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 AM
2162년 3월 16일
중앙 방송… 점퍼선… 찾았다.
한번 크게 터뜨려 보자고!
좋은 아침이야, 카헤티!
이른 아침, 대부분의 카헤티 시민들이 아직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시간, 날카롭고 다급한 경보음이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며, 건물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각 소대, 즉시 집합!
로켓 공장 보안 시스템에 이상이 발생했다! 퍼니싱 침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군과 협력해 현장 통제에 나선다!
시간이 없다! 전원, 지금 바로 출동한다!
네티아가 303호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지만, 마르가리타의 침상은 지나치게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고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르가리타…!
기숙사를 뛰쳐나온 네티아는 계단을 두세 칸씩 성큼성큼 뛰어 내려갔고, 곧장 카헤티 연구소 방향으로 전력 질주했다.
마침 그때, 로켓 공장에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보안 인력이 분산된 틈을 타, 네티아는 조용히 차단문을 넘고 단결 광장을 가로질러 연맹 문화 기념탑 바로 아래로 숨어들었다.
눈앞을 가로막은 것은 빈틈없이 닫힌 합금 차단문이었다. 왼편에는 검은색 안면 인식 스캐너가 설치되어 있었다. 네티아가 앞에 서 보았지만, 화면에는 곧바로 "접근 권한 없음"이 떠올랐다.
주위를 빠르게 훑던 네티아의 시선이 벽 위쪽, 눈에 잘 띄지 않는 환풍구 그릴에 고정되었다.
……
먼지와 녹 냄새를 참으며 몇 분을 기어간 끝에, 네티아는 어둠의 끝자락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릴 틈새로 새어 나온 차가운 형광이 그녀의 뺨 위로 줄무늬 그림자를 드리웠다.
네티아는 조심스럽게 그릴을 뜯어내고, 조용히 아래로 내려가 차갑고 어두운 공간에 발을 디뎠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개를 들자, 거대한 실험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희미한 조명 아래, 굵직한 케이블들이 혈관처럼 바닥을 타고 뻗어나가 수십 개의 캡슐형 챔버와 연결되어 있었다.
챔버들은 둥글게 배치되어 있었고, 정중앙에는 담청색 투명 구체가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체안에는, 피부가 창백한 한 소녀가 떠 있었다.
마르가리타?!
네티아는 동공이 급격히 수축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
옅은 푸른 배양액 속에서, 소녀는 눈을 꼭 감은 채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린 상태로 미동도 없이 떠 있었다.
더 기이한 것은, 노출된 어깨와 목, 팔에 회갈색 케이블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었다. 번뜩이는 전자 입자들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세포처럼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와 케이블을 따라 외부 장치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네티아는 천천히 구체에 다가가, 눈앞의 익숙한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봤다. 케이블이 연결된 피부는 그대로 드러나, 희미한 금속광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순간, 네티아의 머릿속에 책에서 봤던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구조체?
저벅... 저벅...
갑자기, 네티아의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
그녀는 즉시 입을 틀어막고 몸을 낮춰, 실험실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니까 "수술"은 본인이 원해서 한 거라고?
네. 사전에 모든 위험 요소를 고지했고, 지원자는 이틀 전에 카헤티에 도착했습니다.
이 소령은 흰 가운을 입은 남성과 함께 천천히 실내로 들어왔다.
무슨 소리야?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건가?
…소령님. 본래 이건, 소령님이 관여하실 사안이 아닙니다. 제 선에서 해드릴 수 있는 얘기는 다 했습니다.
(수술... 목숨이 위험해?)
대화를 전부 들은 건 아니었지만, 단편적인 말들만으로도 충분히 불안감이 몰려왔다.
마르가리타가 자신과 야킨카에게 했던 말들이 떠오르며,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걱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마르가리타를 이 강철의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지금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네티아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구체의 강화 유리에 손바닥을 댔다.
………
그 순간, 마치 전류가 흐른 듯 소녀의 몸이 떨려왔다.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몽롱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마르가리타…?
