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언덕을 넘자, 얼어붙은 호수가 알파 앞에 펼쳐졌다.
무장 폭도들은 일부러 이 얼어붙은 호수를 가로질러, 내리는 눈으로 흔적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파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추적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파는 무장 폭도가 남긴 흔적을 확인한 뒤, 힘껏 액셀을 당겼다. 엔진에서 굉음이 울리자, 붉은 오토바이는 공중에서 화려한 궤적을 그렸고, 곧이어 호숫가에 안정적이게 멈춰 섰다.
이 얼어붙은 호수만 건너면 도망가느라 바쁜 쥐를 잡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의 타이어가 얼어붙은 호수에 하얀 바큇자국을 남겼다. 알파가 전진하려는 그때, 하늘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저긴...
눈을 가늘게 뜨고 방향을 살피던 알파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 보육 구역 쪽이네.
[player name]이(가) 그쪽에서 보육 구역에 있는 주민들을 호송하고 있을 거였다.
호송 과정에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 걸까?
빙야의 환경은 아주 열악했고, 보급도 매우 부족했다. 지금 그녀가 추적하고 있는 폭도와 스캐빈저는 극히 일부이고, 그 외에도 활약하는 자들이 있기에 이곳에서 습격 사건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았다. 다만 공중 정원 집행 부대에 있어 이 정도의 폭동을 처리하는 건 손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로 [player name]의 임무 스케줄을 방해하게 된다면... 괜히 시시할 것 같았다.
문득 의식의 바다에서 그 사람의 애써 피로를 감추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쳐와도, 그는 절대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알파는 다시 채널에 연결했다.
상대방은 갑자기 과부하가 걸린 마인드 표식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 누구와 뭔가를 논쟁하고 있었다.
보육 구역의 주민들은 "지휘관 특별 우대"와 "누군가가 물자를 훔쳤다"라는 이유로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과 논쟁하는 듯했다.
지휘관님은 오는 길에 이미 조금 침식됐어요! 그 혈청들은 지휘관의 개인 물자에요!
당신들의 모든 식량은 전부 지휘관님이...
[player name]이(가) 데려온 구조체가 열심히 반론하는 것 같았다. 트집을 잡는 주민들은 "그 물자는 원래 우리 거야"라고 큰소리로 강조했다.
주위는 고요했고, 이따금 속삭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알파는 그곳의 주민이 무뎌진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 상상됐다.
논쟁하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 혼잡한 목소리가 채널에 울려 퍼졌고, 알파는 짜증 난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쓸모없는 말싸움과 변명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유의미한 발언권을 얻고 싶다면, 충분한 실력이 있어야만 했다.
알파의 차가운 시선은 허공에 머물렀고, 채널의 다른 한쪽에선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보육 구역에만 도착하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왜 저희가 버텨야 하죠? 지휘관이면 마음대로 저희의 식량과 약품을 훔쳐도 된다는 건가요?
푸흡.
보급을 확보하겠다고? 네 그 초라한 배급 물자로?
예상대로네.
그럼 당신은 어쩔 생각이야?
그 말은... 네가 찾는 물건이 다음 보육 구역에 있는 건가?
정말 소심하네.
허... 또 굽신거리는 거야?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네.
무슨 뜻이죠?
지휘관은 옆에 있는 식량을 들어, 맞은편에 있는 주민들에게 건넸다.
당연하죠! 여기 보면 저희 보육 구역의 표식이 있잖아요. 저희는 이걸 당신의 텐트에서 찾았다고요!
지휘관은 휴대하고 있던 적외선 감지 기기를 꺼내, 포장에 광선을 비췄다.
그게...
적외선을 비추자, 아무것도 없던 포장에 일렬의 형광색 문자가 나타났다.
그게 무슨...
곧이어 주위가 소란스러워졌고, 주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자, 쏘아붙이던 다른 주민은 이미 인파 속으로 숨어들었다.
당신...
쳇. 뭘, 뭘 보는 거야! 저리 가!
그 주민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사라졌고, 손을 내저으며 인파 속에 숨었다.
크로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 주민을 막아섰다.
네, 지휘관님.
알겠습니다.
통신 너머의 소동이 잦아들자, 알파는 채널 너머에 들려오는 가벼운 탄식을 들은 듯했다.
알파는 지휘관이 대원들을 시켜, 물자 절도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걸 들었다. 그 후, 지휘관은 자신의 식량 일부를 나눠줬고, 면역 혈청까지 "더 필요한 주민"에게 분배해 줬다.
지휘관은 조금 침식됐던 걸까? 어쩐지 알파가 마인드 표식에 순조롭게 연결할 수 있었다.
알파는 생각에 잠겨있다가 통신 채널 저편에서 말을 걸자, 다시 지휘관의 말에 집중했다.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무기가 없는 주민을 협박할 줄은 몰랐네.
그래? 나는 네가 또 건방지게 연설이나 해서, 모두가 그 말에 감동이나 받고, 다 같이 손을 잡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줄 알았지.
예를 들자면, "그들은 불안해할 뿐이야. 보장만 된다면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이야.
도와줄까?
무슨 뜻인지 너도 잘 알잖아.
내 능력이 더 충분히 발휘되어야 해. 그러면 내가 더 넓은 무대를 마련해 줄 수 있어.
승격자가 돼, 함께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
진흙탕 속에서 뭐 할 건데? 그 광대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알파는 거절당할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액셀을 당겼고, 엔진에선 천둥 같은 엔진음이 울렸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
네가 아무리 그들을 도와도, 탐욕스러운 그들은 네게 더 많은 걸 요구할 뿐이잖아.
고난으로 인성을 시험해선 안 됐다. 이런 말세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던 그들도 결국엔 일반인이었다.
풍족한 생활은 인간이 바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요구일 뿐이었다.
그들도 모두를 구할 수 없었으며,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었다.
푸흡.
채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알파는 자신도 모르게 찌푸렸던 표정을 폈다.
이렇게 밝은 불꽃이 진흙탕에서 불타서는 안 됐다. 오히려 그의 불꽃은 온 세상을 불태울 수 있을 정도로 활활 타올라야 했다.
알파가 더 일찍 [player name]을(를) 만났다면, 지휘관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는 이미 헛된 환상이 됐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알파도 결국 [player name]와(과) 다른 길을 걸어가야 했다.
결국 네 보급을 나눠줬네?
알파는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코웃음을 지으며, 방금 들었던 "최고의 분배 방안"을 떠올렸다.
기억대로라면, 지휘관은 하루도 못 버틸 만큼의 식량만 남겨뒀고, 심지어 혈청은 모두 나눠줬었다.
대비 방안도 없을 정도의 임시 방안이잖아.
다음 보육 구역까지 버티는 게 좋을 거야. 네가 굶어 죽기 전에 네 곁에 나타나겠다고 약속할게.
그건 스스로 확인해 봐.
알파는 냉정하게 말 한마디를 던지고는 다시 오토바이의 액셀을 당겼다.
엔진의 굉음이 울려 알파의 마지막 목소리를 삼켰다. 얼어붙은 호수에 쌓인 눈송이는 먼지처럼 휘날렸다.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보자고.
네가 이렇게 버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이번에 알파는 연결된 통신 채널을 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