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오클레르 마을
뉴 오클레르 마을.
그쪽 상황은 좀 어때?
거의 다 처리됐어. 지금은 전장 정리 중이야.
이 박쥐들, 완전히 미친 거 아니야? 저번에는 한 시간 정도였는데, 이번엔 두 시간이나 이어졌다고.
그러게 말이야. 공중 정원 지원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못 버텼을거야.
혹시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왜 그 박쥐들을 멈추게 한 백광 말이야.
신형 이합 생물 대응 섬광탄 아니었어?
아니야. 내가 들은 바로는, 한 여자아이한테서 뿜어져 나온 빛이래. 그 빛 때문에 박쥐들이 멈췄다고 하더라고.
에이, 설마…
리카가 만들어 낸 기이한 현상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목격했다. 그 때문에 각종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의심과 경계로 가득해졌다.
그 시각, 잠시 짬을 낸 브리이타가 리카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리카, 잠깐 따라와 볼래?
브리이타는 조용히 리카의 손을 잡고, 그녀를 어느 방 안으로 데려갔다.
멍하니 그녀를 따라가는 리카의 머릿속엔 조각난 기억들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곧이어 날카로운 기억의 파편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며, 거센 파도를 타고 현실이라는 해안가로 밀려왔다.
흰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말없이 곁에 다가왔다. 입을 떼려다 말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일… 들었어. 프로젝트팀 모두가 널 걱정하고 있어.
...
부서에 휴가 신청해놨으니 조금 쉬다가 천천히 복귀하는 건 어때?
미안… 너무 일 이야기만 했네…
조금 쉬도록 해, ■■■.
■■■는 말 없이 거실 안쪽 영정 사진 앞으로 걸어가, 한참 동안 흑백 사진을 바라봤다.
잠시 뒤, 초인종이 몇 번 울리더니 지문 인식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그냥… 친구로서, 네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어.
벌써 석 달이나 지났어. 이제는…
■■■?
리카, 내 말 들려?
바네사의 질문에 리카의 흐릿했던 시선이 다시 초점을 되찾았다.
주위를 둘러본 리카는, 자신이 어느새 실내로 옮겨졌다는 걸 깨달았다. 곁엔 브리이타가 함께 있었고, 테이블 너머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과 피곤해 보이는 남성이 앉아 있었다.
나는 공중 정원 백로 소대 지휘관, 바네사야. 이쪽은 블랙 램 소대 지휘관, 시몬.
상태를 보니, 이제 좀 대화가 가능할 것 같네.
그 백광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줄래? 이합 생물들과는 무슨 관련이 있지?
리카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
바네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바라봤고, 이에 리카는 마치 심문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네사는 별다른 말 없이 단말기를 꺼내 투영을 띄웠다. 곧 영상 안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시모프, 계속 보고해 줘.
"리카" 앞에서?
그래.
과학 이사회의 기록을 조사해서 토마스·헬의 자료를 찾아냈어.
토마스·헬은 과학 이사회 2부의 멤버이자, 발렌티나의 제자였어.
자료에 따르면, 토마스의 아내는 유전병으로 사망했고, 그로부터 7년 뒤, 딸 리카 역시 같은 병으로——
14살이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어.
...
그 순간, 리카의 머릿속에 병실의 하얀 커튼이 다시 떠올랐다.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과 함께, 뿌옇게 흐려졌던 기억이 점점 선명해졌다.
병상에 있는 사람은... 나와 엄마 중 누구인 거지?
그건 리카의 엄마이자, 곧 자기 자신이었다.
다른 한쪽에는 혈흔이 묻은 하얀 덮개가 뭔가를 덮고 있었다.
당연히
조금 쉬도록 해, 토마스.
그 후로 토마스는 과학 이사회를 떠났고, 2년 뒤 행방불명됐어.
통신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리카의 귀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리고 더 많은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와, 리카를 모든 것이 시작된 그 순간으로 데려갔다.
빨간 경보등이 실험실 전체를 물들이며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렸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토마스·헬도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기억을 더듬으려 했지만, 머리를 짓누르는 통증이 생각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의식이 흐려진 가운데, 몇 조각의 단편적인 기억만이 떠올랐다.
이내 거울이 깨지듯 공간이 부서졌고, 폭발음과 함께 균열 사이에서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악마는 상처투성이에 이미 형체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고, 남은 윤곽마저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때, 악마의 몸에서 거울 하나가 떨어져 나왔고, 중앙엔 가느다란 금이 생겼다.
악마는 남은 힘을 짜내어, 눈앞의 유일한 인간, 토마스를 향해 자신의 모든 기운을 쏟아부었다.
거울이 토마스에게 닿자 두 조각으로 쪼개졌고, 그중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금 전 폭발의 여파로 토마스도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의식이 아득해져 가는 마지막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딸의 얼굴이었다.
곧이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반쪽짜리 거울이 눈부신 백광을 뿜어내며 리카의 모습으로 변했다.
기억났어요.
저는… 아빠의 집념에서 태어난 악마예요…
!!!
역시 그런 거였어.
거울의 악마의 본체는… 몸 안에 있는 거울이에요. 이 세계로 넘어올 때 두 조각으로 부서졌어요.
그중 한 조각엔 거울의 악마 의식이 깃들어 있고, 지금 아빠의 몸에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 한 조각이… 바로 저예요.
정말... 상상도 못 했네.
...
솔직히, 이런 전개일 줄은 몰랐어.
상황이 복잡해졌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우선은 [player name] 지휘관이 바벨탑에서 복귀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보고서에 따르면, 이 상황을 해결할 전문가가 그쪽에 있다고 했거든.
바벨탑...
순간 리카의 표정이 단호함으로 가득 찼다.
저, 바벨탑으로 갈래요!
멋대로 행동할 때가 아니야.
두 조각으로 나뉜 거울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제가 살아 있는 한, 남은 조각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아요.
다시 말해, 거울의 악마를 쓰러뜨릴 수 없단 얘기네?
바벨탑으로 가야 해요. 가서… 아빠를 만나야 해요.
논의가 필요해. 잠깐 나가 있어 줘.
네...
리카는 조용히 방을 나가 나무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 너머로 작게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난 리카가 바벨탑에 가는 거 반대야.
하지만 리카 말대로, 두 거울 조각이 연결되어 있는거라면, 리카 없인 악마를 처치할 수 없어.
그건 단순히 리카의 주장이야.
내 생각은…
방 안의 논의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리카는 문기둥에 기댄 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리카에게 기대와 실망을 오가는 끝없는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아빠...
20분쯤 지났을까, 방 안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고, 리카는 결론이 났음을 직감했다.
문이 다시 열리며 바네사가 리카 앞에 섰다.
쯧…
네 소원대로 됐네. 브리이타가 널 바벨탑까지 데려다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