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했어? 여기가 네가 말한 마을이야?
앗... 네.
알파는 프리다의 발걸음을 따라가다가 몇 개의 건물이 있는 황야 앞에서 멈췄다.
역시, 여기도...
하늘에는 희미하게 붉은빛 흐름이 보였고, 그로 인해 눈앞의 풍경은 더욱 쓸쓸하고 암울해 보였다.
황량한 마을을 본 프리다는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것도 그 흰색 사념체들이 한 짓인가?
그럴 가능성이 커요. 우리가 떠난 후 마을에는 전투를 잘하는 사념체가 남아 있지 않았거든요.
이제 자초지종을 설명해 줄래?
……
얼마 전, 저 캐슬이 나타난 후로 우리와 관계가 괜찮았던 마을들이 캐슬을 조사하기 위해 엘리트 사념체들을 모은 후 그쪽으로 보냈어요.
하지만 무사하게 돌아온 사념체는 단 한 명뿐이었죠. 그의 말에 의하면, 캐슬의 주인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어서 보통 수단으로 상대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방문자들이 캐슬의 주인을 봤을 때, 그녀가 게임을 제안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반드시 "진영"을 갖춰야 도전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세웠어요.
게임?
알파는 그 캐슬의 모양을 떠올렸다. 흑백으로 된 캐슬은 자연스럽게 "체스"를 연상시켰다.
으... 왜 폰은 한 칸씩만 움직일 수 있는데, 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야?
그건... 규칙집에 그렇게 적혀 있어서 그래.
어? 하지만 왜 그런 거야? 그리고 규칙도 너무 어려워. 우리 여기에 적힌 대로만 해야 하는 거야?
그럼 루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외출하기 전에 우리한테 이거 하나만 남겨주셨잖아.
언니랑 내가 새로운 놀이법을 만들면 되잖아?
규칙은 언니랑 내가 결정하...
알파는 자신의 회상을 끊었다.
쳇... 그다음은? 그들이 실패했는데, 너는 왜 마을을 나간 거야?
당연히 두 번째 "도전자"로 나섰죠. 물론 제가 봤을 땐, 거의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지만요.
너희는 그걸 전혀 의식하지 못한 거야?
의식해서 뭐가 달라지겠어요? 모두 투쟁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잖아요. 제가 몇 번이나 설득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고요, 참 바보들이라니까요.
그럼, 넌 왜 따라간 거지?
돌아온 이의 말로는, 인원수가 충족되어야 "진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엘리트들이 전멸한 후, 마을에 남은 사념체만으론 부족했고요.
게다가... 혼자서 도망칠 수는 없었어요.
이 게임에 "인원수의 제한"이 있다고? 이렇게 복잡한 규칙을 정한 목적이 뭐지?
이와 반대로, 이 회랑 세계는 기본적으로 별다른 "규칙"이 없었다. 사념체 간의 반복적인 메커니즘 때문에 그녀의 세계처럼 복잡한 사회 구조가 형성되지 않았다.
만약 그<//승격 네트워크>가 여기서 계속 "선별"하려 한다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어때? 알아야 할 건 다 알았어?
멀리서 누군가 그녀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출장 가는 것도 네 허락을 받아야 하니?
나는 회랑의 의사 겸 엔지니어야. 당연히 일반인을 도우러 온 거지.
여기는 방금 공격을 당했거든. 그래서 생존자의 상태를 확인해야 해.
장인님!? 말씀하신 생존자가 누구죠?
장인을 본 프리다는 갑자기 태도가 공손해졌다. 이 세계에서 장인은 상당히 존경받는 인물인 것 같았다.
프리다... 돌아왔구나?
사념체들이 건물 안에서 하나둘씩 문을 열고 나왔다. 그들은 프리다를 보고 알파와 그녀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프리다. 다른 사념체들은? 성공했어?
아니요. 저희는 실패했어요.
저 빼고 다른 사념체들은...
너는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왜 프리다랑 같이 있는 거야?
이 사념체들의 전투 능력은 거의 없어 보였지만, 알파라는 낯선 이에게는 여전히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구했어.
