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40 더 아름다운 내일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40-16 죽음과의 경주

>

카헤티 위성 도시

현재

공구실 안에는 묵은 오일 냄새가 자욱했다. 이 장관은 팔짱을 낀 채 금이 가고 얼룩진 벽돌담에 기대어 네티아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 도움으로 과학 이사회에 들어갔고, 그 뒤로 계속 몸을 낮추고 숨어 있었던 거군… 이렇게 오래.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고탑"에 관한 정보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윗선의 늙은 여우들에게 충성하는 척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곳을 잊은 척하면서 모든 고통과 미련을 혼자 삼키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죠.

네티아는 낡은 가죽 의자에 앉아 머리 위 희미한 조명에 의지해 붉은 안개 차단기를 점검하며 말을 이어갔다.

봄이 오면, 광장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가슴이 조여 와 숨을 쉴 수조차 없었어요. 겨울에는 하늘에서 가짜 눈이 내려오는데, 제가 느끼는 추위는 그 어떤 진짜 겨울보다도 더 매서웠어요.

마치 세상 전체가 얇은 막을 하나 뒤집어쓴 것처럼 느껴졌죠. 그 낯선 거리감을 견디면서 하루, 또 하루… 해를 넘겼어요. 방 안에 훈장이 가득 걸리고 시상대 위에서 폭죽이 터져도, 저는 끝내 현실을 느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엔 왜 구조체가 된 거지?

그렇게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요.

네티아는 차단기를 다시 허리춤에 차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당시에는 의식의 바다가 인간의 정신 질환을 그대로 계승하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그래서 제 몸을 과학 이사회에 바쳤고, 제가 입문 후 맡은 첫 번째 연구 과제가 되었죠.

메스와 집게가 제 몸을 열어젖혔고, 그 결과 인간의 영혼에는 되돌릴 수 없는 결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됐어요. 저 이후로는, 정신 질환 환자에게 구조체 수술을 시도하지 않게 되었죠.

기술 발전이 모든 걸 바꿀 거라고 떠들어대지만, 적어도 네가 겪은 고통에 대해서는 쥐뿔도 바뀐 게 없군.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도 제 몸을 거치면 결국은 썩어 무너져 내렸어요. 이 세계에서 저는 늘 이방인 같았고, 시간은 여전히 그 폭발이 일어난 날에 멈춰 있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 몸이 고통에 무감각해질 때까지 아픔은 제 혈육의 일부가 되어 버렸죠.

네티아는 탁자 위에 남은 진정제 두 관을 집어 들어 허리 주머니에 꾹 눌러 담았다.

얼마 전 추락 사건 이후, 세계 의회도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과학 이사회에게... "어떤 계획"을 재가동하는 걸 승인했어요.

그래서 연합 정부의 권한을 받아 정보부 문서고를 열었고, 아딜레 대폭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조회했죠.

그리고 최고 기밀 등급의 보안 잠금을 해제한 끝에, 당시 사고 조사단이 제출한 자료 목록을 찾아냈어요.

네티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모든 정보가 삭제돼 있었어요.

그녀의 입에서 아주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애초에 제출한 게 아무것도 없었던 걸 수도 있어.

어떻게 확신하시죠?

이 장관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 바닥에서 놈들이랑 이십 년은 부대꼈거든.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알아야 할 건 이미 내 눈으로 다 봤다. 몰라도 되는 건 애초에 관심도 없었어.

이 장관은 어두운 구석으로 걸어가 먼지가 내려앉은 유화 앞에 멈춰 섰다.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그건 이 장관이 한때 풍류를 즐기고자 사무실에 걸어둔 그림 중 하나였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건 딱 하나다. 이 도시를 지키는 것, 그리고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 그 많은 전우들의 목숨이 헛되이 사라지게 둘 순 없다.

설령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고 해도요?

그래도 상관없다. 그들의 명예와 공적은 여전히 이 도시 안에 살아 있으니까.

