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용사 기념비 앞
카헤티 위성 도시
마르가리타, 오늘 오후 세 시에 공중 정원 특사가 우리 추모식에 참석한대.
오늘 아침에… 강가에서 총 한 자루를 주웠어. 네 이름이 새겨져 있더라.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낮게 깔린 먹구름, 싸늘한 무덤, 바람만이 마른 가지를 흔들며, 마치 흐느끼듯 소리를 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근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라. 지금 다들 아딜레 화산 얘기뿐이야… 우리가 겪은 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
마르가리타… 나, 너무 지쳐.
야킨카는 찬 바람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얼굴을 팔에 깊숙이 묻었다.
네티아가 떠난 뒤로, 꿈에 네가 안 나와.
너 가끔…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냐?
걔가 나보다 똑똑해서 그래? 아니면… 너랑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서?
야킨카는 고개를 숙인 채 자기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고, 손가락이 새하얗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걘... 그냥 거짓말쟁이잖아. 이기적이고, 허영심 많고, 겁쟁이라고.
그런 인간들이 널 죽게 했어. 그렇게 착하고 용감한 사람들을 다 죽게 했다고!
야킨카는 기념비 앞에 놓인 장총을 움켜쥐었다.
이제 "도미니카팀"에 남은 건 나 하나뿐이야…
내가 증명할게. 내가, 걔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게.
카헤티 사람들은 거짓말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걸, 전 세계 사람들에게 증명할게.
글로벌 스튜디오
공중 정원 · 환형 선실 구역
2:55 PM
네티아! 요리 씨가 찾아오셨어요.
…!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가 대기실로 들어서자, 네티아는 황급히 몸을 돌려 걷어 올려 두었던 소매를 다시 내렸다.
오, 안녕하세요! 네티아!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네티아는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보세요, 보세요! 이렇게 품위 있는 학생이라니! 우리의 자랑스러운 교육 제도를 대표하기에 딱이지 않습니까! 전 세계에 보여줘야죠.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바로 이런 덕·지·체·미를 고루 갖춘 새로운 시민이라는 걸 말입니다!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손뼉을 쳤다.
과찬이십니다.
곧 무대에 오를 텐데, 네티아가 준비한 훌륭한 연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요리 씨.
솔직히 너무 기대되네요. 어떤 이야기를 할 건지 미리 조금만 알려줄 수 있나요?
아직 원고를 보지 못하셨나요?
그녀는 손끝을 꼭 움켜쥐었다.
불치병을 앓던 한 소녀가 공중 정원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이야기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불치병을 앓던 한 소녀가 공중 정원의 도움으로 새 삶을 찾은 이야기라고 하던데, 맞나요?
아,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의지!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죠. 전쟁 중일지라도, 출신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 그럼 직접 들어보시죠. 이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 모두가 힘을 얻고, 우리 공공 교육 제도의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될 겁니다!
맞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오늘의 주인공, 지상 보육 구역 출신의 우수 학생, 네티아를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막이 열리고,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네티아를 비췄다.
그녀는 관자에 맺힌 땀을 훔치고, 무대 뒤 어둠 속을 마지막으로 흘끗 확인한 뒤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존경하는 내빈 여러분, 그리고 전 세계의 시청자 여러분. 저는 네티아입니다. 방금 소개된 것처럼,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희망과 재생, 그리고… 감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수많은 카메라를 마주한 채, 차분하게 연설을 시작했다.
저는 카헤티 출신입니다. 아딜레 연맹의 변두리에 위치한, 로켓 기술과 집단주의로 알려진 도시죠.
저는 원인 불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되었고, 과거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었습니다. 날카로운 폭음은 제 병을 유발했고, 심장을 누군가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저를 받아준 곳이 카헤티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소박하고 따뜻했고, 저 역시 다른 평범한 소녀들처럼 자유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네티아는 수많은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짓고 있는 정부 대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얼마 전 카헤티에서 충격적인 대폭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직후, 아딜레 영토 내 슈퍼 화산이 폭발했고, 뒤이어 대규모의 퍼니싱 침공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세계 정부가 발표한 "아딜레 대폭발"의 전부 내용입니다.
