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정원의 소대가 보육 구역에 도착하기 전.
차가운 공기가 황폐한 대지에 불어오자,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다. 언덕, 숲, 모든 게 눈부신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불타버려 폐허가 된 눈앞의 보육 구역은 그렇지 못했다.
……
한발 늦었네.
엔진의 굉음으로 지면에 있던 눈이 흩날렸다. 알파는 보육 구역과 멀지 않은 곳에 오토바이를 세운 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눈앞의 엉망이 된 도시를 훑어봤다.
이 보육 구역은 약탈당해 연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공기 중의 퍼니싱 농도로 보아, 여과탑도 파괴된 것 같았다.
그전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곳에 있는 버려진 연구소에 겨울 계획의 2급 기밀 연구 자료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알파는 이 정보를 받고, 바로 밤낮없이 달려왔다.
알파는 무표정하게 눈앞에 불타버린 연구소를 바라봤다. 그곳에 남아있던 쇠 간판은 "쾅" 소리를 내며, 문틀 위에서 떨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여러 명의 힘없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알파는 옆 건물의 뒤에 숨었다.
나이가 많은 주민 한 명이 폐허로 들어가, 힘겹게 쿨럭이고 있었다. 그녀는 넋을 놓은 채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터버린 두 손으로 무너진 벽돌과 기와를 헤집었다.
그 망할 폭도들... 콜록콜록... 폭도들이 약탈할 거라고 그때 말했건만,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았지...
월동 식량을 뺏고, 여과탑을 태워버렸지. 호랑이를 집에 들인 꼴이라고...
연구소에 남는 방이 있어서, 그들을 받아줄 수 있다고? 하지만 너희들은 결국 어떻게 됐지?
아무것도 찾지 못한 노인에겐 피투성이가 된 두 손만 남았다. 절망에 빠진 그는 폐허에 엎드린 채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애야! 내 아이!
내가 말했잖아! 내가 진작에 말했잖아!!
……
알파는 돌아서서 폐허가 된 보육 구역을 떠났다.
울부짖음은 찬바람을 타고 폐허에 울려 퍼졌다. 알파는 고개를 들어 어수선한 바큇자국을 보며, 등 뒤의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알파의 목적은 그 자료들이었다.
보육 구역의 외곽.
알파는 빠르게 지형도를 그린 후, 바로 무장 폭도들의 철수 노선을 확정 지었다.
바큇자국을 보면, 무장 폭도들은 빠르게 철수할 수 있는 소형 운송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바큇자국이 눈보라에 파묻히기 전까진 알파는 무장 폭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나와.
알파는 차갑게 옆에 있는 폐허를 바라봤다.
폐허 뒤엔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머리만 내민 채, 알파를 경계하고 있었다.
당신은... 구조체죠?
저는 당신 같은 구조체를 본 적이 있어요.
따라오지 마.
알파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오토바이에 타서 시동을 걸려 했다.
잠, 잠깐만요!
여자아이가 갑자기 폐허에서 뛰쳐나와, 알파의 오토바이 앞을 가로막았다.
……
잠시만요. 혹시... 먹을 게 있나요?
폭도들이 도시의 모든 음식을 빼앗아 갔어요. 저와 제 동생은 이틀 동안 밥을 먹지 못했어요. 혹시...
제 물건과 교환해도 돼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자아이의 눈엔 눈물이 쏟아졌다. 여자아이는 씩씩하게 소매로 눈가의 눈물을 닦고 알파를 빤히 바라봤다.
부서진 추억의 조각들이 의식의 바다에서 소용돌이쳤다. 알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엔 오래전에 미끼로 쓰려고 넣어뒀던 압축 비스킷 한 봉지가 있었다.
난 나태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 정도로 마음씨 좋은 구조체가 아니야.
넌 뭘 줄 수 있는데?
알파의 말을 들은 여자아이는 다시 기뻐했고, 여자아이의 창백한 뺨은 옅은 홍조를 띠었다. 그녀는 열심히 주머니를 뒤지며 알파에게 다양한 "상품"을 보여줬다.
이거요! 이건 제가 보육 구역 밖에서 찾은 새 손수건이에요. 그리고 깨끗한 붕대들, 그리고...
