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은 먹물을 칠한 것처럼 어두웠으며, 설경은 구름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알파는 꺼져가는 모닥불 옆에 앉아, 반짝이는 불티를 바라봤다.
……
알파는 남은 붕대를 내려놓고, 모닥불을 헤집었다. 그러자 불꽃이 힘없이 튀어, 눈밭에 있는 나무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어디서 온 건지 모를 하얀 고양이가 모닥불 옆에서 나른하게 뒹굴었다.
고양이와 함께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데려온 고양이였구나.
고양이? 알파의 말을 듣고서야 신출귀몰한 그 흰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고양이가 지휘관과 떨어져 있을 때, 계속 알파의 곁을 지켰던 걸까? 그래서 그런지 연결된 채널에서 가끔 고양이의 우는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고양이는 기지개를 켠 후, 두 명의 "집사"가 있다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알파의 다리에 편안하게 엎드렸다.
너랑 많이 닮았네.
알파는 몸을 돌리지 않고, 모닥불에 연료를 넣었다. 그러자 모닥불이 크게 타올라 허무한 밤을 비췄다.
지휘관은 약품과 붕대를 내려놓고, 알파의 맞은편에 앉았다. 알파의 눈동자엔 타오르는 모닥불과 지휘관의 모습이 반사됐다.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은빛을 띤 물건이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히 지휘관의 손에 떨어졌다. 그건 부서져 있는 위치추적기였다.
협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 끝내야겠지?
네가 실망할지도 몰라.
이 자료를 확인해 봤는데 아무 쓸모도 없더라고. 기록된 "겨울 계획" 관련 내용은 글을 모르는 유랑민들도 줄줄 외울 수 있을 법한 것들이야.
내가 뭘 주는 것도 벌써 두 번째네.
알파는 저장 장치를 쓸모없는 쓰레기 취급하며 지휘관에게 던져줬다.
뭐가 아닌데. 쓸데없다는 거? 아니면 "단지 이 자료를 위한 게" 아니란 거야?
저장 장치의 케이스엔 마모된 흔적이 있었고, 이미 말라버린 순환액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건 아무리 강력한 알파라도 큰 무리일 거였다.
허...
네가 이 자료에 이렇게 집착하는 건 그녀... 그들이 이 계획과 관련이 있어서 그래?
넌 구조체 대원들을 엄청 신경 쓰잖아. 나를 신경 쓰는 이유도 그런 거야?
……
지휘관의 말을 증명하듯, 보육 구역에서 등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지금쯤이면 가장 먼저 일어난 탐색 소대가 출발 준비를 할 거였다.
인간은 진흙탕에 넘어져도 발버둥 치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심연에 떨어져도, 작은 희망을 주기만 하면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쥔 채, 다시 일어나 위로 올라가려 했다.
이게 바로 그들이 선택한 길이었다.
순진하네.
알파는 뜻밖에도 지휘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알파는 그저 지휘관이 한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모닥불만을 바라봤다.
모닥불이 알파의 눈과 밤하늘의 한쪽을 환하게 비췄다. 날이 밝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알파가 벌떡 일어나 모닥불 옆에 앉아 있던 지휘관을 끌어당겼다.
따라와.
알파는 지휘관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걸었다. 하늘 한쪽이 밝아졌긴 했지만, 모닥불을 벗어나면 다른 곳은 아직 어둠에 싸여 있었다.
전술 손전등을 켜긴 했지만, 발밑의 자갈은 신경 쓰지 못했다.
……!
지휘관이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알파가 재빠르게 다가와 절벽 끝에 매달린 지휘관의 손을 잡았다.
에휴. 언제까지 무턱대고 버티기만 할 거야?
맑은 아침 햇살 속에서 알파는 날카로운 눈빛과 어두운 안색을 띠고 있었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단거리 분사 비행 장치의 가동기를 쥐고 있는 손을 등 뒤로 숨겼고, 알파에게 의지해 절벽 위로 올라갔다.
알파가 손을 놓아도, 지휘관은 빠르게 방호복에 달린 단거리 분사 비행 장치를 사용할 거였으며, 적어도 절벽에선 떨어지지 않을 거였다.
눈을 가늘게 뜬 알파의 눈동자엔 희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손을 놓진 않을까 걱정되지 않아?
일부러 겁주려는 듯, 알파는 지휘관을 잡고 있는 손에 살짝 힘을 뺐다.
넌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모두를 믿는구나.
상대가 적이라도... 말이야.
알파는 손쉽게 지휘관을 절벽에서 끌어올렸다.
지휘관은 바닥에서 일어나, 방호복의 먼지를 털며 알파의 어이없는 질문에 대답했다.
"알파라..."
알파는 지휘관의 말을 되풀이하며 갑자기 지휘관을 바라봤다.
네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아?
소속된 진영도, 가려는 길도 서로 너무 달랐지만...
지휘관은 바닥에서 일어나, 방호복의 먼지를 털며 알파가 던진 질문의 그 단어를 되새겼다.
네가 퍼니싱이 사라진 미래를 바라는 한 우리는 적이야.
하. 그래.
그렇게 발버둥 쳐봐. 이후에 있을 대결은 지금처럼 공평하진 않을 거야.
알파는 말없이 돌아서서 산꼭대기로 계속 올라갔다.
이 산은 근처에 가장 높은 산이 아니었지만, 충분히 지평선을 볼 수 있었다.
어두운 하늘이 짙은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구름 뒤에서 다채로운 빛이 끝없는 하늘을 밝혔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겹겹이 타올랐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붉은빛이 밝게 빛났고, 맞은편의 설산마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날이 밝았다.
이제 막 떠오른 햇살을 받으며, 옆에 있던 인간이 먼저 침묵을 깼다.
너나 신경 써. 보급도 없으면서 설원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건 내가 아니야.
버틸만하다고? 그럼 기념품 좀 줄까? 들키면 널 가둬버릴 수도 있는 거 말이야.
잡담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해가 높이 떴다. 산꼭대기에 서 있던 두 명과 고양이 한 마리는 황홀하고 따스한 빛을 받고 있었다.
허리에 있던 통신 기기가 여러 번 울렸고, 퍼니싱에 관해 도움이 될 정보가 있을 만한 지점이 전송됐다.
시간이 다 됐다.
알파는 주머니에서 남은 붕대를 꺼내, 옆에 있던 인간에게 던져주고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옆에 있던 인간은 붕대를 받았고, 알파를 붙잡으려 하진 않았다.
고양이가 오토바이의 좌석으로 뛰어오르자, 알파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고 땅에 내려놓았지만,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가볍게 뛰어올랐다.
저리 가.
못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건지 고양이는 빙빙 돌더니 오토바이 좌석에 뛰어오른 후, 쭈그리고 앉아 털을 핥기 시작했다.
됐다.
알파는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좌석 안쪽으로 밀어 넣은 뒤,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알파는 [player name]와(과)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또 만나자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파도 [player name]도 멈추지 않을 거였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의 길을 가, 다시 만날 수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지휘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담담한 표정으로 알파를 바라봤으며, 그는 이런 갑작스러운 만남과 이별을 이미 예상한 것 같았다.
알파는 시동을 걸고, 햇빛을 받으며 자신이 선택한 세상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은 결국 서로 다른 전장으로 달려갈 거였다.
하지만 어느 날, 오늘처럼 갑자기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