그 순간, 네티아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요리의 미소가 굳었고, 눈빛에는 경계심과 당혹감이 서렸다.
사상자 수나 폭발 원인은 알 수 없었습니다. 모든 희생과 파괴는 형식적인 보고서 한 장으로 덮였고, 여러분은 그걸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이라고 강요받았습니다!
객석에서 술렁임이 터져 나왔다. 진행자가 나서려 했지만, 네티아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거짓말입니다!
그녀는 팔을 들어 소매 속에 숨겨 두었던 권총을 꺼냈다.
움직이지 마!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이 사람을 쏘겠어!
그녀는 앞으로 뛰어들어 요리의 목을 붙잡고, 총구를 그의 이마에 들이댔다.
경호원! 경호원!!
입 닥쳐. 널 구해줄 사람은 없어.
네티아가 차갑게 시선을 돌렸다. 막 뒤편의 그늘 속에서 두 명의 경호원이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혼란 속에서 그는 네티아의 팔을 보았다. 소매 아래, 정교한 기계 구조가 피부를 대신해 혈육을 감싸고 있었고, 보랏빛 광채가 희미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난 오늘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야. 진실을 되찾으러 왔어!
지금부터, 세계 연합 정부에 직접 묻겠다!
스튜디오 전체가 숨을 삼킨 듯 고요해졌다. 수백 개의 카메라가 말없이 네티아를 향하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아딜레 대폭발"에 관한 모든 진실을 전 세계에 공개해.
왜 카헤티 4호 원자로에서 퍼니싱이 유출됐는지, 아딜레 화산의 분출은 이 사고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싹"은 도대체 무엇인지! 카헤티 연구소는 마르가리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대답해!! 안 그러면, 이 사람을 죽이겠어!!
진실을 파헤치려는 집념은, 결국 너 자신을 불태우게 될 거다. 네티아.
주변이 갑자기 다채로운 빛으로 일렁였다. 기이한 전자음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스튜디오 전체에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누구야? 당장 나와!
우리는 균형의 시대를 밝히는 등불. 인류가 심연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문명을 규제하는 족쇄다.
카메라들이 동시에 섬광을 내뿜으며 잡음을 토해냈다. 이내 서로 다른 색의 격자로 변하더니,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불규칙한 정육면체를 이뤘다.
우리는 의심을 정화하고, 인류를 수호하는 존재, "고탑"이다.
네가 뭐든 상관없어. 방금 내가 말한 대로 해! 안 그러면,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이 사람 머리를 날려버릴 거야!
자, 잠깐! 진정해!
전 세계? 뭔가 오해하고 있군. 여기에는 애초에 "세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만 있을 뿐이다.
네 요구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건 처음부터, 너만을 위해 준비된 "시험"이다.
…시험?
네가 스스로 행한 "개조"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나? 네 복수 계획이 치밀했다고 믿다니, 참으로 순진하군.
한 줄기 빛이 내려와, 그녀의 기계화된 팔을 비췄다.
이른바 세계 표창은 연출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무대를 통해, 네가 인류 문명에 얼마나 충성하고 복종하는지를 검증하려 했다. 말 그대로, "시험"이지.
그리고 너는 통과하지 못했다.
네티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세상이 멀어지며 현실감이 흐려졌다.
...이렇게까지 판을 벌여 놓고, 결국 확인하고 싶었던 게 내가 순순히 고개 숙이는 얌전한 노예인지 보는 거였어?
정정하지. 문명에 대한 충성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내 눈앞에서 3만 명이 죽었어! 그것도 카헤티에서! 그런데 나더러 그 모든 걸 못 본 척하라고?!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빛 너머의 목소리를 향해 외쳤다.
내가 오늘 여기서 벌어진 모든 일을 세상에 폭로해, 너희가 벌인 이 우스운 시험을 전부 까발려도 괜찮겠어?!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네티아는 말문이 막혔다.
