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지휘부
카헤티 중앙 강변
2162년 3월 16일
불타는 도시 위로 침식체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이 소령은 차량을 몰아 두 소녀를 강변 임시 거점에 내려주고, 의료 인원에게 인계를 마쳤다.
나루터에는 난민이 넘쳐났고, 질서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는 한참을 비집고 들어가서야 경계선 안쪽 지휘소에 도착해, 무너진 지휘 체계를 떠맡을 수 있었다.
현재까지 대략 집계된 바로는, 약 3만 명의 시민이 강변에 도착했습니다. 다만…
방금 해군 쪽에서 보고가 들어왔는데, 마지막 순양함 "스파르타쿠스호"의…
최대 수용 인원은 1,200명이라고 합니다.
이럴 수가…
……
파블로프 연대장은 깊게 숨을 내쉬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천막 밖에서는 병사와 난민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마를 거칠게 문지르자 땀방울이 낡은 나무 탁자 위로 떨어졌다.
그는 지금 생애 가장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연대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라…
내 시간은 진작에 다 써버렸어.
뜨겁게 달아오른 담뱃재가 손가락 위로 떨어졌고, 그는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방금, 마침내 공중 정원과 통신이 연결됐어. 그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5분 동안 내게 설명하더군. 카헤티 4호 원자로 아래에, 핵무기보다 더 위험한 "폭탄"이 숨어 있다고.
폭탄 말입니까? 그게 이번 폭발과 관련이 있습니까?
나도 똑같이 물었지.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어.
*, 죄송합니다만, 당신에겐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그는 담배꽁초를 탁자에 거칠게 눌러 껐다.
기억하나? 아딜레 연맹이 원자로를 짓겠다고 했을 때, 과학자랑 언론이 떠들어대다 결국 "유언비어"로 정리된 이야기들?
이제 와서 보니, 그 "유언비어"는 * 전부 사실이었어.
그는 손톱으로 재 묻은 탁자를 하얗게 긁으면서, 한 글자씩 끊어 말했다.
4호 원자로는 영점 에너지 엔진이랑 똑같아.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개 형태의 퍼니싱은 멈추질 않아. 지금 끄지 않으면, 퍼니싱은 계속 퍼져나갈 것이고… 두 달도 안 돼서, 공중 정원 놈들은 지구 전체가 핏빛으로 덮이는 꼴을 보게 되겠지.
지구를 멸망시킬 도화선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발밑에서 타고 있다고, 이해했나?
...연대장님, 수습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겁니까?
파블로프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오른손은 여전히 허리띠 가장자리에 얹힌 채였다.
아리샤. 연맹 깃발에 카헤티를 뭐라고 적어놨지?
노동자와 강철의 도시라고 적혀있습니다, 연대장님.
그게 바로 "보완책"이야. 세계 정부는 이 도시가 그 약속을 이행하길 요구하고 있어.
그는 고개를 저으며, 힘 빠진 웃음을 흘렸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제가 다시 한번 지원 요청을...
이 소령, 이제부터는 자네가 연대장일세. 퍼니싱이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두지 말게나.
철컥.
파블로프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은빛 권총을 뽑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댔다.
미안하네. 다들…
자네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어.
그날이 되어서야, 이 소령은 깨달았다. 권력이란 것도, 사람을 길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막 폭격이 끝난 강변, 곳곳에 파인 탄흔엔 피가 고여 있었고, 낮게 깔린 안개 속에서 부상자들의 신음과 폭음이 뒤엉켜 있었다.
그는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군모를 바로 고쳐 쓰고, 떨리는 발로 3만 명의 생존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확성기를 들었다.
…시민 여러분.
피와 먼지로 뒤덮인 시선들이, 말끔한 제복 차림의 소령에게로 향했다.
방금 보고를 받았습니다. 카헤티 4호 원자로 아래에 정체불명의 물질이 보관돼 있고, 그것이 지금도 퍼니싱 안개를 만들어내면서 끝없이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대로 두면 분명 전 지구적 재앙으로 번질 것입니다.
