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헤티 실험 중학교
면역 시대
2162년
기숙사 창문이 반쯤 열려 있고, 저녁 바람이 베이지색 커튼을 말아 올리며, 한 번씩 조심스럽게 창틀을 두드렸다.
네티아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앞에 펼쳐 둔 <시라노>는 한참 전부터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은 채였고, 그녀의 시선은 줄곧 창가 쪽 침대에 머물러 있었다.
침대보는 주름 하나 없이 반듯했고, 베개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르가리타가 늘 무심코 침대 머리맡에 올려두던 봉제 토끼 인형마저, 마치 오래전부터 잊힌 것처럼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침대는 이틀째 그대로였다.
기울어진 햇살이 책상 위로 내려앉았다. 지난주, 야킨카가 아무 생각 없이 던져 두고 간 훈련 일정표가 바람에 들리며 한쪽이 들춰졌다. 그 아래에는 네티아가 연필로 가볍게 그어 둔 세로선들이 보였다. 무의식중에 세어 내려간 날짜였다.
……
달칵—
문득,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티아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가 서서히 풀리며, 익숙한 발소리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밤공기의 서늘함과 함께, 달콤한 과일 향이 섞여 들어왔다.
네티아~ 나 왔어!
햇살을 머금은 듯한 목소리였다. 마르가리타는 뒤에서 다가와 네티아의 어깨에 팔을 둘렀고, 작은 봉투 두 개를 "툭"하고 책 위에 내려놓았다.
헤헤, 이게 뭐냐면…
마르가리타.
자리에서 일어난 네티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너 이틀 동안 어디 갔었어?
기숙사 안에는 몇 초간 정적이 흐르며,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소리만이 들렸다.
아, 아무 데도 안 갔어. 베를리오즈 아저씨네 채소랑 과일이 익어서, 잠깐 시골에 다녀왔어. 재밌는 것도 많이 배웠고!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지만,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아, 이거 봐봐. 너 주려고 신선한 블루베리 골라 왔어. 이건 스타프루트인데, 야킨카에게 줄 거야~
마르가리타… 왜 우리한테 미리 말하지 않았어?
네티아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아니... 그냥 여행 좀 다녀온 거야.
마르가리타는 네티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채 블루베리 봉지를 만지작거렸고,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
네티아는 고개를 숙인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굳어 있던 눈빛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다음에는 꼭 미리 말해줘, 알았지?
우리... 모두 걱정했단 말이야.
……
마르가리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러고선 치맛자락을 쥔 손을 풀고 작게 중얼거렸다.
응.
카헤티 방어전이 끝나고, 세 사람이 "도미니카팀"으로 이름을 올린 지 한 달이 지났다.
스카우트 훈련이 마무리되고, 초봄의 연둣빛이 차가운 땅을 밀어 올리듯 고개를 내밀었다. 소녀들은 체계적인 교육 아래에서 웃고, 배우며 자라나고 있었다.
카헤티에서의 삶은 정해진 궤도 위에 있었다. 모든 학생은 세계 정부가 원하는 시민으로 성장해, 언젠가 지구를 지키는 전선에 서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간다.
당시의 네티아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게 그런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녀는 마르가리타, 야킨카와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르가리타는 간헐적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짧게는 하룻밤, 길게는 이틀일 때도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카헤티는 넓었고, 할 일은 늘 넘쳐났다. 네티아와 야킨카는 마르가리타의 사생활을 존중했고, 그녀가 자신의 행선지를 말하지 않는 것도 받아들였다.
처음엔, 이틀 만에 돌아와 축제용 빵을 굽는 걸 도왔다며 웃었다.
두 번째에는, 연속으로 훈련을 빠진 뒤 돌아와, 얼굴이 창백했지만 단순히 감기에 걸렸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그날, 마르가리타는 하루 종일 침대에 웅크린 채 깨어나지 못했다. 큰 병을 앓은 사람처럼,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있었고 숨소리는 불안할 만큼 가늘었다.
마르가리타에게 물어보면 늘 웃음과 작은 선물로 얼버무렸다.