이 장관은 천천히 몸을 돌려 네티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한텐 내일 당장 수천 명의 입에 따뜻한 밥 한 끼를 넣어주는 게, 그 어떤 진실보다 훨씬 중요해.

……

그럼, 저와 함께할 생각은 없으시겠군요.

네티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을 펼쳐 쥐며,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됐음을 확인했다.

설마… 다시 방사능 구역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꿈에 그리던 목표가 눈앞인데, 이제 와서 물러설 이유는 없죠.

그녀의 손은 이미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네가 내릴 만한 결정 같지가 않은데, 네티아.

마르가리타가… 아직,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문이 열리자 차가운 바람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와 바닥에 흩어진 종이를 날리고, 연보랏빛 곱슬머리를 헝클어 놓았다.

승격자의 함정일 수도 있다. 목숨을 잃는 게 두렵지 않나?

그건 걱정 안 해요. 이미 저와 약속한 사람이 있거든요…

그녀는 옅게 미소 짓고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몇 번의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코는 어느새 병실 밖의 매캐한 소독약 냄새에 적응해 있었다.

혈청 받으실 분들은 저쪽으로 줄 서 주십시오! 통로를 비워 주세요!

어느새 옅은 안개가 문틈과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잔양을 받아 붉게 빛나는 입자들이 공중을 떠돌며, 음산한 기운으로 사람들의 몸과 정신을 조금씩 잠식해 갔다.

그렇게 된 거야. 그 뒤로는… 좀 복잡한 일이 있었고, 영감님은 이 일을 내게 맡겼어. 그리고 난 "망각자"와 손잡는 쪽을 택했지.

야킨카는 유리창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시선을 병실 안 침대에 고정했다. 그곳에는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병사가 누워 있었고, 그녀의 오래된 지인인 듯했다.

왜, 영감님 알아?

인맥이 꽤 넓네. 통솔자도 네 이름을 자주 언급하던데.

너처럼 중요한 인물이 왜 이런 위험한 최전방까지 왔대? 높으신 분들 앞에서 말실수라도 해서 좌천당한 거 아니야?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비꼬듯 웃었다. 공중 정원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듯했다.

하, 그래서 승격자한테 신나게 두들겨 맞고 우리와 같이 붉은 안개 속에 갇히셨나? 지원군 하나 없이?

야킨카는 코웃음을 쳤다.

너무 믿지 마. 정부가 진짜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진작에 그 승격자를 처리했겠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얻어맞고, 결국 카헤티 사람들한테 기대는 꼴이라니…

컥… 우욱!!

야킨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병사 한 명이 무기를 떨어뜨리고, 입을 틀어막은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뭐야, 괜찮아?

지휘관과 야킨카가 동시에 병사의 몸을 붙잡았다. 병사는 온몸을 심하게 떨었고, 목에 핏대가 서고 얼굴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우욱…… 우웁!!

지독한 악취와 함께, 걷잡을 수 없는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돌바닥 위로 쏟아진 끈적한 토사물에는 피와 인체 조직이 섞여 있었다.

경미한 침식이야. 네가 잡고 있어, 내가 혈청을 주사할게.

지휘관의 협조 아래, 야킨카는 재빨리 혈청 주사기를 꺼내 병사의 정맥을 정확히 짚고 단숨에 찔러 넣었다.

하… 하아…

감… 감사합니다…

눈이 퍼니싱보다도 더 빨갛게 충혈됐네. 성벽 위에서 본 적 있어, 너.

이 망할 안개는 정신부터 갉아먹어. 힘 빠졌으면 버티지 말고, 얼른 기어들어 가서 쉬어.

...두 분 수고하셨습니다. 환자는 저희가 인계하겠습니다.

의사 몇 명이 급히 달려오더니 탈진한 병사를 들것에 싣고 인파를 헤치며 복도 저편 병실로 달려갔다.

복도가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멀리 길게 늘어선 줄에서 또다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야킨카는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가 붉은 안개에 다 씹어 먹히기 전까진, 세계 정부는 절대 안 와.

이런 꼴을 하루이틀 본 게 아니야. 매 순간, 계속 반복되고 있어.