마지막 물건을 꺼낸 그때, 여자아이는 분명히 망설였다. 여자아이가 꺼낸 물건은 종이에 감싸져 있어 알아볼 수 없었다.
이건 엄마가 제게 주신 머리핀이에요. 제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죠.
붕대나 줘. 이걸로 거래 끝이야.
아...
거래가 성사돼서 알파가 손을 뻗자, 여자아이는 무의식적으로 팔을 움츠렸다. 그러나 알파는 옆에 둔 붕대를 가져갔고, 그 대가로 여자아이와 남동생이 오랫동안 먹을 양의 압축 비스킷 한 봉지를 남겨 뒀다.
이, 이건 너무 많아요! 저...
여자아이가 말을 이어가려는 그때, 오토바이에 올라탄 알파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알파는 감사를 바라지 않았다.
그날 저녁, 무장 폭도의 흔적을 따라, 멀지 않은 산기슭까지 추적한 알파는 이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야간에 행동하면 폭도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거였다. 더구나 알파는 폭도들을 궁지에 몰아넣으려 했다.
불타는 모닥불이 고양이를 끌어들였다. 어디서 온 건지 모를 페르시안 고양이는 알파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곤 모닥불 옆에 누웠다.
모닥불이 타올랐고, 그 옆에 있는 알파는 집중해 자신의 기체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겨울 요새 전투 이후, 알파는 겨울 계획에서 분실된 자료를 찾으려 온갖 노력을 했으며, 지금까지 기체를 검사할 시간도 없었다.
알파는 루시아와 계속 연결되는 걸 원치 않았다.
의식의 바다를 자세히 검사해 보니, 루시아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겼다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지지직...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마인드 연결 채널을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루시아와 연결된 적이 있어, 알파의 신호 주파수대에 일시적인 변화가 생긴 걸까? 아니면 공중 정원의 방화벽이 현재 알파의 신호 주파수대를 루시아로 인식한 걸까?
공중 정원이 [player name]으(로) 알파를 끌어내려고? 공중 정원이 승격자를 통제할 수 있는 뭔가를 개발해, [player name](으)로 시험해 보려고?
저번부터 알파는 퍼니싱으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역원 장치 신호를 시뮬레이션해, [player name]의 마인드 표식을 해제했다. 역으로 교란을 일으킨 이후로, 공중 정원은 알파의 신호 주파수대를 추려냈을 거였다.
그 후로, 알파는 가끔 다시 연결을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매서운 바람이 산기슭의 수풀 사이에 불어오며, 끊임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고, 알파는 능숙하게 그 채널에 연결했다.
지지직...
미세한 전류 소리가 울리자,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서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듯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player name] 지휘관...
연결에 성공하자,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호가 더 선명해지자, 그 익숙한 목소리가 뭔가를 띄엄띄엄 말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player name]?
갑자기 전류 소리가 귀를 찌르더니, 알파의 의식의 바다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상대방이 놀랐다는 건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왜? 내가 나오면 안 되는 거였어?
예상보다 순조롭게 연결됐지만, 상대방은 놀란 듯한 말투를 애써 감추는 것 같지 않았다.
공중 정원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당신 같은 "귀한 비장 카드"를 꺼낸 거지?
넌 기술자들이 내게서 승격자의 최신 정보를 해독하는 거나 기다리던 거 아녔어? 공중 정원에서 평화롭게 찻잔이나 들고 있는 채 말이야.
공중 정원이 멍청하게 지휘관을 승격자와 몰래 만나게 해줬다는 거야?
채널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상대방의 말투를 들은 알파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상대방은 분명히 여전히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게 파악되자, 알파는 그 결과에 만족했다.
허...
바로 그때, 그녀는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이 전류의 교란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 이는 불어오는 바람이 내는 소리였다.
지상에 있는 거야?
대화가 끊기고 알파는 침묵했다. 모닥불 옆의 고양이는 나른하게 몸을 뒤척이며, 부드러운 배를 불더미로 돌렸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반응으로 봤을 때, 그쪽도 왜 신호 주파수대가 노출된 건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흥미진진한 상황이 예상됐다.
난 어리석은 쥐들을 사냥하고 있지.
