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시야를 집어삼켰다.
차가운 바람 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렸고, 방대하고 잡다한 정보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혼란스러운 의식을 끊임없이 때렸다.
살▄▁▅▃▄▁▆┛┛줘▁▄▁……
붉은 실선들이 뒤틀리며 요동쳤고, 거미줄처럼 모든 색채를 휘감아 조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깊은 곳에서 이명이 맴돌며, 기이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이유 없이 간질거림이 가슴을 지나 심장을 긁고 폐까지 번져, 저절로 기침이 튀어나왔다.
살려… 살려주세요!!
연무 속에서, 피에 젖은 손 하나가 지휘관을 붙잡았다.
제 아이가… 아직 안에 있어요… 장교님, 제발 살려주세요!
난민은 필사적으로 애원했고 절규는 안개에 묻혀 또렷하지 않았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가슴속의 간질거림이 더 심해졌다.
기침하며 눈앞의 안개를 헤쳤지만, 피와 살점이 뒤엉킨 손바닥은 여전히 지휘관의 팔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노심 온도가 너무 높아요… 펌프 쪽에 침식체가 있어요. 함께 돌파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손이 거칠게 붙잡아 왔고, 강한 충격에 기침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사방이 핏빛으로 흐릿하게 뒤덮여 있었다. 지휘관은 궤양으로 짓무른 식도를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수많은 손이 온몸을 필사적으로 쥐어뜯는 것 같아 걷기조차 힘들었다.
여기요! 아무나 좀 와주세요!
주변이 온통 침식체예요… 살려주세요!!
어둠 속에서 비명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며, 지휘관을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몰아세웠다.
무거운 족쇄를 단 채 진흙탕을 걷듯 비틀거리리다, 순간, 목 안이 뜨거워지며 발이 꼬였다. 그리고 폐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피였다.
퍼니싱의 침식으로, 지휘관의 몸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으앙... 엄마...
그때 한 줄기 빛이 비치더니, 피비린내 나는 세계의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발밑의 진흙은 근육과 뼈를 잇는 살점처럼 달라붙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무딘 칼로 살을 긁는 듯한 통증이 전신을 찔렀다.
소녀는 등을 돌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뚝—
여자아이의 목이 부러지면서 얇은 살가죽 하나만이 간신히 머리뼈의 무게를 지탱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허공에 매달린 괴이한 얼굴이 천천히 돌아오며, 찢어진 입꼬리로 기이한 미소를 그려냈다.
쉬익!!!
그 순간, 수많은 손이 한꺼번에 덮쳐왔다. 그들은 난민도, 소방관도 아니었다. 붉은 안개가 빚어낸 짐승,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침식체들이었다.
으악!!
소녀는 배를 움켜쥔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지휘관을 쳐다봤다.
…왜…?
소녀의 숨이 끊어질 듯 가늘어졌다. 손바닥 아래에서 붉은 얼룩이 퍼져 나가며, 하얀 셔츠를 빠르게 물들였다.
짙은 안개가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지워버렸고, 그 속에서 지휘관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저질렀다.
진짜인지 아닌지 따질 겨를도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해, 휘청이는 소녀를 붙잡았다.
왜… 왜?
그 순간, 후회와 고통이 동시에 심장을 움켜쥐었고, 선혈이 뿜어져 나와 여자아이의 창백한 뺨 위로 떨어졌다.
▅▃▄▁▆!
기력이 바닥난 찰나, 날카로운 철제 발톱이 살을 찢으며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쨍!
[player name]!
거대한 낫이 시야를 가르며 침식체의 팔이 잘라냈다.
전부… 레이븐한테서 떨어져!!
분노가 실린 포효와 함께, 거대한 낫 날이 폭풍처럼 휘둘러졌다. 보랏빛 번개가 터지며 몰려든 적들을 갈라내고, 벽면에는 산산이 부서진 자국이 깊게 새겨졌다.
쉬익!!
멀리 어둠 속에서 다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천장과 벽, 바닥에서 침식체들이 쏟아져 나오며 핏빛의 파도가 되어 공간을 집어삼켰다.
왜 그랬어?! 왜 아이를 죽였어?!
눈앞의 짙은 안개는 여전히 걷히지 않았고, 핏빛으로 물든 팔들이 끈질기게 지휘관의 몸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붉은 안개의 횡포 앞에서 결과는 이미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해졌다. 한낱 인간의 육신으로는 어떤 저항을 해도 무력할 뿐이었다.
내 아이를 살려내… 내 아이를 살려내라고!!
레이븐.
갑자기 따스한 손바닥이 뺨을 톡톡 두드렸다.
날 봐.
흐려졌던 시야가 다시 초점을 되찾고, 눈앞의 위기가 다시금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 주사하는 거라 좀 아플 거야, 참아.
무언가가 가슴팍을 뚫고 들어왔다.
다음 순간, 막혀있던 코와 입이 뻥 뚫리며 신선한 공기가 폐 속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자 꺼져가던 의식의 불씨도 다시금 타오르며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응. 마지막으로 남은 거야.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네티아의 대답과 동시에, 멀리서 들려오던 진동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강철의 파도 속에서 은백색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
바로, 마르가리타의 환영이었다.
그녀가 힘없이 팔을 들어 올리자, 수많은 철제 괴물들이 일제히 울부짖으며 네티아와 지휘관을 향해 밀려왔다.
아무래도... 너와 함께하는 건 여기까지일 것 같네.
네티아는 붕대를 끌어내고 허리에 찼던 붉은 안개 차단기를 꺼내 지휘관의 몸에 걸어주었다.
약물이 혈관을 타고 퍼지며 온몸이 저릿하게 굳어갔다. 지휘관은 그대로 얼어붙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리 너라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인간은 저 녀석의 상대가 될 수 없어.
내가 여기서 시간을 끌 테니, 넌 계속 앞으로 가. "황금 참나무"를 파괴하고 이 재앙을 끝내.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와, 지휘관 가슴에 손을 얹었다.
같이 드라이브는 못 하게 됐네, 그건 좀 아쉽다.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재미있는 구경은 실컷 한 것 같아.
네티아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팔에 힘이 들어갔고, 지휘관은 뒤로 확 떠밀렸다.
지휘관은 그대로 차가운 엘리베이터 통로 속으로 밀려 떨어졌다.
기회가 되면, 나도 뒤따라갈게.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내가 조금 부족해서, 그 기회를 놓치게 되면...
그땐 이 자료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세계에 알려 줘.
우리 카헤티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 진실되게 살았었다고.
그녀는 말을 마치고, 비상 제동 버튼을 눌렀다.
잘 가, 레이븐.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혔다. 굵은 케이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추락했고, 그와 함께 모든 소음이 멀어져 갔다.
둘의 세계는 그렇게 갈라졌다. 마인드 연결만이 유일한 다리가 되어, 기대와 걱정을 마음 저편으로 동시에 실어 보냈다.
서로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수십 년을 이어온 이 재앙을 끝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필사적으로 싸워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아무리 미련이 남고 마음이 아파도 둘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지 마… 모두의 희망을 빼앗지 마…
……
문득 네티아는 아주 오래전, 누군가 이렇게 그녀 앞을 막아서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네티아는 그 불씨를 더 멀고 더 밝은 곳으로 보냈다.
난 과거에 남을 테니…
넌 계속 앞으로 나아가, 레이븐.
네티아는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모든 것을 베어낼 각오를 담은 낫을 휘두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