문명의 근간을 뒤흔드는 병폐들에 비하면, 단 하나의 비극이 가진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대단한 위업을 이루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너는 절망으로 자신의 재능을 소모하고 있을 뿐이다. 인내도, 책략도 부족해.
네티아. 너는 우리에게, 처음부터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
네티아는 울부짖으며, 남자를 밀쳐내고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눴다.
카헤티 지하에 뭐가 숨어 있길래, 그렇게나 고고한 너희가 이토록 두려워하는 거야?!
알아, 난 전부 알고 있다고! 너희는 장미의 가시를 뽑아내고, 야수를 길들이고 싶어 하지…!
뜨겁고 날 선 것들을 전부 깎아내, 번지르르한 전시품으로 만들어 너희가 자랑하는 평화로운 시대를 꾸미고 싶은 거잖아!
넌 권한이...
봐! 누군가 진실을 좇으려 하면, 너희는 온갖 핑계를 대며 입을 막아 버려! 모두가 스스로 입을 꿰매길 바라는 거잖아!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어!
그녀는 남은 모든 힘을 끌어내, 마치 이 세계를 찢어버릴 것처럼 목 놓아 외쳤다.
난, 그 폐허 아래에 있던 아름다움을 직접 봤어! 그 사람들은 분명, 내 세계에서 살았었고 기억을 남겼어!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붙여도, 그건 한 생명이 분명 존재했었던 사실을 지울만한 이유가 되지 않아!!
그녀는 끊임없이 시도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영혼을 가두고 있던 미로에서 마침내 희미한 빛의 구멍을 뚫어냈다.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며 노예 같은 삶을 살았던 네티아는 희망이 부서진 순간 운명을 향해 최후의 반격을 가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충성을 맹세하길 바래?
그럼 똑똑히 봐. 이게 내 대답이야!!
그녀는 결심을 끝냈다. 자유의지로 방아쇠를 당겨, 이 세계의 고통을 끝내고 이 터무니없는 연극의 마지막 무대를 완성하려 했다.
일그러진 포효가 터지며, 마이크에서 날카로운 음이 찢어지듯 울렸다.
으악!!
연속된 고주파의 울림이 번개처럼 폭발해, 시간을 고정시키고 네티아의 고막을 꿰뚫었다.
꼬리뼈에서 시작된 차가운 경직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번지며, 사지백해를 붙잡고, 조용히 심장을 조여 왔다.
아주 짧은 순간, 네티아의
컥… 윽!!
█▄▆█.
불타는 하늘이 보이더니 여자의 속삭임이 들렸다.
앞… 달려.
뒤돌아... 마.
방공 경보의 날카로운 소리가 뒤틀린 잔향으로 남았다. 건물이 무너지는 굉음과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가늘고 찢어지는 듯한 그 소리는 때로는 귓가에서, 때로는 아주 먼 지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난 과거에 남을 테니, 너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
네티아, 야킨카를 꼭 지켜 줘.
으… 아아아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네티아는 쉰 목으로 비통한 울음을 토해냈다. 몸은 마른 잎처럼 떨리고, 통증은 무릎을 꿇으라 속삭였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거대하고 잔혹한 운명 앞에 맞섰다.
입가에 피가 번질 만큼 온 힘으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차가운 금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안 돼!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고, 세계는 색을 잃고 끝없는 암흑 속으로 가라앉았다.
과거에서 비롯된 고질적인 상처가 영혼에 새겨진 저주처럼 발목을 붙잡고, 그녀를 고통의 심연으로 끌어당긴다.
그녀는 죽음이 이렇게나 값비싼 것일 줄은, 죽음을 이토록 갈망하게 될 줄은 몰랐다.
카헤티 위성 도시
2:58 PM
여러분, 추모식에 앞서 에리 특파원을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 자리에 참석해, 공중 정원을 대표해 순국선열의 업적을 함께 기려주셨습니다.
무덤에 드문드문 박수 소리가 울렸다.