저희는 현재, 이 도시를 가로질러 되돌아가 그걸 꺼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소령의 말에 술렁이는 인파가 잿빛 파도처럼 천천히 밀려나며 자연스레 그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소령의 등 뒤, 지평선은 피처럼 붉었고 하늘 전체는 불타듯 흔들리고 있었다.
퍼니싱이라고요? 저는 원자로가 수십 년 동안 운행되어 오는 걸 직접 봤습니다. 말이 됩니까?
어딘가에서 의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제 계급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정보라며 침묵했습니다.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3대대 최후 방어선마저 무너졌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
소령은 잠시 시선을 떨구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눈앞의 군중을 향해 다시 시선을 들었다.
현재 여기엔 3만 명이 모여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지막 배는 1,200명밖에 태우지 못합니다.
이 소령의 말에 순간 정적이 휩싸였다.
얼어붙은 공기, 서로 말을 잃은 시선들, 아이의 손을 꼭 쥔 부모들, 그리고, 갈피를 잃은 얼굴들…
침묵... 이 소령이 가장 우려하고 두려워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금 문제는,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가 아닙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인류 전체는 저희와 함께 끝나게 될 것입니다.
소령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죽은 듯 가라앉았지만 분명 살아 있는 눈동자들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이 떨리고 소리가 저절로 낮아졌다.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피한다. 이 소령도 수년간의 군 생활을 겪으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황금시대의 마지막을 누린 사람들이, 어찌 자기 목숨을 쉽게 내놓겠는가.
이번 작전에 참여하신 분께는 10만 신용 포인트를 지급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소령은 은장식이 달린 군용 칼을 높이 쳐들었다. 연대장의 권력을 상징하는 금테 문장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작전에 참여하는 본인과 그 가족은, 오셀럼이나 공중 정원으로 이주할 권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더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되돌아가서,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 모든 부와 명예가 여러분의 것이 될 겁니다!
공중 정원의 허가는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수만 명에게 죽으러 가라고 명령할 다른 방법이 이 소령에게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쥐어짜 내, 망설이는 이들의 용기를 끌어내야만 했다.
………
하지만 왜 그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이건 군단의 지휘도, 그리고 이건 제 훈장들입니다. 가장 먼저 되돌아가는 분께 전부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소령님, 그 물건을 어떻게 끄는지 아십니까?
대열 맨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길을 비키자, 앙상한 체구의 남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에게는... 알 권한이 없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는 머리 위의 안전모를 바로 고쳐 썼다.
우린 노동자입니다. 저 거대한 기계를 만든 게 우리라면, 끄는 것도 저희 몫입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
이 소령은 눈을 크게 뜨며, 마치 마지막 희망을 붙잡은 사람처럼 황급히 가슴의 훈장을 떼어냈다.
이 훈장… 그리고 이것도, 전부 드리겠습니다!
그건 아이들에게 주십시오, 소령 동지.
그레고리는 이 소령의 호의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그의 곁을 지나갔다.
이 돈 때문에 죽으러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구하기 위한 거라면, 목숨을 걸 사람은 있지요.
동지들, 저 먼저 가겠습니다.
그레고리는 미소를 지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불타는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차갑게 울부짖던 바람이 잠잠해지고, 그의 모습은 폐허 속 작은 점으로 사라졌다.
그 미약한 불씨 하나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눈 속에서 눈 부신 빛으로 번져 나갔다.
그레고리 혼자 폼 잡게 둘 수는 없지!
자동차 정비반! 참여 인원이 많을수록 좋다! 우리가 조립반한테 진 적이 있나?!
나! 빅토르·프롤레타리! 나도 돌아간다!
그는 소령 앞에 멈춰 서서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나, 고급 기술자 아나톨리! 구룡에서 퍼니싱과 싸운 적도 있다! 나도 간다!
겐나디! 난, 연구소 환경미화원이다!
목소리들이 하늘로 울려 퍼지고, 작디작은 용기들이 황량한 대지를 흔들었다.
유라 이바노비치, 나도 돌아간다.
