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보드에서 흑색 진영의 "퀸"과 "나이트"를 나타내는 표식이 모두 어두워졌다.
지금은? 아직도 항복할 생각이 없는 거야?
설마 그 조무래기한테 기대를 걸고 있는 거야?
왜 그렇게 이기고 싶어 하는 거지?
내가 맞춰볼게. 동료를 지키려는 의무감, 나에게서 뭔가를 얻고 싶은 욕심, 동료와의 유대 같은 달콤한 말로 길러진 선량함?
아니면, 단순한 승부욕인가?
유감이지만, 이 게임은 너의 어떤 목적도 충족시키지 못할 거야.
너는 나를 통해 "원래 세계"라고 하는 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고 싶은 거잖아. 안 그래?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 "마왕성" 같은 장소에 나타나게 됐어. 맞지?
거기에다가 악한 목적을 가진 악당이 등장하고, 세계는 멸망 위기에 처하게 돼.
이런 상황에서 동료들을 모아 최종 보스가 있는 캐슬에 도착한 뒤, 스릴 넘치는 모험을 겪는 거지.
그리고 자신의 뛰어난 지혜로 역경을 이겨내고, 희생된 줄 알았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다시 살아나. 그리고 모두 기쁨에 차 서로 껴안으며 사건이 순조롭게 해결되는 거야.
축하할 일이네. 이게 네가 원하던 이야기의 결말 아니야?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해결책이 있고, 과정이 아무리 절망적이고 비참해도 이야기의 끝은 항상 어느 정도 위로를 주잖아.
어쨌든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많이 겪었잖아. 그리고 아무리 터무니없는 전개라도 마지막에는 합리적인 결말이 있잖아.
상당히 일관된 논리야. 아니, 이것이 바로 "모순"의 작용 원리라 할 수 있겠지.
네 상상 속에서는 내 의도를 꺾기만 하면 모든 모순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겠지.
내 추측이 맞지?
안타깝지만, 난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아.
나와 적대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처음부터 너희는 "돌아갈" 수 없었어.
응? 별로 놀라지 않은 것 같군?
회랑은 하나의 "거울".
그 "장인"이라고 자칭하는 자가 너한테 그렇게 말했나?
처음부터는 아니었어.
알파. 의외로 심술궂구나. 네가 일찍 털어놨다면, 이 소동이 일찍 끝났을지도 모르잖아.
이 회랑에 존재하는 모든 건 거울에서 비치는 그림자일 뿐이야.
너도, 알파도, 루시아도 "원래 세계"에서 온 게 아니라...
너희는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회랑은 "사념체"를 반영하지.
너의 생각, 감정 그리고 너의 과거는 너 자신을 만들고, 그게 네 현재이자 미래야.
하지만 거울 속 그림자는 절대 거울 밖으로 나올 수 없어.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모순"이 존재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나의 투쟁은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해.
이 게임은 아무 의미 없어, 단지 한 판의 "게임"에 불과하지.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해?
그럼, 이 게임이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지켜보는 게 어때?
내가 미리 답을 알려줄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네가 악룡을 물리치는 용사가 되고 싶어도, 캐슬을 잘못 찾아온 거라고, [player name].
뭐야? 너한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탓하는 건가?
긴 침묵 끝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지휘관이 알파에게 투덜거렸다.
네가 할 일에 영향을 미쳤을까?
흥...
알파는 미소를 지었다. 지휘관의 반응을 이미 예상한 듯했다.
네가 틀렸어. 자칭 "킹"인 겁쟁이. "모순"은 존재해.
적어도, 너와 나 사이에는 말이야.
알파는 "킹"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휘관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알파의 태도는 처음부터 변하지 않았다.
왜? 알파.
회랑의 사념체들은 우리를 "외부인"이라고 불러.
그 장인은 우리의 등장이 회랑에 있어 "오류"라고 말했어.
회랑이라는 거울은 원래 우리의 모습을 비추지 않아. 그렇다는 건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거지.
루나의 의식... 아니. 그 일부 조각이 분명 "여기에 왔었어."
그것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돼. 그녀는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해.
너도 진정한 승격 네트워크가 아니야. 너는 그저 루나라는 "거울"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야.
그럼, 네가 이 그림자를 통해 뭘 봤지. 알파?
정말 이 모든 것을 네가 이해했다면, 어느 쪽에 서야 할지 알 텐데.
네가 처음부터 없애고자 한 이는 단 하나뿐이야.
그 검은 옷의 소녀,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앞을 막을 거야.
넌 나처럼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게임에서 제거해서, 그녀가 패배하게 만들려는 거야.
모든 게 그녀를 타깃으로 짜인 거야. 그래서 너는 [player name]에게 승패가 의미 없다고 말한 거지.
만약 [player name](이)가 정말 패배한다면, 너는 루시아를 인질로 삼아 [player name]에게 "킹"의 신분으로 그 소녀를 포기하게 만들려고 한 거야.
너는 이 바보가 알게 된 지 하루도 안 된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딜레마를 만든 거야.
이게 네가 말한 "놀이"인가? 이건 그냥 정교하게 포장된 살인일 뿐이야.
