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거세게 내려, 소리 없이 온 땅에 하얀 담요를 덮어주었다.
눈이 더 많이 오네요.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지휘관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조금 추위에 떨고 있었다.
쌓인 눈이 점점 두꺼워지자, 외골격의 도움을 받아도 깊게 쌓인 눈에서 다리를 빼내는 건 다소 힘이 들었다.
연구 자료를 회수하기 위해, 보육 구역의 호송 행렬을 떠난 지도 한참이 지났다. 뒤따라오던 소대의 상황도 불분명했다.
보육 구역부터 따라온 페르시안 고양이가 가방 위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꼬리를 흔들던 고양이가 가방에서 뛰어내렸다.
힘껏 발을 빼서, 고양이를 쫓아 언덕을 올랐다.
앞에 얼어붙은 호수가 있어요!
휘몰아치는 눈이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스쳐지났고, 멀리서 보기만 해도 한기가 덮쳐오는 것 같았다.
지휘관님, 계획한 노선을 따라 이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면, 무장 폭도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크로와가 재빠르게 바닥을 치웠다.
우선 여기서 좀 쉬세요. 제가 저 얼어붙은 호수 근처로 가서 조사해 볼게요.
지휘관의 곁에 있어야 할 멘티스 소대의 두 대원 중 한 명은 또 다른 보육 구역으로 파견됐다. 이로써 지금은 크로와만 남게 됐다.
뻣뻣한 몸의 긴장을 풀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자, 얼어버릴 것 같은 머리가 천천히 돌아갔고, 비로소 마인드 표식에 비정상적으로 과부하가 걸린 걸 알아차렸다.
흥.
알파가 작은 콧소리로 그녀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방금까지 연결되고 있던 걸까? 지휘관은 임무에 관한 내용이나 위치에 대한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진 않았다.
지휘관이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알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무모한 계획이 잘 안되나 봐?
지금 도움을 구해도 늦지 않았어.
체력이 떨어지면서 사고가 점점 느려지는 것 같았고, 지휘관은 알파의 목적이 무엇인지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네 약품과 식량은 모두 나눠줬잖아?
보급이 부족한데, 다음 보육 구역까진 어떻게 버티려고?
허.
대책 방안?
뭘 먹지 못한지 얼마나 됐어?
눈밭에서 뻣뻣해진 사지를 움직였고,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못 먹은 지 하루 정도 된 것 같았다. 어제 압축 비스킷 마지막 한 봉지를 그 아픈 노인에게 나눠준 뒤부터, 지휘관에겐 응급 지혈 붕대만 조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계획대로 그 무장 폭도만 쫓아간다면, 다른 보육 구역과 그리 멀지 않을 거였다. 지휘관은 자신의 계획만을 따르면 됐다.
지휘관님! 뭔가를 발견했어요!
크로와의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건 얌전한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빨간 열매를 입에 문 채, 고개를 높이 들어 지휘관의 가슴에 뛰어올랐다.
이런 황량한 곳에 어떻게 열매가 있는 거지?
풉.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지휘관 쪽에서 열매를 발견했다는 소리를 듣고, 알파는 남몰래 기뻐하는 것 같았다.
착각이야.
알파는 그렇게 말했지만, 채널에서 들려온 엔진 소린 분명히 전보다 더 우렁찼다.
지휘관님, 밑으로 내려가서 쉬시죠. 호숫가에서 꺼지지 않은 모닥불을 발견했어요. 모닥불 옆엔 깨끗한 열매도 많이 있어요.
근처에 있었던 사냥꾼이 남긴 거겠죠? 공중 정원에 있을 때,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어떤 사냥꾼들은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해, 길가에 음식과 보급을 남겨둔다고 하더라고요.
고양이를 따라 언덕을 넘자, 호숫가 근처엔 모닥불이 힘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모닥불 옆엔 붉고 신선한 열매들이 눈더미 옆에 놓여 있었고, 그 열매는 정말 맛있어 보였다.
풉. 이 시대에 사냥꾼? 뭘 사냥할 건데, 침식체? 아니면 이합 생물?
채널 반대편에서 알파가 코웃음을 쳤다.
지휘관은 알파와 말싸움하지 않고, 눈으로 열매를 씻었다.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안에 터졌고, 빈속이 채워지며 이성과 힘이 조금씩 돌아왔다.
어쨌든 그 "착한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했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알파는 숲속에 숨어, 눈앞의 흔적을 관찰했다.
알파가 추적했던 경로에 따르면, 무장 폭도들은 멀리 있지 않을 거였다.
다만...
알파는 분명 자신과 무장 폭도들의 흔적을 모두 지웠음에도, [player name]은(는) 빠르게 쫓아왔다.
의도치 않은 첫 번째 연결의 시간을 계산해 보면, [player name]은(는) 알파보다 적어도 1, 2일 늦게 출발했으며, 지휘관은 심지어 발목을 잡는 보육 구역 주민들까지 데리고 있었다.
알파는 [player name]와(과)의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눈에 띄는 빨간색 크랜베리를 모아, 자신이 지나온 길에 놓았다.
채널에서 들려오는 열매 관련 정보를 이용해 지휘관과의 거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player name]이(가) 이렇게 빨리 그 열매들을 "우연히" 발견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알파는 자신과 [player name]와(과)의 거리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쫓기고 있다는 위기감이 의식의 바다에서 터져 나와 온몸에 퍼졌다. 알파는 자기도 모르게 거친 무늬가 있는 칼자루를 꽉 쥐었다.
자신이 눈여겨보던 상대는 역시 수준이 달랐다.
하지만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고, 결과가 어떻게 될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알파는 빠르게 다른 삼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숲속에서 위장된 무장 폭도를 찾아봤다.
그들을 바로 죽일 수는 있었지만, 자료가 누구 손에 있는지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혹여 그들이 흩어져 도망치거나 자료를 숨기게 된다면...
알파는 자신이 원하는 걸 반드시 얻어야만 했다.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 보육 구역에선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희가 갖고 있는 저장 장치만 그들에게 주면, 그 보수로 한동안 먹고살 수 있을 거예요.
아니, 그래도 뭔가 이상해.
원래 노선을 포기하고, 두 팀으로 나눈다. 두 번째 팀은 다른 길로 가.
으음,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그 길은 엄청 험난해요.
쯧.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폭도들이 흩어지고, [player name]까지 쫓아오면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없을 게 뻔했다.
태도를 뽑아들자, 설경이 칼날에 반사돼 서늘한 빛이 났다.
그렇다면... 무장 폭도들이 여기서 순순히 물건을 내놓게 만들어야 했다.
"펑!"
까마귀 몇 마리가 산 중턱에서 날아와, 나무에 쌓인 눈을 털었다.
총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고, 채널에선 그보다 더 또렷했다.
그 무장 폭도들일까요?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두 소대를 동원할 수 있어요. 저희 쪽으로 오고 있죠. 그들의 이동 속도대로라면, 약 1시간 후에 합류할 수 있을 거예요.
단말기에 표시한 2개 지점에 지원 소대를 집합시켜, 무장 폭도와 만나 제압하는 일만 남았다.
지휘관은 그들의 응답을 듣고, 외골격의 출력을 높여, 까마귀가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갔다.
분명 알파가 틀림없었다.
방금 그 총소리가 여정에서 생긴 모든 의혹에 답해줬다. 알파가 쫓고 있는 "쥐"는 무장 폭도들이었으며, 그녀도 겨울 계획의 기밀 자료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알파가 그곳에 있다고 확신했다.
외골격의 출력을 다시 높여, 총소리가 울린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곳이야말로... 최후의 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