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응접실 창문을 통해 바닥에 흩어졌다. 밤새도록 각종 군사 신청과 관찰 기록 보고서를 작성한 지휘관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어젯밤 리가 몸이 좋지 않다며 나오질 않았다. 의식의 바다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휴게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마주하게 된 것은...
"아!"
지휘관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던 접이식 의자는 어떤 원인에서 인지 마지막 순간에 궤적을 이탈해 지휘관의 팔을 살짝 스쳤다. 그럼에도 의자 다리가 지휘관의 팔에 찰과상을 남겼다.
날아오던 의자에 이어서 지휘관 앞으로 다가온 리가 지휘관의 목에 무기를 겨눴다.
출구가 어디죠?
총에 총알이 없다는 걸 알지만, 목 위에 무기를 댄 느낌은 여전히 불편했다. 몸부림치면서 목을 한 번 돌리자, 지휘관 목을 누르고 있던 총이 예상외로 조금 느슨해졌다.
소리를 들은 루시아와 리브가 달려왔다. 루시아는 칼자루를 움켜쥔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쌀쌀맞은 리를 바라봤다.
당장 이곳의 자세한 위치와 가장 가까운 탈출구를 말해줘요.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안 돼요... 공중 정원은 수송 비행선을 타야 갈 수 있는 곳인데, 전 탑승한 기억이 없어요.
그리고 공중 정원은 아직 사용하지도 않은 상태예요. 누가 당신들을 보냈죠? 어서 말씀하시죠.
리, 일단 진정해요.
맵을 저한테 넘기세요. 그럼, 이곳에서 탈출한 다음, 이 인질을 놔줄게요...
침묵하고 있던 루시아가 빈틈을 포착해 번개처럼 달려들었고, 무기를 들고 있던 리의 팔을 붙잡아 그를 바닥에 짓눌렀다.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혼란스러운 아침이었다. 루시아는 옆에 있는 의자에 리를 눌러 앉혔고, 리브는 어제 받은 여분의 약품을 들고 접이식 의자에 맞은 지휘관의 팔을 조심스럽게 치료했다.
출혈이 있어요. 그래도 의자가 녹슬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파상풍 주사까지 맞아야 했을 거예요.
……
루시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느낀 리는 눈을 감은 채 마음대로 처리하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그쪽은 왜 감시기로 저를 감시하는 거죠? 임무에 실패했으니 더는 할 말이 없어요.
……
리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황금시대 영화 속 적에게 붙잡혔지만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 병사와 같았다.
리에게 새로운 의식 조각이 들어온 건가요?
리의 의식에 혼란 증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지휘관도 가끔 악몽을 꿀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악몽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그저 바닥에 떨어진 부품 조각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감시기라고 오인된 저공 무인기는 아직도 붉은빛을 반짝거리며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리"는 저공 무인기 위에 있던 파일 봉투를 아예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어젯밤.
보육 구역 정화 임무를 중단한 이유에 대한 보고서를 마치고 나니 늦은 밤이 됐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 한잔 마시려고 나가던 도중에 문 옆에 서 있는 그림자 때문에 깜짝 놀랐다.
지휘관님.
앳된 어조가 없는 목소리를 들으니,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리인 것 같았다.
네. 일시적으로 회복한 거예요. 의식 조각의 정리를 아직 마치지 못해서, 다른 의식 조각이 이 기체를 수시로 지배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쩐지 지휘관님의 말투 속에서 아쉬운 기운이 느껴지네요?
흥.
의식에 혼란 증상이 있을 뿐 특별한 건 없거든요.
제 의식 조각이 모두 정리될 때까지 응급 간호실을 신청한 뒤, 그곳에서 머무를 계획이에요.
이미 크롬과 연락해 뒀어요. 중간에 긴급 임무가 있다면 반즈나 카무이를 파견해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지원할 거예요.
지휘관님, 이건 제가 추단한 최선의 방안이에요.
제 파일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지휘관님이나 그레이 레이븐에 대한 인식이 완전하지 못한 의식 조각이 나타나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지휘관님이나 다른 사람이 저 때문에 다치면...
늦은 밤의 휴게실. 중앙 제어 시스템이 방안의 조명을 따뜻한 노란색으로 조정했고, 깊고 옅은 빛들이 구조체의 푸른 눈동자에 굴절되어 있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가득했다.
요즘은 정비 기간이라 전원 출동이 필요한 큰 임무도 없었다. 게다가 리의 상태를 봤을 때, 혼자 두는 건 상책이 아닌 것 같고 또... 응급 간호실은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었다.
새 기체가 알려진 후, 의도가 불순한 녀석들은 줄곧 관심을 보였다. 만약 리를 혼자 응급 간호실에 안치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렇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은 리를 지휘관 옆에 남겨두는 것이었다. 리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남아 있는 한 아무도 리를 강제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제가 알아서... 챙길게요.
지휘관이 의심하는 눈빛에 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뭔가를 눈치챈 듯 고개를 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건넸다. 익숙한 향기였다.
플랜 B는 "그"가 무기고나 정비실의 예비용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없도록, 제 휴게실을 제외한 모든 구역의 출입 권한을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겁니다.
그 외에, 상황 설명 기록과 이력 파일을 자필과 동영상 녹화 형식으로 남길게요. 만일, 제가 걱정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 기록을 "그"에게 보여주세요.