묵묵히 기다려도 봤지만, 돌아오는 건 점점 더 나빠지는 상태뿐이었다.
마르가리타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혹시 다친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네티아와 야킨카는 마르가리타를 몰래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평범한 오후, 야킨카는 교문 밖에 멈춰 선 승용차 한 대를 보았다. 차창이 내려가고, 그 안의 인물이 마르가리타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야킨카는 그 얼굴을 분명히 보았다.
바로, 이 소령이었다.
마르가리타가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야킨카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킨카, 안나 아주머니가 다른 보호 구역 아이들 케이크 만들어 주는 걸 도와달래.
이번엔 좀 오래 걸릴 것 같아. 대신 돌아오면 작은 선물도 가져올게~
안나 아주머니가 누군데?
그분은… 베를리오즈 아저씨랑 아는 사이야. 지난번에 농장 갔을 때 알게 된 친한 분이야.
내가 알아봤는데, 베를리오즈 카라마조프는 6개월 전에 이미 카헤티를 떠나 무한 열차에 탔어.
그리고, 너랑 교관이 얘기를 나누는 것도 다 봤어.
포효하는 바람과 갈라지는 어둠, 네티아의 몸 위로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내려 그녀를 완전히 감쌌다.
……
마르가리타는 꽤 놀란 듯 입술을 달싹였다.
응. 교관님만 데려갈 수 있는 곳이 있어… 좀 먼 곳이야.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마르가리타,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야킨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초조함과 불안감이 단숨에 미간에 서렸다.
그녀는 한 걸음 다가가 마르가리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야킨카! 아파… 놔줘…
나와 네티아한테까지 숨겨야 하는 일이야? 우리 "가족"이잖아?
혹시, 나쁜 사람이라도 만난 거야? 말해, 내가 가서 이빨을 다 뽑아버릴게!
아니야, 야킨카.
마르가리타는 다른 손을 뻗어, 팔찌를 한 야킨카의 손목을 살며시 감쌌다.
너랑 네티아, 너희는 각자 잘하는 게 있고 너희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 그치?
나도 그래. 다만… 조금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마르가리타, 제발 좀 알아듣게 얘기해 줘.
야킨카는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랑 약속했어. 난 비밀을 지켜야 해.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할게. 내가 이런 선택을 한 건, 너희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어서야.
우린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날 믿고 조금만 기다려줘, 응?
마르가리타는 하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야킨카의 움켜쥔 손을 조심스레 풀어냈다.
마르가리타…
손이 떨어질 듯하자, 야킨카는 다시 힘을 주어 마르가리타의 손을 움켜쥐었다.
이유가 뭐든, 나나 네티아는 절대로… 절대로 다른 사람이 널 해치게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맹세해, 마르가리타.
야킨카는 손을 놓지 않고,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상대방의 눈을 바라봤다.
……
마르가리타의 연보랏빛 눈동자가 천천히 올라갔다.
응. 맹세할게, 야킨카.
깊은 밤, 네티아는 책상 앞에 앉아 교관이 추천해 준 외부 독서 자료 <폭풍의 아이들>을 넘기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마르가리타?
……
마르가리타는 문을 밀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더니, 힘이 풀린 듯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마르가리타?!
네티아는 곧장 달려가 마르가리타를 부축해 침대 옆으로 옮겼다.
...무슨 일이야?
네티아는 마르가리타의 불덩이 같은 손목을 잡고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그제야 은발 아래 감춰져 있던 초췌한 눈빛이 보였다.
마르가리타는 빛을 잃은 눈으로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목에서는 괴로운 쇳소리가 새어 나왔고, 늘 발그레하던 뺨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의사를 불러올게.
…네티아.
마르가리타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마르가리타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뺨을 타고 흘러내린 땀이 이미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대체 그 사람들이 널 데려가서 뭘 한 거야? 사람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고… 너 지금 상태가…
네티아는 이를 악물고 뒷말을 삼켰다.
이거 봐… 네티아…
마르가리타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떨리는 손으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작은 블루베리 케이크를 꺼냈다.
너랑 닮은 거 같지 않아? 이번에 만드는 법을 배웠어. 나중에...
