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로봇들 도대체 정체가 뭐야? 명부에는 등록되지 않는 비정규 군용 로봇인가?
전에 전술 자료에서 확인했었는데, 구조체 스킬이 형성되기 전 일부 세력은 스스로 전투 로봇을 개조 심지어 생산까지 했다고 들었어. 세계 정부가 파견한 치안 부대와 대항하기 위해서 말이야.
아마 그럴지도. 하지만 이건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동작 자유도 디자인를 보면 다중 비구체 관절을 사용하고 있어.
AI 디자인도 굉장히 원시적이에요... 코어 로직은 아직도 FuSM을 사용하고 있고요...
면역 시대 초기인가, 마이너스 볼 타입 변형 관절과 인공 근육을 로봇 디자인에 적용한 뒤로 다른 방안은 완전히 도태되었을 텐데...
그러니까 이 로봇들은 황금시대 말에 디자인되었단 말이군.
여기, 설마 황금시대 로봇 디자인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닐까요?
박물관을 지하에 짓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게다가 X로 시작되는 이름으로 숨기기까지 하고...
생각만 해서는 아무 진전도 없어. 뭔가 알아내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해.
맞아. 일단 가자.
나는 시작과 끝이다. 나는 결정자이며, 나는 모든 것이다.
나는 혜안의 여우이자, 강인함의 사자다.
내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를 위한 성지를 만들었다. 피와 천공의 야수들을 풀어, 승자에게 왕관을 씌울 것이다.
아버지가 대지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난 승자에게 왕관을 씌울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승자가 없다.
지난번, 그리고 또 지난번에도 승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성지를 허물고 다시 쌓았다.
그때마다 나는, 피와 천공의 야수들을 풀 것이며, 승자에게 왕관을 씌울 것이다.
잠깐...
다들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왜 그래? 난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나도 못 들었어. 리브가 방금 말을 꺼냈을 때 주위 300m 범위를 목표로 강화 스캔을 진행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어. 하지만 리브의 역원 장치는 특별 강화를 거쳤잖아. 신호 차단 부족으로 인한 디지털 잡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하지만... 그전에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리고 이 말은 똑똑히 들었어요... 승자, 피와 천공의 야수...
그게 뭔데?
아무런 의미 없는 음성이라도 우연하게 의미를 가진 구절을 만들 수도 있어. 일단 더 가보자.
과학 기술은 우리에게 평범한 인간을 초월하는 감지 능력을 부여했어. 하지만 이 세상에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정보가 있다는 거야.
네... 그래요.
하지만 리브의 레이더가 우리보다 강력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네.
가자.
아, 네... 네!
사람들은 함께 동굴 속 밀폐된 시설 입구 근처로 걸어갔다.
……
…………
………………
미래는 허무한 것! 우리는, 통일된, 리더 따윈, 필요 없다!
필요 없다, 필요 없다!
…………
우린!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 리더! 리더!
필요 없다, 필요 없다!
리더! 리더! 리더!
기묘한 로봇들이 아무도 없는 거리에 모여 치열하고 무의미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너희들과는, 얘기가 안 통한다!
전쟁이! 필요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로봇들은 상대를 향해 칼날과 주먹을 휘둘렀다.
교전을 상징하는 나팔소리도, 목에서 울려 퍼지는 높은 고함도 들리지 않았다.
현대 전쟁을 상징하는 화력 공격도, 황금시대에서 꿈꾸던 레이저 빔도 없었다.
하지만 전쟁은 분명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로봇들 사이의 전쟁이었다.
칼날이 금속을 베어내고 주먹이 회로를 파괴했다.
무거운 몸통이 관절 사이의 연결을 파괴한 뒤 상대를 들어 다른 적에게로 던져버렸다. 적군의 몸통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로봇은 지치지도 않고, 주저하지도 않고, 목적을 의심하지도 않고 명령만 이행할 뿐
——로봇은 불변하며 구별이나 변화는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봇은 우리들의 비통한 소원을 들어줄 유일무이한 것이다.
——실험이 천만 번 실패해도 죽은 자와 로봇에는 시간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승부가 갈릴 때, 인간들은 냉동 캡슐에서 다시 깨어난다.
——수천, 수만 년이 지나고 지상에서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인간은 새로운 세상에도 또다시 왕으로 군림할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로봇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로봇들의 전쟁은 계속 지속되었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서 로봇들의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로봇들은 세지 않는다.
그들에게 삶이란 생과 사의 반복뿐이었다.
비록 가끔씩 작은 사고가 생기긴 했지만.
작은 사고는 이 절망적인 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정도의 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로봇들은 생과 사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이 모든 건 수많은 반복 중 누구도 알지 못한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