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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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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헤티 실험 중학교

2162년

1:48 PM

...그럼 마지막 그림을 볼까요. 이걸 보면, 어떤 게 떠오르나요?

나무요. 나무밖에 안 떠올라요.

나무라, 좋아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음…… 크리스마스 때 상점 앞에 놓여 있는 트리랑 비슷해요. 아래에는 뿌리가 있고, 양옆으로 가지와 잎이 퍼져 있어요.

그런데 이건 좀 특이해요. 색깔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색이요? 어떤 색이 느껴지나요?

금색… 아니면 빨간색 같아요. 그 위에는 어두운 하늘이 덮여 있는 것 같고, 마치 눌려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혀요. 그리고… 그 나무가 피를 흘리고 있어요.

……

의사는 말없이 카드를 정리하며, 소녀의 답변을 기록지에 적어 내려갔다.

그렇군요. 방금 크리스마스트리를 언급했는데, 마지막으로 그것을 본 장소는 기억나나요?

저는…

머릿속이 찌릿하게 아려오자, 네티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죄송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퇴원 첫날이니 괜찮아요. 네티아는 이미 충분히 잘 회복하고 있어요.

네티아가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보건교사는 적절한 시점에 질문을 마무리했다.

선생님, 방금 제 대답으로 봤을 때... 저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음… 추상적인 그림을 볼 때 여러 번 "나무"를 떠올렸고, 그 묘사에는 "타오른다"와 "피를 흘린다"처럼 긴장감이나 불편함을 유발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어요.

이건 보통, 아주 강렬한 기억이나 감정이 몸속 어딘가에 조심스럽게 숨겨져 있다는 뜻이에요. 마음에 상처가 생겼을 때, 뇌가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않으려고 그 기억을 봉인해 보호하는 것처럼요.

우리는 그걸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라고 불러요. 병원에서 들었겠지만,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기제죠.

보호…

네티아는 시선을 떨구며, 어딘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소리"들이 들리면, 심장이 조여 오는 것처럼 아파요. 매번 너무 괴롭고, 심하면 의식을 잃을 것 같을 때도 있어요…

"그런 소리"들이요?

네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면… 날카로운 폭발음, 도심에 있는 로켓 공장의 엔진 시험 소리, 그리고 갑작스럽게 들리는 큰 소음들이요.

그렇군요.

보건교사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차트를 넘겨, 환자의 증상이 적힌 칸에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기록에도 적혀 있듯이, 이건 PTSD로 인한 합병 증상이에요. 너무 불안해할 필요 없어요. 꾸준히 치료받으면, 상태는 분명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오늘부터는 매주 월요일 오후에 여기 와서 약을 받아 가세요.

그는 서랍을 열어 약병 두 개와 열쇠 한 묶음을 꺼내 네티아에게 건넸다.

여기요. 아침 식사 후에 하루 한 번 복용하세요. 이건 기숙사 열쇠고 303호실이에요. 학교에서 성격이 밝은 룸메이트를 한 명 배정해 두었어요.

뒷말을 들은 순간, 네티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저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요. 굳이 이런 배려를 해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물론이죠. 네티아의 앞으로의 학교생활은 다른 평범한 학생들과 다르지 않을 거예요. 정상적으로 수업을 듣고, 스카우트 훈련에도 참여하게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네티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건 몸이 먼저 반응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런 예절을 어디에서 배웠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요 며칠, 네티아는 줄곧 강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이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영혼이 타인의 육체에 갇혀 있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선생님, 질문 하나만 더 할게요. 꼭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보건교사는 다시 고개를 들어, 진지하고 간절한 소녀의 눈빛과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정교회 신자예요, 네티아. 제 앞에서는 무엇이든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제 병은 완치될 수 있나요? 제가 잊어버린 기억들… 언젠가는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요?

네티아의 말이 빨라졌다. 그녀는 명확한 답이든 빈말이든 위로가 절실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황금시대 이전부터 수많은 기억 상실과 PTSD 환자들이 완치된 사례가 있어요. 그러니 그 점은 안심해도 돼요.

하지만… 어느 시대건 정신 장애는 의학계에서 가장 풀기 힘든 난제 중 하나에요. 구조체 기술에 대해 들어본 적 있죠? 그 기술은 육체적 고통의 대부분을 제거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치유하지 못해요.

시대마다 상처의 형태는 다르고, 사람마다 짊어진 고통도 달라서, 이 분야에서는 누구도 같은 흉터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는, 결국 자신에게 달려 있어요.