난 이딴 거 필요 없어!
네티아는 그녀가 내민 손을 눌렀다. 억눌르고 있던 목소리가 끝내 터져 나왔다.
내가 원하는 건 너의 안전이야, 마르가리타! 그걸 왜 몰라?!
네티아…
마르가리타는 네티아의 보기 드문 격한 말투에 놀라 잠시 멍해졌다.
……
네티아 역시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걸 깨달은 듯, 날 선 기운을 거두고 가슴을 가득 채운 불안을 억누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미안해.
네티아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괜찮아, 네티아…
마르가리타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여전히 말해줄 수 없는 거야?
거의… 다 왔어.
마르가리타는 눈을 감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네티아, 불 좀 꺼줄래?
나... 조금만 쉴게.
………
시 위원회 청사
카헤티
11:14 PM
깊은 밤, 행정동 대부분은 카헤티의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4층 동쪽 날개 건물의 창문 하나만은 따스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랑 싸울 생각이 없어요. 제 말 좀 끝까지 들어보시겠어요, 네?
젊은 장교는 문을 등지고 원목으로 만들어진 책상에 걸터앉아, 브랜디가 담긴 유리잔을 흔들며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고전풍 유화 몇 점이 쌓여 있었다. 새로 배정받은 사무실을 위해 준비한 고급 장식품들이었다.
조직 개편으로 보직이 바뀌었어요. 낮에 제가 보낸 메시지 보셨죠? 이제 어머니도 더 이상 예전 집에서 살 필요가 없어요. 카헤티에 새집도 하나 마련해 놨다고요.
...안 된다니까요. 돈도 꽤 들었는데, 아무도 살지 않으면 아깝잖아요.
통화 너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이 소령은 인상을 찌푸리며 단말기를 귀에서 살짝 멀리했다.
그때 문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통화에 정신이 팔린 이 소령은 자연스럽게 넘겨버렸다.
아니, 회사에서 준 그 썩어빠진 집에는 왜 그렇게 미련을 두시는 건데요... 마 씨 아저씨? 그 양반은 도시 밖에서 무덤을 지키고 있잖아요. 어머니도 그 아저씨처럼 죽은 사람들과 평생 사실 거예요?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더 이상 싸우기 싫어요. 마 씨 아저씨한테도 집 하나 마련해 드릴 테니, 두 분이 앞집 뒷집에서 살면 되겠네요. 안 그래요?
그때,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정성껏 다듬은 머리칼이 흩날리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붉은 표지의 문서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이 소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갑자기 바람이 이렇게 세진 거지?
순간, 등 뒤에서 손 하나가 튀어나와 그의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읍!!
수없이 단련된 몸이, 생각보다 먼저 반응했다. 오른팔의 근육이 단숨에 긴장하더니 곧바로 뒤쪽의 습격자를 향해 날아갔다.
둔탁한 신음 소리와 함께 상대의 힘이 느슨해졌다. 소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상대의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너, 누구야?!
몸을 돌리려는 순간, 코를 찌르는 달콤하고 역한 냄새가 나는 젖은 수건이 덮쳐와, 마치 독사의 혀처럼 그의 입과 코를 휘감았다.
소령은 수건을 쥔 팔을 두 손으로 꽉 잡고 무릎을 굽혀 책상을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2초도 지나지 않아, 방금 뿌리쳤던 팔이 다시 달려들어 그의 몸을 짓눌렀다.
상대는 한 명이 아니었다.
컥… 읍…!!
자극적인 화학 약품 냄새가 코를 통해 끊임없이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눈앞의 세계는 형태를 잃은 색의 덩어리로 일그러졌다.
의식을 완전히 잃기 전, 이 소령은 이를 악물고 남은 힘을 끌어모아 가슴 앞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툭, 팔이 힘없이 책상 위로 떨어졌다. 곧이어 방 안에는 거칠고 무거운 숨소리만 교차하며 울렸다.