"그"가 이곳의 모든 걸 의심할 수는 있지만, 자필과 영상은 믿을 거예요.
만약 그 기록들을 보고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적어도 "그"가 지휘관님을 해치기 전에 루시아와 리브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거예요.
리는 또다시 입을 달싹거렸다. 이런 방안에 대해 몹시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
지휘관님과 대원들이 못 미더워서 그런 게 아니에요, 다만...
과거의 저를 믿을 수 없어서 그래요.
필요한 경우 비앙카를 외부 지원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정화 부대에 설명해 둘게요.
많이 늦었네요. 지휘관님, 남은 일을 마무리하시면 바로 휴식을 취하시길 바라요.
최대한 모든 걸 처리해 놓을게요.
리는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고, 휴게실의 문을 닫았다.
주운 파일 봉투 안에는 리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모든 파일이 들어 있었다. 졸업장, 쿠로노 구조체 개조 동의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 파견 파일 등 모든 파일에는 자필 서명과 해당 기관의 스탬프가 있었다.
파일 봉투에는 소형 데이터 기억 장치도 들어 있었다. 단말기에 넣으니 리의 입체 영상이 튀어나왔다.
낯설지만 익숙한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나자, 루시아와 암암리 힘을 겨루던 리가 안 보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투영을 바라봤다.
난 네가 어떤 단계의 의식인지 확실치 않아. 하지만 어떤 단계이든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줬으면 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player name](은)는 네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분이야.
……
파일 봉투에 담긴 모든 파일이 네가 본 현실을 증명할 수 있어.
모든 행동은 지휘관님의 명령에 따르는 거고, 네 유일한 목표는 지휘관님을 보호하는 거야.
임무에서든 일상에서든 지휘관님을 다치게 해서는 안 돼.
……
요즘은 투항을 권고할 때, 이런 첨단 기술을 사용하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의자에 앉아 있던 리는 어느새 저항을 포기했다.
지휘관 쪽을 흘깃 보던 리가 재빨리 시선을 거뒀다.
리에게 졸업장, 쿠로노의 입영 증명서, 구조체 개조 동의서 등의 파일을 펼쳐서 보여줬다.
이 파일들은 리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경력을 기록하고 있었다.
……
훌륭한 킬러는 각종 흔적을 능숙하게 분간할 수 있다. 어떤 필적은 좀 날카로웠지만 위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몇몇 서명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지금의 "리"가 작성한 것이었다.
리가 고개를 돌리자, 루시아는 속박을 조금 느슨하게 했고, 리는 더 이상 사람을 해치려거나 반항하지 않았다.
알려 줄 수는 있지만... 당신에게만 알려 줄 거예요.
지휘관님?
걱정스럽게 리를 바라보던 루시아가 고개를 돌려 지휘관을 바라봤다.
네.
리브와 루시아에게 잠시 자리를 비워달라고 손짓한 뒤, 응접실 문을 가볍게 닫았다.
절 그렇게 믿으세요?
응접실에 리와 지휘관만 남게 되자, 리는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실수일 뿐이에요.
리는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 암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어요. 방금 목표 지점에 잠복해서 들어갔는데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어요.
전 목표 인물에게 발각돼서 임무에 실패했고, 이상한 곳으로 잡혀 온 줄 알았어요.
이게 제가 이곳으로 오기 전의 마지막 기억이에요.
암살 임무라... 쿠로노에서 킬러로 활동할 때의 리인가?
리의 파일에는 감시자가 임무 수행 상태를 감시하는 듯한 사진 한 장이 끼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부서진 건물의 그늘에 숨은 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멀지 않은 임무 목표를 조준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금의 리와 비슷한 패기를 엿볼 수 있었지만, 옆모습은 풋풋했다.
파일에 서명한 시간을 보면 구조체로 개조될 때, 리는 18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사진 속 리의 나이는 더 어렸을 것이다.
리는 책상에 놓인 파일을 들어 한 장씩 넘겼다. 마치 이 파일 속에서 후속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것만 같았다.
이게 구조체 개조 동의서인가요?
제가 왜 적응성 검사를 했죠? 혹시...
동의서 뒷면의 내용을 보자 뭔가가 떠오른 듯, 리의 푸른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감정 같은 게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감회였을까?
머레이는요? 잘 지내고 있나요?
머레이는 대전이 일단락되자,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어졌다.
하지만 머레이가 최근 지휘관의 단말기에 남긴 메시지나 밖에서 떠도는 케르베로스의 지휘관에 대한 각종 루머로 볼 때, 머레이의 신체 상태나 정신 상태는 모두 좋은 것 같았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지금까지 접수한 정보들을 단번에 소화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리는 지친 듯 이마를 주물렀다.
제가 저쪽 방에서 깨어난 것 같은데, 저 방이 제 휴게실인가요?
돌아가서 좀 쉬고 싶어요.
리는 허락을 받은 후 파일들을 가지고 휴게실로 돌아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을 때 손가락으로 살짝 막으면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는 걸 보면 습관은 지금의 리와 똑같았다.
투영은 첫 번째 재생을 끝내고 두 번째 재생을 시작했다. 한 번 흐려졌다가 다시 나타난 리의 입체 영상은 침착하고도 진지함이 담긴 어투로 말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player name](은)는 네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