아빠… 어디 가요?
일하러, 엄마가 저녁밥 다 지을 때쯤이면 돌아올 거야.
그는 옅게 웃으며 안전모를 벗어, 딸의 머리 위에 조심스레 씌워 주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들은 어둑한 세상 속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모여, 인류를 집어삼키려는 적을 향해 거세게 밀고 나갔다.
당신들...
이 소령은 멍하니 멈춰 서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카헤티 위수 병단! 전체 앞으로!
우렁찬 명령과 함께, 수많은 암녹색 그림자들이 일제히 한 걸음 옆으로 나서며 대오를 정렬했다.
2중대, 3중대는 전멸했다! 이제 남은 건 우리뿐이다!
카헤티의 시민들은 이미 선택을 끝냈다! 이제 우리가 시험대에 오를 차례다!
전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카헤티 위수 병단! 그들을 실망시킬 건가?!
아닙니다!!!
내일 태양이 떠오르면, 세계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카헤티! 이 도시에 뒤돌아선 비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원 차렷! 이것이 카헤티 위수 병단 지휘부의 마지막 명령이다!
카헤티 시민들이 향한 그 방향을 따라…
전진!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수많은 가슴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것은 무너진 제방에서 쏟아지는 격류였고, 포효하는 폭풍 같았다.
다들…?
이 소령은 흐름을 거스른 채 한가운데에 멈춰 서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들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칼날과 같았다. 잠깐 스쳐보기만 해도, 가슴에서 살점을 도려내는 느낌이 들어,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막혔다.
아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손에 쥐고 있던 훈장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반짝이던 금속은 곧 수많은 군화에 짓밟혀 진흙 속에 묻혀 버렸고, 더 이상 그 위엄과 빛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거대한 사명감이 이 소령의 마음을 강타했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문득 전우들의 대열에 합류해, "영웅"처럼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하지만 막 발을 떼려는 순간, 멀리 고향에 남겨 둔 어머니의 얼굴이 스치고,
사관학교 시절, 총기가 폭발하며 온몸을 찢어 놓던 그 고통이 떠올랐다.
...안 돼.
이 소령은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견딜 자신이 없었다.
억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 그의 곁에 멈춰 서서 어깨를 붙잡았다.
전에 제 잔소리가 지겹다고 하셨죠. 하지만 오늘만큼은…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참모는 웃으며 상대의 젊은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우린 참 눈부신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예전, 황금 같던 세상에선 겁을 냈다고 손가락질받을 일도, 타인의 삶을 의심할 이유도 없었죠.
아마 하늘조차 그 순진함이 못마땅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차갑고 잔인한 재앙을 우리 머리 위에 들이부은 거겠죠. 세상이 권력과 돈을 더 사랑하게 만들면서요.
그래도 전 믿습니다. 시간은 결국 앞으로 흐르고, 이 시대 역시 언젠가는 과거의 먼지로 남을 겁니다.
카헤티의 땅은 얼어붙은 황무지였지만, 우리는 결국 철도를 깔았고 로켓을 쏘아 올렸습니다. 퍼니싱이 문명의 모든 것을 파괴했지만, 인류는 이를 악물고 여기까지 버텨 왔죠.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미래는 오늘 살아남은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살아남으세요. 살아서, 아이들에게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상에 전해 주십시오.
살아남으세요, 더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서요.
2162년 3월 16일, 카헤티 4호 원자로에서 퍼니싱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붉은 안개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동자와 병사 28,812명이 스스로 흐름을 거슬러, 치명적인 오염 구역으로 되돌아갔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귀환하지 못했으며, 방사능 구역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 발생 3시간 14분 후, 4호 원자로는 완전히 멈췄고 붉은 안개는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 위에서 생존자 1,413명이 강 건너 위성 도시로 대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선열들이 피와 살로 쌓아 올린 이 강가에 서 있다. 매일의 아침은 그들의 무게를 짊어진 채 시작된다.
그들이 남긴 불씨는 이제 우리의 손에 있다. 생명은, 카헤티에서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될 것이다."