………
두 명의 습격자는 창문을 닫고 불을 끈 뒤, 의식을 잃은 이 소령을 들어 밖으로 옮기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밤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으으…
눈썹 사이를 찌르는 통증에 정신이 들었다.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촤악! 뼈가 시릴 만큼 차가운 물이 얼굴에 끼얹어졌다.
커헉!!
말... 말로 하자고! 돈이라면 얼마든지…
소령은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들었고, 눈에 들어온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두 얼굴이었다.
깨셨네요. 물은 충분히 드셨나요?
교관님, 저희랑 얘기 좀 합시다.
*, 너희들 미쳤어?!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 쳤지만, 온몸에 감긴 밧줄이 그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
네티아! 야킨카! 너희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아?!
일단 저희 얘기부터…
나, 세계 정부에서 훈장 받은 소령이야! 카헤티 병단의 신임 교관이라고!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희 둘 다 끝장이야, 알아?!
...며칠 전, 교관님이 마르가리타를 데리고 나간 적 있으시죠? 어디로 갔고, 거기서 뭘 했는지 말해주세요.
네티아는 반쯤 몸을 낮춰, 이 소령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도와줘!! 거기 누구 읍으읍…
야킨카가 이 소령을 발로 찬 뒤, 입에 걸레를 쑤셔 넣었다.
여긴 지하 방공호 지휘실이에요. 교관님이 톨리드여도 소용없어요.
비행 클럽에서 대심문 수업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아딜레 사람들이 예전에 상대국 파일럿을 어떻게 다뤘는지 아세요?
야킨카는 화물 상자에서 부집게를 꺼내 옆에 있던 난로 속에 집어넣었다.
읍!!
이 소령의 동공이 순간 수축했다. 이 소령이 아는 야킨카, 이 미친 계집애라면 복수심에 정말로 고문도 서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네티아가 말려주기를 간곡히 바랐다.
기절하지 않게, 적당히 해.
읍!!!
야킨카는 코웃음을 치며 벌겋게 달아오른 집게를 꺼내 그의 눈앞에서 천천히 흔들어댔다.
저희는 그저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 마르가리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제대로 답해줄 수 있으시죠?
으읍!
소령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네티아는 일어나 야킨카에게 눈짓을 보냈다.
야킨카는 부집게를 던져버리고 이 소령의 입에 물린 걸레를 확 잡아뺐다.
쿨럭, 콜록콜록…
마르가리타를 데려간 곳은 카헤티 연구소야. 너희가 동원 집회를 했던 곳 있지? 연맹 문화 기념탑 아래에 있는…
연구소요? 거긴 왜요?
카헤티 연구소는 세계 정부 직속 기관이고, 공중 정원과 협력하는 사람들이야. 자세한 건 연대장님만 알아.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이었는데, 최근 들어 요구가 잦아졌어.
그 순간, 네티아의 머릿속에 303호실에 처음 들어갔던 그날 밤이 생각났다.
어젯밤에는 왜 기숙사에 안 들어왔어? 어디 갔었던 거야?
이미… 그때부터 진행 중이었군요.
그 사람들이 마르가리타한테 나쁜 짓을 한 거죠? 아니면, 왜 돌아올 때마다 몸을 못 가누는 건데요?
스카이링 영화관에서 자극적인 걸 너무 많이 봤나 보네. 연구소 업무는 전부 감사원 감독하에 이뤄져, 무슨 어둠의 변태 인체 실험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솔직히 마르가리타가 뭘 겪든 내 알 바 아니야. 내일 마르가리타를 다시 데려다주기만 하면, 정부에서 카헤티에 막대한 지원금을 내려줄 테니까.
내일이요?! 이틀 전에 이미 갔다 왔잖아요!
야킨카가 돌진해, 이 소령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카헤티 혼자 힘으로 퍼니싱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현대전이야. 세계 정부의 자원 없이는 우린 아무것도 못 해.
마르가리타는 지금 많이 아파요. 데려가게 두지 않을 거예요.
글쎄, 과연 너희 뜻대로…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령은 고개를 들며 조금씩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마르가리타를 걱정할 시간에 본인들 걱정이나 하는 게 어때?
쾅! 네티아 뒤에 있던 문이 박살 날 듯 열리더니, 완전히 무장한 병사들이 들이닥쳐 총구를 겨눴다.