그녀는 고개를 돌려, 병실 안에서 사경을 헤매는 전우를 바라봤다.

지원군은 없어. 난 제이와 카헤티 사람들을 데리고 살아서 나갈 거야.

넌 어쩔래? 우리와 같이 갈 거야? 전력을 다 모아야 해. 공중 정원 사람도 예외는 아니라고.

야킨카는 얼굴을 돌려 지휘관을 바라봤다.

다시 돌아가겠다고? 붉은 안개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

야킨카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지휘관의 판단에 대해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만 물을게. 네티아가 한 말 전부 사실이야? 방사능 구역에서 마르가리타를 봤어?

야킨카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감으며, 복잡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네티아와 의식 연결을 했구나.

증상…? 그 오랜 세월 동안 공중 정원은 아직도 걔를 못 고친 거야? 구조체잖아?

야킨카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지며,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몇 번이나 움켜쥐었다.

걔 머릿속에서 뭘 본 거야? 설마 내 모습도 있었어?

야킨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우리가 헤어진 장면도 봤겠네. 그 겁쟁이가 어떻게 우리 곁에 숨어 있다가, 고향을 팔아넘겼는지.

내 평생 제일 많이 후회되는 게, 당시 걔 뺨을 두 대밖에 때리지 못한 거야.

그게 중요해? 애초에 떠나질 말았어야지.

야킨카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떨군 채 입을 열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 끝에,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리며 무기가 매달린 어깨끈을 털어냈다.

시간이 남긴 미련은 너무 많아. 난 내가 직접 본 것만 믿어.

곧 작전 회의가 시작해. 30분 안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우리랑 갈지 말지 결정해.

잠깐이라도 쉬어 둬. 준비되면 바로 출발이야.

전진 지휘소

카헤티 위성 도시

야킨카와 함께 지휘소에 들어서자, 안은 이미 군복 차림의 부사관들로 꽉 차 있었다.

습기에 눅눅해진 종이 냄새가 공기에 배어 있었고, 열댓 개의 가죽 의자가 참나무 장탁자를 둘러싸고 놓여 있었다. 탁자 중앙에는 푸른빛을 내뿜는 홀로그램 지도가 떠 있었다.

……

사람들 사이에서 단번에 네티아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이쪽을 보더니, 자기 옆의 빈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흥.

야킨카는 눈을 한 번 흘기더니, 가까운 의자를 끌어당겨 다리를 꼬고 앉았다.

괜찮아. 근데 여기가... 아직도 좀 아프네.

그녀는 눈썹을 살짝 내리며 팔을 문질렀다.

여기…

탁! 고개를 가까이 대는 순간, 네티아가 장난스럽게 이마를 튕겼다.

이건, 아까 네가 "멋대로 판단한" 벌이야.

아픈 환자한테 의견을 묻는다고? 다음에 네가 생명의 별에 누워 있을 때, 내가 침대 옆에서 이사회 입사 지원서에 서명하게 할게.

그때 지휘소 안에서 둔탁한 종소리가 울렸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잡담을 멈췄다.

이 장관은 중앙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차가운 시선으로 현장에 모인 모든 장병을 훑어보았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카헤티 방사능 구역이 갑작스럽게 확산되면서 연합 정부가 진행하던 승격자 섬멸 작전, "악마 사냥"은 사실상 붕괴 상태에 들어갔다.

이틀 전 오후 13시 정각, 군부의 지시에 따라 세계 연합 정부 제6군 사령부가 "악마 사냥" 작전의 중단을 공식 명령했다.

하지만 붉은 안개의 영향으로 우리는 외부와의 모든 통신이 끊겼고, 오늘 새벽, 카헤티 도심에 금빛 거목 하나가 출현하면서 통신이 잠시 복구된 뒤에야 이 사실을 전달받았다.

