫓으려 했다.
날 협박하는 거야?
공중 정원을 언급하자, 알파는 위험한 시선으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지휘관은 다시 단말기에 새로운 노선을 표시했고 크로와에게 공유했다.
크로와는 새로 나타난 이 "구조체"를 알지 못했지만, 명령에 따라 지휘관이 표시한 좌표를 향해 움직였다.
공중 정원의 지휘관이 이렇게 혼자 승격자와 같이 있어도 돼?
알파는 아무 표정 없이 지휘관을 바라봤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손패를 이용해 알파에게 협력하도록 압박을 주는 건 충분했다.
협력하자고?
다른 두 소대가 지원한다 해도, 무장 폭도 인원수가 워낙 많아서 빨리 추격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료를 담은 저장 장치를 가지고 탈출할 수도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알파가 지휘관에게 협조해야 서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장 폭도들이 혼란을 틈타 물건을 가져가기만 하면, 지휘관이나 알파는 다시는 못 찾을 수도 있었다.
일단... 말해봐.
엔진의 소리는 멎었지만, 알파는 지휘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설득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지휘관은 바로 단말기를 열어, 빠르게 지점 몇 곳을 짚고 원을 그렸다.
……
그쪽 말을 들어보니, 갑자기 공중 정원이 자주 쓰던 유인 수단이 생각나네. 아쉽게도 난 더 이상 그 연약한 "루시아"가 아니야.
알파는 복잡한 표정으로 지휘관을 쳐다보고는 사색에 잠겼다.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알파는 이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승격자를 이렇게 가까이한다는 건 준비됐다는 거겠지?
협력이 이루어졌다.
지휘관이 오토바이에 올라타자, 알파는 오토바이의 스로틀을 당겼다.
혈청을 넉넉히 준비했기를 바랄게.
엔진에서 굉음이 울렸고, 승격자인 그녀의 팔엔 눈부신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 오토바이는 핏빛의 번개처럼 엄청난 속도로 숲을 가로질렀다.
눈부신 붉은 번개 주위엔 퍼니싱 농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50%... 60%... 70%...
지휘관은 심장박동이 빨라져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방호복이 한계를 넘으려는 순간, 앞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무서워?
퍼니싱 농도가 임계점의 근처에서 멈췄다.
그때, 단말기에서 통신 신청이 들어왔다.
통신이 연결되자, 크로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관님! 고농도의 퍼니싱 반응이 감지됐어요! 지금 지점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에요!
지휘관님의 좌표가... 퍼니싱 반응이랑 일치해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그쪽으로 지원이 가고 있어요. 조금만 더 버티세요.
하지만...
통신에서 귀를 찌르는 전류음이 들려왔고, 크로와의 목소리는 점차 알아들을 수 없게 변했다.
오토바이가 갑자기 감속하자, 지휘관은 관성으로 인해 알파의 등에 부딪혔다.
너 설마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야?
지... 지지직... 퍼니... 교란... 지지직...
이건 우리만의 거래야.
"통신 종료"
내가 널 납치할 수도 있잖아.
순진한 거야 아니면 용감한 거야?
흥.
알파가 코웃음을 치고는 속도를 높였다. 바퀴 아래로 눈이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속도가 빨라지면서 귓가에 시끄러운 바람 소리가 울렸고, 알파의 목소리마저 바람에 희미하게 들렸다.
잡아...
꽉 잡으라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토바이는 다시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너무 빠르게 가속한 탓에 지휘관은 오토바이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지휘관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두 손으로 알파의 허리를 잡고 있었다.
방호복을 사이에 두고도, 부드러운 감촉과 온도가 느껴졌다. 그 순간, 알파의 몸이 갑자기 굳어졌다.
……
뜻밖에도 알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오토바이의 손잡이만 움켜쥘 뿐이었다.
찬 바람은 바늘처럼 피부를 찔렀고, 눈꽃은 소나기처럼 휘몰아쳐, 시야에 닿는 모든 걸 하얀색으로 덮어버렸고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선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사라져, 지휘관과 알파만 흩날리는 눈 속에서 전진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때쯤, 다급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가 반 바퀴 돌며 누군가의 앞을 가로막았다.
놀란 표정과 함께 누군가가 지휘관과 알파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무장 폭도들에게 명령을 내렸던 두목이었다.
알파가 재빠르게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려, 비틀거리며 뒤로 도망치려는 무장 폭도의 앞을 가로막았다.
역시 여기 있었군.
물건은 네가 가지고 있겠지?
절대로 못 줘!
허.
알파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태도를 꺼냈다. 알파의 칼날은 매서운 바람을 베며, 허둥대는 무장 폭도를 쫓아갔다.
알파의 칼보다 마취 총알이 먼저 무장 폭도에 적중했고, 무장 폭도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러자 알파는 허공에서 태도를 몇 번 휘두르고는 칼집에 넣었다.
넌 그게 문제야.
흥.
알파는 코웃음을 치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칼도 계속 휘두르지도 않았다.
알파가 무장 폭도의 주머니에서 저장 장치를 뒤지려던 그때, 무장 폭도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그로 인해 작은 저장 장치가 손가락 사이를 통해 절벽으로 떨어졌다.
너희들에게는 줄 수 없어!
폭도의 마지막 외침과 함께, 알파는 망설이지 않고 저장 장치를 따라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산 중턱이긴 했지만, 절벽 밑엔 바위들이 솟아있었으며, 바닥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휘관이 내려다본 그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낡은 도로에서 나타난 크로와는 절벽 옆에 서 있는 지휘관을 보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그 강력한 퍼니싱 반응 말인가요?!
크로와에게 현재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승격자가 저희와 목적이 같다는 건가요?! 이렇게 깊은 절벽은 추적할 수 없을 거예요.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엔 승격자가 우위를 차지했네요.
단말기로 승격자의 활동 신호를 보고했다. 단말기의 지도엔 빨간색 점 하나가 깜박였다.
지휘관은 알파와 오토바이에 타고 있을 때, 알파에게 위치추적기를 설치했고, 지금은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거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항하다 상처를 입은 무장 폭도 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붙잡았어요.
지휘관님, 저희는 이제...
다시 절벽 아래를 내려다봐도, 심장은 계속 요동쳤다. 그 하얀 그림자는 아직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만 같았다.
목표를 쫓는 단말기의 빛은 지휘관을 초대하는 듯 계속 깜박였다.
밤이 다가왔다.
알파가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산기슭에 있는 보육 구역이 눈에 딱 들어왔다.
밤이 되자 보육 구역의 등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이 보육 구역은 큰 시련을 겪지 않아, 물자가 풍부하진 않아도 난민들을 받아줄 수 있었다.
[player name]도 그 보육 구역에 있었다.
알파의 눈동자에 반사된 등불들은 마치 작은 불꽃 같았다. 알파는 태도의 칼자루를 움켜쥐고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더 이상 다른 누군가가 주는 "희망"을 바라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불빛이 없어, 앞이 보이지 않아도 계속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이 길에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방향만은 절대 포기할 리가 없었다.
알파는 절벽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에 붕대를 간단히 감은 후, 몸을 돌려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