꼼짝 말고 엎드려! 안 그러면 쏜다!
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병사들은 곧바로 이 소령의 결박을 풀어줬다. 그는 목과 손목을 천천히 풀며, 바닥에 제압당한 네티아와 야킨카를 내려다봤다.
교관님…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이 소령은 태연하게 가슴 주머니에서 금빛 회중시계 하나를 꺼냈다.
여기, 위치 추적기가 들어 있어. 원래는 암살자 대비용이었는데, 너희들한테 쓰이게 될 줄은 몰랐군.
쳇, 목숨 하나는 끔찍하게 챙기시네.
스카우트 야킨카, 네티아! 현역 군인을 습격한 죄로, <스카우트 수첩> 풍기 조례에 따라 임시 감금 처벌을 내린다.
추후 스카우트 재판이 열릴 때까지 대기하도록!
징계실
6:10 AM
새벽빛이 환기창을 통해 스며들며, 어두운 징계실 바닥에 작은 점 하나를 만들어냈다.
녹슨 철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좁은 공간, 야킨카는 철창에 기대 코를 훌쩍이며,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획 한번 참 허술하다. 하룻밤도 못 버티고 이게 뭐야.
어제 의견 내라고 할 때는 아무 말 하지 않았잖아.
몸수색도 하지 않은 우리가 바보지. 진짜 돌아가서 나 자신을 한 대 치고 싶네.
그래도 교관은 이번 일로 교훈을 얻었을 거야.
네티아는 철창을 짚고, 야킨카 옆 감방에 놓인 나무 상자를 바라봤다. 그 위에는 두 사람에게서 압수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밧줄, 마취제, 팔찌… 그리고 "몰리간".
조금 전에 문밖 경비병들이 교대하러 가는 소리를 들었어. 시간이 없어. 교관이 마르가리타를 데려가기 전에 막아야 해.
어떻게 하려고?
이 자물쇠 구형이야. 지금 감시도 없고… 탈출할 기회일지도 몰라.
야킨카는 감방 밖으로 손을 뻗어 자물쇠를 움켜쥐고, 철창에 세게 내리쳤다.
살살 좀 해. 로켓 공장이 다시 가동되는 줄 알겠다.
쯧, 이 고물딱지 왜 이렇게 단단해!
그 "고물딱지"는 야킨카의 생각보다 훨씬 튼튼했다. 네티아는 쭈그리고 앉아 자기 감방 자물쇠의 구조를 유심히 관찰했다.
철판 조각이나 철사만 있으면, 열 수 있을 것 같아.
뭐? 너 자물쇠도 딸 줄 알아?
교양 수업 교재에 있어서 한 번 보고 외웠어.
쯧, 말 진짜 얄밉게 하네.
야킨카는 두 손을 철창에 얹고는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그 모습을 본 네티아는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이 커졌다.
야킨카, 옆에 있는 상자에 손 닿아?
한 번 해볼게. 뭐 하려고?
몰리간을 나한테 건네줘.
야킨카가 잠시 멈칫했다.
그걸로 자물쇠 부수려고? 진짜 괜찮겠어? 저번에 내가 그거 만졌더니 날 잡아먹을 것처럼 굴었잖아.
내가 깨어났을 때 곁에 있던 유일한 물건이어서 그랬어. 그땐, 저것보다 더 중요한 게 없었지.
네티아가 미소 지으며 야킨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젠 생겼어.
후... 드디어 나왔네.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야킨카는 삐걱거리는 철문을 밀고 나와 환기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아래에 서서 몸을 좌우로 쭉 늘렸다.
그때, 야킨카의 귀가 무언가에 반응한 듯 살짝 움직였다.
…경비병이 돌아오고 있어.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난 파일럿이잖아.
야킨카가 자기 귀를 톡톡 두드렸다.
연구소 밖에도 경비병이 꽤 있어. 내가 놈들을 유인할 테니까, 넌 마르가리타를 구하러 가.
내 발목 잡지 마, 네티아!