고개를 숙인 네티아는 종종 극심한 고통을 가져오는 그 박동을 느끼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낯선 느낌도, 심장이 조여오는 고통도 싫어요. 전 반드시 극복해 낼 거예요.

촤르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보건교사가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네티아의 얼굴을 따스하게 비췄다.

제게 세례를 내려준 신부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어요. "결핍된 영혼만이 구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저는 이 말이 네티아게도 통한다고 생각해요.

네티아의 적은 바로 상처예요. 그리고 그 상처를 지닌 자신이기도 하지요. 반드시 그것을 "극복"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이 구원의 여정 그 자체에 집중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지금과는 다른, 조금 더 평온한 삶의 방식이 보일지도 몰라요.

창가에 서 있던 보건교사가 한 걸음 물러서며 손짓으로 네티아를 불렀다.

……

광활한 하늘과 땅 사이, 높이 솟은 여과탑을 중심으로 수많은 공장이 황금빛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뻗어 있었다.

수천 톤의 강철을 실은 열차가 굉음을 내뿜으며 공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머지않아 그것들은 수만 명의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로켓 엔진이 되고, 인류 전체의 희망에 불을 붙여 우주를 향해 날아오를 것이다.

종소리가 울리며 점심시간이 끝났다. 대공포 아래에서 뛰어놀던 학생들이 와르르 흩어져 군인들의 순찰 대열을 가로지르며 사방에서 학교 건물로 몰려들어 갔다.

이곳은 아딜레 연맹의 기술과 문화의 수도예요. 황금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상은, 모든 사람의 결함을 품을 만큼 넉넉하지요.

네티아는 손에 있는 열쇠를 꼭 움켜쥐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과 같이 외롭고 평범한 사람도 이렇게 웅장하고 거대한 일에 몸을 던질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 듯했다.

네티아, 오늘부터 네티아는 저희의 일원이에요.

카헤티에 온 걸 환영해요.

카헤티 실험 중학교

13시 48분

카헤티의 학생들은 기숙사에 틀어박혀 있기보다는, 공용 활동 구역에서 몸과 마음을 푸는 쪽을 더 선호하는 듯했다.

네티아가 생각하던 "기숙사"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곳은 층마다 운동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

1층에는 농구실과 러닝머신, 2층에는 배구 네트와 배드민턴 코트… 그뿐만 아니라 각 층마다 자료가 잘 갖춰진 작은 도서 코너가 마련돼 있어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습할 수 있었다.

거대한 붉은 현수막이 돔 천장 아래에 걸려 있었다. 그 문구는, 세계가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시끄러워.

네티아는 양호실에 가기 전, 1층 끝에 있는 공용 휴게실에 짐을 잠시 놓고 갔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의 가방은 입을 쩍 벌린 채 바닥에 던져져 있었고 물건들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어? 뭐야 이거. 한 번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야?

야킨카 누님, 사람당 목숨이 하나라며. 이제 내 차례야.

꺼져, 이번 판은 무효야.

누가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래.

안대를 낀 소녀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분노에 찬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그거 내 물건이야. 내놔.

네티아는 소녀의 손에 들린 구식 게임기를 가리켰다. 외장은 낡았고, 표면에는 작은 도색 글씨로 "몰리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뭐야? 제이, 이거 네 거 아니었어?

그녀는 옆에 있던 소년의 귀를 붙잡고 거칠게 비틀었다.

아야! 누님! 아파, 그만해!

공용 휴게실에 놓인 건 다 같이 쓰는 거지, 뭘 네 거 내 거를 따져…

너, 그리고 너. 당장 나한테 사과해.

네티아는 두 사람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하?

야킨카는 눈썹을 꿈틀거리다가 껄렁하게 일어나 네티아의 앞을 막아섰다.

너 말이야, 여긴 집단생활이야. 공공 구역에 있는 건 다 공유하는 거라고. 기본 규칙도 몰라?

맞아, 맞아! 너도 우리 장난감이랑 케이크를 가져가도 돼!

난 여기 사람이 아니야. 너희 규칙을 내게 강요하지 마.

네티아는 야킨카의 손목을 붙잡고 게임기를 되찾으려 했지만, 야킨카는 끝까지 놓지 않았다.

쳇, 외지인? 어쩐지 날 모른다 했다.

뭐야! 감히 누님한테 손을…

제이가 달려들어 네티아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네티아가 한발 물러서며 그의 손목을 비틀어 잡았다.

아악, 아파 아파—!

그때, 밖에서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제이의 비명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위층에 있던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고개를 내밀었다.

몰리간을 돌려줘. 그리고—

쿵——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창밖의 잔잔한 소음이 한순간에 거대한 굉음으로 뒤바뀌었다.