소녀의 시선이 당황한 네티아의 얼굴을 스치더니, 이내 네티아의 손목에 머물렀다.
노란색과 보라색, 두 개의 팔찌가 실험실의 냉광 아래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
마르가리타는 미세하게 입술을 움직이며, 케이블에 얽힌 팔을 들어 네티아의 손바닥을 향해 천천히 손가락을 뻗었다.
차갑고 투명한 장벽을 사이에 둔 채, 두 사람의 손바닥이 겹쳐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웅——
?!
거대한 격류가 네티아의 의식을 덮쳐, 마치 폭풍처럼 눈앞의 모든 색을 삼켜 버렸다.
포효하는 바람과 갈라지는 어둠, 네티아의 몸 위로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내려 그녀를 완전히 감쌌다.
몇 초 후, 격류는 마침내 잦아들었고, 네티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눈부신 황금빛 세계가 그녀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여기야.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참나무 아래, 한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얼핏 보았던 그 여자였다. 이번에는 드디어 그녀의 목소리를 똑똑히 듣고 얼굴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네티아는 멍하니 그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어느새, 이렇게나 컸구나.
여자는 네티아의 곱슬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네티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어느새,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말의 의미를 곱씹으려는 순간, 눈물이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져나왔다. 시야가 따끔거릴 만큼,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왜… 눈물이 나는 거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건, 가슴 깊은 곳이 무언가로 가득 차오르며, 잃어버린 기억을 깨우고, 결손된 영혼을 메워 주고 있었다.
이 찬란한 참나무 아래에 서자, 마음속의 병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 야킨카야?
네티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 여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마르가리타가 조용히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 아니다! 네티아네! 미안, 미안!
마르가리타는 얼굴이 순식간에 귀까지 붉어지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
네티아의 시선은 마르가리타의 눈길을 따라 내려가 자신의 손목에 멈췄다. 그곳에는 두 개의 구슬 팔찌가 익숙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문득, 마르가리타와의 두 번째 만남이 떠올랐다.
우리 친구 하기로 했었는데, 기억 안 나?
네티아는 손을 들어 연보랏빛 팔찌를 보여 주었다.
아! 네티아구나!
마르가리타… 너 설마, 팔찌로 우리를 구분하는 거야?
……
마르가리타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미안.
잠시 침묵이 흐르고, 마르가리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입술을 꾹 다문 마르가리타의 표정에서 망설임은 사라지고 후련함이 엿보였다. 마침내 어떤 결심을 굳힌 듯한 모습이었다.
나한테… 조금 특별한 병이 있어. 아무리 소중한 사람도, 아무리 친한 친구도, 잠들었다 깨면… 얼굴을 잊어버려.
마르가리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 걸음 다가와, 네티아의 손목을 살며시 붙잡았다.
…언제부터 그랬어?
너랑 같아. 눈을 뜨고, 카헤티에 온 첫날부터 그랬어.
다른 점이 있다면, 난 구조체야. 어른들 말로는, 내 몸 안에 "싹"이라는 게 있어서 이렇게 된 거래.
싹?
네티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의사 선생님들이 사진도 보여 줬어. 반짝반짝 빛나는, 주먹만 한 작은 묘목이었어.
그게 내 몸 안에서 자라면서 의식의 바다를 삼키고, 기억 모듈을 망가뜨린 거래... 그래서 너희 둘을 알아보지 못했던 거야.
그래도 나 나름의 방법은 있었어. 너희 둘한테 특별한 팔찌를 만들어 줬잖아. 팔찌의 색깔만 보면 너희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떠올릴 수 있거든.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네가 여기에 있다는 얘길 듣고, 무작정 들어왔어. 야킨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일부러 나와 떨어졌고.
네가 거대한 구체안에 갇혀 있는 걸 봤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방금 누군가 "수술"이라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널 해치려는 거야?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다들 정말 상냥한 분들이야. 그리고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야.
