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판 모양의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내려가더니 그레이 레이븐 소대 멤버들은 더 큰 원판에 도착했다.
멤버들이 원판 위로 이동하자 엘리베이터는 원판 아래의 사막 속으로 들어갔다.
——아니, 이 곳을 과연 사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판은 지면과 워낙 멀리 떨어져있어 그것이 모래인지, 밀집된 작은 곡면인지 육안으로는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광학 확대 설비로 확대해 보면 그것이 파괴된 건물 조각들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콘크리트 덩어리는 계속 서로를 밀어내고 부딪히며 점점 더 작은 조각으로 부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크기로 작아진 뒤에는 조각들 사이로 사라져버렸다——마치 어딘가에 빠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자갈"들 사이에는 여전히 우뚝 솟은 건물들이 남아있었다. 붕괴에서 살아남아 무너지지 않은 건물들이었다.
하지만 그 건물들도 마찰로 인해 천천히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이 건물들 또한 "자갈"과 비슷한 무언가로 변할 것이다.
그렇게 원판 위의 엠브라——혹은 엠브라처럼 생긴 무언가는 거대한 그림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를 깨우려는 것이냐?
나다.
...너의 언어 방식은 다른 개체들과는 다르구나.
난, 외부의 개체와 접촉했다.
외부의 개체라... 그렇군.
넌 "불량품"이다.
내가... "불량품"이라고?
넌 "전쟁"의 승자도, 패자도 아니다.
넌 파멸될 것이다. "전쟁" 속 규칙의 순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난 이제... 파괴되는 거야?
거대한 그림자가 손에 든 기다란 무기를 번쩍 들었다——
네!
내가 내린 명령에 루시아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빠르게 앞으로 돌진했다——
——루시아의 공격에 그림자가 들고 있던 무기는 멀리 날아가버렸다.
루시아가 공격하는 순간, 리브와 리는 힘을 합쳐 무릎을 꿇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엠브라를 한쪽으로 끌어냈다.
너희들은, 뭐지?
"아버지"는 나에게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을 주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최종 심판자"라는 권리를 부여해주셨다.
——난 영원히 이곳을 지킬 것이다. "전쟁"에서 승자가 나올 때까지.
——난 내 손으로 이 땅에 어울리는 아버지들 중 "절반"을 다시 깨울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불량품"도 "진실의 통로"에 발을 들일 수 없다. 이곳에 올 수 있는 건... 오직 승자 뿐이다.
이건 너희들이 결정할 수 있는 아니다. 설령 너희들 중 "사피엔"이 존재한다 해도...
인증을 받지 않은 "사피엔"은 "불량품"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제대로 된 대화는 어려울 것 같은데.
난 너희들과 대화할 이유가 없다.
"전쟁" 프로그램은 반드시 계속되어야 한다. 당신들의 피와 살은 새로운 "전장"을 짓는데 사용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개체는 계속 살아갈 자격이 없다.
그럼 협상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
여기서 널 막지 않으면 우리와 엠브라는 전부 제거되어 이 도시의 일부가 되겠지...
아버지가 정하신 규칙엔 예외란 없다.
지휘관님, 그럼 전투 지휘를 부탁드릴게요.
우리 앞에 있는 "마키아벨리"를 쓰러트려야만 엠브라와... 우리 모두 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