윽!

네티아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심장이 조여들었고, 보이지 않는 전류가 온몸을 관통하는 느낌과 함께 극심한 통증이 한순간에 덮쳐왔다.

날카로운 이명이 신경을 찢듯 울려 퍼졌다. 네티아는 몸을 웅크린 채 쓰러졌고, 식은땀이 창백한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숨조차 통증에 맞춰 거칠어져 갔다.

바보야! 너 무슨 짓 한 거야?!

나,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로켓 소리 나자마자 쓰러졌다고!

멍때리지 말고! 빨리 가서 보건교사를 불러와!!

의식이 흐릿해지며 시간이 끝없이 늘어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눈앞의 모든 것이 멀어지고 현실감이 사라져 갔다.

그때,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처럼, 귀에 이상할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불타는 하늘 아래, 한 여자가 네티아를 끌어안고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한 걸까? 그리고, 여긴 또 어딜까?

앞… 달려.

뒤돌아... 마.

네티아는 그 말이, 자신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말일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기억은 흐릿한 필터에 덮인 것처럼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희미해졌고, 끝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력감이 네티아를 짓눌렀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진실을 갈구하며 몸부림치듯, 여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여자는 사라졌고, 대신 또 다른 따뜻한 힘이 그녀를 붙잡았다.

????

네티아… 정신이 들어?

눈을 뜨자, 낯선 소녀가 미소를 띤 얼굴로 땀에 젖어 있는 네티아의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네티아는 그녀의 무릎 위에 누운 상태였다. 주변은 여전히 기숙사 공용 휴게실이었고, 야킨카는 긴장한 얼굴로 곁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너는…?

난 마르가리타야. 또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마르가리타는 손을 뻗어 네티아의 이마 옆 머리칼을 살짝 정리해 줬다.

네티아는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 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짓누르던 숨 막히는 이질감은 사라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평소라면 수십 분은 계속되던 증상이 이번엔 몇십 초도 되지 않아 완전히 가라앉았다.

이제 괜찮아. 고마워…

일어날 수 있겠어? 내 손잡고, 천천히, 조심해서 일어나.

응…

네티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마르가리타가 그녀의 치마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 주었다.

자, 학생증이랑 열쇠 떨어져 있더라.

헤헤, 나도 303호야. 오늘부터 우리 룸메이트네!

그제야 네티아는, 보건교사가 말했던 "밝은 성격의 룸메이트"가 바로 이 아이였다는 걸 깨달았다.

우연치고는 너무 딱 맞는 상황에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마르가리타는 이미 고개를 돌려 야킨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긴—카, 또 친구를 괴롭히고 있었지?

난… 쟤가 먼저 손댔어.

마르가리타의 추궁에 야킨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피한 채 구두 끝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의 물건 가져간 거 맞아? 손 내밀어 봐.

야킨카는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처럼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자, 네티아. 야킨카가 또 귀찮게 하면 나한테 꼭 말해~ 알았지?

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귀찮게 하지 않았다니까. 쟤가—

야킨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르가리타가 뒷짐을 지고 휙 돌아보았다.

자자, 됐어. 최근에 급식실 이모가 새 케이크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한 번 먹어 볼래?

…응.

그럼, 함께 출발~

마르가리타는 야킨카의 손을 잡고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끌고 갔다.

멀어지는 마르가리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네티아는 고개를 숙여 손에 든 303호 열쇠를 내려다보았다.

저기—!

짧은 망설임 끝에 네티아가 발을 내디뎠다.

응?

마르가리타가 조금 의외라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고마워, 마르가리타.

조금 전에도 고맙다고 했잖아~ 나한테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어~

앞으로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

뜻밖의 말에 마르가리타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우린 룸메이트잖아!

아, 그러고 보니—

마르가리타는 무언가 떠오른 듯, 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연한 보랏빛 구슬이 달린 팔찌였다.

자, 이건 네티아한테 주는 선물~

마르가리타가 다가와 네티아의 손목에 팔찌를 채워주었다.

와~ 야킨카, 봐봐! 네티아한테 엄청 잘 어울리지 않아?

마르가리타는 웃으며 네티아의 손을 잡아 들어 올렸다.

응? 아, 뭐...

야킨카는 네티아와 눈을 마주치기 싫은지, 흘긋 쳐다보고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고개를 돌리며 머리카락을 배배 꼰 야킨카의 손목에서도 연한 노란빛 팔찌가 반짝이고 있었다.

좋아! 오늘부터 우린 모두 친구야!

앞으로 잘 부탁해~ 네티아!

응. 잘 부탁해.