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게 네 귀의 찰과상을 입은 이유고, 임무를 중단하고 공중 정원으로 돌아온 이유야?
데이터 분석 보고는 이미 받았어. 보고에 따르면 이번 문제는 새 기체의 이상 데이터가 오버플로 됐기 때문이야.
샘플 데이터는 있지만, 지금은 그 이상 데이터의 출처와 용도에 관해선 확인할 수 없어.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이런 이상 데이터들의 작용으로 리의 의식의 바다에 특별한 의식 혼란 현상이 나타난다는 거야.
이런 특별한 의식 혼란 현상의 외적 표현은...
커피잔을 든 아시모프가 턱을 치켜들고 침착한 척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좌우를 살피는 리를 가리켰다.
리의 어린 시절 의식 조각이 일시적으로 기체를 차지했어. 구체적인 의식의 나이대는 많아 봤자... 9살 정도? 그 이상은 아닐 거야.
이런 특별한 의식 혼란 현상에 흥미를 느꼈는지 아시모프는 다시 한번 옆에 있는 리를 훑어봤다.
9살 반이에요.
입술을 꼭 다물고 있던 리는 아시모프가 자기 나이를 어리게 추측한 걸 듣고 불만이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하지만 그건 본질적으로 불가능해요. 전 분명 이곳에 서 있는데 어떻게 하나의 의식 조각이...
눈살을 찌푸린 리가 9살 반이 아닌 게 분명한 몸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이건 사실이야. 9살 반 선생님.
이건 빙의도 아니고 납치도 아니야. 네가 살던 시대엔 이런 기기가 없잖아?
아시모프는 리에게 방금 분석 보고서를 토해낸 정밀 기기를 보여줬다. 리는 기기에 관심이 생겼는지 조심스럽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더 나은 해결책은 없어.
같은 특화 기체지만 리의 상황은 리브에게 나타났던 증상과 전혀 달라.
힘을 얻으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해. 이런 문제는 전에도 어느 정도 예측했었어.
특화 기체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도 대응 방법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어.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아시모프는 한쪽 수납장에서 매우 두꺼운 자료를 꺼낸 후, 지휘관에게 펼쳐 보라고 손짓했다.
특화 기체 적합 설명 제5판, 126페이지, 제3 모듈 아래 8조.
"의식의 바다 혼란으로 발생할 수 있는 18가지 상황 예측".
어쨌든 날 믿어 봐.
말은 그렇다고 해도... 루시아에서 리브, 그리고 리까지.
특화 기체가 가져온 의식의 바다 리스크와 트라우마는 영원히 그레이 레이븐 소대 주위를 맴돌며 떠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시모프도 뭔가 의식한 듯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실내는 일시적인 침묵이 흘렀다.
리의 기체는 정상적으로 실행되고 있으니 외부의 수단으로 간섭하는 건 권장하지 않아. 스스로 의식의 바다에 흐트러진 의식 조각들을 천천히 정리하면 원래대로 회복될 거야.
하지만 어린 시절의 리에게는 "자고 일어나니 이 시점에 와 있었다"라는 느낌이 들겠지.
의식 조각의 혼란 자체에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의식이 일주일간 지속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시간대의 의식 조각이 나타날 수도 있어.
이론적으로 이런 의식들은 점차 융합될 거야. 하지만 그 조각 중, 너와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원에게 낯설거나 공격적인 게 나타나면 위험할 수도 있어.
때마침 너희도 정비 기간인데, 리를 나한테 맡겨서 연구에 협조하게 하는 건 어때?
대답을 들은 아시모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또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주의식이 신체를 주도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겪은 일인 만큼 리가 의식의 바다를 정리하고 나면, 다른 의식이 몸을 차지했을 때 생긴 기억을 동기화로 획득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질문 있어?
음, 검증된 관련 데이터가 없어서 정확한 지속 시간을 알 수 없어.
의식의 바다 조각 정리 속도로 볼 때, 지금부터 모두 정리되기까지는 일주일 정도 걸릴 거 같아.
하지만 일주일 후에 이런 상태가 꼭 사라질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 그러니 일주일 후에 다시 데려와서 의식의 바다 검사를 받도록 해.
(정비 기간이 지속될 예정이라 일주일 정도는 큰 문제 없겠어.)
생각을 마치고 곁눈질로 옆에 있는 리를 살짝 훑어봤다. 리는 기기를 주시하며 두 바퀴 돌더니 아시모프를 향해 물었다.
저기... 다크서클이 심한 선생님, 제가 이 기계를 만져봐도 될까요?
리는 다소 뻣뻣하게 뒷짐을 지고 분석 기기 옆에 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 때부터 로봇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았다.
안 돼.
뒤로 두 걸음 물러선 아시모프가 커피잔을 책상에 놨다.
단칼에 거절당할 줄 몰랐던 리는 잠깐 멈칫하다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전 데이터 분석 기기를 분해해 본 적이 있어서, 기기의 내부 작동 원리를 잘 알고 있어요. 고장 내지 않을 거예요.