형식은 됐습니다. 곧 다른 회의도 있어서요. 바로 시작하시죠.
남자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 무심하게 손을 내저었다.
묵념은 생략하고 바로 헌화 후 촬영으로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산 위의 바람이 차가운 줄칼처럼, 야킨카의 뺨을 긁고 지나갔다.
거리 330, 풍속 3. 보정…
산비탈 바위 뒤에 엎드린 야킨카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총신에 새겨진 "마르가리타"의 이름을 가볍게 쓸었다.
조준선이 천천히 움직이고, 산 아래의 적막한 거리와 몰려든 군중을 지나, 마침내 한가운데 서 있는 양복 차림의 남자에게 멈췄다.
그는 흰 꽃다발을 안고 기념비 앞으로 걸어갔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그 뒤를 따르며 군중의 맨 앞으로 나섰다.
남자는 계단 위에 올라 몸을 돌려, 조금 전의 냉담함을 거두고 카메라를 향해 얕은 미소를 띠었다.
마르가리타를 위해…
그 순간, 익숙한 얼굴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들은 그녀의 총을 떠받치고, 진실을 가린 채 하늘 높이 걸려있는 이 "낙원"을 향해 조준하게 했다.
그리고, 희생된 모두를 위해!
탕! 총성이 산골짜기에 청명한 메아리를 남겼다.
탄환은 남자의 뺨을 스치듯 지나가, 짙은 회색 화강암을 뚫고 그 뒤에 있는 비석에 박혔다.
총알이 빗나갔다.
…경, 경호원!
경호원 어딨어!! 암살자다!!
산 아래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내 군중은 습격당한 짐승 떼처럼 혼란에 빠져, 각자 살길을 찾아 흩어졌다.
어째서?!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스카우트 사격 대회 우승자인 야킨카가 이런 거리에서 빗맞힐 리가 없었다.
아니야…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거칠게 손가락을 총구 안으로 밀어 넣어 차갑게 패인 강선을 더듬었다.
!
조심해, 네티아!!
역시나, 완벽한 나선이어야 할 강선 한가운데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한 왜곡이 있었다.
쯧!
야킨카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노리쇠를 당겼다. 총알이 장전되고, 머릿속으로 탄도를 다시 계산했다. 조준선은 다시, 군중 한가운데 서 있는 정부 특사를 겨눴다.
아마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들을 위해서라도, 이번엔 절대 실수해선 안 된다.
꼬마야, 왜 저자를 죽이려는 거지?
갑자기 등 뒤에서 연륜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킨카가 뒤돌아보니 한 노인이 서 있었다. 그의 양쪽 기계 팔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당신, 누구예요? 여긴 어떻게 올라온 거죠?!
그저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 된, 떠돌이일 뿐일세.
노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하게 웃었다.
사람을 죽이려면, 그럴 만한 이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공중 정원이 카헤티 사고의 진실을 숨기고 있어요! 그날 있었던 일은, 신문에 나온 게 전부가 아니라고요!
우리는 퍼니싱을 막기 위해 큰 희생을 치렀는데… 그들은 아무도, 우리의 처지를 보려고 하지 않잖아요?!
그녀는 몸을 돌려, 다시 총구를 산 아래의 무덤으로 향했다.
제 가족이 거기서 죽었어요… 카헤티에서 3만 명이 죽었다고요! 그런데 공중 정원은 왜 죽었는지조차 알지 말래요!
그래서, 복수하려는 건가?
모든 희생자를 위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
퍼니싱이 자네 가족을 죽였다면서, 총구는 왜 동포를 겨누고 있지?
놈들도 공범이니까요.
저자를 죽여도 공중 정원은 또 다른 양복쟁이를 보내 자네가 저지른 이번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결국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럼, 계속 쏴서 전부 다 죽여버리면 되겠네요.
야킨카가 차갑게 대답했다.
3만 명의 죽음을 숨길 수 있는 자들이야. 자네가 죽인 한 명쯤, 못 숨길 이유가 없지.