야킨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징계실 문을 힘껏 열었다. 눈 부신 빛이 한순간에 쏟아져 들어왔다.
야킨카!
네티아가 크게 소리치자, 야킨카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조심해.
흥, 당연하지!
야킨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
네티아는 몸을 돌려 마르가리타가 두 사람에게 선물해 준 팔찌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두 개를 모두 자신의 손목에 찼다.
마르가리타, 조금만 기다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두 소녀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동시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카헤티 연구소
핵심 구역 제어실
같은 시각
제어실의 자동문이 열리고, 오늘 근무 중인 조작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복도의 답답한 공기와 탄 커피 냄새가 함께 밀려왔다.
여기요, 며칠 동안 계속 지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하암… 고마워. 이대로 하룻밤만 더 새우면 도미니카 보러 가게 생겼네…
조작원은 김이 나는 커피를 메인 콘솔 옆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홀로그램 화면에 떠 있는 은발의 소녀를 쳐다봤다.
어? 옆 부서에 자주 와서 맨날 케이크 갖다주던 그 여자애네요?
맞아, 그쪽 실험도 이제 막바지라던데.
음… 동기율이 92.7퍼센트, 이전 테스트보다도 높네요. 분명 성공하겠는데요.
조작원은 호기심에 몸을 기울이며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넘겼다.
쯧, 그만 봐. 일은 다 끝냈어? 테스트 데이터 마무리하고 얼른 퇴근하자고.
남자는 혀를 차며 조작원의 손을 툭 쳐냈다.
하고 있어요, 보세요.
여자가 조작 콘솔을 만지자, 벽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곡면 스크린이 환하게 켜졌다.
화면 중앙에는 여러 겹의 구조물에 둘러싸여 맥동하는 거대한 황금빛 광핵, 이 도시의 영원히 뛰는 강철 심장, "카헤티 4호 원자로"가 떠 있었다.
수많은 빛의 흐름이 그 중심에서 뻗어 나와 살아 있는 혈관과 신경망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고, 점선으로 표시된 경계를 넘어 끝없이 확장했다.
그 흐름들은 카헤티 전역과 연결되어 의식의 바다 공명 반응으로 생성된 에너지를 도시 전력망, 중앙 급수 시스템, 여과탑과 공장으로 보내며 수만 명의 현대적인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야간 저출력 모드는 이미 해제됐고, 한 삼십 분만 더 지나면… 음?
그녀의 시선이 화면 한쪽에서 멈췄다.
이… 이거 좀 보세요.
왜 그래?
조작원은 구석에 있는 안전 경고등을 가리켰다.
...켜졌어?
갑자기 걸음을 멈춘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는 커피잔을 든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여기서 일하면서 안전 경고등이 켜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안전 매뉴얼에 뭐라고 되어있는지 한 번 확인해 봐.
아, 안전 매뉴얼…
그녀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옆에 놓인 작은 책자를 급히 넘겼다.
경고등 하나... 경고등 하나…
찾았어요! 경고등 하나는 노심 일부 노후화를 의미하고, 인공 의식의 바다 반응 효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으며, 상부에 보고 후 정비 및 점검할 것을 권장……
후… 놀, 놀랐네요…
큰일이 아님을 알게 된 조작원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에 과학 이사회 사람이 와서 점검까지 했잖아. 이상하네…
남자는 턱을 문지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는 문 쪽으로 향했다.
어? 어디 가세요?
상부에 보고하러 가야지. 매뉴얼에 그렇게 되어 있잖아.
같이 가시죠. 저도 여기가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싶어요.
조작원은 자동 감시 시스템을 가동하고 외투를 걸친 뒤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갔다.
센서 등이 꺼지자, 실내는 다시 정적에 잠겼고, 유리창 너머의 4호 원자로만이 낮은 소음을 내고 있었다.
거대한 윤곽은 어둠 속에서 건물과 하나가 된 듯했고, 수많은 표시등이 별 무리처럼 몸체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밝힐 수 있는 에너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 깊숙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펌핑되고 있었다.
삐—
시야 밖 어느 구석에서 섬뜩한 붉은 빛이 번쩍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