이쪽 인터페이스의 물리 모델과 제가 직접 만든 것의 차이점이 궁금할 뿐이에요.
안 돼.
다른 손으로 커피를 든 아시모프가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의 자료와 기기를 멀리 밀었다.
연달아 두 번이나 거절당한 충격에 리는 고개를 돌려 벽을 마주 보며 침묵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했다.
감정의 파동으로도 원래의 리를 불러올 수 없는걸 보니 의식 조각이 깊숙이 스며든 것 같아. 지금의 리는 일시적으로 이 시점 이후의 기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진짜 할 수 있는데...
리는 결국 포기하지 못하고 아시모프를 바라봤다.
리의 현재 상태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한 뒤, 상부에 제출해서 리의 최근 상황을 알릴 거야. 그럼, 후속 작업의 배치에도 용이할 거야.
그럼 다른 볼일은 없는 거지? 별일 없으면 가봐. 난 그 데이터 출처를 계속 조사해야 해.
뭔가를 회피하려는 듯 빠르게 두 걸음 걸은 아시모프가 내부 실험실 문을 세게 닫았다.
겨우겨우 리를 데리고 눈에 띄지 않게 휴게실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오래 기다린 듯한 리브와 루시아가 문 옆에 서 있었다.
지휘관님, 리는 어떤가요?
리브와 루시아에게 리의 현재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 리브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옆에 있는 리를 바라봤다.
그럼, 현재 리의 의식 나이는 9살밖에 되지 않는 건가요?
9살 반이에요.
아, 별다른 뜻은 없었어요. 그냥...
지금의 리를 보면서... 참 어린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겁먹은 건가요?
무의식적으로 지휘관 옆에 다가가는 리의 행동을 의식한 루시아는 리브를 잡은 뒤, 두 걸음 물러섰다.
아직 9살 반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가 갑자기 낯선 몸과 환경에 처하게 돼서 무서웠을 거예요.
깨어나서 제일 처음 본 사람이 지휘관님이라서 그런가, 지휘관님을 더 신뢰하는 것 같아요.
그럼, 리를 돌보는 일은 지휘관님께 부탁드릴게요.
방금 세리카가 와서 이번 외근 임무에 관해서 물어본 게 있는데, 그건 저와 루시아에게 맡겨주세요. 지휘관님.
문이 부드럽게 닫힌 휴게실 내에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죄송해요.
문 옆에 서 있는 리가 문 아래 틈새를 보며, 어색한 듯 손가락을 움츠리고,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방에서 세계 정부가 보낸 구조체 파일 기록을 봤어요. 어쩌면... 당신의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왜 구조체가 됐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당신은 저 때문에 다쳤잖아요. 그래서...
죄송해요.
리는 정중히 사과했고, 방이 워낙 조용했던 터라 사과의 메아리만 남았다.
이렇게 쉽게 용서받는 게 놀랍다는 듯, 리는 고개를 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작은 주방에 들어가니, 이전에 커피를 타려고 구매했던 우유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 기억났다.
"띵"하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향이 작은 주방을 가득 채웠다.
구조체는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알지만, 지휘관 뒤를 따라다니며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어린 리를 보고 나니, 이렇게 해주고 싶었다.
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저런 분석 기기도 조립할 수 있고, 가전제품을 수리할 수도 있고 또...
어린 리는 성인의 리 얼굴에선 볼 수 없었던, 고집이 세고 지기 싫어하는 표정으로 지휘관을 고갤 들어 바라봤다.
생각해 보면, 리의 어릴 적 사진을 본 적도, 리가 어린 시절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도 없었던 거 같았다.
단말기에 리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으며, 온도가 적당해진 우유를 꺼냈다.
어린이는 그렇게 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푹 쉬고 나면 의식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전 이런 영양소가 함유된 복합 콜로이드 용액이 없어도 큰 키로 자랄 수 있어요.
그래도 고마워요.
책상 옆에 앉아 두 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리가 얌전한 대형동물처럼 보였다.
네.
날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가 식사 시간을 알렸다.
처리를 마친 파일을 힘겹게 정리했다. 파일을 처리하다 보니 한 세기는 지나간 느낌이었다.
뻣뻣한 목을 움직이며 사무 구역에서 나오자,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잠든 리를 보고 습격당한 줄 알았다.
다행히 제때 반응해 경보 벨을 누르진 않았다.
아직은 "어린 시절"의 리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한 번도 리가 휴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전투든 휴식이든 차분하고 듬직한 리는 모든 발생 가능한 의외 상황을 경계했다. 그래서 이처럼 무방비 상태로 숙면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구조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소파 타월을 끌어내려 리의 몸을 덮어줬다. 옆에 있는 책상을 흘깃 보니, 우유는 이미 다 마신 상태로 컵 안에 거품이 조금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의 리도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빛이 부드럽게 비추며 조용한 공간을 살포시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