— <카헤티 무명용사 기념비> 발췌
무명용사 기념비 앞
카헤티 위성 도시
묵념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질서 있게 이동해 주십시오…
낮고 쇠잔한 목소리가 비탄에 잠긴 사람들을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
……
눅눅한 흙냄새와 꽃향기가 뒤섞인 공기가 어깨를 짓눌렀다. 시간마저 숨을 죽인 듯, 모든 움직임이 느리고 무거웠다.
창백한 무덤에는 수많은 그림자들이 모여 회색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숲을 가르며 이별을 미루는 얼굴들 위로 스쳐 지나갔다.
창백한 세계 한가운데 몇 개의 기념비가 우뚝 솟아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라보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카헤티의 폐허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 "노동자와 강철의 도시"라 불리던 곳은 지금도 붉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소령님, 난민 주둔지 확장이 순조롭지 않습니다. 현지 주민들이 또 소란을 일으켰고 부상자도 나왔습니다.
인파의 끝자락에서, 코트를 걸친 장교가 고개를 들었다.
굴착기를 투입해 낡은 건물을 모두 철거해. 필요시 발포해도 좋다.
…소령님?
기념비의 그림자가 그의 몸을 가리고 있었다. 불에 그슬려 형체가 흐릿해진 얼굴 반쪽만이 햇빛 아래 드러나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조치다. 즉시 실행하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알겠습니다!
병사가 달려 나간 뒤, 이번엔 다른 방향에서 또 한 명이 급히 뛰어왔다.
보고드립니다! 공중 정원 사고 조사단이 한 시간 뒤 철수 예정입니다!
결과는?
…예전과 같습니다. 추후 통보하겠답니다.
알겠다. 나중에 가보지.
얼마나 지났을까? 추모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이 소령은 어깨의 먼지를 털어내고 인파를 거슬러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기념비 아래에서, 마침내 두 개의 작은 뒷모습을 발견했다.
……
두 사람은 말없이 서서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소령도 시선을 따라 내려갔다. 수천 개의 이름 사이에서도 유독 그 이름이 도드라져 보였다.
…교관님?
어떻게 됐어요? 우리 편지를 그 사람들한테 전달했나요?
전달했다. 너희가 쓴 세 번째 편지와 위성 도시 주민 천여 명이 서명한 탄원서까지 전부 내 손으로 직접 제출했어.
뭐라고 하던가요? 그 폭발 사고,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이 소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왜요?
정부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이건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사정은 무슨 얼어 죽을 사정이에요?!
야킨카는 주먹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뉴스에서 뭐라고 지껄이는지 보셨잖아요? 카헤티가 무슨 퍼니싱 침공을 받았다느니... 개소리잖아요! 퍼니싱은 밖에서 온 게 아니라고요!
조사단이라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숨기기만 하고, 전 세계 누구도 여기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조차 없잖아요!
이러면 마르가리타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개죽음당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진실을 말해주는 게, 그게 그렇게 어렵대요?!
분노에 휩싸인 야킨카가 떨리는 손으로 이 소령의 멱살을 붙잡았다. 울분 섞인 목소리가 무덤 위로 울려 퍼졌다.
그래서 더더욱, 네가 이해해 줬으면 한다. 야킨카…
소령은 힘을 조금 주어 야킨카의 손을 가볍게 떼어냈다.
카헤티 위성 도시는 수많은 목숨 위에 세워진 곳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 그들에게 빚을 진 거나 다름없어.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남은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지금 위성 도시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세계 정부뿐이다.
...기댈 곳이요? 폭발 났을 땐 다들 어디 있었는데요? 그리고 지금 해명이 필요할 땐 또 어디 처박혀 있냐고요?!
진정해, 야킨카!
네티아가 한발 먼저 나서서 소령에게 달려들려는 야킨카를 붙잡았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카헤티는 지구 위의 점 하나에 불과하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누가 우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겠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우리가 입을 다물길 바라고, 여기서 벌어진 모든 일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어 해. 우리에겐 침묵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
나는 반드시 희생한 자들에게 진실을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위성 도시의 미래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을 먼저 살펴야 한다.