이 장관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투영 화면이 전환되었다. 위성 도시 시점에서 촬영된 "황금 참나무"는 이전보다 훨씬 자라, 이제는 일반 건물을 훌쩍 넘는 수십 미터 높이까지 도달해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 우리는 난민과 병사를 포함해 약 2,000명에 가까운 인원을 수용했다. 단 하룻밤 만에 의료 물자는 거의 바닥났고, 중상자만 해도 120명 이상이 현재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승격자의 지휘 아래, 위성 도시는 침식체에게 완전히 포위됐다. 방금 전 기준으로 도심의 퍼니싱 농도는 안전 기준 이하로 떨어졌고, 이미 일부 인원에게서는 경미한 침식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붉은 안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카헤티를 집어삼키고 있다. 지휘부는 충분한 검토 끝에 위성 도시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6시간 내, 코드명 "헤브론" 전면 철수 작전을 개시한다.

질문 있는 사람?

장관님.

얼굴에 붕대를 감은 사관이 손을 들자 이 장관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 정원의 "악마 사냥" 작전에 협조하느라 도시 내 수송 차량 대부분이 외곽의 "무덤" 구역으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무덤"은 침식체에게 점령당한 상태입니다. 현재 전력으로는 수천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이송할 수송 능력이 없습니다.

"무덤"은 인근 무기고를 가리키는 암호명이었다. 그 이름을 듣자 네티아와 야킨카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수송관이 핵심을 지적했군. 수송력, 그게 바로 "헤브론" 작전의 성패를 가를 열쇠다. 모두 자리에 있는 작전 개요를 펼쳐라.

이 장관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이번 작전에서 우리는 적이 "전술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움직인다. 예전처럼 단순한 침식체 무리를 상대하듯 움직이면 바로 죽는다.

특히 이번에 상대하게 될 적인 존·도의 수법은 지극히 교활하면서도 잔인한 데다 동기조차 불분명하다. 작전 수행 중 방심은 금물이다.

작전 개시 후 1시간 30분 동안, 각 중대는 담당 구역 내의 모든 비전투 인원을 집결시켜라. 연령과 부상 정도에 따라 개요서 기준으로 등급을 나눈다.

이 장관

1시간 30분 정각에 연대 소속 포병 중대는 남부 평원에 집결한 침식체를 향해 원거리 포격을 개시한다. 포격은 탄약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이동 불가한 포는 현장에서 전부 파기한다.

이 장관

포격이 종료되면, 앞선 전투에서 사상자가 가장 적은 A중대가 남부 평원 도로를 따라 계속 돌진한다. 우리가 남쪽으로 이동해 연합 정부 제6군 주력 부대와 합류하려는 것처럼 적을 속이는 것이다.

이 장관

하지만 실제 목표는 다르다. B부터 F중대까지의 정예를 모아 특수 혼성 중대를 편성한다. A중대가 적을 유인하는 동안, 특수 혼성 중대는 동쪽의 "무덤"으로 침투한다.

이 혼성 중대의 총지휘는 야킨카가 맡는다.

야킨카는 몸을 비스듬히 틀어 사람들 쪽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이 장관

혼성 중대는 "무덤"을 확보한 뒤, 현지 군수 물자를 활용해 즉시 방어 거점을 구축한다. 이후 상황에 따라 지정된 색상의 신호탄을 발사해 작전 속행 여부를 판단한다.

이 장관

녹색 신호탄이 확인되면 "무덤"이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 즉시 B~F중대 주력과 민간인을 나눠서 "무덤"으로 이동시킨다.

이 장관

그 사이, 적을 견제하던 A중대는 즉시 위성 도시로 철수해 도시를 거점으로 침식체와 시가전을 전개하며 본대의 이동 시간을 확보한다.

물자와 차량을 보충한 뒤, 개요서에 명시된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전원 방사능 구역을 이탈할 때까지, 각 중대는 교대로 엄호와 후위를 맡아 진행한다. 최종 목표는 공중 정원 연결이 닿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최상의 시나리오다. 실전에서 A중대의 양동 작전이 실패할 수도, 혼성 중대가 침식체에게 포위당할 수도 있다.

그 어떤 변수가 발생하든, "헤브론" 작전은 즉시 중단된다. 그 순간부터, 모든 부대의 명령은 하나다. 모든 걸 걸고 "무덤"을 향해 총공세를 감행한다.