너희들의 이번 목표는 또 뭐야? 적조? 승격자? 이합 생물?
이 근처에 어떤 작전 임무가 있길래... 공중 정원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지상으로 파견했을까?
아니면...
[player name]은(는) 그녀의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그녀의 위치를 떠보기 시작했다.
……
그래?
알파는 상대방이 뭐라는지 신경 쓰지 않고, 일방적으로 연락 신호를 끊었다.
분명 지난번 강제 연결 때는 속수무책이던 모양이었는데, 이번 연결엔 승격자의 정보를 역으로 캐내려는 생각이었을까?
모처럼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냥 넘어가기는 아쉬웠다. 알파는 지휘관이 이번엔 어디까지 몸부림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알파는 채널을 지우려는 동작을 멈추고는 불더미에 연료를 넣었다.
꺼져가던 불이 다시 거세게 타올랐다.
알파가 홀로 얼어붙은 땅에서 걷고 있었다.
[player name]와(과)의 첫 연결 이후 하루가 지났고, 그녀는 재연결을 시도하지 않았다.
지휘관이 잘 숨겼음에도, 알파는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서 상대의 피로함을 알아차렸다. 지휘관의 컨디션이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지휘관은 도대체 뭘 찾고 있던 걸까? 단순한 물자 수집이라면 엘리트 소대의 지휘관을 파견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주 위험한 임무도 아닌 것 같았다, 그랬다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구조체 중 한 명이라도 함께했을 거였다.
……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고, 알파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채널을 연결했다.
부동액도 간당간당하긴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식량 부족이에요. 1소대의 전진 속도를 보면 저희는...
희미한 전류 소리가 채널에서 들려왔다. 이번에는 엔진 소리가 더 명확하게 들렸고, 그와 함께 점점 익숙해지는 의식 과부하가 몰려왔다.
지휘관은 크로와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지휘관의 표정을 본 크로와는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멈췄다.
응.
너는 알 필요 없어.
뭘 걱정하는 거야? 내가 부동액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대한 기밀을 엿들을까 봐?
설원에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이 뺨을 할퀴었다. 채널 너머에선 엔진 소리와 함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원하는 물건을 찾았어?
허, 이렇게 떠보기만 할 거야?
그럼, 누가 먼저 원하는 걸 손에 넣을지 두고 보자고.
마음대로 생각해.
말이 끝나자, 채널에선 다시 침묵이 흘렀다. 지휘관도 더 이상 대화에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쥐고 있는 물자 리스트에 관심을 돌렸다.
그때 지휘관의 뒤에서 여자아이의 소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당신이 바로 공중 정원에서 오신 지휘관님인가요?
혹시, 당신이 바로 공중 정원에서 오신 지휘관님인가요?
지휘관님이 자신의 배급 통조림을 나눠줬다고 동생에게 들었어요. 이, 이건 제가 전에 다른 언니랑 붕대와 교환해 얻은 압축 비스킷인데...
잠시만요. 혹시 먹을 게 있나요?
얼마 전에 들어본 적이 있던 목소리였다.
……
부동액, 보온, 눈보라... 그리고 [player name]에게 압축 비스킷을 준 여자아이.
알파가 브레이크를 세게 잡아당기자, 바퀴가 지면에 끌려 시끄러운 마찰음을 냈다. 핸들을 다시 잡은 알파의 추측은 확신으로 변했다.
[player name]은(는) 알파와 같은 구역, 심지어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지휘관 일행이 찾고 있는 "물건"이 자신의 목표인... 겨울 계획의 자료일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녀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 황량한 구역에서 회수 가치가 있는 물건은 그 자료밖에 없었다.
만약 그녀의 예측이 사실이라면, 아주 통쾌한 사냥이 될 게 분명했다. 비록 사냥감은 도망만 다니는 졸개일 뿐이었지만, 알파를 재밌게 해줄 경쟁자가 있었다.
알파는 [player name]에게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으려 했다. 뜻밖의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녀는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다시 채널에 연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player name]이(가) 이렇게 뒤처져 있고, 정보도 부족한 상태에서 정말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다면...
그녀는 서슴없이 [player name]와(과) 추격전을 벌여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