네티아, 내 앞에서 두 번이나 쓰러졌던 거 기억나?
첫 번째는 야킨카가 "몰리간"을 뺏어갔을 때였고.
두 번째는, 우리가 같이 로켓 공장을 지킬 때였지.
그때 어떻게 깨어났는지 기억나?
난 마르가리타야. 또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눈을 뜨자, 낯선 소녀가 미소를 띤 얼굴로 땀에 젖어 있는 네티아의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왼쪽 뺨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쪽을 바라보자, 마르가리타가 손을 뻗어 네티아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고 있었다.
깼어, 네티아?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네티아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병을 이겨 내고 깨어날 때마다, 언제나 마르가리타가 곁에 있었다.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날 때마다, 마르가리타의 손길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싹 영향 때문에, 나와 접촉한 사람은 누구든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잠시나마 심리적인 병을 극복할 수 있게 돼.
그뿐만이 아니라, 퍼니싱을 막아낼 힘도 부여해 줘. 이렇게 말이야…
마르가리타가 손을 들자, 금빛 파편들이 중력과 시간에서 벗어난 듯 떨어지지 않고, 손바닥 위에 고요히 머물렀다.
카헤티 방어전 때, 침식체가 너에게 덮쳐 왔고, 내가 네 앞을 막아서다가 목이 붙잡혔었지...
그 뒤에도 네 몸은 멀쩡했어.
마르가리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네티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후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에 몰래 네 책장을 보다가 어느 책 첫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적혀있는 걸 봤어. "모든 재능의 선물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헤헤, 이렇게 어려운 말을 기억한 건, 나도 그때가 처음이야.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들어 높이 빛나는 황금빛 거목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싹은 점점 더 내 기억 모듈을 잠식해 갈 거야.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는 점차 잊게 되겠지…
카헤티도, 너희도,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그다음엔, 모든 게 처음부터 시작돼. 과거를 전부 잊은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거야.
……
어른들이 그랬어. 이 "싹"을 제거할 순 있지만, 이미 내 몸에 깊이 뿌리를 내린 상태라 만약 제거하게 되면… 나도 함께 죽을 수 있대.
그래서 모험을 하기로 한 거야? 무섭지 않아, 마르가리타?
무서워. 하지만…
너희를 잊어버리는 게 더 무서워.
은빛 곱슬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맑게 갠 하늘 아래에서, 마르가리타의 목소리는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능력 말이야. 난 이게 제일 쓸모없는 "초능력"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날, 널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어, 네티아.
마르가리타는 다시 네티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네티아 덕분에 심리 질환에 관한 책을 잔뜩 빌려 읽었고 그때 알게 됐어. 이 세상엔 과거의 그림자와 싸우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난 그저, 장래 희망이 파티시에인 아이일 뿐이었어. 야킨카처럼 용감하지도 않고, 네티아만큼 똑똑하지도 않아.
하지만 이 힘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퍼니싱에 맞설 수 있는 이 작은 묘목이 나보다 강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리고 언젠가 거대한 나무로 자라서, 그늘 속에서 버텨 온 생명들을 지켜 줄 수 있다면… 그리고, 너를 지켜 줄 수 있다면…
마르가리타는 네티아의 왼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 위에 천천히 얹었다. 그 안에서, 따뜻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난 기꺼이 해볼 거야. 설령 그 대가가... 사라지는 것이라 해도 말이야.
마르가리타! 이 바보야!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어?! 우린 가족이잖아!
가족이라서… 더 잊어버리는 게 무서웠어.
지금까지 내 정체를 숨긴 건 미안해, 네티아. 하지만 너희들이 알게 되면…
잘 들어, 마르가리타. 네가 인간이든 구조체든 우리는 상관없어.
네티아는 마르가리타의 말을 끊고 다급하게 외쳤다.
우리는 네가 무사하길 바랄 뿐이야. 그리고 난 반드시 널 집으로 데려갈 거야.
나머지 골치 아픈 문제는... 가족이라면 알 권리가 있어. 그러니 야킨카와 같이 천천히 얘기하면 돼.