내 소원은 "투쟁"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거야. 그 검은 옷의 소녀가 존재하는 한, 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어. 그녀는 내가 원하는 "평화"와 본질적으로 맞지 않아.
그럼, 너의 그 소원은 어디서 비롯된 거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건가? 알파.
너와 그녀는 함께 많은 것을 겪었잖아. 너와 그녀는 같은 세상을 봤잖아.
투쟁의 본질은 서로를 미워하는 거야. 그리고 투쟁의 결과는 서로를 파멸로 이끌 뿐이야.
너와 그녀는 모두 악의의 피해자야. 왜 이렇게 간단한 소원을 이해할 수 없는 거야?
내가 개조한 이 세계에 그녀가 머물 수 있다면, 그녀는 절대 다치지 않을 거야. 영원히 평온과 따뜻함을 누릴 수 있어.
이게 언니로서 네가 보고 싶어 하는 거 아닌가?
...
[player name]. 너도 마찬가지야.
지구를 계속해서 구하는 일이 지겹지 않아? 네가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끊임없이 위기에 빠지는 걸 바라는 거야?
나는 네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 미래를 약속할 수 있어. 더 이상 과거의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어.
진정한 "낙원"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그건 꿈도, 연산도, 무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아니야.
그건 오직 이곳에 있는 "너"만이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이야.
"킹"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정말로 지휘관과 화해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킹"은 이 회랑에서 그녀만의 에덴을 창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모든 이가 여기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념체는 그녀의 관리하에 투쟁을 멈추게 한 뒤, 더 고차원적인 문명을 육성하려고 했다.
오직...
한 소녀의 희생만 필요할 뿐이었다.
심지어 지휘관은 어떠한 대가도 치르지 않아도 됐다.
이렇게 쉽게, 이렇게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진심이야?
너...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기는 한 거야?
내 제안을 거절해도, 너희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없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봐 그러는 거야? 내가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는지 의심이 되는 거야?
역시... 인간은 본능적으로 약탈과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물이구나.
내가 제거해야 할 이는 단 하나야. 네게서 어떤 것도 빼앗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도, 나의 "적"이 되겠다는 거야?
참 어리석구나.
...
여러 번 말했잖아. 넌 다른 사람을 마주하지 못하는 겁쟁이일 뿐이야.
네가 창조하려는 모든 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
네 여동생의 희망을 부정하는 거야?
그녀가 여기서 나가면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알고 있잖아.
"거기"에 있는 너는 그녀를 계속 보호할 수 없어. 하지만 "여기"에 있는 너는 할 수 있어.
이건 선택이 아니야. 이것을 포기한다면, 너희의 존재는 정말로 무의미해질 테니까.
그래도 난 루나가 자신이 만든 이 우리에 머물게 두지 않을 거야.
이것도 선택이 아니야.
...
그래서 너희가 지금 뭘 할 수 있는데?
내 "퀸"은 이미 왕좌에 올랐고, 내 "나이트"는 결승점 앞에 주둔해 있어.
검은 옷의 소녀는 이미 탈락했고, 내가 원하던 결과는 이미 이루어졌어.
이제 남은 건 작은 "폰" 하나뿐인데, 그걸로 뭘 할 수 있지?
주사위 수를 표시하는 스코어보드 한쪽에서, 금색 주사위의 표시가 밝게 빛났다.
그것은 BLACK★ROCK SHOOTER가 마지막으로 얻은 이벤트 보상으로, 어떤 체스 말이든 주사위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는 특별한 주사위였다.
그걸 이미 탈락한 체스 말에 사용해 봤자, 그 체스 말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갈 뿐이야.
"비숍", "나이트", "퀸"... 누구를 부활시켜도 아무 소용이 없어. 그들은 절대 결승점에 도착할 수 없어.
그 체스 말이 결승점에 도착할 필요는 없어.
너...
네가 나를 "룩"으로 선택해서 어떻게든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잘 알고 있어.
체스에서 "룩"은 "킹"을 보호하는 방패이자 검이고, 전차이면서 캐슬 자체야.
필요할 때, "룩"은 "킹"과 위치를 바꿔 적의 공격으로부터 "킹"을 보호하지.
하지만 루나, 내가 아무리 원해도 널 계속 보호할 수는 없어.
...
잠깐...
가... 가면... 안 돼.
계... 계속... 있겠다고...
이제 떠날 거야. 루나.
금빛 주사위가 알파 앞에 떠올랐고, 스코어보드에서 처음부터 희미하게 빛나던 "룩"이 밝아졌다.
...
프리다는 마지막 회랑을 걸어갔다.
회랑의 끝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고, 그 뒤에는 체스판의 결승점이 있었다.
문 앞에는 하얀 기사가 조용히 서 있었다.
금이 간 검에는 얼음 조각들이 붙어 있었고, 기사 주변에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들이 가득했다.
프리다는 이것이 루시아라는 소녀가 전투 중에 남긴 흔적임을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프리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메라가.
여기서 널 막아야 해.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아요.
미안해. 하지만 이제 대답할 수 없어.
이게...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건가요?
이건 운명이 아니야.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타인을 해치려는 욕망 속에서 살아가.
이건 우리가 모두 예상했던 결과야.
검을 뽑아. 프리다.
이번에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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