웃기지 마요! 세계 정부의 개노릇이나 하면서 잘도 떠드네요! 퉤!
이 소령은 여전히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때 그의 얼굴에 늘 서려 있던 자부심은 시간 속에서 이미 빛을 잃은 듯했다.
...한 가지 더 전할 말이 있다.
세계 정부 산하 청소년 육성 센터에서 모집 인원을 늘렸다. 소형 보육 구역마다 한 명씩이다.
며칠 뒤 시험이 열릴 예정이고, 1등을 하면 공중 정원으로 갈 자격이 주어진다.
...공중 정원으로요?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면 지상 출신 학생들은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았다. 전 세계 생중계에서 공식 표창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
하, 그게 뭔데요? 적선이라도 베풀겠다는 건가요? 누가 그런 걸 원한대요?!
위성 도시는 이미 최전선 핵심 전투 구역으로 지정됐다. 앞으로 인구 이동은 엄격히 제한될 거고, 난 이곳에 남을 각오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야킨카, 네티아. 너희들은 다르다. 더 희망이 있는 곳으로 갈 자격이 있어.
...신중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 소령은 눈앞의 기념비를 힐끗 보며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차갑게 돌아서서 쓸쓸한 거리로 멀어져 갔다.
쳇, 시험은 무슨. 한 구역에 한 명? 자기들이 무슨 지상낙원에 사는 줄 아나?
전교생을 다 모아야겠어. 이번 시험은 전부 보이콧이야. 백지를 내게 해야 해! 카헤티 사람들은 이딴 걸로 매수 안 된다는 걸 보여줘야지!
……
네티아, 왜 그래? 아까부터 왜 멍하니 있어?
아…? 응.
네티아는 무의식적으로 왼쪽 손목의 팔찌를 만지작거렸고, 눈동자에는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내가 한 말 들었어?
지금 당장 애들한테 알리러 가자. 다 같이 뭉쳐서 이번 시험을 거부해야 해.
네티아가 갑자기 야킨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세계 정부가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안다면, 카헤티엔 그딴 우주선 티켓을 탐내는 사람이 없다는 걸 똑똑히 알려주자.
구룡이든 대서양이든, 닿을 수 있는 모든 경로로 카헤티의 진실을 퍼뜨리는 거야. 세계 정부가 조사 보고서를 공개할 수밖에 없게 몰아붙이는 거지.
그 말을 들은 야킨카가 네티아의 손을 다시 꽉 잡았다. 눈동자에는 다시금 불꽃 같은 의지가 타올랐다.
맞아! 이번 시험부터 시작하는 거야. 조금씩 세계 정부가 입을 열게 만들어서,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 세계에 보여줘야지!
그래, 이번 시험부터 시작이야.
환호하는 친구 앞에서 네티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 입가가 미세하게 떨리고, 손끝이 흔들리며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야킨카는 복수를 준비한다는 생각에 취해, 친구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틈을 타 네티아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마르가리타가 야킨카에게 남긴 팔찌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쓰다듬었다.
……
거의 매일 해 질 녘이면, 네티아와 야킨카는 함께 추모비 앞에 섰다. 그리고 다른 세계에 있는 마르가리타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마르가리타, 내일이 바로 "시험"일이야. 우리는 반드시 세계에 증명할 거야. 카헤티 사람들의 존엄과 기개를, 반드시!
그리고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미안해, 마르가리타…
저무는 노을 아래, 야킨카는 술렁이는 인파를 밀쳐내고 녹슨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치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한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녀는 무덤의 문을 걷어차듯 열어젖히고, 절규했다.
네티아!!!
!
야킨카는 거의 몸을 던지듯 달려들어 네티아의 옷깃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짝! 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티아의 왼쪽 뺨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왜?!!
다시 한번 손이 휘둘러졌다. 네티아는 피할 수 있었지만,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받아들일 뿐이었다.
크윽!!