네티아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마르가리타에게 내밀었다.
같이 집에 돌아가자. 응?
……
마르가리타는 눈을 깜빡이며 네티아의 손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콰앙——
균열이 하늘을 가르며 번개처럼 터져 나왔다. 금빛으로 빛나던 창공이 찢어지고, 그 틈으로 흉측한 검은 구멍이 벌어졌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황금빛 환영은 산산조각 나고, 균열 속에서 폭풍이 몰아치며 쏟아져 나왔다.
마르가리타!
강렬한 충격에 네티아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타오르는 열풍 속에서, 그녀는 목이 터져라 외치며 옆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뒤틀린 빛이 다시 모여드는 순간, 연구소의 통유리가 폭음과 함께 산산이 깨졌다. 거대한 불덩이가 하늘로 솟구치며 눈부시게 끓어오르는 빛을 사방으로 흩뿌렸고, 아침 해를 가릴 만큼의 광휘가 세상을 불태우듯 덮쳐 왔다.
그와 동시에, 부서진 유리 파편이 우박처럼 쏟아지며 네티아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방금 느꼈던 가슴 벅찬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익숙하고도 거대한 허무함이 폭발의 연쇄 속에서 되살아나 네티아의 심장을 옥죄었다.
윽… 아!
낯선 여자, 불타는 하늘과 거대한 나무… 환영들이 다시 한번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엎드려!!!
송곳 같은 유리 파편들이 공기를 가르는 순간, 이 소령이 몸을 날려 네티아를 덮쳤다.
그리고 곧바로, 치명적인 열기가 뒤따라 밀려왔다. 수천 도에 달하는 불길이 굉음을 내며 몰아쳐 강철을 꺾고, 책상과 의자를 짓이기며 두 사람을 향해 덮쳐 왔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 무언가가 네티아 앞을 가로막고, 타오르는 불길을 가르며 아주 좁은 생로를 열어젖혔다.
네티아!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네티아는 다시 한번 그 황금 참나무를 보았다. 격류 속에 선 암초처럼 광염을 막아서서, 그늘 아래에 있는 이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황금빛 중심에서, 마르가리타가 두 팔을 벌린 채 "싹"에서 흘러나오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힘을 온몸으로 지탱하고 있었다.
윽!!
붉은빛의 짙은 안개가 불길과 함께 솟구쳐 올라 금빛 장막을 찢어발기듯 들이쳤다. 마르가리타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공간의 균열은 멈추지 않고 거미줄처럼 시야를 뒤덮어 갔다.
흔들리는 황금빛 너머로, 그녀의 시선은 뒤에 있는 네티아를 향했다. 네티아는 첫 만남 때처럼 고통스러워하며 교관 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
그 순간, 모든 고통과 공포를 잊게 하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
마르가리타는 치명적인 안개에서 친구를 떼어놓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내어 화염을 향해 힘겹게 발을 내디뎠다.
네…티아…
끝없는 빛 속에서,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등 뒤에 남겨진 세계의 모든 색채를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슴에 새겼다.
너희를 만나 가족이 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불길이 소녀의 미소를 삼키고, 꿈결 같은 속삭임만 남겼다.
난 과거에 남을 테니, 너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
가끔 뒤를 돌아보는 것도 잊지 마.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네티아, 야킨카를 꼭 지켜 줘.
아딜레 대폭발 발생 22분 후
2162년 3월 16일
8:36 AM
네티…
어둡고 몽롱한 의식 속에서,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고 귓가에는 혼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티아…!
신경을 타고 극심한 통증이 퍼졌다. 부서진 감각들이 쇳가루처럼 모이고 흩어지며 서서히 의식을 깨웠다.
네티아!!
!