차량과 물자를 확보하고, 그걸로 철수해 지원을 받는다. 이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의 있는 사람?

차가운 시선이 다시 한번 회의실을 훑었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그 호칭이 울리자 지휘소 안의 시선이 일제히 지휘관 쪽으로 쏠렸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몇 가지 세부 사항을 보충 설명드리겠습니다.

네티아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 모습을 본 위성 도시 현지 장교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카헤티 사람들 대부분에게 네티아는 여전히, 과거 고향과 동료를 버리고 떠난 "배신자"였다.

하지만 네티아는 비난 어린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과학 이사회가 수년간 축적해 온 관측 데이터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카헤티 방사능 구역의 붉은 안개 경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무풍 상태 기준, 일평균 확산 속도는 초속 0.1미터를 넘지 않습니다.

가끔 발생하는 강풍 상황에서도, 붉은 안개의 최대 이동 속도는 초속 0.6미터를 초과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지난 20년간의 관측 결과입니다.

네티아가 앞으로 나와 단말기를 조작하자, 중앙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붉은 곡선 하나가 나타났다. 그 곡선은 가파른 기울기로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회의 시작 전 위성 도시의 여과 메인 시스템을 확인해 보니, 오늘 새벽 6시 17분, 위성 도시 동쪽 약 9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4번 필터 기지가, 통신 두절 직전 마지막으로 퍼니싱 경보를 송신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2시간 44분 뒤, 오전 9시 1분에는 붉은 안개가 이미 위성 도시 최동단, "무덤" 구역에 위치한 6번 필터 기지에 도달해 이를 넘어섰습니다.

그녀는 지도 위에 7번 기지에서 위성 도시로 이어지는 직선을 그으며, 그 위에 시간을 표시했다.

즉, 지난 시간 동안 붉은 안개의 평균 이동 속도가 무려 초속 1.8미터 이상에 달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평균 속도일 뿐입니다. 확산 과정에서 가속 효과를 고려한다면, 전면부의 순간 속도는 훨씬 빠를 것입니다.

복잡한 지형에서의 급행군 속도는 보통 초속 1미터에서 1.5미터 수준입니다. 차량을 이용하더라도, 폐허와 침식체가 밀집한 환경에서는 평균 속도가 초속 3미터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네티아는 회의장에 모인 이들을 둘러보며, 계산 끝에 도출된 냉혹한 결론을 선언했다.

우리는 지금 죽음과의 경주를 벌이고 있으며, 이미 출발선부터 뒤처진 상태입니다.

그녀의 말은 단호했고, 현실을 인지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니까, 네 계산대로라면 우리가 저 속도만 넘기면 아직 살아남을 가능성은 있다는 거지.

맞아, 하지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어렵지 않아. 카헤티 사람들은 해낼 수 있어. 우린 전장에서 단련된 병사들이지, 허공에 떠 있는 무능한 인간들이 아니야.

교관님, 이 작전은 예정 시간보다 30분 앞당겨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출발은 빠를수록 좋아요.

그렇게 되면, 각 중대는 1시간 안에 사전 준비와 민간인 대피를 모두 마쳐야 한다. 다들 자신 있나?

외팔이 중대장

B중대, 문제없습니다!

왼쪽 다리를 다친 중대장

C중대,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힘 있는 대답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지금의 상황에서 물러설 곳은 없었고, 그들은 죽음과의 경주를 완수해야만 했다.

나도 함께 갈 게.

주변의 놀란 시선 속에서, 네티아는 지휘관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이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리고 네 "안전" 역시, 내 직무 범위에 포함되어 있어.

네티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카헤티에는 이미 자체적인 대응 계획이 있다. 난 외부인이 카헤티의 문제로 목숨을 거는 상황은 원치 않는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내 눈에는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군.

출발 전까지 필요한 물자가 있으면 언제든 요청해. 카헤티는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다른 질문이 없으면, 우리의 "경주"를 시작해야겠군.