그사이 뒤따라온 사람들도 하나둘 도착해, 무덤 바깥을 겹겹이 둘러싸고 이 광경을 지켜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야킨카는 네티아의 옷깃을 붙잡아 거칠게 끌어올렸다. 붉게 달아오른 손바닥이 다시 내려치려다, 망설이듯 공중에서 멈췄다.
말해! 도대체 왜 그랬어?!
...난, 공중 정원으로 가야 해.
왜?! 왜 하필 그런 곳에 가려는 건데?!
야킨카는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허공에 멈춰 선 오른 주먹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났다.
하룻밤 사이에 수만 명이 사라졌는데, 그 인간들은 단 한 마디 진실도 말해주지 않았어! 마르가리타는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죽었다고!
……
네티아는 눈을 감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거였어. 진작에 알아봤어야 했는데!
넌 처음부터 카헤티 따윈 안중에도 없었어! 그리고 마르가리타도 신경 쓰이지 않았던 거야!
구해내기는커녕 날 막아서서... 마르가리타를 혼자 거기에 두고, 혼자 죽게 만들었어!!
왜?! 죽는 게 무서웠어?!
아니야…
쏟아지는 비난 앞에서 네티아는 코를 훌쩍였다. 입술이 떨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널 잘못 봤어! 넌 절대 카헤티 사람이 아니야!!
야킨카는 네티아를 붙잡고, 그녀의 손목에 찬 팔찌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안 돼. 건드리지 마!
가느다란 흰 끈이 끊어지며, 보라색 구슬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
시간이 멈춘 듯했다. 네티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떨어진 구슬을 멍하니 바라봤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주워,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애틋하게 두 손으로 감쌌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네티아를 내려다보는 야킨카의 눈에 경멸이 가득했다.
……
잠시 후, 네티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일어서서 허망한 눈빛으로 뒤에 모여든 사람들을 바라봤다.
소란을 들은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고, 그 뒤로는 세계 정부를 상징하는 정장 차림의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입술을 꽉 깨문 네티아는 고개를 돌려 야킨카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다.
네티아는 손안의 구슬을 꽉 쥐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네 말이 맞아, 야킨카.
우린 애초에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었어.
네티아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쳐냈다.
난 처음부터 너희 소꿉놀이 따위엔 관심이 없었어. 매일 똑같은 그 지루한 영웅 놀음이나, 너희의 그 뻔한 설교도 지긋지긋했어.
뭐라고…?!
야킨카가 눈을 부릅뜨고 다시 달려들려고 했지만, 때마침 도착한 병사들이 그녀를 붙잡았다.
난 카헤티에서 단 하루도 즐거운 적이 없었어. 이곳의 모든 게 싫었어. 너희들은 내 병을 고치지도 못했잖아!
네티아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난 더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있어! 더 발전하고 희망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군중 속에 서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를 바라봤다.
……
저, 공중 정원에서 살고 싶어요.
하.
남자는 안경을 고쳐 쓰며, 군중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기념비 아래에 서 있는 소녀를 흥미롭다는 듯 내려다봤다.
네가 그 "1등"이구나?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네티아는 차갑게 대답했다.
흠... 패기 있군.
남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널 데려갈 비행기가 오늘 밤 도착할 거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해.
이 배신자! 네티아!!
야킨카는 병사들에게 붙잡힌 채 몸부림치며, 점점 멀어져 가는 네티아의 등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
네티아는 발걸음을 멈추고 등 뒤에서 쏟아지는 저주를 묵묵히 들었다.
고개를 살짝 돌려 입을 연 네티아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굳게 다물고 다시 앞을 보았다. 수많은 경악과 경멸의 시선이 네티아를 향하고 있었다.
이 역사적인 이름들이 새겨진 무덤을 벗어나는 순간, 그녀는 그토록 원하던 "새로운 삶"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카헤티 사람들의 비난과 질타를 영원히 짊어진 채, 현실과 타협한 첫 번째 "배신자"로 남게 될 것이다.
…안녕.
네티아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무겁고도 긴 첫걸음을 내디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