나랑 적이 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낮은 목소리로 경고한 알파는 눈빛으로 사념체들이 허리에 찬 방어 무기에서 손을 떼게 했다.
컥... 컥... 이쪽은 내 친구야. 그 캐슬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어.
아. 그렇군요!
……
알파는 변명할 생각도,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장인님. 마을 사념체들을 구한 게 당신인가요?
아니. 나도 방금 도착했어. 다른 이가 도와준 것 같아.
다른 이? 마을 밖 사념체들인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외부인들은 도와줄 이유가 없잖아요.
그 두 사념체는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였어. 그들이 흰색 사념체들을 물리쳐 주었지만, 많은 사념체를 잃었어.
그 후 그들은 캐슬이 있는 쪽으로 갔어.
음... 어떻게 된 일이지? 그 두 사념체 중 하나가 너를 정말 닮았어.
어?
사념체의 시선을 따라, 프리다는 의아한 표정으로 알파를 바라보았다.
나를 닮았다고?
아는 이인 것 같은데? 네 친구인가?
일부러 농담하는 건가?
그들도 여기에 왔군.
잠시 생각에 잠긴 알파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해 봤자 소용없어. 만나면 그때 얘기하자.
어떻게 할 거야? 이 사념체들을 데리고 도망칠 거야?
아니. 나는 이 사념체들의 행동을 결정할 권리가 없어.
장인은 고개를 저으며, 프리다가 생존한 사념체들 사이로 걸어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프리다. 마친 잘 돌아왔어. 우리는 지금 바로 세 번째 원정대를 조직하려고 해.
우리가 필요한 인원을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여기 있는 모든 사념체를 포함하면, 간신히 가능할지도...
안 돼요. 여러분 왜 그러세요? 미쳤나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죽으러 가겠다는 건가요?
죽으러 가다니? 우리 전투를 죽으러 가는 걸로 생각하는 거야!?
네. 그래서요!? 저 흰색 사념체들이 얼마나 강한지 못 보셨나요? 실력 차이가 그렇게 큰데도, 정말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기지도 못하면서, 지금 이러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죽음은 회랑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야. 프리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투쟁"은 회랑이 존재하는 이유야. 이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사명이야.
우리가 도망치면, 회랑은 쇠락해 버릴 거야.
더 나아가, 그 흰색 사념체들은 우리의 동료들을 학살했어.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니, 프리다?
당신들... 하나같이... 정말 바보 같아요.
그런 쓸데없는 원칙을 왜 지켜야 해요? 상대할 수 없는 적을 만나면 도망치는 게 상책이잖아요.
우리 몇이 없어진다고 회랑에 큰 변화가 생기나요? 오래 살면 좋은 거 아닌가요? 꼭 서로 죽고 죽여야 하나요?
프리다. 너한테 정말 실망이야, 메라가의 가르침을 잊은 거니?
그만 하세요! 쳇... 정말 지긋지긋해요! 전 당신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저는 가지 않을 거니까요!
혼자 가겠다는 거야?
프리다가 화를 내며 뛰어가려 할 때, 알파는 그녀의 모자를 붙잡았다.
왜... 왜 이래요? 그들이 가고 싶다면 당신과 같이 가면 되잖아요. 굳이 저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요?
그럴 필요는 없지.
알파가 손을 놓자, 프리다는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당신... 됐어요. 어차피 저와 상관없어요.
입을 삐죽인 프리다가 다시 후드를 쓰고 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어떤 "현상"이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프리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한 붉은 빛의 띠 아래 하얗고 작은 지류가 갈라져 나왔다.
하얗고 밝은 빛의 흐름이 마을의 공터로 천천히 흘러내리며, 빛의 점들이 서서히 모여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마침내, 가녀린 인간 형체가 빛의 덩어리에서 나타나 지면에 떨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프리다는 중얼거리며 반사적으로 다가가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그 인간 형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건...
이건 회랑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순간이야.
소멸한 사념체는 회랑으로 돌아간 뒤, 최종적으로 새로운 생명체로 재구성돼.
이 세계의 모든 존재가 이렇게 탄생했어.
……
프리다는 새로운 사념체의 손을 잡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
오? 뭐라도 눈치 챈 거야?