지금부터 "헤브론" 작전의 정식 개시를 선포한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기립하여 지휘부 최고 권력자인 이 장관에게 경례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한 가지 정보를 공유드리겠습니다.

제가 현재까지 수집한 각종 정보를 종합해 보면, 방사능 구역 내에서 "황금 참나무"가 성장하기 시작할 때마다 붉은 안개 내부의 퍼니싱 농도가 급격하게 요동칩니다. 또한, 해당 개체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침식체 개체 역시 현저히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 "황금 참나무"는 방사능 구역 내 퍼니싱의 방사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저희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경우에는…

여러분이 이 정보를 공중 정원과 외부 세계에 전달해 주셔야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사람들은 재빨리 흩어져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이제부터의 모든 선택과 행동 하나하나가 5천 명의 목숨을 좌우한다는 걸 모두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지휘소의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실내는 빠르게 적막해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에, 두 사람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네티아는 구석에 서 있었고, 야킨카는 여전히 다리를 꼬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

……

네티아가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말하려고 고개를 들었고, 자신과 같은 망설임을 담은 시선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침묵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사이, 시간만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나랑 같이 돌아가 줬으면 해. 마르가리타를 찾으러 가자.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누군가가 먼저 침묵을 깼다.

이제 와서… 그동안 넌 대체 어디에 있었는데…

야킨카는 고개를 숙인 채,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하자면 길어. 내가 내린 결정이… 틀린 선택이었을지도 몰라. 확신은 없어. 하지만 난 그 대가를 지금까지 계속 치르고 있어.

무슨 결정?

너를 떠난 것, 너희 모두를 떠난 것.

……

야킨카는 습관처럼 머리칼을 손가락에 감았다.

우리가 알게 된 건 몇 달도 걸리지 않았는데, 다시 만나는 데는 20년이 걸렸네.

시간이 너무 흘렀어. 많은 게 변했고, 카헤티에 있다는 그 마르가리타도… 너희 말대로라면, 승격자가 만들어낸 허상일 가능성이 크겠지.

나한테 마르가리타는 이미 떠난 사람이야. 지금 중요한 건 제이와 이 도시에서 아직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이야. 난 그들을 데리고 살아서 나갈 거야.

많은 게 변했지만, 넌 변한 게 없네. 야킨카.

네티아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구석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넌 그 가짜 편지를 받고도 마르가리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잖아?

네가 변한 줄 알았으니까.

야킨카는 고개를 들었다. 분홍빛 눈동자에는 허전함과 피로가 고여 있었다.

네가 카헤티를 생각하는 사람이 됐을 줄 알았어. 너한테 또 지기 싫었거든.

근데 지금 너의 눈빛과 말을 들으니까, 내가 착각한 건가 싶다.

아직도 화난 거야? 내가 방사능 구역으로 돌아가는 것도 여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잖아?

네티아 자신도 예상치 못하게 다급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거 알아, 네티아? 넌 거짓말할 때, 내 눈을 못 봐.

지금도 그래.

야킨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카헤티 사람들을 위해 돌아가는 거 맞아? 절대 낫지 않는 네 마음에 대한 보상으로 가는 건 아니고?

어쩌면, 너 스스로도 아직 답을 못 찾은 건 아닐까?

……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네티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야킨카와 스쳐 지나가는 순간, 네티아는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붉은 안개 차단기였다.

...?

정신을 차렸을 때, 네티아는 이미 지휘소 밖으로 향하고 있었고 발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야킨카는 차단기를 집어 들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정교하게 짜인 구조, 그리고 그 아래에 눌려 있는 설명서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십여 년에 걸친 실험 기록과 주석, 그리고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도 빠짐없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게 네티아가 평생을 바쳐 만든 건가? 야킨카는 문득 손안의 물건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

야킨카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깨달았다. 네티아는 충동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그 오랜 세월 동안 줄곧 카헤티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뭘 품고 있었든, 네티아는 자신을 키워준 이 땅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네티아… 넌 가끔…

정말 사람을 짜증 나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