뜨거운 공기가 폐로 밀려 들어오자, 네티아가 번쩍 눈을 떴다. 곁에는 야킨카가 애타는 표정으로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지러운 발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네티아는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옥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대한 불덩이는 여전히 하늘에 떠 있었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번화했던 거리가 불타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세상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처절한 비명이 하늘을 찔러댔다. 피투성이가 된 채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사람들, 폐허 앞에 무릎 꿇고 멍하니 돌무더기를 파헤치다 손가락이 찢어진 사람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네티아는 피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위장 속에서 뒤틀리는 고깃덩어리처럼 흉측하게 꿈틀거리며 자신에게 기어 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네티아! 마르가리타는?!
야킨카가 네티아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흐려진 의식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마르가리타…?
네티아의 눈이 커지고 눈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마르가리타가 아직 연구소 안에 있어!
…뭐?!
야킨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네티아의 멱살을 잡았다.
어떻게 된 거야? 너 마르가리타를 구하러 간 거 아니었어?!
마르가리타랑 얘기하고 있었어... 그러다... 그러다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고, 발작이 와서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안... 안 돼.
야킨카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일어나, 멀리 무너져 불타는 고층 탑을 바라봤다.
…마르가리타!
야킨카가 밀물처럼 쏟아지는 인파를 거슬러 발걸음을 옮겼다.
야킨카! 어디 가?!
네티아가 야킨카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야킨카는 강한 힘으로 네티아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녀까지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가서 구해야 해!
네티아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야킨카는 이미 네티아를 끌고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비켜! 다들 좀 비키라고!
하지만 앞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두 사람을 가로막고, 계속해서 제자리로 밀어냈다.
막지 마! 마르가리타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야킨카의 목소리는 거대한 재난 앞에서, 바다에 떨어진 작은 돌처럼 아무 파문도 일으키지 못했다.
길 좀... 비키란 말이야!!
야킨카는 울먹이며 소리치고 밀어보았지만, 눈앞의 태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등 뒤에서 날카로운 경적이 울렸다. 곧이어 구형 세단 한 대가 묵직한 엔진 소리를 내며 저택에서 튀어나와 도로 위에 드리프트 하듯 멈춰 섰다.
너희 둘! 빨리 타!
창문이 내려가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 소령의 얼굴에는 선혈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교관님! 우릴 연구소로 데려다주세요!
미쳤어? 폭발이 거기서 일어났다고!
마르가리타가 아직 안에 있단 말이에요!
야킨카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안 돼! 이건 자살 행위야! 네티아, 얼른 야킨카를 차에 태워!
………
네티아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앞뒤를 번갈아 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쯧! 그럼, 저 혼자서라도 갈 거예요!
돌아와, 야킨카!
겁쟁이는 입이나 다물고 있으세요!
야킨카는 뒤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를 무시한 채, 다시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난 너희들 교관이야! 너희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아!
네티아, 야킨카를 꼭 지켜 줘.
순간, 한 목소리가 네티아의 머릿속에 또렷이 울렸다.
네티아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며 야킨카의 팔을 낚아챘다.
네티아는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네티아?
…미안해, 야킨카!
네티아는 오른손을 들어, 온 힘을 다해 야킨카의 옆 목을 내리쳤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야킨카는 줄 끊어진 인형처럼 네티아의 품으로 쓰러졌다.
빨리 타! 군대는 이미 강변에 집결했다. 거기까지 데려다주마!
미안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네티아는 야킨카를 뒷좌석에 눕히고, 그녀의 옆에 앉아 문을 세게 닫았다.
미안해… 마르가리타… 미안해.
네티아는 힘없이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어깨를 떨었다. 이내 깊은 후회와 무력감이 눈물이 되어 떨리는 손바닥 위로 소리 없이 떨어졌다.
미안해… 미안해…
몇 번이고 눈가를 닦아 보았지만, 손끝이 스칠수록 눈물은 더 거세게 쏟아졌다.
네티아는 흐느끼듯 중얼거리며 좌석에 기대, 뒤쪽에서 불타며 무너지는 고향을 바라봤다.
!
불길이 치솟는 지평선 위로 붉은 안광들이 검은 연기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