이렇게 많은 사념체가 죽었는데.
알파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지만, 프리다는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
이 기간에 캐슬에서 학살된 사념체들이 수백은 될 것이었지만, 회랑에서 다시 태어난 사념체는 고작 하나뿐이었다.
저 빛의 띠는...
승격 네트워크의 간섭일 거야. 장인, 정확한 답을 줘.
나는 장인이지 설정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야. 하지만, 네 추측이 맞아.
그 캐슬의 창조물에게 죽임을 당한 사념체들은 정상적으로 회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캐슬의 주인에게 빼앗겨버렸어.
보아하니, 그 흰색 사념체들도 그렇게 생겨난 걸 거야.
이대로 가면, 회랑의 유지와 운영 메커니즘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 같은데, 그리고 그때가 되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모르는 거야 아니면 우리한테 말할 생각이 없는 거야?
에휴, 그냥 좀 신비롭게 보이게 해주면 안 돼? 어쨌든 아주 나쁜 결과로 이어질 거라는 것만 알아둬.
이 사념체가 정상적으로 회랑을 통해 태어날 수 있었던 건, 너와 그 이름 모를 소녀가 흰색 사념체들을 무찌르고, 캐슬에서 일정한 권한을 되찾았기 때문이야.
젠장... 바보 같아요. 정말 바보 같아요.
이렇게 되면, 그들이 앞다퉈 죽으러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짜증스럽게 중얼거린 프리다는 이를 악문 뒤에 주먹으로 땅을 내려쳤다. 그러자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마침내 프리다는 아직 잠들어 있는 그 사념체를 안고 자기 동료들 앞에 다가가, 그중 하나의 사념체에게 그녀를 넘겨주었다.
어서... 가능한 한 멀리 떠나세요! 그녀를 데리고 지금 당장 떠나세요!
마을의 규칙 기억하시죠? 사념체가 태어나면 훈련할 이가 필요하고, 이름을 지어줘야 해요.
하지만, 캐슬은...
제가 갈게요! 제가 가면 되잖아요!?
저는 그 강해 보이는 이를 따라갈 거예요. 당신들이 오면 제 발목만 잡을 거라고요!
그녀를 잘 돌봐주세요. 메라가가 저를 돌봐줬던 것처럼요.
그녀를 너처럼 겁쟁이로 키우면 안 될 텐데...
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할 말 다 했으면, 어서 가세요!
화가 난 프리다는 그 사념체들을 밀어내며 떠나도록 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제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면...
"프리다"라고 이름을 지어 주세요. 어차피 그때쯤이면 전 이미 죽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만약 너희가 실패하면, 프리다...
됐어요! 조용히 하세요!
프리다는 동료들이 캐슬과 반대 방향으로 떠나는 걸 확인한 후, 알파 곁으로 돌아갔다.
정말 귀찮은 녀석들이에요.
도망치지 않겠다는 거야?
당신 꽤 강하잖아요? 캐슬의 주인쯤은 아주 쉽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신과 함께 있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해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녀들이 떠나지 않을 거예요.
널 보호할 의무는 없어.
누, 누가 보호해 달랬나요!? 저도 싸울 수 있어요!
그럼, 이제 출발할까?
너도 따라올 거야? 이렇게 순순히?
회랑의 생사가 걸린 문제야. 나도 뭔가 해야지.
그럼, 내 오토바이는? 네가 가져간 거야?
그럴 리가. 이미 전문가를 보내서 직접 가져오게 했어.
장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멀리서 알파에게 익숙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옷의 소녀가 붉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가오더니, 알파 앞에서 드리프트로 급정거했다.
내 오토바이를 다른 이가 타도 된다고 한 적은 없는데.
그렇게 인색하게 굴지 마. 수리비 안 받았잖아.
이 녀석을 움직이게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
검은 옷의 소녀는 후드를 벗고,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당, 당신은...
검은 옷의 소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프리다는 정신을 잃고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
말없이 프리다를 바라본, 검은 옷을 입고 파란 눈동자를 가진 소녀의 눈에는 프리다가 겁에 질린 모습이 비쳤다.
칠...
칠흑의...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