방아쇠를 당겨 봐야 이 세상엔 인간 하나가 줄어들 뿐이야. 그것만으로는 공중 정원도, 퍼니싱도 이길 수 없어.
그만해요. 그런 설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럼 더 쉽게 말하지. 자네가 증오하는 이 세계는 오늘 울린 총성 하나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카헤티에 영원히 남게 된 사람들은, 이런 결말을 보려고 희생을 선택한 거라고 생각하나?
………
분노에 휩싸이는 건 이해한다만, 우린 결국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안 그렇나?
분노에 휩쓸리는 건 가장 저급한 어리석음이야. 이번 달 강제 치료가 그걸 확실히 가르쳐 줄 거다.
감호실 안, 흰 가운을 입은 소년이 네티아의 병상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고, 네티아의 팔에 박힌 기계 구조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확인해 봤는데, 촉각 피드백 지연도 거의 없고 관절 전달 효율도 군용 기준에 가깝더군. 혼자서 만든 건가?
…네.
좋아. 재능은 확실히 있어 보이네.
그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람의 재능은 인류 전체의 자산이야. 낭비하지도 말고, 스스로를 해치는 짓은 더더욱 하지 마.
소년은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 자기 관자놀이를 가볍게 짚었다.
사람은 언제든 자기 목숨을 끊을 수 있지만, 그런 선택은 멍청하거나 겁먹은 자들만 하는 거야. 내 프로젝트엔 그런 평범한 인재는 필요 없어.
조금 있다가 자료 한 묶음이 갈 테니, 일주일 안에 다 읽고 모르는 건 스스로 찾아봐. 시험은 그다음에 볼 거니까.
연구원이 돌아서려는 순간, 몸이 살짝 멈췄다. 가느다란 손이 그의 흰 가운 끝자락을 꽉 붙잡고 있었다.
왜… 왜 카헤티의 진실을 숨긴 거죠?
카헤티에서 금빛 나무를 직접 봤어요. 보고 있으면, 제 병이 나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들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숨 쉬듯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거기엔 마르가리타도 있었고, 야킨카… 그리고 좋은 사람들, 좋은 일들이 정말 많았어요.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죠?
……
연구원은 무겁고 복잡한 표정으로 소녀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제 병도, 카헤티 사람들이 소중하게 지켜온 것들도, 당신들 앞에서는 아무 가치도 없는 건가요?
카헤티 연구소에서 대체 무슨 일이...
연구원은 조용히 네티아의 어깨를 누르고, 입술 앞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린 목적이 같아.
카헤티 연구소는 의식의 바다 연구의 최전선이었어. 나 역시 그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어.
사건 이후, 과학 이사회 소속의 모든 의식의 바다 연구는 긴급 중단됐고, 윗선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굳이 설명 안 해도 알겠지만, 누군가의 힘이 작용했다는 뜻이겠지.
전에… "고탑"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연구원은 살짝 눈썹만 치켜올리고 대답하지 않았다.
……
소녀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마를 짚고 있는 그녀의 눈에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디 불편해?
모르겠어요. 그냥... 좀 피곤하네요.
이제 저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뭘 더 할 수 있을까요…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사방이 다 적 같아요. 제 병은 어떻게 해야 낫고… 그 비밀들은 대체 어떻게 밝혀야 하죠?
………
연구원은 그녀의 텅 빈 눈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뻔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모든 연구자에게 꼭 필요한 아주 중요한 이야기야.
내겐 친구 하나가 있었어. 그녀는 신입들만 보면 늘 이 이야기를 했었지…
예전에 생명의 별에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 한 명이 있었네. 그녀는 성급해하는 젊은이들한테 늘 이 이야기를 들려줬었지.
한때, 모든 현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어. 태양도, 달도, 별도 전부 우리를 중심으로 돈다고 말이야. 그 믿음은 너무나 완벽했고, 의심할 틈조차 없었지. 마치… 자네가 지금 마주한 적처럼 말일세.
