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날씨는 모처럼 맑았고, 산들바람과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금빛 자갈처럼 땅에 얼룩덜룩한 무늬를 남겼다.
전쟁을 잠시 멈추게 되면서, 휴식 단계에 들어선 대부분의 엘리트 소대는 간단한 보육 구역 정화 임무에만 협력하면 됐다. 일 년 내내 고강도 전투를 수행했던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게는 휴가나 다름없었다.
수풀이 바스락거렸고,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지휘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루시아와 리브가 빠르게 뒤편에서 나왔다.
보육 구역 초소 뒤편의 침식체는 처리했고, 이제 한 쪽만 남았어요.
그럼, 지휘관님. 오늘 저녁 식사는 돌아가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리는요?
이곳은 초기에 건설된 보육 구역으로 공중 정원에서 주기적으로 물자를 투하하여 시설을 업데이트하고 있지만, 보수 인력이 부족해서 일부 하드웨어 시설에 문제가 발생했다.
리는 흔들거리는 안전 감시 시설을 보고 입으론 투덜거렸지만, 보육 구역에 돌아가 정비 부품을 신청했다. 그리고 보육 구역 외곽의 보안을 다시 설치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남은 일을 빨리 끝내죠.
지휘관님, 수시로 연락드릴게요.
루시아와 리브가 다른 방향으로 떠났다.
오후의 햇살이 나뭇잎 사이를 뚫고 따스하게 몸에 비쳤다. 모처럼 한가해지니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파일, 출발하기 전에 버리지 못한 남은 커피 그리고 리의 새 기체...
"퉁!"
무언가가 넘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멀지 않는 곳에서 들려왔다.
제멋대로 자란 풀숲을 헤치고 리가 안전 감시 시설을 정비하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힘없이 시설 담장에 기댄 리가 창백한 얼굴로 눈을 꼭 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기억 속의 리는 지휘관 앞에서 이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런 모습의 리를 보며 마음속으로 살짝 당황했다.
순환 시스템 확인, 단말기 실행 상태 확인, 의식의 바다 연결 상태 확인...
기체는 정상이고, 의식의 바다엔 조금의 파동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왜...
지휘관 옆에 기댄 구조체의 검지가 살짝 구부려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고, 햇빛 아래에서 본 그의 회청색 동공은 한 가닥의 막막한... 자, 잠깐! 막막한 눈빛?
……?
이전의 냉정한 이미지와 달리 깨어난 리의 눈빛에는 지금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다는 듯한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여긴 어디죠? 당신, 당신은 누구예요?
구조체는 자신을 지키려는 듯 옆에 있던 렌치를 무기 삼으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제가 당신을 알아야 하나요?
지휘관? 저... 이건...
신체가 어색한 듯 비틀거리며 일어난 리가 나무줄기를 잡고 좌우를 훑어봤다. 그 모습은 공중 정원 기초 교육 학교에서 막 나온 초등학생 같았다.
분명 리가 맞았지만, 지금의 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괴이한 위화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전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학교 실험실에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황량한 곳에 오게 된 거죠?
그리고 이 몸은...
리는 힘겹게 왼발을 내디디려고 시도했지만, 발에 맞지 않은 큰 신발을 신은 것처럼 비틀거리며 다시 바닥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
윽...
이 몸은...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제가...
리는 휘청거리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서더니 놀란 기색으로 자기 팔을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리의 상태에 이상이 있는 게 분명했기에 빨리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구조체요? 말도 안 돼요. 그 기술을 저 같은 학생에게 적용할 리가 없어요.
루시아와 리브에게 연락하면서, 아직 걷기 연습을 하는 리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억척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떠한 해명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사진 한 장과 신분 증서만으로, 지휘관이라 자칭하는 정체불명의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사진과 증서는 위조할 수 있지만 기억은 위조할 수 없죠. 그리고 제 기억은 당신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어요.
심지어 제 이름도 잘 모르잖아요. 제 이름은 "리"가 아니에요.
리는 경계하는 얼굴로 계속 뒷걸음질 쳤고 조금 접근하면 비틀거리며 더 멀리 도망갈 것 같았다.
이대로 계속 이동한다면 보육 구역 초소의 안전 구역 범위를 벗어날게 뻔했다... 반드시 리를 안전 구역 범위 내에서 통제해야 했다.
침식체요? 무슨 괴물인가요?
동화 속의 늑대 할머니와 마른 귀신 그림자처럼 어린아이를 속이기 위해 지어 낸 이상한 생물이겠죠.
어린아이... 지금 리의 행동은 확실히 어린아이 같았다.
기체에 이상이 생겨 의식이 어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의식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리의 의식의 바다를 확인했지만, 약한 파동만 있을 뿐 큰 기복은 없었다.
리는 여전히 비틀거리며 이곳을 멀리하려고 했다.
지휘관의 엄격한 말투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리는 걸음을 멈추고 나무 옆에 기댔다. 그리고 신중하게 지휘관을 응시했다.
이미 초소 안전 구역의 가장자리에 근접했다. 루시아와 리브가 돌아올 때까지만 버티면 곧바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어른이 어떤 신분 증명을 내놓든 경찰에 바로 신고한 뒤, 경찰관 아저씨가 와서 처리하게 하라고 학교에서 알려줬어요.
안전 감시 시설의 울타리 뒤에 숨은 리가 힘겹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바닥에 있는 무기를 집어 들었다.
뭘 생각하시든 간에 포기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아이를 유괴하는 건 중범죄예요... 무슨 소리죠?
리에게 집중하면서, 루시아와 리의 후방에 어떻게 접근할지를 계획하는 동안, 침식체가 뒤에서 다가오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삐-
조심하세요!!!
시선 속 리가 지휘관 쪽으로 어설프게 총을 든 뒤, 한쪽 눈을 가늘게 뜬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총알이 지휘관의 머리를 향해 곧바로 날아왔다.
이와 동시에 루시아와 리브의 다급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지휘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