프톨레마이오스는 평생을 바쳐 80개의 주전원을 그려냈고,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내 이론은 너무 복잡하다. 진실은 더 단순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관측 기록을 봉인하고, 미래에 이해할 수 있을 누군가에게 맡겼지.
그 원고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먼지 속에서 1,200년을 잠들어 있었어. 그리고 코페르니쿠스가 종이 더미 속에서 그걸 발견했지.
그는 손을 떨며 수없이 계산을 반복했고, 마침내 깨달았어. 하늘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걸.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죽을 때까지 책을 낼 엄두를 못 냈어. 그는 원고를 제자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어. "내가 죽고 나서 공개해. 지금의 세상은 이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
천 년을 건너온 그 원고는 결국 브루노의 손에 들어갔어. 그에겐 스승의 신중함은 없었고, 순교자의 광기만 있었지. 그는 유럽 전역을 떠돌며 이렇게 외쳤어. "보라, 태양이야말로 중심이다! 별들의 세계는 무한하다!"
결국 교회는 브루노를 화형에 처하기로 했어. 로마 캄포 데 피오리 광장의 화형대 위에서 브루노는 처형인에게 말했어. "판결문을 읽는 너희의 두려움이 죽음을 맞이하는 나의 용기보다 더 크구나."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예순의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들었어. 그리고 목성을 도는 네 개의 위성을 처음으로 관측했지. 그 순간, 그는 브루노가 옳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종교재판소는 그 노인을 무릎 꿇게 하고 물었어. 왜 신을 모독했는지, 왜 이런 이단적인 말을 퍼뜨렸는지.
지금 그들이 자네에게 카헤티에 대해 입을 다물라고 강요하는 것과 똑같아.
만약 너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 모든 비난과 의심 앞에서 뭐라고 얘기했을까?
왜냐하면...
저는 직접 봤으니까요.
그래.
네티아, 너도 그들과 같아. 새로운 세계를 목격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심장을 가지고 있어.
그 재능을 썩히지 말고, 지구를 움직여 보는 건 어때.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연구원이 감호실 문을 열자, 부드러운 햇빛이 실내로 스며들었다.
앞으로는 나를 아시모프라고 불러. 네 성적이 충분히 우수하다면, 내가 과학 이사회를 대표해서 네 신원 보증인이 되어주지.
지금은 날을 세우지 마. 억제하고, 숨기고, 힘을 모아. 그리고, 검을 뽑아야 할 그날을 기다려.
언젠가는 반드시 그 폐허 아래 묻힌 진실을 파헤치게 될 테니까.
산기슭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병사들이 총탄의 방향을 따라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그들에게 들키고 말 거야.
난 지상을 떠돌며 약자를 구하는 전장의 의사, 아놀드라고 하네.
여기 남아서 적들과 끝까지 싸울 텐가? 아니면 나와 함께, 자네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구하러 갈 텐가?
그는 한 걸음 다가가 야킨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겁쟁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모욕은 그들보다 더 용감해지는 걸세.
공중 정원이 지상의 사람들을 버린다면, 우리가, 자네가, 그들을 하나로 묶으면 돼.
우리 손으로 이 낡아빠진 별을 움직여 보는 건 어떤가.
………
야킨카가 먼 곳을 바라보자, 강 건너편으로 수많은 웃음과 눈물을 품은 고향이 보였다.
흩어지는 안개 속으로 연맹 문화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었고, 몽롱한 시야 너머로 수많은 사람의 형상이 스쳐 지나갔다.
우는 사람, 웃는 사람, 멋지게 차려입고 잔치를 벌이는 사람, 강철을 두드리며 가정을 꾸리는 사람... 그들은 함께 온전하고도 아득한 풍경을 이루었고, 그것은 길고도 얼룩진 모습이었다.
이 넘실대는 안개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과거로부터 전해진 이 불씨들은 끝없는 추락 속에서 결국 꺼지고 잊혀지게 될 것이다.
불씨는 내가 지필 거야.
야킨카는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젖은 눈가를 닦은 뒤, 천천히 등을 돌렸다.
안녕, 마르가리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